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장애 세대 - 기회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
올리버 예게스 지음, 강희진 옮김 / 미래의창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결정 장애'라는 제목에 끌려서 읽게 되었는데, '도대체 우리 세대는 누구인가'라는 답하기 힘든 질문만 나에게 남겨놓고 훌쩍 떠나버린 책이다. 자기 전에 몇 페이지만 읽어보려고 책을 집어들었다가 밤 늦도록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나간 시간이 너무도 짪아서, 정신 없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영화관에서 보고 나온 것만 같았다. 주제는 대략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디로 갈 것 같은가' 정도로 정하면 될 것 같다.

 

번역자의 재치 넘치는 의역 때문인지, 저자가 처한 상황과 한국의 상황이 정말로 '통하는 것'이 있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이 한국 이야기가 아니라 저자가 속한 독일 청년사회 이야기라는 것을 자꾸 망각하고, 내 옆에서 벌어지는 일인마냥 몰입하며 읽게 되었다. 그러다가 저자가 그리는 '암울한 독일의 미래상'이 한국에서 이미 실현되고 있음을 깨닫고는 씁쓸함을 남긴 채 현실로 돌아오곤 했다. 단순 노동을 하는데도 대학교 졸업장이 필요한 세상, 아니 좀 더 정확한 선후관계를 말하자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대학교 진학을 당연시 여겨서 대학교 졸업장이 있더라도 취업 전선에서 그다지 '특별해'보이지 않는 현실이 바로 우리나라의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내가 저자한테 말할 기회가 있다면 독일 대학 진학률이 한국처럼 80%를 넘어서면 이미 브레이크는 고장나 버린 상태라고 외치고 싶다. 저자는 현재 독일의 대학진학률 수준도 충분히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아마도 세대(generation maybe)'라는 이름으로 묶인 우리들은 저자가 맨 마지막에 정체성을 극단으로(혹은 궁극의 형태로) 밀고 나갈 여유도, 그럴 의지도 부족한 것 같기도 하다. 나만의 타입을 확실하게 가진다면 애초에 '결정 장애'라는 것이 생길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의 지적처럼 전 세대와는 다른 배경 속에서 보고 배울 롤 모델도 없고 다양한 문제에 대한 나만의 입장과 가치관을 가질 기회는 희미해지고 있으며, 남의 눈치를 보는 데(SNS 속에 푹 빠져 산다는 것은 어찌 되었던 남의 눈치를 보며 산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필자도 마찬가지다) 익숙해진 우리들은 어떻게든 '모난 대로' 각을 세우며 살기 힘들다. 그래서 수 많은 선택 앞에서 갈팡질팡 하는 것처럼 우리의 존재 자체가 어떤 방향으로 가면 좋을 지 갈팡질팡하다가 시간만 흘러가는 것은 아닐까.

 

자신이 뭔가 당당하지 못하고 자꾸 헤멘다는 생각이 든다면, 하루 하루는 어찌 어찌 흘러가는 것 같은데 앞날이 잘 보이지 않는 답답한 느낌이라면, 최소한 그러고 있는 사람이 나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이라도 받을 겸 읽어 볼만한 책이다. 물론 저자가 이런 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확실한 해답을 주는 것은 아니기에, 언제나 그렇듯이 답을 찾는 것은 다시 독자의 몫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케임브리지 동지들 (반양장) - KGB 공작관의 회고록
유리 모딘 지음, 조성우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파이를 다룬 수많은 영화와 소설에 영감을 주었다는 '케임브리지 5인방' 사건에 대해 직접 케쉽임브리지 5인방과의 접촉을 담당하고, 그들이 발각된 후에 탈출을 도왔던 전직 KGB 요원이 쓴 책이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마치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손주들에게 자신의 젊었을 때 경험담을 이야기해주는 것처럼 쉽게 읽히지만 덤덤한 어조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가식이나 허황됨 없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저자의 시각에서 충실하게 풀어나갔다는 점이 매력인 것 같다.

 

사실 이 사건 자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당시 상황에 대한 시시콜콜한 묘사라든지, 글쓴이가 KGB에 들어가기 전에 소련에서 겪었던 우여곡절들, 케임브리지 5인방의 출신 배경과 파란만장한 삶에 대한 이야기들도 지루한 역사책에 실린 일화 이상으로는 다가오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수천만 명의 희생자를 낸 세계 2차 세계 대전에서, 서로의 종말을 앞당기는 군사들이 격돌하던 자리 이면에 그 만큼 치열한 정보 전쟁이 펼쳐지는 장면은 평소 이 분야에 관심있는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또한 글쓴이가 어느 정도 자신의 '관찰자'들을 미화시켰다고 볼 여지도 있겠지만, 케임브리지 5인방이 돈이나 권력, 안락한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상과 신념을 위해 자신의 조국을 배반할지도 모르는 선택을 했다는 점, 이들이 자발적으로 나섰다는 점과, 말년에도 남들이 볼 때는 바보처럼 순진하고 어리숙하다고 할 만큼이나 자신의 신념에 확고했으며, 의리와 동지애를보여주었다는 점 또한 인상깊다. 저자가 마지막에 쓴 대로 이들은 그 어떤 이상과 꿈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환상'인 정치 -세계 혁명과 유토피아의 실현, 그리고 파시즘을 막아내는 휴머니즘의 승리-를 꿈꿨다고 표현하는 것이 전혀 손색이 없다고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을 읽은 다음에 다시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보고 싶다. 처음 봤을 때는 배우들의 명연기는 즐길 수 있었지만 솔직히 스토리 자체에는 몰입하기 어려웠는데, 지금 다시 본다면 더 몰입해서 볼 수 있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