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에 아줌마 누벨솔레이 1
후카자와 우시오 지음, 김민정 옮김 / 아르띠잔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훔친 책, 선물 받은 책, 읽고 나서 리뷰를 작성해야 하는 책은 모두 재미가 없다. 책을 훔치는 행위에 쾌감을 느끼기 때문에 막상 훔치고 나면 그 책을 재미나게 읽기가 힘들다. 선물 받은 책이 자신의 독서 취향에 맞을 확률은 높지 않기 때문에 재미가 없다. 리뷰를 쓰기 위해서 읽은 책은 즐거움이 아니라 숙제라서 재미가 없다.


 불행하게도 ‘후카자와 우시오’ 작가의 <가나에 아줌마>도 내가 고르고 내 돈을 주고 산 책이 아니고 리뷰를 작성하기 위해서 읽은 책에 속했다. 책을 읽는 것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배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본능의 즐거움에 충실해야 그 본연의 맛이 제대로 느껴지는 법이다. 평범한 재일교포의 일상생활을 통해서 재일 동포사회의 고민과 애환을 그려낸다는 이 책의 콘셉트 또한 그다지 흥미를 끌지 못했다. 


재일 동포의 애환과 고충을 담은 소설이라면 이미 2006년에 읽은 ‘가네시로 카즈키’가 쓴 <GO> 를 통해서 궁극의 즐거움을 맛보기도 했다. ‘가네시로 카즈키’ 또한 ‘후카자와 우시오’ 작가와 마찬가지로 조총련계 재일교포 2세 작가라는 점도 굳이 <가나에 아줌마>를 통해서 뭔가 새로운 재미가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감소시키기도 했다. <가나에 아줌마>는 6개의 에피소드가 마치 단편소설처럼 엮어져 있는데 첫 에피소드는 재일 교포 사이에서 중매쟁이로 유명한 가나에 아줌마의 ‘업무’를 이야기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존경받는 선생님의 위치로 군림하는 중매쟁이 ‘가나에’가 중매 수수료뿐만 아니라 결혼과 연계된 행사를 자신과 제휴가 되어 있는 한복집과 호텔에서 치르게 하면서 수익을 극대화하면서 풍요롭지는 않으나 남부럽지 않게 산다는 전개였다. 역시 별다른 재미가 없었다. 이 책에 대해서 뭔가 쓰기는 해야겠는데 쓸 말은 없고 걱정이 왈칵 밀려왔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보도자료를 참고해서 ‘신문 서평’이라도 써야겠는데 워낙 꼼꼼하지 않은 성격이라 보도자료도 어디에 두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리뷰를 작성하기 위한 책은 재미가 없지만, 역설적이게도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분명 작가는 고심하고 집필을 했을 터이고, 나름의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무심히 두 번째 에피소드 <사주팔자>를 읽기 시작했다. 


중매쟁이에 이어서 이번엔 사주팔자를 보는 교포의 이야기다. 사실은 사주팔자를 보는 점쟁이 이야기라면 나도 장편은 아니라도 단편 소설 한 편 정도는 쓸 수 있는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더욱더 느슨하게 읽어 나갔다. 방심은 금물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뒤통수를 맞는 기분을 느끼다니.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별걱정 없이 노년을 즐기는 것으로 보였던 가나에 아줌마의 남편이 두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해서 점쟁이에게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가슴 아픈 개인사를 고백했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추리소설 급의 반전이다. <가나에 아줌마>는 절대로 방심하면서 읽으면 안 되는 소설이다. 별다른 연관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등장인물들이 어느 순간 훅 들어와 전체 이야기의 짜임새를 견고하게 만들고 퍼즐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사주팔자 에피소드에서 내 가슴을 후벼 파고든 부분이 있었다. 가나에 아주머니의 남편이 오래전에 북한으로 가서 소식이 끊긴 외아들의 안부를 점쟁이에게 물었는데 점괘는 문제의 아들은 예순 이전에 갑자기 ‘픽’하고 운세가 끊기고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그러고 보니 가나에 아줌마가 악착같이 돈을 벌려고 하는 이유가 설명된다. 조총련에서 활동하는 아버지의 신념 때문에 북한에 간 아들의 생사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아들을 위해서 송금을 해야 하고, 무능한 남편을 만나 고생하는 딸자식과 외손자를 지원해야 한다. 어쨌든 가나에 아줌마가 이미 북한에서 사망한 것을 알게 된 점쟁이는 사실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가혹하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말한다. “저, 아드님은 현재 금전적 지원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장성한 자식들이 모시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이라는 가상의 이야기 속에서 한 인물이 다른 인물에게 보내는 위로와 배려가 독자가 이렇게 따뜻한 위로가 된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세 번째 에피소드 <돌잔치>는 ‘후카자와 우시오’ 작가를 적어도 심리 파악과 묘사에 있어서 천재라고 생각하게 된 부분이다. 가령 이런 문장들이 그랬다. 


스튜를 숟가락 위에 조금 얹어 입으로 가져간다. 마나가 만든 요리를 먹을 때는 주의할 점이 있다.  처음부터 한꺼번에 많은 양을 입안에 넣었다간 어떤 불상사가 생길지 모른다. 종종 상상을 초월한 맛이 날 때가 있다. 보니 자연스레 신중해졌다. 


스튜를 씹으며 숨을 멈췄다가 삼킨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뿜어버릴 것 같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맛이 이상해서 콧물이 나올 것 같다. 눈물도 날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마나가 아까부터 계속 지켜보고 있는 탓에 다다키는 아무렇지 않은 듯 태평한 얼굴을 최대한 유지하며 스튜를 연달아 입으로 가져갔다. 마지막 한 입을 꿀꺽 삼킬 때까지 마나는 시선을 떼지 않았다. 


사실 소설속의 남편이 먹은 스튜의 정체는 이렇다. 이제 막 젖을 떼기로 작정한 아내가 모유를 버리기 아까워서 실험정신(?)으로 스튜를 만드는 재료에 포함한 것. 어쨌거나 세상에 여성 작가가 어떻게 이토록 세밀하게 남자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묘사한단 말인가? 그것도 웃음을 참으려고 허벅지를 꼬집어야 할 정도로 재미나게 말이다. 일본에 사는 남자나 한국에 사는 남자나 어쩌면 이토록 남편들은 하나 같이 소심한지 감탄하게 된다. 


나의 경우를 말해보자. 아내와 냉전을 치를 때 내가 아내에게 보내는 최강의 메시지는 밥을 먹지 않는 것이다. 밥을 먹지 않음으로써나 자신이 먹고 사는 일에 초월할 만큼 화가 났다는 것을 아내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밥을 먹지 않는 것이야말로 남편이 가지고 있는 가장 비장한 무기다. 


냉전이 장기화할수록 화는 줄어들고 식욕은 고개를 든다. 그렇다고 밥을 먹을 만큼 나의 분노가 줄어 들었다는 것을 적에게 알려줄 수는 없다. 치욕스러운 일일뿐더러 냉전체제가 나의 백기로 마무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몰래 밖에 나가서 배를 허겁지겁 채우고 집에 들어와서는 배고픔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근엄한 표정을 짓는 것이 나의 필승전략이다. 


가정의 냉정이 늘 그러하듯이, 어이없이 갑자기 평화가 찾아온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아내는 돌아온 평화를 자축이라도 하듯이 진수성찬을 내놓는다. 가장의 권위와 그간 보여주었던 나의 분노의 진정성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 ‘오랜만에 밥을 먹는다는 것을 잘 보여주기 위해서’ 최대한 맛있게 먹어주어야 했고 이미 포화상태를 초과한 내 위장을 괴롭혀야 한다.


 여기까지라면 그나마 참을 만하다. 냉전체제 동안 맛있는 음식을 아버지라는 경쟁자 없이 독식한 딸아이가 밥을 남겼고 아내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면 어쩌냔 말이다. “괜찮아. 밥 남겨도 돼. 아빠가 대신 먹어 줄 거니까” 


소설속의 두 집안이 합동으로 치루는 돌잔치에서 서로 돋보이려고 경쟁을 하는 장면을 읽다 보니 마치 삼국지에 나오는 적벽대전을 보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물론 사회경제적 위치가 열등한 우리의 주인공 부부가 돌잡이에서만이라도 이기려고 기를 썼지만 무심한 아들 녀석이 돈을 잡지 않고 제 아빠를 닮아 엄마의 가슴을 잡았다는 웃기고 슬픈 마무리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토록 사소한 소재로 이토록 거대한 긴장감을 느끼게 해주는 장면은 작가의 천재성을 다시 확인하게 해준다. 재일 동포 집안에 시집온 일본인 며느리의 고군분투기를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분노가 생긴다. 요즘 시대에 “우리 때는 제사를 지내고 나서 남자들과 밥도 한자리에서 못 먹었어”라고 며느리에게 말하는 시어머니라니.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것인데 제일 동포들은 본토에서조차 구제도의 악습으로 치부되는 결혼관이나 시부모와 며느리의 관계나 제사 따위를 신줏단지 모시듯 한다는 것이다. 하긴 조총련 출신의 한국계 미국인이 자동차 번호로 “YANG BAN”을 선택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이야기가 결코 거짓이 아님을 알겠다.


 <가나에 아주머니>는 <GO> 를 비롯한 다른 제일동포작가들의 작품과 뚜렷이 차별된다. 중매, 사주팔자, 돌잔치, 제사와 같이 가장 한국적인 소재로 이야기를 전개해가지만 결국에는 결혼생활과 치매라는 전 인류적인 관심사로 귀결된다. 가나에 아줌마가 주인공이지만 가나에 아주머니와 연관된 주변 인물들이 모두 주인공이며, 사소한 일상생활의 이야기이지만 결국엔 인류의 관심사로 확대된다. 


이토록 치밀하고 유머 있는 소설은 처음이다.  한국의 재료로 요리한 ‘오만과 편견’이라고 본다. 내 욕심으로는 ‘오만과 편견’보다 더 윗길이다. 문학평론가 라면 다 읽기도 전에 리뷰를 쓰고 싶어서 조바심이 나는 책이다. 5분 간격으로 휴대폰을 확인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일지라도 지하철이나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그건 그렇고, 너무 재미나서 마구 밑줄을 긋고 짬뽕을 먹으면서 읽다가 책에 국물을 흘린 이 불충을 어찌할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