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을 만큼 고단하다.

몸이 마음에게 '나 쉬고 싶어'라는 신호를 보낸지 오래다.

아이가 셋이라 행복과 즐거움이 세배지만 그만큼 고단함도 세배다.

버리고는 가도 놔두고는 못가듯...

셋 모두 안챙기면 안챙겼지 누구는 챙기고 누구는 안챙기는 일은 못한다.

그래도 더욱 더 고단하다.

그렇지만 슬슬 아이들과 이 고단함도 나누어 가져보려고 한다.

충분히 내 아이들이 이 고단함을 덜어줄 능력이 된다는걸 난 이미 느끼고 있기에....

 

몸이 지치고 힘들때 먹으면 큰 위로 받는 음식이 있다.

신랑은 향긋한 겨울냉이로 끓인 뜨끈한 냉이된장국을

큰아이는 계란한개를 까넣은 맵고 달달한 떡볶이를

작은아이는 달콤하게 튀긴 노란고구마에 설탕과 꿀시럽을 버무린 고구마빠스를

난 진하게 우려낸 멸치육수에 채썬 애호박을 얹어 뜨겁게 후루룩 먹는 국수한그릇을.....좋아한다.

 

 

내가 이 뜨끈한 국수로 위로를 받게 된건

아마 장철문 시인의 시집 <무릎위의 자작나무>가 출간된 이후같다.

시집한권 속에 담긴 모든 시들이 다 맘에 와닿을 수는 없지만..

이 시집속의 시들은 모두 읽을수록 특별하다.

특히 그 시집속 시 '흰 국숫발'은 왠지 모를 애잔함이 있다.

시를 읽고 있으면 옛날 국수만드는 가게에서 빨래 널듯 널어져

햇빛에 잘 바르던 국숫발이 생각날것이다.

추위도, 가난도...국수한그릇으로 따뜻해 질것같은 그런 느낌....

혼자먹는 쓸쓸한 국수한그릇이 아니라 여러사람이 함께 나누어먹는 ..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다른 뭔가 특별한 세상같아 보여서...동경한다.

 

장철문 시인께 죄송하지만....

흰 국숫발을 내 페이퍼에 옮겨본다.

 

 

 

 

흰 국숫발

 

                               장철문

 

슬레트 지붕에 국숫발 뽑는 소리가
동촌 할매
자박자박 밤마실
누에 주둥이같이 뽑아내는 아닌밤 사설 같더니


배는 출출한데 저 햇국수를 언제 얻어먹나
뒷골 큰골 약수터에서 달아내린 수돗물
콸콸 쏟아지는 소리
양은솥에 물 끓는 소리


흰 국숫발, 국숫발이
춤추는

저 국숫발을 퍼지기 전에 건져야 할 텐데
재바른 손에 국수 빠는 소리
소쿠리에 척척 국수사리 감기는 소리


서리서리 저 많은 국수를 누가 다 먹나
쿵쿵 이 방 저 방
빈 방
문 여닫히는 소리
아래채에서 오는 신발 끌리는 소리
헛기침 소리


재바르게 이 그릇 저 그릇 국수사리 던져넣는 소리
쨍그랑 떵그렁 부엌바닥에 양재기 구르는 소리
솰솰솰솰
멸치국물 우려 애호박 채친 국물 붓는 소리


후르룩 푸루룩
아닌 밤 국수 먹는 소리


수루룩 수루룩
대밭에 국숫발 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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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12-18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에서 막 소리가 들리네요.
이 시인 뒷조사를 해보고 싶은 충동이...^^ 왜냐하면 이렇게 국수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잘 알수가 있나 놀라와서요.
'국수사리 던져넣는 소리'라니 이건 일반 가정집에서 국수 끓일 때에는 보기 힘든 장면, 보통 사람은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잖아요?

힘 많이 드시지요. 그래도 늘 긍정의 자세를 잃지 않는 블루데이지님 보면서 반성하곤 한답니다.
언제 한번 따뜻한 차 한잔 하고 싶은 분 ^^

(뒷조사 결과, 저와 시인의 나이가 같다는 것만 알아냈습니다 ㅋㅋ)

블루데이지 2012-12-18 22:06   좋아요 0 | URL
생각만해도 원초적인 내면의 그 무언가가 마구 솟구쳐서 제가 격하게 애정하는 시예요..ㅋㅋ
시인 뒷조사를 너무 살살하신거아니예요..크하하핫..
hnine님께서는 언제나 재치있고,또 쓰시는 글들이 가슴묵직하게 댕댕거려서 읽고 있으면
저도 함께 특별해지는 것같아요...너무 매력있으셔요...

감사드려요!!다시 추워진데요..꼭 건강조심하셔요!

프레이야 2012-12-19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아이 셋 얼마나 몸이 고단하실까요. 그래도 늘 긍정적으로 웃고 행복을 가꾸시는 모습 배우고싶답니다. 제 어릴 적 동네는 국수가 유명해요. 상표로 나와있을 정도로요. 하얗고 가는 국숫발이 널려있는 걸 볼 수 있었죠. 국수는 혼자 먹자고는 잘 해지지 않지요. 여럿이 먹는 음식, 후루룩 소리 경쾌한. 마지막 연의 마지막 행, 그 소리를 상상해봅니다. 실뱀 같을까요.^^

블루데이지 2012-12-20 08:59   좋아요 0 | URL
여럿이 먹어야 제맛인 음식 중 하나일듯한 국수이지요^^
어릴적 시골에서 자랄때 연말이면 동네사람들 모여 동네회관에서 맛있게 익은 김장김치와 먹던 국수가 생각나요! 지금도 가끔 친정엄마와 그 얘기하면서 아쉬워한답니다! 아마 국수맛보다는 추억의 맛이기에 더 각별한거겠죠..ㅋ 프레이야님의 국숫발이 널려있었던 어릴적 동네속에 프레이야님의 어린시절은 어땠을까..궁금해져요~아마 참하고 어여쁜 아이셨을듯해요~ 날씨가 많이 추워요! 꼬옥 여미고 하루보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