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사생활 아이의 사생활 시리즈 1
EBS 아이의 사생활 제작팀 지음 / 지식채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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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잘못 없다. 부족한 부모가 있을 뿐이다. 아이를 이해하는 지름길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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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바디스 한국경제 (이준구) - 이준구 교수의, 이념이 아닌 합리성의 경제를 향하여
이준구 지음 / 푸른숲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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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이 책은 일반인들이 읽기에 쉽다.  소파에 파뭍힌 것같이 편하다. 그렇다고 잠이 온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고^^.

암튼 쉽게 금방 읽힌다. 그리고 (물론 경제분야에 한정된 것이지만)여러 주제를 오가고 있기 때문에 

상식을 확장하는데 도움이 되며  자신만의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더 생각을 다듬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수도 있다.  또는 자신의 주장에 이론적인 배경을 제공해 줄 수도 있다.

 

 한편 , 이 책 역시 한 학자의 주장이기에, 그리고 여러 주제를 건드리기에 논란의 여지는 있다. 

진보 성향에 비추어 보면 주제별로 현실안주 또는 소극적이라는 인상을 받을 내용도 있고 보수 성향으로 보면 완전 '반동분자'라거나  아래 누구처럼 '무조건적인 비판'이라는 억울한(?)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사실, 무조건적인 정부 비판을  이 책에서 보지 못했다. 비판을 하되 원인과 결과, 그리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무조건적인 비판'이라는 비난은 거짓말이라고 보면 되겠다.  (단,대학의 기여입학제에 대해서만은 주장이 좀 어정쩡하다.) 

 

'녹색'과 '성장'이라는 대칭되는 개념을 한데 붙여서 '녹색성장'이라는 형용모순을 밥먹듯이 하는 정부를 보면  이런 학자라도 제 목소리를 내는게 고맙다.  정부가 귀머거리라는게 문제긴 하지만.  

그러나 이 학자의 주장이나 태도가 객관적인 것인지 중립적인 것인지  여전히 나는 헷갈린다. FTA만 하더라도  찬성하는 쪽의 주장도 그럴듯 하고 반대하는 쪽의 주장도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제목이 그런 심정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오, 한국경제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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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이미 올리셨을 법한 글이다. 

다만 내가 두고두고 읽고 싶어서 스크랩해 둔다.... 

  

김병상 몬시뇰의 5월 28일 명동성당 추모미사 강론 전문

 

1. 두 “바보”의 죽음


우리는 몇 달 간격으로 한국 사회에서 “바보”라고 불리던 두 분의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이 사회의 존경받는 어른으로서, 지난 40년간의 군부독재 하에서 약한 자들을 대신하여 발언하시고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당신을 가리켜 “바보”라고 부르시면서, 고결한 성직자의 삶을 마치고 전 국민의 애도를 받으신 것이 불과 석 달 전입니다.

그리고 또 한분은 그분의 정치 스타일을 보면서 많은 지지자들이 “바보 노무현”이라는 애칭을 드린 전 대통령이며, 그분의 급작스럽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아 지금 전 국민이 한없는 충격과 허탈과 슬픔 속에 빠져 있습니다. 오늘 저녁 우리를 이 자리에 모이게 만든 것도 이 슬픔과 충격입니다.

어렵사 리 사법시험에 합격하자마자 인권변호사의 길을 택함으로써 돈 잘 버는 법조인의 길을 포기한 바보로서, 이 땅의 민주화를 제도정치 안에서 구현해 보려고 낙선에 낙선을 거듭하면서 영남인들의 지역감정에 맞서던 바보로서, 대통령이 되어서도 경찰, 검찰, 국정원이라는 공안기관을 개인적 집단적 이기심에 전혀 동원하지 않았던 바보로서, 혼탁한 한국정치판에서 현대사에 가장 깨끗하게 국정을 수행하면서 국민의 기본권을 법률적으로 확립하고, 한미관계를 비롯하여 국제사회에서 균형을 도모한 바보로서, 퇴임하고서도 바보처럼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꾼이 다 되어 손녀의 유모차를 끌고 봉화 마을을 찾아오는 방문자들을 따뜻이 맞이하던 삶이, 그분의 비극적 최후와 더불어 국민의 정치적 양심과 우리 크리스천들의 신앙에 깊은 성찰을 요구하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저녁 이곳에 모였습니다.



2. 백색 영대


오늘 저녁의 이 추도미사는 한국천주교 주교단이 집전했어야 하는데,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집전하면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및 천주교인권위원회와 더불어 이 행사를 주최하고 있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고박정희 대통령이 술자리에서 부하에게 총에 맞아 사망했을 때, 한국천주교 주교단은, 명동대성당에서 공동으로 추도미사를 집전하였습니다.

오늘 저희 사제들은 백색 영대를 매고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애도하는 검은색 영대가 아니라 부활절의 기쁨을 상징하는 흰색 제의와 영대를 입고 있습니다. 봉 화마을을 찾는 시민들과 어린이들의 십리길 기나긴 행렬을 지켜보면서 우리의 충격이 서서히 가시고 우리 모두의 가슴에 그분의 어떤 부활을 느끼므로, 그분의 죽음을 애도하는 모든 이들의 가슴 속에 그분이 살아 있음을 느끼므로 흰색의 제의를 입었습니다.

우 리 신앙인들은 전직대통령의 서거에 딸린 비극을 다음과 같이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는 비단 구속사업이 고통을 통하여 성취되었을 뿐 아니라, 또한 인간 고통 자체가 구속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고통을 통하여 구속사업을 완수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인간 고통을 구속의 차원에까지 들어 높이셨습니다. 이리하여 인간 각자마다가 자기 자신의 고통을 겪으면서 또한 그리스도의 구속적 고통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선교황 요한바오로 2세의 사도적 서한, 「구원에 이르는 고통」에 나오는 말씀입니다(19-20항). 노무현 전대통령이 그 고통스러운 죽음을 통해서, 우리 신앙인들이 말하는, 자신의 구원과 이웃들의 구원에 동참하였으리라는 말입니다.

인권보호와 민주화를 위하여 투신해온 그분의 인생 여정으로 미루어, 우리는 그분이 죽음을 결행하는 순간 자기 육체의 자그마한 테두리에서 벗어나와 한반도 역사와 운명 전체 속으로 스며들었고, 그곳에서 하느님 눈에 의롭고 평화로운 방향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를 밀고 가는 원동력으로 자리 잡았으리라는 것이 우리 신앙에서 우러나는 확신입니다.

80 년대 말 군부독재에 항거하여 수많은 열사들이 분신했습니다. 독재와 그 하수인들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자신을 불살라 바쳤고, 그렇게 이 땅에서 실현될 민주화를 위하여 하느님께 자기를 불살라 바친 분들 중에는 가톨릭 신자가 열 명이 넘습니다. 그들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고 타인들을 위한 사랑이라는 대의명분에서 오는 봉헌이었으므로, 우리는 그분들의 영혼을 위해서도 미사를 올렸습니다.

여기 계시는 분들 가운데 과연 누가 전태일 열사의 분신이 자살이라면서 그분에게 돌을 던지겠습니까? 이준 열사의 자결을 누가 비난하겠습니까? 1967년 체코의 프라하에 쏘련군이 진주했을 때에 교우 청년 두 사람이 분신하였습니다. 그때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삼종기도 연설에서 두 사람의 죽음의 의미를 짚어주시면서 함께 기도하셨습니다
.


가톨릭교회가 한 때는 자살자에게 영결미사를 집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런 관습을 폐지한 것은 그런 배경입니다. 죽음의 순간에, 만인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자비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임종 때에 사람마다 더할 나위 없이 밝고 자유로운 빛 속에서 하느님이 마련하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민족의 역사를 향해 이타적인 결단을 내리는 은총의 순간이 주어지리라는 신학자들의 “최종결단설”이 설득력을 갖습니다. 특히 민주열사들의 경우, 독재와 반민족, 반인권의 범죄자들이 동족에게 자행하는 죄악을 이분들이 도맡아서 짊어졌고, 무고한 희생자들의 신음과 눈물을 도맡아서 지고 가신 봉헌이었습니다. 우리가 미사 때마다 입으로 고백하는 대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Agnus Dei qui tollis peccata mundi)의 모습을 닮은 분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한반도의 골고타에 커다란 십자가 하나가 새로 섰음을 보고 그 앞에서 가슴을 치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세례 받고서도 정규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다고 흠잡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분이 현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시다(Deus caritas est)」에서 가르치신 “사회적 사랑”(caritas socialis)를 살아간 신앙인이었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서 25장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최후심판에는 우리의 세례명, 우리의 주일미사 참례, 판공성사, 교무금 납부에 관해서 심판자께서 한 마디도 묻지 않으심을 유의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3. “화합과 소통”의 문화를 향하여


우 리가 기억하기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치철학은 화합과 소통이었습니다. 이 좁은 땅덩어리가 남북으로 분단되고, 영호남으로 분열되어 있으며, 부귀와 권세를 독점하고 있는 기득권층과 분배를 요구하는 빈곤층으로 대립되어 있음을 그분은 항상 개탄해 왔습니다. 대통령 재임 5개년 동안 정치사회적으로 이 대립과 분열을 조금이라도 극복하고자 심혈을 쏟았다는 것이 정치학자들의 평가입니다.

그러나 현 정부는, 국민의 커다란 지지를 받으면서 집권하자마자, “잃어버린 10년!”을 복창하면서, 그래도 그 10년간 이루어진 국민의 화합과 정치사회의 소통을 깨뜨리는데 앞장서지 않았나, 우려됩니다.
실상 현정부가 보이는 여러 정책과 언행은 대한민국의 역사가 지난 65년간 걸어온 방향 앞에서 우리 사회의 수구 기득권층이 얼마나 큰 공포를 품고 있는지 드러나는 표지였습니다.

현 정권은 제일 먼저 수행한 일은, 전 정권에서 임명된 기관장들과 실무자들을 합법적 임기 중에 내쫓는 것이었는데, 이 국가의 행정 질서를 영구히 훼손한 이런 횡포에서 국민이 목격한 것은 새로 집권한 수구 기득권층의 두려움이었습니다.
안전 한 쇠고기를 달라고 외치는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중고등학생들과 아기 유모차를 몰고 온 젊은 엄마들마저 연행하고 조사하고 협박하는 경찰의 모습에서도, 용산 철거민들을 불태워 죽이고도 되레 희생자 가족들을 구속하는 철면피에서도, 국민은 당신들의 겁먹은 눈을 보았습니다.

지난 10년간 정부가 이룩한 모든 치적과 정책을 무너뜨리고 폐기하고 기억에서 말살시키는 수작에서도 당신들이 품고 있는 공포를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들의 공포가 하도 커서, 다음 정권이 당신들이 이룩한 모든 치적과 정책을 폐기하고 기억에서 말살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마저 못 내다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일본 식민시대를 그리워하고, 대한민국 헌법전문에 명기된 4.19 정신을 폄하하고, 민족의 정기인 3.1 정신을 멸시하고, 대한민국의 모체인 임시정부를 무시하는 발언과 조처가 예사로 자행되고, 이런 반민족 행위를 이념으로 삼는 단체들이 결성되는 허세 뒤에, 당신들의 공포를 우리는 파악하였습니다.

유대인 지도층이 예수님을 처형한 다음에도 예수의 무덤에 경비병을 세웠듯이, 요 며칠간, 이 미 서거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조의를 표하러 창덕궁 대한문 앞으로 모여오는 시민들을 전경들로 에워싸서 위협하고, 시청 앞 광장에 못 들어가게 전경버스로 둘러치고, 촛불만 보면 눈이 뒤집히던 그 치졸함에서 우리는 당신들을 사로잡고 있는 공포를 읽었습니다.

우 리가 어떤 분들을 질타하는 것은 그분들이 우리 사회의 일부요 민족 공동체의 지도적 일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수구언론의 대표자들이 내뱉듯이, 우리와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당신들을 대한민국 국민에서 제외해 버리지 않습니다. 당신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화합과 소통으로 민족을 함께 일으키고, 민주의 길을 함께 가자고, 집회를 하는 시민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초대할 뿐입니다.
“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사랑”을 교회로부터 배웠기 때문에 우리는 현정권이 부유층의 감세와 무절제한 재개발과 자연파괴의 대운하 사업에만 치중하여 “강부자당”이라는 별명을 듣지 말라고, “잃어버린 10년”을 내세우는 품이 마치 특정 지역이 국가예산과 고위직과 산업단지를 독식해야 한다는 주장처럼 들리지 않게 하라고 충고할 따름입니다. 하나같이 국민의 화합과 정치적 소통을 깨뜨리는 정책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정권을 에워싸고서 증오와 분열과 전쟁을 부추기는 수구언론과 수구성직자들과 거리를 두라고도 조언하고 싶습니다. 현 정부에 측근인 일부 성직자들의 극단적인 언행은 마치 한국에서 종교전쟁을 불사하겠다고 나서고, 반정부 시위에 나서는 사람들을 모조리 학살하라고 외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발 부탁이니, 사랑의 하느님의 복음을 설교하는 성직자가 민족과 국가사회에서 증오와 분열을 가르치는 전도사가 되지 마십시오.

언론은 국내 어느 한 계층의 기득권을 대변하고 옹호하는 역할보다도, 사회교육과 정화의 임무가 큽니다. 지난 5년간 수구언론이 감행한 국가지도자 깔보기는 아이들 입에서마저 “놈현”이라는 단어가 나오게 만드는데 성공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와서는 같은 아이들의 입에서 “쥐박”이라는 단어가 예사로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적어도 대통령은 기본적인 예우를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국민 모두가 “돈, 돈, 돈” 할 때에는 “공동선”이니 “분배정의”니 “화합과 소통”이니 하는 가치도 존재함을 계도하는 것이 언론의 임무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수구언론이 앞장서서 배금주의와 지역감정과 국민 분열을 주도하고 있으니 어찌 된 일입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검찰과 수구언론의 합작품이라는 국민여론을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4. 이명박 대통령과 검찰에게 드리는 말씀

노 무현 대통령의 서거가 대한민국 검찰이 초래한 비극이었다는 것이 지금 국민 대다수의 판단일 것입니다. 소위 “박연차 게이트”를 만들어 낸 검찰의 조사는 처음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한 기획수사였으며, 사법의 이름으로 수구언론과 공조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을 민주화 지지층을 비롯한 전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유린하는 행사였습니다. 조사 과정을 세세히 언론에 보도하고, 방문조사나 서면조사로도 충분할 사안을 검찰청까지 오게 하면서 전 국민과 전 세계 앞에서 모욕을 준 일은 말할 나위조차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 나라 극우수구층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서울로 끌려오던 장면을 재현함으로써 복수를 했겠지만 두 사안은 그렇게 비교될 사안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전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검찰의 소위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순수하고 공정한 사법권 행사로 믿지 않는 까닭은, 1980년 군사반란을 일으켜 광주시민을 무수히 학살하고 7000억과 4000억을 부정으로 축재한 전두환, 노태후 전직대통령에 대해 불기소처분을 내렸던 집단이 대한민국 검찰이기 때문입니다. 저희 사제단이 뇌물공여자로 폭로한 삼성재벌의 수천억 불법상속이나 뇌물공여를 무혐의 처리한 집단이 대한민국 검찰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사위원회가 밝혀내고 있는 저 무수한 조작간첩사건들과 긴급조치위반 처벌 등의 인권유린과 반민주 악행에 대한민국 검찰이 선봉으로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검찰이 수많은 사법살인의 주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전직 대통령의 서거와 전 국민의 애도를 보자 저 집단에서 아무도 사과하지 않은 채로 이제 와서 “공소권 없음”이라는 발표를 하다니 법리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얼마나 가소롭게 여기겠습니까?

또 우리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 사건의 본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는 까닭은, 전두환, 노태후 대통령에게 불기소처분을 내렸던 바로 그 검찰이 김영삼 대통령의 한 마디로 조사하고 기소하고 유죄판결을 받게 한 전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 한민국 검찰은 전직 대통령들의 공적과 기업인의 공헌을 정치적으로 고려하여 7000억, 4000억, 8000억 부정축재를 조사도 하지 않거나 불기소하는 지극히 관대한 집단(?)이었습니다. 따라서 최고통치자의 의지와 결단이 없었다면, 한 전직 대통령의 가족이 대통령 본인 몰래 십 몇 억을 기부 받은 사건을 저렇게 다루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 명박 대통령이 소망교회의 독실한 신도이니까 같은 신앙인끼리 알아들을 언어를 써서 말하겠습니다. 전 세계 20억의 크리스천들이 주일마다 성당과 교회에 모여 함께 염송하는 사도신경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문에는 예수님이 무죄함을 알고서도 유대인들의 압력이 두려워 사형언도를 내렸던 로마인 정치가 한 사람의 이름이 나옵니다. 아마 인류 역사가 끝나는 날까지, 지상에서 그리스도교가 자취를 감출 때까지, 그 이름이 염송될 것입니다.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음을 믿나이다.”

그처럼 대한민국의 앞으로의 역사는 수백 년을 두고
“ 이명박 정권하에, 임채정 검찰총장의 기획수사에 의해서, 대한민국 제 16대 노무현 대통령이 죽음을 당하였다.”라는 구절을 새기고 되풀이하리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대한민국 역사의 이 신앙고백 구절이 사실과 다르거든 이명박 대통령이 밝히셔야만 합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개신교 장로시니까 드리는 말씀인데,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니엘 예언서(다니 5,24-30)를 읽어 보시면서, 하느님의 손가락이 청와대 어디엔가 나타나서 “므네 므네 트켈 파르신”이라는 글자를 쓰지 않는지도 살펴보시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지 난 며칠 간, 봉화마을 상가에서 십 여리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우고 노인들이며, 어린 아이들을 걸리는 부부들이며, 학생들과 청년들이 뙤약볕 밑에 줄지어 가는 저 기나긴 조문 행렬, 서울 대한문과 전국 각지의 빈소에서 촛불을 켜고 밤샘을 하는 시민들의 회한에 찬 얼굴과 눈물과 한숨에서 우리는 고인이 우리 모두에게 남기고 간 호소를 가슴에 느꼈습니다.
오늘 이 미사에서 우리가 봉독한 복음서에서 우리 주님이신 예수께서 올리신 기도가 바로 그 호소와 맞닿아 있음을 절감합니다.

“ 주님, 우리 국민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성부께서 성자 안에 계시고 성자께서 성부 안에 계시듯이, 우리 국민도 진보와 수구니, 영남과 호남이니, 기득권과 소외계층이니 하면서 갈라지지 않고 하느님 우리 안에 하나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라고 이 미사 중에 기도드립시다. 그리고 이런 기도의 가르침을 일평생 실천코자 노력하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혼이 주님 품에서 안식을 얻도록 유가족과 함께 기도하면서 추모 미사를 계속하겠습니다. 
 
 
                                     2009년 5월 28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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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추모 분위기,  일단 나의 마음은 제껴두고 생각했을때 과도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토록 관심없어 했고 또는 비난했던 사람인데 이렇게 전국적으로 열광(?) 할 줄 누가 알았을까..
어쨌거나 내가 존경했던 사람에 대해 많은 이들이 추억하고 추모하는 것은 그저 고마울 따름이고 위안이 된다.

허나 몇가지 아쉬운 점은 나름 '그를 잘안다, 지지했었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지지했었다는 말을 (혹시 있을지 모를 비난 또는 오해에 대해) 방패삼아  전제로 깔아놓고 시작하는 불평들이다.  물론 글을 쓰는 사람의 의도는 그렇지 않을 지라도 읽는 사람에게는 '조선일보'와 동일한 논리가 보여서 매우 불편하다.   '조선일보'가 어떤 존재인가?  똑똑한 기자들이 모여 부러워할만한 정보력을 가지고 글을 쓰는 집단들 아닌가!  사실만을 말하면서도 사람 매우 불편하게 만드는 귀재들. (물론 사실이 아닌 내용이 많지만 사실만 쓸때조차도 그렇다는 말이다.)
거기에 살짝 애매한 주장을 얹어주면 정말 맘에 안드는 사람 매장하기는 여반장인 것이다.


자살을 비난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어느 누가 '자살 반대'에 당당히 반대를 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나는 '자살'에 무조건 비난을 들이대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역사를 봐도 자살은 물론 그 보다 더 심한 짓을 한 경우도 존경받고 칭송되고 또 교육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되고 있다는 것은 사회적 동의 를 받았다는 증거로 충분하다고 본다) 계백을 보라. 자살은 고사하고 가족을 몰살해 버렸다.  관창을 보라. 논개는 또 어떤가.  또 있다.  국치를 못이겨 자결한 민영환,  헤이그의 이준 열사도.

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위인이라도 된다는거냐는 헛다리 짚는 질문이 떠오른다면 참으시라. 이 문단의 요지는 자살은 그 자체만으로 평가가 완료될수 없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논리로,  정황을 제거해버리면 안중근 의사쯤은 살인자이자 테러리스트로 만들기는 껌씹는것 보다 쉽다. 한국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테러리스트가 되는 것이고,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독립운동가로 인식할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노무현의 죽음은 애도하지만 어쨌거나 자살은 잘못이다'라는 말은 기만이다. 그냥 그에게 별로 관심없다는 표현의 완곡어법이거나 오락프로 하나 맘대로 못보고 눈치나 봐야 하는 현상황에 짜증나는 심리를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과연 노무현의 정황이 대체 어쨌다는 걸까 궁금해지지 않는가? (아님 말고)
사실 수사관련 뉴스를 지켜보면서 자살하고 싶겠다는 짐작을 자주 했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이었다는 신분때문에 감행하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으나 결국 오판이 되었고....

퇴임 이후로 조용했던 적이 있었나?  컴퓨터가 안켜지네, 인수위 자료협조를 안했네,  하드가 없어졌네  끊임없이 들들 볶다가 반년동안 측근들  하나 둘씩 잡아 가두고  아내, 아들, 딸, 친구, 선배, 후배, 사위, 사돈, 자주가는 식당 까지 이잡듯 뒤져서 대충 언론에 흘려 망신은 망신대로 주고  결국에는 본인까지 불러들여 조사하고.   물론 뉴스가 훑어주는 내용만 대충 들었다면 '잘못했으니 당연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질 것이다.  여기는 (비록 이런 글을 길게쓰고 있긴하지만) 알라딘이므로 구태여 일일이 그 과정에서 일어난 비상식적인 사례와 반론을  옮기지는 않겠다. 솔직히 귀찮다.
기억력이 냄비 수준이 아니라면 검찰이 과연 사회정화를 위해, 정의를 위해 움직이는 조직인지 출세를 위해 움직이는 조직인지 수사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는 조직인지 스스로 알 것이다. (쪼금 힌트를 드리자면 삼성 비자금 수사와 불법 경영권 승계 문제의 결론 하나만 보시면 된다.)


나이 60쯤 되었다면 생각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온 대로 생각하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노무현이 어떻게 살아왔나 보라.
2MB가 어떻게 살아왔나 보라. 그럼 이 사건의 배후가 뻔한 거 아니겠는가?
(흠.... 이런 주장은 포괄적 매도라고 비판 할 수는 있겠다. 사실 그러시라고 썼다.)

암튼 '(범죄성립)증거'가 나왔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은 당장 검찰에 달려가서 신고하시기를 바란다. 검찰도 반 년을 뒤지고도 단지 '포괄적 뇌물죄'라는 희한한 죄목밖에 만들어 내지 못했는데 '증거'를 가져오신다면 내일 바로 청와대에서 초청할지 모르겠다.
 

한마디 더,  어쨌거나 실책이 많은 대통령이었다는 말들.. 
솔직히 가장 큰 실수라면 2MB가 대통령이 되게 만들어준 것이고 그것 때문에 나 또한 욕 많이 했다.
하지만 부족한 점이 많다고 하는 것과 나쁘다고 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국가 대소사가 어디 한 둘이며
그 효과는 금방 나타나서 결론을 낼수 있는 문제인가?  박정희 때의 빨리빨리가 수십년뒤 무너지는 건물속 떼죽음으로 나타나지 않았던가?   물론 진짜 실수도 내가 아는것 모르는 것 포함해서 많았을 것이다. 그걸 덮어볼려고 하는게 아니라 지금 그걸 따지자는 건 아니잖나?(아마추어끼리 토론해도 몇년 걸릴껄?) 


노무현이 뿌린 씨는 어떻게 보면 수십년 뒤 내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때 아니면 다시 이 아이가 자신의 아이를 가졌을 때 잎을 내고 꽃을 피우게 될지 모르겠다.
그를 많이 변호하고 싶지만  푸하하 웃음소리로 조롱하는 사람들이 빤히 보여 그러기 싫어진다.
비난하든 숭배하든 최소한 대한민국 정치사회 흐름은 노무현 이전과 이후로 나뉠거라는 예상을 해본다. 이미 그런지도..

 


 
'잊지 않을것이다'
이 한마디를 지난 일주일동안 항상 되뇌였다. 앞으로도 그럴것 같다.

잊지 못할것이 많고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많다. 

  

 

* 원 제목은 [자살을 비난하기는 얼마나 쉬운가]였다. 제목 짓기 귀찮아 그냥 글 중간 문단의  한줄을 옮긴건데 의도하지 않게 자극적인 제목이 되어 버렸고 그래서 그런지 험한 모습을 보게 되는 것 같아 바꿨다.  글 자체를 지우기는 싫고...  빨리 뒷페이지로 밀려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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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하하 2009-05-28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있잖아요. 진중권. 자살한 전대우건설 사장과 현대회장 자살때 웃으면서 자살세 걷자고 했지않습니다. 금붕어인가요 그분?

회사에서 누구의 자식이라 우대를 받으면서 미국을 가느니 깨끗하게 퇴사하는게 왜 나쁩니까? 자살하기는 쉽습니다. 그렇게 죽고간 여파가 미치는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참아야죠.

뭘 잊지았습니까? 부당한 탄압입니까? 더 많은 권한에 더 많은 책임을 져야하는게 스파이더맨인데 왜 깨끗하게 못삽니까? 이전 대통령보다 덜 해먹으면 성잡니까?

알라딘에서 이렇게 떠들어도, 한생명의 죽음때문에 일단 존중을 해주는 거지 여기의 의견들이 다가 아닙니다. 인터넷 강국이요? 다들 모여서 잊지않겠다고 짐승운운하고 다른 사람들 의견없이 추모배너 달면, 그게 민주주의고 인터넷강국입니까?

민주주의가 시끄럽다고 누군가 그러시드라구요. 생각하고 좀 떠듭시다.

hanalei 2009-05-28 21:45   좋아요 0 | URL
앗앗 푸하하하님을 여기서도 뵙게되는군요.
글투가 젊잖으신걸 보니 알라딘 분이신가 봐요?

귀를기울이면 2009-05-31 16:35   좋아요 0 | URL
죄송합니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앞으로 제가 생각 좀 더하고 글을 써야겠습니다. 비밀에 싸이신 푸하하하님.... 푸하하하님 이름을 부르니 기분이 좋아지네요 푸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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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하님 자제하고 있습니다. 제 글은 변함이 없는데 댓글 썼다 지웠다 하면 보는 사람 괴로워집니다. 지우신 글도 저한테 남습니다. 괴롭힐 의도가 아니시라면 이제 댓글은 자제해주세요.

가시장미 2009-05-29 04:38   좋아요 0 | URL
푸하하하님. 저에게 남겨주신 글은 아니지만 그리고 이 글의 맥락과는 다소 상관없는 말이지만 님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 몇 자 남깁니다.

누군가의 글을 엿보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밝히고자 한다면 그 사람에게 퍼붓는 비난만큼 자신에게 돌아올 비난의 여지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익명을 이용하여 그 비난의 여지를 차단하는 것은 님이 말하는 생각없이 떠드는 행위보다 더 치촐하고 비겁한 행동이 아닌가 합니다.

다른 이의 글을 비난할 만큼 자신있는 분이 자신에게 쏟아질 비난은 참으로 두려운 모양이십니다.

2009-05-29 0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28 2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yo12 2009-05-28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뵙겠습니다.^.^
저도 요즘의 쉽게 자살을 비난하는 말들에 상처를 받습니다.
저는 겁이 많아서 자살 같은 건 시도도 못하는 사람이지만
그냥 자살이라 안된다라고 말씀하시는 분께 정말 진심으로 묻고 싶습니다.

왜 민영환님의 순국은 자살이라고 하고 비난하지 않는지,
물론 민영환님과 노무현님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안되지 않냐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민영환님께서 1905년 돌아가신 것을 단순히 자살이라고 쉽지 않냐고 왜 그랬냐고 비난하지 않는 것처럼 최소한 다른이가 생명을 걸고 한 결정에 지나친 폄하는 안될 말입니다.

귀를기울이면 2009-05-29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글은 알라딘 페이퍼에 쓴 첫번째 글인데 사안이 사안이다보니 눈팅이나 글을 주시는 분들이 있어 반갑기는 하지만
자꾸 삐끗하는 분들이 있어 약간 첨언하고자 한다.


나는 종교가 있다. 그것도 '독해~!'소리 많이 듣는 기독교다. 알다시피 기독교는 '자살'을 엄히 금하고 있다.
열심교인은 못되었을지라도 청소년기부터 출석을 했으니 나의 뇌 구조 또한 '자살'에 엄격하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나에게 웃기는건, 장로가 대통령이고 기독교 세력이 기득권이라 불리고 있는 사회인데 '사형제'가 유지되고 있다는 거다.
'자살'보다 더 심한 범죄가 '살인'일찐대 (신이 인간을 볼때) 지들끼리 룰 정해 놓고 사람을 죽여버리는 모습이 더 웃기는 짬뽕아닐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사형수가 신 앞에 진정한! 참회를 한 후에는, 자살을 해야 천국에 갈까
사형(살해)을 당해야 천국에 갈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참...
진정한 참회로 천국에 갈 수 있다면 (법률은 그렇다쳐도) 그럼 기독교는 왜 천국에 갈 사람 죽이는데 동의(또는 침묵)하는거지?
자살해서 못가게 된다면 누군가 죽여줄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데 천국에 갈 사람을 죽여버리는
그 집행관은 (신 앞에서) 뭐가 되는 거지?
월급받고 사람죽이는 살인청부업자가 되는건가? 지옥가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솔직히 기독교조차도 별로 진지한 개념이 있어보이지 않는 '자살'에 대한 가치판단에 대해서
적잖은 사람들이 너무 쉽게 , 특히 '관심'(내 글의 키워드다)도 없는 사람들이 툭툭 내뱉는 글들이 불만스럽다는거다.



이야기가 좀 곁가지로 샌듯하지만

아무튼 자살을 아름답게 그리고 싶지는 않다. 한 나라의 전직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지도 않고.
다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떠밀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의 안녕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자신으로 인해 고통받는 걸 놔둘 수 없어서 그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끄적이고 있는 것이다. 내 감정을 이입했고 그 결과 나의 경우라도(용기가 없어서 실천 못했을 가능성 99%이긴 하다)
그랬을 것 같다는 심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건 아니다라고 하시는 분들, 이해 한다. 나도 인간인지라, 나의 뇌구조도 그러한지라
일말의 갈등이 생기는 건 어쩔수 없다.

가시장미 2009-05-29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를 기울이면님.. 오늘 다시 읽어보고 댓글 남깁니다. ^^ 우선 이 곳에 남긴 첫 페이퍼가 이렇게 무거운 글이었다는 사실..시간이 지나면 꽤 의미있어지지 않을까합니다. 그래도 님이 원하시는대로 다른 페이퍼 많이 쓰셔서 뒤로 밀려가길 바랄께요.

노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말이 많았지만 전 그런 현상을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어요. 어떤 생각이든, 그 생각이 제 생각과 같든 다르든, 이번 사안에 관심을 갖고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라 여겼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님과 생각이 좀 다른 것 같은데..님의 생각도 이해는 됩니다.

어느 분께서 "사람들은 모두 저 마다의 진실을 안고 살아간다.."고 하더군요. 사실 그래요. 그래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은 불편하고 생각은 주고 받아도 그 입장 차가 쉽게 좁혀지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도 전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는 것은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는다해도 아주 의미있다고 생각해요. 그 이유는 위에 댓글에서 남겨주신 것처럼 갈등하고 고민하게 만드니깐요. 그런 지난한 과정이 있어야 변화도 있고 더 나은 생각도 할 수 있고, 희망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오늘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 가네요. 영결식이 끝났어도 한동안은 마음에서 그를 보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앞으로 이 정권때문에 생길 수많은 어려움들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막막하다는 생각도 들구요. 그런 어려움에 대해서도 종종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길 바랄께요. 편안한 밤 되시길.. :)

귀를기울이면 2009-05-30 08:41   좋아요 0 | URL
실은 글을 더 쓰고 싶은 생각보다는 다른 분들 글로 밀려나기를 바랬던거죠^^;

무관심이 제일 무서운거라고들 하지만 관심을 가장한 무지가 보이니 참기가 힘들었습니다. 저는 일종의 '관심 = 사랑'이라는 공식을 갖고 있거든요. 물론 사랑한다고 사랑하는 대상의 나쁜 부분을 묵과해서는 안되겠지요.
하지만 대응태도는 180도 다를 겁니다.

관심있는 자: "너, 그러면 안돼."
관심없는 자: "넌, 그래서 안돼."


후~~~~~ 지난 주 오늘 이 시간쯤 그 농담같은 뉴스를 들은 것 같구요.


아무튼 좋은 말씀 주셔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기분이 좀 좋아졌어요^^
 
생각하는 영어사전 ing - EBS 3분 영어
EBS 3분 영어 제작팀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전체적인 편집내용을 보자면  

내가 아주 선호하는 스타일이라 꽤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고 할수 있다. 

적당하고 신선한 그림과 사진, 그리고 적당한 분량의 영한대역, 

그리고 몰랐던 지식들을 얻을수 있고  

영어사전으로서는 조금 역설적이지만 살짝 영어공부도 된다는 점.. 

 

하지만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일단 오탈자..  한글이 아니라 영어임에도 내 눈에 오탈자가 꽤 보이는 걸 감안하면 

전체적으로는 일단 다른 서적들의 평균치를 한참 상회하는 오타들이 있을것으로 예상된다. 

문장이 주는 지식이 아니라 영어 그 자체가 독자가 바라는 내용인데 오타라면 

사전으로써는 썩...... 

 

그리고 영한대역으로 선택된 문장들(주로 연설문)

글쎄, 내가 색안경을 쓴 탓일까,  권력에 왠지 아부하는 듯한 선정들이 

많아 보이는 느낌이다.  사회주의의 우스꽝스러움때문에 자본주의자가 된 사람의 

이야기,  공무원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 도쿄의정서를 무시한 미국이 자기가 

잘났다고 뻐기는 내용 따위 말이다. 

영어공부만 한다면야 내용을 시비걸기 쉽지 않지만, 그래도 글은 글이다. 글의 내용이 독자에게 영향을 줄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수 있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편집인들의 의도가 엿보인다. 

 

총평을 하자면 하드웨어는 꽤 괜찮고  소프트웨어는 버그가 있거나 사람의 취향을 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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