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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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불평등 문제를 다양하고 풍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재조명하므로써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는 기폭제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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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 인터넷 - 클라우드와 빅데이터를 뛰어넘는 거대한 연결 사물인터넷
정영호 외 지음, 커넥팅랩 엮음 / 미래의창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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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인터넷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책 본문에도 나와 있듯이 1998년으로 벌써 20년 가까이 된 이야기지만, 대부분의 IT 유행어들이 그렇듯이, 사물인터넷이라는 용어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면서 사용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물인터넷이 무엇이며, 지금까지 실생활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에 대해 전혀 감을 잡지 못하겠다면 이 책이 매우 좋은 입문서라고 생각됩니다.

 

우선, 사물인터넷의 기본적인 개념과 발전 역사에 대해 저자들이 어렵지 않은 문장으로 설명한 부분이 강점입니다. 사물인터넷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지에 대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각 분야별로 그것이 실현되는 방향을(보안, 헬스케어, 스마트 홈 서비스 구축, 에너지 등등) 제시한 부분 또한 강점입니다. 물론 사물인터넷이 인간 삶에 미치는 영향을 전형적인 기술낙관론에 입각해서 긍정적으로만 해석한 것, 기업의 입장에서 이것이 얼마나 시장성을 가졌는지 평가하는 데 치중하여서 인간 삶의 양식 자체의 변화가 가져올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 등은 (어찌보면 이런 유형의 책에서는 '당연하게도') 제시되지 않습니다. 사물인터넷이 구현되는 원리를 기술공학적으로 상세하게 설명하려는 의도의 책도 아닙니다. 그리고 경제성에 대한 분석 또한 어느 정도의 개괄만 되어 있으므로 전문적인 내용으로 접근하고 싶다면, 책에서 참고했던 문헌들과 그런 문헌들을 생산하는 주체들(예를들면 각종 연구소라든지 정부 기관, 뉴미디어 분야의 저명한 학자 등)의 저작을 참고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적절한 그림과 사진 예시 등도 내용 이해에 확실히 도움이 됩니다. 앞으로 사물인터넷 관련 시장에서 누가 '강자'로 떠오를지에 대한 분석도 분량은 짧지만 나름대로 요지를 꿰뚫고 있다고 봅니다. 일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부분들도 있었습니다. 실질임금 상승률이 지난 반 세기 정도에 계속해서 낮은 수준이었다는 단순한 통계를 인용하는 데 앤드류 글린의 <<고삐풀린 자본주의>>와 같은 책을 인용해야 할 필요성이 전혀 없음에도 이 정보 한 줄을 언급한 것으로 참고문헌 목록에 해당 도서가 들어간 점 등이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왜 이 책을 참고 문헌에 포함시켰을까'라는 의문이 들게 만드는 것과 같은 부분들입니다(사소한 부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평소에 책의 참고문헌을 꼼꼼히 챙겨 보는 필자로서는 당연히 가진 의문입니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사물인터넷에 관한 인문과학적인 논의들이 직접 담기지는 못하더라도, 이에 저자들이 좀 더 관심이 있었다면 읽을만한 책 목록 등을 더 추천해줄 수 있지 않았겠냐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어쩌면 가벼운 입문서 하나에 너무나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대학 전문 교재나 정부 기관의 연구 보고서 같은 '진입 장벽이 높은' 책 이외에 이 주제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 얼마 없는 현실 속에서 이런 종류의 책들이 좀 더 많은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좀 더 일반적인 차원의 바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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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에 관한 편지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68
존 로크 지음, 공진성 옮김 / 책세상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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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가 살던 시대가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이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 한 국가 내에서의 종교적 다양성의 허용(이것을 누군가가 '허용'할만큼 적극적으로 쟁취되는 권리라기보다는 당연히 누리는 권리로 인식될 정도로)에 인색했던 시기이기 때문에, 분명히 본문의 내용은 지금 당시에 이 글이 야기했던 만큼의 논란을 일으키지 않고 너무 당연한 소리로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해제에 옮긴이가 쓴 이야기 대부분도 로크의 생애와 당시의 종교적 배경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관심 있는 분들이 아니라면 지루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20세기의 종교와 민족주의의 결합,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분리주의와 통합주의의 움직임에 대한 지적은 유효한 것 같지만 이 문제를 좀 더 파헤치기 위해서는 최근의 다문화주의에 대한 정리라든지 국제 정세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름대로 의미를 찾으려고 열심히 읽어봤지만 <<통치론>> 만큼 큰 영감을 주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시대에 이런 주장을 펼쳤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한 번 정도는 주의를 기울여 읽어볼만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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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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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손에 꼽기란 의외로 쉽지 않다. 하지만 가장 큰 여운을 주었던 이야기를 뽑으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 비밀스러운 행동 끝에 스스로 물속으로 들어가버린 좀머씨는 등장부터 죽음까지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여러 번 읽을 때마다 좀머씨는 나에게 다른 인물로 다가왔다. 이해 불가능한 신사에서 세상의 관심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사람으로, 자신이 겉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보여주면서도 그것을 떳떳하게 밝히지도 못하는 가련한 영혼의 모습으로도 다가왔다. 나에게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준 파트리크 쥐스킨트 본인도 꽤나 신비에 싸인 작가였다. 그의 이름을 다시 기억해낸 것은 그의 향수가 영화화되고 나서였다. 이 소설 또한 매우 재미있다는 이야기는 여러 번 들어왔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최근에야 읽게 되었다.

 

우연히도 최근 공간에 대한 나의 끝없는 관심과 새로운 탐구가 냄새를 주제로 한 이 소설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지금까지의 내 삶을 되돌아보면 지금이 향수를 읽기 적기임을 자각할 수 있었다. 그래서 주인공 그루누이가 가장 완벽한 향기를 찾기 위해 필요한 냄새들을 모조리 빨아들이듯, 이야기도 내 머릿속으로 순식간에 흡수될 수 있었다.

 

필자는 향수를 읽고 나서 두 가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첫 번째는 후각이라는 감각 자체에 대한 성찰이고 두 번째는 그루누이가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에서 충분히 유추할 수 있듯이, ‘후각의 가면무도회를 벌이는 인간의 모습이다. 후각이라는 감각 자체에 대한 생각은 그루누이가 후각을 사용하는 방식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시각과의 비교과정에서 나왔던 것 같다. 우리는 보통 시각을 이용해서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세상을 인지하며 이를 근거로 행동한다고 생각한다. 시각의 손실은 여러 이야기들에서 인물이 겪는 불행 혹은 제약의 단골소재 시각의 손실 하나만으로 끝나지 않는 불행도 있겠지만 시각의 손실 혹은 제약을 동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로 등장한다. 우리는 마음의 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남과 진정한 인간관계를 쌓는 데 필요한 자세도 시각에 비유하고, 깨달음의 순간도 의 이미지와 개안의 비유를 이용해 표현한다. 즉 우리의 지각은 시각에 편향되어 있다. 하지만 그루누이에게 가장 중요한 감각은 그의 탁월하게 예민한 후각이다. 그의 후각은 시각보다 더 선명하며, 더 잘 기억되고, 더 분별력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후각으로 단순히 구별을 하거나 대상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후각의 아카이브를 만들어놓는다. 후각 기억의 크기는 파리라는 대도시만큼 거대한 정보를 통째로 저장하고도 거뜬하다. 그리고 우리가 시각으로 경험한 것들을 기반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듯이, 그는 기존에 맡았던 냄새들을 새로 조합하면서 내면에서 새로운 냄새를 만들어낼 능력도 갖추었다. 오늘날 청각이나 시각적 정보를 디지털화하듯이 후각 정보를 디지털화한다면(물론 그루누이의 작업이 디지털화된 것은 아니었지만) 이러한 냄새간의 합성이나 변형이 더 용이하겠지만, 그루누이는 오직 천재적인 후각으로 이를 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후각은 시각으로 인지하는 세계와는 다른 공간감을 느끼도록 해 주는 것 같다. 후각은 그에게 같은 지점을 수많은 다른 공간으로 변형시켜 상상할 수 있는 힘을 주고, 그의 후각이 닿는 한 공간과의 거리를 앞당겨준다. 그가 냄새를 맡는 동안 모든 것은 그의 손바닥 안에 있는 것 같은 자신만만함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거리 좁힘에서 나오는 것이다(이는 천리안을 가진 채 세상을 관망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지만, 천리안도 투시(透視)가 불가능한 반면, 그루누이의 후각은 냄새의 발생 원인을 모두 지목할 수 있으므로 굳이 투시기능 없이도 꿰뚫는 능력이 있다). 시각은 시선의 제약을 받지만 냄새는 직선적으로 퍼져나가지 않고 사방으로 퍼지기 때문에 그루누이의 공간 인식은 직선적이라기보다는 그를 중심으로 둘러싸는형태로 표현된다. 이 지점 또한 후각의 고유한 특성과 관련이 깊은 부분이다. 작가가 본래 후각이 예민한 사람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모든 것이 작가의 상상력에서 치밀하게 준비된 것이라면 독자로서 이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는 후각의 가면무도회에 대한 것이다. 동물이 후각을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하듯이 사람도 무의식중에 후각적 신호를 이용한다는 점은 과학자들이 열심히 밝히려고 노력하는 부분이다(일반적으로 알려진 성과도 꽤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한 사람이 내뿜는 향기로 그의 죄목까지 망각하고, 그를 환희에 차서 받드는장면에서, 또 그루누이가 다양한 상황에 걸맞는 체취의 향수를 만들고 이를 이용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장면에서 나는 그가 하나의 가면무도회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본질을 따지고 들자면, 우리는 일생동안 가면무도회를 하며 살아간다. 모든 가면을 벗고 민낯으로 당당하게 설 수 있을 만큼 편안한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작가가 그루누이의 기괴한 가면무도회를 통해서 삶의 이런 면을 상기시켜준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오히려 후각 뿐만 아니라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는 모습이 누군가가 보기에는 우스워 보이지는 않을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스스로가 이런 가면 쓰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에 다소 씁쓸했다.

 

그루누이의 가면무도회를 좀 더 거시적으로 생각해보자면(그는 그리고 그것을 정말 크게한 번 이용했다), 거짓일지도 모르는 정보에 너무나도 쉽게(혹은 자연스럽게) 판단을 내려버리고 모여 있는 자들의 광기가 재고의 여지없이 확산되는 무서운 광경을 읽어낼 수 있다. 필자가 다수로 모여 있는 사람들광기혹은 우매함등을 연결 짓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지만 다수가 그렇다고 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광기가 현실에서 여러 번 관찰되는 것은 그리고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필자를 포함한 다수가 여기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사실이다. 이에 대해 끊임없이 주의하면서도 너무 쉽게 말려들게 되는 것을 보면 이런 맹목에 어쩔 수 없는부분이 있는데 그것을 힘겹게 억누르며 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무서운 생각마저 든다.

    

마지막으로 이런 맥락에서 향수를 다 읽어갈 때 쯤 생각나는 노래가 있었다. 이승열의 가면이었다. 나는 그루누이의 모습과 가면의 내용에서 일맥상통하는 모습이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그루누이의 마지막이 뒷모습을 끝까지 보여주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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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성 사고 입문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 번역총서 7
에드가 모랭 지음, 신지은 옮김 / 에코리브르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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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성 사고 입문'이라니. 복잡성이 무엇인지 관심을 가지지 않고서야 전혀 매력이 없어보이는 이런 투박한 제목이 있나 싶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내용에 정말로 충실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얇은 분량에서 이 책이 줄 수 있는 정도의 지적 자극을 안겨주는 책도 드물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책의 내용은 놀라웠다. 필자가 놀란 점은 두 가지 였는데, 우선 단순성 사고의 패러다임이 지닌 맹목성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과 복잡성 사고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저자의 박식함과 설득력 있는 논리에 놀랐고, 책의 내용이 최근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중 가장 최근이라고 해도 한 세대에 가까운 과거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들이 흔히 접할 수 있는 담론에 전혀 녹아들지 못하고 '복잡계 이론'이나 '복잡계 네트워크' 등은 해당 분야에 특별한 관심을 쏟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라도 낯설게 느껴진다는 점은, 저자가 비판했던 '지식의 철기시대'에서 우리가 거의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저자는 자신의 사고 출발점을 아도르노가 속한 일군의 프랑크푸르트학자들 사이에서 자주 논의되던 근대 이성의 길잃음이라고 밝히고 있다. 도구적 합리성에 매몰되어서 종교의 맹신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킨 그 사고체계가 다른 맹목을 만들어내고 판단의 오류들에 눈을 돌리지 못하게 막는 상황 말이다. 이 지점을 저자는 '합리성'과 '합리화'의 차이점을 강조하면서 명쾌하게 지적한다. 합리화하려는 경향과 편집증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말은 '매우 합리적인 편집광'인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등장하는 안드로이드 마빈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마빈의 경우 도무지 '정상'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 기가 막힌 기준을 세워줌으로써 이야기의 반전을 이끌어내기도 하지만).

책의 내용들은 군데군데가 모두 흥미롭기에 평점은 만점을 주어도 아깝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여기에 들어가 있는 논의들이 한층 구체화된 결과물로서 21세기 버전의 '복잡성 사고 입문'에 해당하는 책에 대한 지적 갈증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는 아마 부지런한 독자이자 새로운 패러다임의 탐험가로서 필자가 찾아가야 할 다음 이정표가 아닌가 싶다.

복잡성은 문제를 제기하는 단어이지 문제를 해결하는 단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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