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단단함 - 세상.영화.책
오길영 지음 / 소명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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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단단함>은 영문학을 전공한 대학교수가 쓴 문화 에세이다. 오길영 선생이 쓴 이 책을 읽기로 결심하는 데는 약간의 주저함이 필요했다. 제목도 표지도 묵직하다. 결국 이 책을 읽기로 한 것은 오길영 선생이 SNS에 올리는 일상적인 글을 읽고 있자니 현학적이고 어려운 글을 추구하는 학자가 아니라는 알겠고, 문학 이론서를 주로 내는 <소명출판>이 출간을 결정했다면 '무슨'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단단함>을 읽자마자 망치로 뒤통수를 맞는 듯한 충격이 있었다. 가령 이런 '단언'이 그랬다.

첫째, 지금도 작가의 "불결'한 삶과 작품을 분리하는 케케묵은 독법을 내세우는 시각이 있다는 것, 자신의 무지를 그런 식으로 눙쳐서는 곤란하다. 그건 현대문학 이론의 동향에 눈 감은 채 수십 년 전 작품 물신주의를 신봉하는 것이다. 둘째, 여전히 미당의 추종자들이 많다는 것. 이 평론가는 일제 강점기를 "지금의 이북"과 동일시하면서 그때는 "비판의 자유"가 없었으므로 "일률적으로 친일파를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아량을 베푼다.


대학교수가 쓴 말랑말랑하고 여유를 찬양하는 에세이거나, 그들만의 리그에서 사용하는 암호문의 나열인 것으로 오해하는 독자들이 없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선입견이 없지는 않았지만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는 '문화예술에 관한 실질적인 가치관의 정립과 방향'을 제시해주는 실용적인 책이라는 것을 알았다.

미당의 문학과 친일행위를 분리할 것인가? 라는 고민은 문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두는 사람이라면 평생에 걸친 고민이 될 수 있다. 나만 해도 '친일만 안 했어도'라는 말로 은근히 양다리를 걸치는 편이다. 이 문제를 두고 깊은 사유나 연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언을 할 수 없었다. 

거창하게 예술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티브이 드라마를 보면서도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된다. 가령 드라마 <야인시대>에 등장하는 자유당 부역자 임화수를 생각해보자. 그의 악행을 보면서 분노를 하지만 막상 사형을 앞두고 어머니와 면회를 하면서 임화수가 눈물을 쏟는데 내레이터가 "그는 보기 드문 효자였다고 한다"라는 멘트를 하면 마음이 흔들린다. 

집에서 효자인 임화수와 밖에서 독재 정부에 부역하는 임화수를 어떻게 정리를 할 것인지 잠시나마 고민을 하게 된다.<아름다운 단단함>을 읽은 독자라면 더 그런 고민을 하지 않게 된다. 맥락과 시각의 크기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집에서 따뜻한 효자는 좁은 시각이고 민주주의라는 큰 시각에서 보면 독재정권의 부역자다. 

큰 시각으로 평가하자는 기준을 생각하면 한 사람을 어떤 카테고리에 포함해야 할지 고민이 되지 않는다. 세월호 비극을 두고 '아이는 또 있지 않은가'라든가 '또 낳으면 되지 않는가'라고 말을 하는 악마를 만나면 오길영 선생의 이 단언을 생각해보자.

윤리는 그 어떤 아이로 대체할 수 없는 "이 아이"의 존재를 인정하는 태도에 기반한다.


~다로 끝나는 단언의 글은 우연히 나오지 않는다. 수년간의 각고의 노력과 사색이 필요하다. <아름다운 단단함>에는 ~다로 끝나는 오길영 선생의 단언과 정의가 가득하다.

사생활을 들먹이기 시작하면, 아마도 세계문학사나 영화사에서 살아남을 작가나 감독, 배우, 예술가는 거의 없을 것이다. 도덕군자이면서 뛰어난 작가, 감독, 배우, 예술가를 나는 거의 알지 못한다.


다행이다. 나는 도스토옙스키를 버리지 않아도 되고, 아내는 이 모 배우를 내치지 않아도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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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12-02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도스토옙스키는 왜...? 도박꾼이라서요?
전 고은 시인을 어떻게 봐야할지 모르겠더라구요.
해외 언론이나 작가들은 고은 사태를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라 기대가 있었는데
올핸 후보에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문학적 업적을 생각하면 그렇긴한데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또 그렇지가 않거든요.
따로 보아야 하지만 어쩔수 없는...
이 책 읽을 뻔했는데 기회를 놓친 게 좀 아쉽군요.

박균호 2019-12-02 15:44   좋아요 0 | URL
아...도끼는 그냥 농담삼아 한 이야기죠.
고은은 전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냥 고질적인 성범죄자입니다. 근데 웃기는 것은 그가 쓴 일기를 묶어서 낸 책을 읽어보니 더 가관이더라구요. 차마 입에 올리기 싫은 음탕한 짓꺼리를 하고도 버젓이 책에 실어 났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