지난 겨울 장례를 치르면서 겪은 가장 무섭고 충격적인 장면은 고인과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입관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맞은 편 어두운 곳에 늙수그레한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마치 동굴과 같은 어둡고 좁은 공간 끝에 앉아 있는 할머니의 슬픈 눈과 마주쳤다. 그 할머니는 청소 노동자였고 동물을 사육하는 공간이라고 해도 분노가 치솟을 그 못 쓸 공간은 할머니의 휴식공간이자 청소 도구를 보관하는 곳이다. 


그 차갑고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할머니는 매일 몇 번씩 사랑하는 가족을 좁은 관속에 모시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아야 한다. 사람의 머리에 도대체 뭐가 들어있어야만 다른 사람을 저런 공간에서 지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세상을 그만둔 사람도 있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 사람도 있다. 수시 원서 카드 6장을 오로지 본인이 원하는 학과에 지원한 딸아이는 대체로 본인이 원했던 대학에 합격했다. 별일 없으면 합격할 것이라는 대학에서 쓴잔을 마셨지만 결국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중에야 알았는데(나는 모든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심지어는 대학원서 마감 날이 언제인지도 딸아이의 최종 내신 성적도) 딸아이는 수능을 앞두고 ‘눈에 불이 나오도록’ 열심히 했다는데 그 불이 집에 와서도 다 꺼지지 않아서 우리 부부는 딸아이에게 쉽게 말도 붙이지 못했다. 


한 국립대학에 원서 한 장을 배정하는 것 이외에는 모두 딸아이의 결정이었다. 부모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대학에 합격할 때는 세상 부러운 것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쉬운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다. 원서만 냈으면 합격했을 다른 대학을 생각하니 그랬다. 하나뿐인 자식인데 말이다. 추운 겨울 새벽에 예비대학 캠프를 떠나는 딸아이를 서울까지 데려다주었다. 딸아이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돌아서다가 ‘학교가 정말 작긴 작구나’라고 중얼거리고 말았다. 이래서 별명이 고등학교 구나 라는 말까지.


아내라고 왜 아쉬움이 남지 않겠는가. 서로에게 화를 냈고 홧김에 갈라섰다. 캠퍼스 이곳저곳을 따로 걸었다. 추위는 살을 에는 듯했고 좁다는 캠퍼스는 오밀조밀 걸을 곳이 많더라.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했다는 건물을 살펴보고, 이름이 따로 있다는 학교에 서식하는 고양이도 구경했다. 


낯선 땅 서울에서 추위를 유난히 타는 우리 부부는 서로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화를 걸었다. 2명이 20분을 따로 걸어도 마주치지 않을 만큼 넓은 학교라는 것을 인식한 나는 좀 전의 발언에 대해 사과를 할 용의가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성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심전심으로 예비학교를 떠나는 딸아이를 배웅하면서 부부싸움을 한 잘못에 대해서 고회성사라도 할 생각이었나 보다. 우리는 성당을 함께 구경했고 장차 딸아이가 공부할 건물도 다녀보았다. 난방을 따로 하지는 않았지만, 건물 안은 따뜻했다. 문득 내 눈앞에 보이는 사무실 명패가 눈에 띄었다. 내가 장례식 때 보고 놀란 그 좁고 어두운 동굴과도 같은 공간과 같은 용도로 쓰이는 넓고 밝은 공간이었다. 



그리 평범한 공간을 보고 감동을 한 적이 있었을까. 사람을 중요하게 사람답게 대하는 학교라는 생각에 감격했다. 이런 학교에 내 자식이 다닌다고 생각하니 더욱 자랑스러웠다. 지금이라고 아쉬움이 왜 남지 않았겠는가. 다만 어찌 보면 딸아이의 품성과 잘 맞는 대학이라는 생각을 하면 아쉬움이 많이 달래진다. 화려하고 크지는 않지만 점잖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교.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존중이 가득한 곳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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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느 2019-12-09 16: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멋진 따님, 멋진 부모님이네요. 저는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대학은 머나먼 얘기 같은데 주위를 보면 아이들이 어릴때부터 모든걸 부모가 개입해서 아이들이 자율성이라고는 없어보이더라구요. 부모님에게 의지하지 않고 눈에 불을 켜고 공부했다는 따님은 정말 걱정하시지 않아도 될듯해요. 저희 아이들도 따님과 같았음 좋겠어요. 그리고 따님이 다닐 학교에 저런 공간을 놓치지 않고 보셨다는것도 넘 놀랍네요. 따스함이 느껴지는 글이 기분좋게 하네요 감사합니다.^^

박균호 2019-12-09 17:17   좋아요 0 | URL
그냥 아이들 뜻 존중해주고 부모로서 따뜻한 사랑만 주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제가 그랬다는 것은 아니고요 ㅎㅎㅎ 좋은 말씀 감사해요..

moonnight 2019-12-14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 장한 따님이십니다. 훌륭한 부모님이 반듯하게 잘 키우셨어요. 제 조카아이들도 저렇게 컸으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따뜻한 글 잘 읽었습니다^^

박균호 2019-12-14 14:34   좋아요 0 | URL
따뜻하게 생각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