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
다우어 드라이스마 지음, 김승욱 옮김 / 에코리브르 / 2005년 9월
평점 :
10대에는 인생이 10km/h의 속도로 간다고 비유한다면, 20대에는 시속 20km로, 30대에는 30km로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식의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필자는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에 어떤 수업시간에 이 말을 들었던 것 같다. 20대는 황금 같은 시간이라고 모두 입을 모아 말하지만, 그 동안 겪었던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가버릴 것이므로 시간을 아껴 쓰라는 의미에서 해 주신 덕담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삶이 시속 19km 언저리로 갔던 그때는 이 말이 잘 와닿지 않았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한 학기가, 한 계절이, 1년이 너무 빨리 흘러가서 내가 내 삶의 속도를 제어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기 전까지는.
자주 찾아가는 중고서점에서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라는 제목의 이 책을 만났을 때, ‘정말 이 책이구나!’ 싶었다. 2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달려가는 나의 삶은 정말로 꾸준하게 가속 페달을 밟는 것처럼 조금씩 더 빠르게 흘러가고, 요즘 나는 내가 뭘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한 주를 보내는지 모를 만큼 무의미하게 시간을 허비한다는(막상 들여다보면 그렇게 무의미한 시간만은 아니겠지만) 기분으로 내내 저기압이었다. 항상 나를 따라다니던 물음에 대한 답과 절실하게 필요했던 반전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고 확신하여 얼른 책을 손에 집었다. ‘책은 겉표지에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는 격언은 잠시 잊은 채로.
심리학자인 저자는 ‘자전적 기억(autobiographical memory)’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인간의 기억과 시간 인식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절대적인 기억을 소유한 사람들의 이야기, 일반인들의 회상과 망각에 대한 이야기, 데자뷰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마침내 책 후반부에 나오는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는 느낌’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런 주제들은 누구나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이지만,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풍성하게 이런 이야기로 책 한권을 쓰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심리학사를 연구했던 저자의 내공이 느껴지는 부분도 많았고, 잠시 책을 손에 놓고 멍해질 정도로 인상적인 설명도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것 같은 기분에 대한 설명이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현상을 명쾌하게 규명하는 이론이 하나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삶의 인상적인 순간’ 혹은 회상 과정의 지표가 될 만한 사건이 일상에서 나타나는 빈도수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줄어든다는 점을 근거로 한 저자의 설명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시각적인 비유를 들자면, 아무런 표지판이나 물체도 없이 무한하게 뻗어 있는 고속도로와 시선을 사로잡는 다양한 ‘이정표’들이 있는 도로를 볼 때, 두 길이 실제로 같은 거리일지라도, 후자의 길이 더 먼 거리로 인식되는 효과이다. 삶의 긴장감과 관련한 설명도 꽤 와 닿는다. 시험이나 중요한 면접 전의 1분은 마치 한 시간과 같이 더디게 흐르는 경험을 누구나 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혹은 매우 알차게 보낸 시기보다 오히려 무료하고 권태롭게 보낸 시간이 더 빨리 흘러가는 경험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를 우리의 삶에 비유해보자면, 새롭게 시작하고, 작은 일에도 나름대로 큰 의미 부여를 해 적절한 긴장 속에서 사는 어린 시절보다, 모든 게 익숙하고,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해 긴장감이 떨어지는 인생의 후반기가 ‘권태로운 일상’과 같이 흘러간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에 이르자, 필자는 ‘아직 세울 이정표가 많고 적당히 긴장하면서 살 수 있는’ 20대가 절반가량 남아 있음에 행복해 해야 할지, 어느 정도는 눈에 선한 앞으로 점점 단조로워지다가 스러질 남은 인생에 슬퍼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깊은 곳에서 슬픔이 몰려왔다. 어떤 곳으로 향하는지 모르고 일단 무작정 걸어온 길의 끝이 삶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이라니. 사실 ‘왜 나이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지’에 대해 저자에게 그럴듯한 말로 설득당한 다음부터는 책의 나머지 부분에 담긴 다른 이야기들이 모두 어딘가 모르게 슬픈 이야기로 다가왔다. 가까운 주위를 둘러 본 나의 의식은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자식을 키우기 위해서 젊음의 대부분을 보낸 부모님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자식은 다 자라서 자기 갈 길을 가고자 하루하루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두 분의 젊음이 밀도 높게 녹아들어간 필자가 빠져나간다면 그분들의 삶은 가끔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주변의 친구들은 어떠한가? 과연 나는 나중에 내 기억의 사진첩에서 내 젊은 시간을 꺼내어 볼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내가 지금 스스로에게 ‘필요하다’고 설득하면서 보내는 혼자만의 시간은 나중에 기억 속에 남아 있지도 못할 정도로 덧없는 것들은 아니었을까?(그 반대로 홀로인 시간들이 기억의 사진첩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년도 생각해보니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가 독자들에게 의도한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이쯤에서 이 복잡한 슬픔과 공허함을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이 말을 내뱉지 않을 수 없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Vanitas vanitum, et omnia vanitas)!”
내가 앞으로 내 삶을 얼마나 더 긴장감 있게 유지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이정표들을 세워 나가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덧없는 것인 줄 알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기억의 사진첩’에 나의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 그리고 요즘 계속 나를 괴롭히는 또 하나의 질문. 금방 지나가버리는 순간들은 한없이 부질없어 보이는데, 그 순간들이 모인 한 번뿐인 인생은 왜 이토록 소중한 것일까?
이 책은 나에게 명쾌한 해답보다는 걱정과 물음만 잔뜩 안겨주고 유유히 내 손을 떠나가 버렸다. 아마 내 독서 이력에서 오래 도록 눈에 띌 이정표 하나만을 남긴 채. 나머지 내 몫이란, 결국 헛된 삶이라도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전에 말한 “기회가 있든지 없든지 일단 열심히 살고 봐야 한다.”는 친한 형의 이야기는 이런 고민을 이미 겪은 사람의 조언일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초입에 서 있는 사람은 강물보다 빠른 속도로 강둑을 달릴 수 있다. 중년에 이르면 속도가 조금 느려지기는 하지만, 아직 강물과 보조를 맞출 수 있다. 그러나 노년에 이르러 몸이 지쳐버리면 강물의 속도보다 뒤처지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제자리에 서서 강둑에 드러누워 버리지만, 강물은 한결같은 속도로 계속 흘러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