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성 사고 입문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 번역총서 7
에드가 모랭 지음, 신지은 옮김 / 에코리브르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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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성 사고 입문'이라니. 복잡성이 무엇인지 관심을 가지지 않고서야 전혀 매력이 없어보이는 이런 투박한 제목이 있나 싶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내용에 정말로 충실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얇은 분량에서 이 책이 줄 수 있는 정도의 지적 자극을 안겨주는 책도 드물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책의 내용은 놀라웠다. 필자가 놀란 점은 두 가지 였는데, 우선 단순성 사고의 패러다임이 지닌 맹목성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과 복잡성 사고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저자의 박식함과 설득력 있는 논리에 놀랐고, 책의 내용이 최근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중 가장 최근이라고 해도 한 세대에 가까운 과거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들이 흔히 접할 수 있는 담론에 전혀 녹아들지 못하고 '복잡계 이론'이나 '복잡계 네트워크' 등은 해당 분야에 특별한 관심을 쏟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라도 낯설게 느껴진다는 점은, 저자가 비판했던 '지식의 철기시대'에서 우리가 거의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저자는 자신의 사고 출발점을 아도르노가 속한 일군의 프랑크푸르트학자들 사이에서 자주 논의되던 근대 이성의 길잃음이라고 밝히고 있다. 도구적 합리성에 매몰되어서 종교의 맹신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킨 그 사고체계가 다른 맹목을 만들어내고 판단의 오류들에 눈을 돌리지 못하게 막는 상황 말이다. 이 지점을 저자는 '합리성'과 '합리화'의 차이점을 강조하면서 명쾌하게 지적한다. 합리화하려는 경향과 편집증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말은 '매우 합리적인 편집광'인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등장하는 안드로이드 마빈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마빈의 경우 도무지 '정상'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 기가 막힌 기준을 세워줌으로써 이야기의 반전을 이끌어내기도 하지만).

책의 내용들은 군데군데가 모두 흥미롭기에 평점은 만점을 주어도 아깝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여기에 들어가 있는 논의들이 한층 구체화된 결과물로서 21세기 버전의 '복잡성 사고 입문'에 해당하는 책에 대한 지적 갈증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는 아마 부지런한 독자이자 새로운 패러다임의 탐험가로서 필자가 찾아가야 할 다음 이정표가 아닌가 싶다.

복잡성은 문제를 제기하는 단어이지 문제를 해결하는 단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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