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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펙트 - 행복한 뇌를 만드는 게임의 문화심리학 ㅣ 이매진 컨텍스트 51
이동연 지음 / 이매진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사실 책 제목만 보고서는 좀 더 뇌과학적인 내용을 기대했었다. 디지털 비관론 중에서 필자가 신뢰하는 내용들은 대부분 SNS나 과도한 인터넷 이용, 혹은 다양한 종류의 게임들이(대부분의 어느 정도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비관론은 ‘인터넷 게임’과 같은 모호한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고 특정 장르의 게임을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한다) 이용자의 뇌나 정서 상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론도 비슷한 방식으로 제기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게임을 함으로써 스트레스 지수에 뚜렷한 감소를 가져온다든지, 정신 질환을 치료하는데 게임이 구체적으로 기여하는 사례 등을 읽고 싶었다. 물론 이런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저자는 한국의 고질적인 ‘규제’와 표현의 자유 침해에 좀 더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게임을 각종 청소년 사회문제의 ‘악의 축’으로 매도하려는 보수 언론과 정권, 정신의학계와 문화 보수주의적 담론의 결합을 지적하고, 이러한 규제가 타당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는다. 물론 이런 관점이 팽배한 우리 사회는 분명 ‘게임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인 관점만 논의된’ 사회이다. 얼마 전부터 학교 폭력 문제가 터져도, 청소년 자살이나 우울증 문제, 그 밖의 다양한 범죄 문제가 터져도 항상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와 게임의 긴밀한 연관성은 빠지지 않고 보도되었던 기억을 되새겨 볼 때, 이에 대한 타당한 문제제기는 진즉 이루어졌어야 옳다(물론 제목과 내용이 따로 논다는 지점에서 느껴지는 아쉬움은 그대로 남지만).
사회 비판적인 내용의 영화를 찍는 것으로 유명한 미국의 마이클 무어 감독의 ‘볼링 포 콜럼바인(Bowling For Columbine)’을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당시 미국의 보수적 언론들과 시민단체들은 총기 규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또는 총기 규제 이슈에 쏠린 대중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효과도 기대하면서) 폭력적 컴퓨터 게임인 ‘둠’이나 반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곡과 퍼포먼스로 유명한 록 그룹 마릴린 맨슨 등이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에 주목하였다. 콜럼바인 총기사건 용의자들이 즐겨했던 게임과 좋아하던 음악을 둔 사회적 마녀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사실 게임에 대한 법적 규제와 사회적 매장의 시도는 10년 전 마이클 무어가 영화에서 조롱했던 엉뚱한 마녀사냥과 딱히 다를 것이 없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순수한 아이들’이 폭력적 성향을 띠고 각종 범죄에 연루되는 문제나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휩싸이는 문제는 우리 사회 전반의 병폐가 복합적으로 터져 나오는 일이지만, 이를 건드리기에는 ‘너무 골치아프기에’ 청소년 문제의 속죄양으로서 게임 때리기에 매진하는 꼴이다. 사실 게임이 청소년에게 그다지 유익하지 않더라도 이런 식의 문제 해결 방식에 대해서는 당연히 비판이 이루어져야 한다. 게임이 청소년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실제로 유용하게 활용할 방법이 많다는 것도 매우 중요한 함의이지만 사실 이 부분이 책에서 충분히 설득력 있게 제시되지는 않았다. 관련 분야 연구가 국내에서는 거의 없고, 해외에서도 아직 충분히 누적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에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는 식의 사회적 시선에는 딴지를 걸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잘 지적했듯이, 한국 사회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적 도구로서 사상적, 이념적 측면에서는 국가보안법이, 정치 사상과 이념보다는 다양한 가치관이나 좀 더 ‘문화적’인 부분에서는 청소년 보호법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큰 그림을 보려는 노력이 이루어진다면 게임을 둘러싼 이 모든 ‘문화 전쟁’도 좀 더 뚜렷하게 인식되는 것 같다. 게임 규제는 영화, 만화, 음악, 뮤직비디오 규제 등의 연장선상에서 더해진, 개인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약하는 시도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이런 규제가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 이루어지는 현상은 사실 저자가 지적한 것 이상으로 좀 더 관심을 가질만하다. 만약 이것이 사회 구성원 일반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면 해당 콘텐츠로 이윤을 창출해야 할 자본측의 반대가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도 지적했듯이 청소년보호법과 그에 연관된 ‘셧다운제’와 같은 제도의 적용을 받는 청소년 게임 이용자 집단이 워낙 소수인데다가, 그들의 구매력이 크지 않기 때문에 콘텐츠 생산자 및 유통자들도 이러한 규제에 크게 반대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자신들은 청소년들의 미래를 생각하여 건전한 이용을 선도한다는 고도의 PR을 할 수 있는 기회로 이런 규제를 역이용할 수 있다(물론 이러한 ‘건전한 이용 선도’는 자율규제의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법적 규제의 정도가 너무 강하다면 이에 대해서는 공식적 소통로를 통해 불만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이것저것 늘어놓았지만, 책에서 지적한 게임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논란이 이처럼 여러 논점이 맞물려 있다. 필자가 게임 산업계의 논리를 좀 더 심도 있게 다루는 ‘정치경제학적 접근’을 통해서 책 내용을 좀 더 풍부하게 만들어줬다면 이 분야의 논점을 정리하는 최고의 책이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250여 페이지에 담은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다. 더불어 앞으로는 게임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정리된 문헌도 접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