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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가장 잔인한 달 ㅣ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신예용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6년 10월
평점 :
시리즈 소설을 앞부터 번역하지 않고
큰 상을 받은 것부터 내는 거, 책을 팔아야 하니 이해는 가는데...
종이책으로 1권부터 다 나왔으니 전자책은 순서대로 내줬다면 좋았을 것을...
(종이책 독자가 전자책을 살 거라고 생각했을까? 나처럼 처음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저작권 갱신 날짜와 모종의 연관이 있겠지만
결국 기다리지 못하고 전자책으로 나온 3권 중 가장 앞부분인 시리즈 3권 <가장 잔인한 달>을 읽었다.
부활절 주간에 공교롭게도 부활절 주간이 배경인 책을 읽었음.
스리 파인즈 마을과 등장 인물들에 대한 설명들 전혀 없이 이야기가 흘러가니 파악이 쉽지 않았고
너무 생소한 교령회 이야기에...
25% 정도까진 이걸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이 될 정도로 지루했다.
게다가 분명 앞의 두 권에 나와 해결된 사건의 이후 이야기가 나오니...
의도치 않게 스포를 당하는 것도 짜증났다.
(1인 출판사로 가마슈 경감 시리즈 계속 내주시는 건 감사한데 그 정도 열정이라면 이 시리즈를 첨부터 읽는 게 중요함을 아셨을 테고.. 전자책으로 3권부터 낸 건 정말 판단 미스라고 봅니다. 앞의 두 권은 종이책으로 읽지 뭐..가 전 안 된단 말입니다!)
그래도!
힘들게 꾸역꾸역 중반을 넘기니 조금씩 인물들이 입체적으로 손에 잡힌다.
미스터리를 푸는 재미도 있지만 인간 본성과 관계를 관찰하는 재미가 매우 크다.
특히 가마슈 경감의 인간적인 매력과
감정을 읽는 독특한 수사 방식에 반해버렸다.
환상의 팀워크는 커녕 삐걱대며 불협화음을 내는 팀원들조차 애정이 간다.
이 한 권으로도 시리즈 전체와 사랑에 빠질 이유가 충분하다.
그도 다른 동료들처럼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증거를 모았다. 하지만 그가 하는 일이 한 가지 더 있었다. 그는 감정을 모았다. 그리고 정서를 수집했다. 살인은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기 때문이었다. 살인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한 행동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훨씬 더 중요했다. 그 지점에서 모든 일이 출발하기 때문이었다. 한때는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웠던 감정이 일그러진다. 그리고 기괴한 모습으로 변한다. 감정의 주체를 집어삼킬 때까지 비틀리고 부패한다. 결국 인간성의 흔적이 거의 남지 않는 지경에 이른다.
감정이 이 단계에까지 오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감정을 오랫동안 조심스럽게 키우고 보호하고 정당화하고 보살피다가 마침내 깊숙이 파묻는다. 그래도 죽지 않는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밖으로 빠져나와 끔찍한 실체를 드러낸다. 그 끔찍한 실체의 목적은 오로지 한 가지뿐이다. 목숨을 빼앗는 것.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네. 말만 해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어. 살인 사건을 다룰 때는 배우는 과정이 중요하네. 사실만 배우는 게 아닐세. 살인 수사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보거나 만질 수 없는 것이지.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가 하는 점이야. (...중략...) 우리는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을 찾고 있기 때문이지. 건강하고 멀쩡해 보이지만 사실 무척 아픈 사람을 찾고 있기 때문이야. 단순히 사실만을 수집하지 말고 느낌을 수집해서 범인을 찾아야 해."
하지만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야만 집의 실체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불가피하게, 집에는 우리가 체인을 걸고 빗장을 질러 잠가 놓는 마지막 방이 있었다. 자신에게조차 허용이 안 되는. 특히 자신에게는. 가마슈는 살인 사건을 수사할 때마다 이 닫힌 방을 샅샅이 뒤지곤 했다. 이 방에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괴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르망 가마슈는 그만의 싸움을 자신들의 싸움으로 받아들이는 이 여자와 결혼했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쁠 수 없었다. 그녀는 그가 앞으로 발을 내디디려 할 때조차 그의 옆을 굳건히 지키고 서 있었다. 아니, 그럴 때에는 특히 더.
"집착은 사랑인 척하고, 동정은 연민인 척, 무관심은 평정심인 척 속이죠."
"사랑은 상대방을 위한 최선을 바라죠. 집착은 상대방을 인질로 삼고요."
"평정심이 있는 사람들은 놀랄 만큼 용감해요. 고통을 흡수해 온전히 느끼고 놓아 보내죠. 그리고 이거 아세요?" "뭘요?" 가마슈가 속삭였다.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고 무관심하기만 한 사람과 똑같아 보여요. 냉정하고 차분한 데다 아주 침착하니까요.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존경하죠. 하지만 정말로 용감한 사람은 누구이고, 가까이에 있는 적은 누구일까요?"
두 남자는 요리를 먹으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이 순간이 수사 과정에 있어 보부아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었다. 가마슈 경감과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는 시간이었다. 생각과 의견이 오가는. 격식도 없고 메모도 없는. 그저 떠오르는 생각을 입 밖으로 내면 될 뿐이었다. 먹고 마시면서.
보부아르의 앞에는 숯불에 구운 후 프라이팬에 볶은 양파가 수북이 쌓인 커다란 스테이크가 놓였다. 보부아르의 개인 접시에는 프리트감자튀김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보부아르는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죽어도 좋을 만큼의 행복에 휩싸였다.
타인의 눈으로 행복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그럼 스스로 자기 자리를 찾을 나이가 아닌가. 자기 목소리를 내야지. 자네가 여기 서 있는 건 저 사람들 잘못이 아니야, 이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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