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그림책을 소장하는 데는 여러 계기가 있다

 

나의 경우에는 도서관에서 수많은 책을 만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구입을 위해 지갑을 잘 열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내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림책들은 대부분 만나자마나 어머, 이건 정말 사야해.”라고 두말 않고 업어온 녀석들이다.

그들은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읽히는 그림책의 고전이거나,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신작이다. 혹은 나만 알고 있는 개인적인 추억들이 담겨있는 작품들일 때도 있다. 어찌되었건 그것들을 데려올 때는 늘 설렜었다. 책장을 죽 둘러보고 있으면 그것들을 품에 안고 왔던 때가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럴 땐 나도 구두나 가방을 사 모으면서 아기라고 부르는 셀럽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 중에 희한한 이유로 데러온 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우리집에 오는 데에 자기소개서 덕을 좀 봤다. 재미있는 것은 그 자기소개서가 본인의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제 아버지의 자기소개서가 너무나 달변이라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이를 데려와 버린 것인데, 그러니 아이는 제 집안의 후광을 업고 우리집에 입성한 셈이다.

 

아이의 아버지는 박연철이다. 나는 그 당시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의 이름은 들어보았었다. 그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이야기하고 또 이를 새롭게 풀어내는 작품들로 제법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내가 작품도 읽어보지 않고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는 우리 아버지의 어릴 적 이름이 연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하튼, 한번쯤 그의 대표작인 <어처구니 이야기><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를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떼루떼루>라는 내용을 짐작할 수 없는 이름을 가진 이 아이를 나는 먼저 만나게 된 것이다. ‘떼굴떼굴도 아니고, ‘떼구르르도 아니고 떼루떼루라니. 떼로 몰려다닌 다는 말인가. (알고보니 떼루는 재미있다는 뜻을 가진 여흥구라고 한다. 혹은 남사당놀이 중 꼭두각시 놀음에 사용되는 주제곡이라고도 하는데, 어찌되었든 내가 이를 처음 들어본 까닭은 내가 무식해서였던 것이다.)

그래? 박연철의 신작이라고? 어디 한번 구경이나 해보자.

 

나는 어떤 책이건 껍데기부터 본다. 앞표지, 뒷표지 꼼꼼하게 다 보고 면지까지 한번 쓰다듬고나서, 판권기는 가끔 빼먹기도 하지만, 작가 소개를 읽게 되었는데...

 

내 얼굴은 푸른 수염이 나고 못생겼어요. 나이도 많은데 아직까지 결혼도 못 했지요. 사실 내가 결혼을 못 한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을 잡아먹기 때문이에요. 걱정하지 말아요, 이 책을 읽는 친구를 잡아먹지는 않으니까요. 나는 아이들을 요리하는 커다란 솥도 가지고 있어요. 작은 문에서 아이들을 꺼낸 다음 솥에 풍덩 집어넣고 국자로 떠올려서 뼈를 오도독오도독 씹어 먹어요. 그러던 어느 날, 잠들지 않는 거위를 안고 한 소녀가 나를 찾아왔어요.

 

박연철의 자기소개가 이랬다.

아이들을 잡아먹는 작가. 아이들 요리하는 커다란 솥도 가지고 있다는, 그러나 자기 책을 읽는 어린이는 잡아먹지 않겠다고 넉살좋게 말하는 이자는 괴상망측한 자기소개에 독자들을 기함하게 만들더니, 한 술 더 떠 자기소개를 끝맺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잠들지 않는 거위를 안고 한 소녀가 찾아왔다더니, 그래서 어찌되었느냐고!

 

혹시 본 내용에 이에 대한 힌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열심히 떼루떼루를 읽어보았지만, 잠들지 않는 거위는 커녕, 소녀의 그림자도 발견하지 못했다. 아니면, 이것은 자신에 대한 비유일까. 그렇다면 혹시 잠들지 않는 거위를 안은 소녀와 푸른 수염이 상관관계를 가지는, 나만 모르는 어떤 스토리가 있는 것일까. 내가 워낙 무식하니까, 정말 그런지도 모른다.

 

어리둥절한 사이, 나는 박연철에게 빠져버렸다. 그리고 잠들지 않는 거위를 안고 푸른수염을 찾아온, 아마도 예쁘든지 귀엽든지 할 게 분명할 것 같은 소녀의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박연철이 다음 책을 내면, 그놈도 꼭 사가지고 와야겠다고 다짐해 버렸다.

 

그렇게 해서 떼루떼루는 내게로 온 것이다.

 

지금은 떼루떼루가 가진 본연의 이야기-꼭두각시 놀음-에 더 마음이 가지만, 세상 처음 저런 자기소개서를 들이민 작가가 정말이지 위대해 보였던 그때의 콩깍지는 여전히 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나는 떼루떼루의 형제들을 줄줄이 입양해올 모양이다.

 

훗날, 다른 책들을 보고 확인한 결과 다른 모든 책들도 이상하리만치 독특한 미완의 자기소개서를 가지고 있었는데, 각각이 아무 연관성이 없는 것을 보면, 안타깝게도 거위와 소녀와 푸른수염의 사연은 아마도 절대로 풀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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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총사>, <춘희>의 작가 앙리 뒤마의 아버지인 알렉산드로 뒤마의 본 작품은 1844년부터 1846년까지 신문에 연재될 만큼 방대한 양의 낭만주의적 소설이다.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의 파란만장한 삶은 마피 경찰서의 기록 보관서에서 뒤마가 발견한 프랑수아 피코라는 실제 인물을 소설화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약혼녀를 사랑했던 친구의 음모로 감옥생활을 하게 된 점, 가족들의 비참한 죽음, 친구와 약혼자가 결혼한 사실, 부호가 된 동기, 전말을 알아내는 과정은 사실대로 쓰여졌고, 자유를 찾는 과정, 시대적 배경, 복수하는 과정(나폴레옹 몰락과 시체와 뒤바뀌어 탈출, 친구와의 불화로 죽임을 당함, 하이데와 떠남)에서는 변화를 주었다.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 청순한 여인 약혼녀 메르세데스, 에드몽이 선장이 된 것을 시기한 당글라르와 약혼녀를 가로채고자 했던 페르낭 몬테고의 음모, 방관자 카르두스, 감옥생활 중 스승이자 막대한 재물을 물려준 파리아 신부. 신부의 죽음으로 인한 탈출, 자유인이 되어 찾아갔을 때는 이미 관광객을 맞고 있었던 악명을 떨쳤던 감옥 이프섬, 보물이 숨겨져 있었던 몬테크리스트 섬, 복수 중 주인공이 변장을 한 신드바드 선원, 윌모아경, 부소니 신부.

새부인과 부정으로 낳은 아들에게 배반당해 미쳐갔던 빌포르 검사, 자신을 끝까지 신뢰해 주었던 선주 모렐에게는 아들 막시밀리앙에게 유산을 남겨주는 것으로 은혜를 갚는다.

거지가 되어 죽는 카드루스, 은행의 파산과 딸의 가출로 풍비박산이 된 당글라르, 과거를 알고 아들 알베르를 데리고 메르세데스가 떠나자 권총자살을 하게 된 페르낭, 1821년 오스만 제국에 항거하다 멸망한 그리이스 왕녀 하이레.

주인공의 추리력, 공간 시간을 넘나드는 재빠른 변모, 외모나 성격을 더듬어가는 데는 독자들의 상상력이 요구되는 점이 글의 흥미를 돋운다고 볼 수 있다.

 

친정 엄마는 <십자성>이라는 제목으로 읽었으되 억울하게 감옥 생활을 하던 비극적인 장면을, 내가 소녀시절에 읽은 바로는 탈출하는 대목을 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젠 결코 단순치 않은 감정의 고비를 겪은 나이가 된 탓인지 인물마다의 가슴앓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고, 극적인 많은 장면들이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이프섬을 돌아보고 마르세이유 바다를 향해 부르짖는 들끓는 분노심.

“저주 있으라, 나를 저 컴컴한 감옥에 가둔 자여. 그리고 내가 그 속에 갖힌 것을 잊고 있던 자들이여. 저주 있으라.”

 

에드몽 당테스와 메르세데스의 따스하면서도 차분한 이별의 대화, 그러나 깊이 느껴보려니 은밀한 통곡으로 들려온다.

 

사랑이란 이름의 그것이 살아가는 곳은 영원한 피안일까?

    

“에드몽, 제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제 아들이 행복해지는 것 뿐입니다.”

 

“그럼, 아드님이 죽음에서 비켜나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인간의 목숨은 오직 하나 하느님의 손에 달려있으니까요. 그 나머지 일은 제가 맡지요. 그런데 당신은?”

 

“난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전 두 개의 무덤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오래 전에 죽은 내가 사랑했고,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에드몽 당테스의 무덤이며, 또 하나는 당테스에게 죽임을 당한 그 사람의 무덤입니다. 죽임을 당한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저는 그를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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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 아들 세민이가 19살 때 어버이날 꽃바구니와 함께 아빠에게 선물한 것이다.

 

장수도 얼마 안 되는데, 글씨체는 크다. 넉넉한 여백에 치즈 조각 그림까지 삽입된 동화책 같은 선물을 51세의 아빠에게 선택한 까닭이 있었으리.

급속도로 벼화해가는 세상에 노출된 엄마의 어눌한 대처가 늘 염려스럽고 안타까웠던가 보다. 심사숙고하며 골랐을 세민이를 상상해보니 참 대견스럽다.

 

두 생쥐와 두 꼬마 이간이 등장하는데 우리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분류한 것 같다.

변화는 늘 일어나고 있으며 이를 예상하여 신속히 자신을 변화시킨 스니프와 스커리.

현재의 생활에 안주해 새로움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과거에 미련을 갖고 있는 햄.

늦게나마 환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현실에 따르기로 했던 허.

    

작은 변화를 보고 큰 변화를 예상하며, 치즈(현실)가 움직이는 만큼 내가 적극적으로 움직여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긍정적인 사고로 익숙해 있는 것에만 나를 맡기지 말라는 교훈.

 

없어진 치즈를 보고 놀라지 말지어다. 그럴 줄 알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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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부터 읽고 있는 <세 여자1, 2> 

 무척 흥미롭게 읽고 있다.

 부제가 '20세기의 봄'인데, 일제시대의 이야기이다. 세 여자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는 실존인물이다.

 원체 내가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을 좋아하기도(?)하고.

 '좋아한다'는 표현이 좀 불경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라를 빼앗기고 백성이 핍박받던 시대.

 하지만 공식적으로 반상의 구분이 없어진 시대이며 새로운 사상이 첨예하게 날 서 대립하던 시대. 모던 보이와 신여성이 거리를 활보하던 시대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 시대의 주인공들은 서툴고, 혼란스럽다. 그러면서 순수하고 열정적이다. 그래서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들은 매혹적이다.

 

 그래서 재미있게 읽고 있다. 다만 씁쓸한 것은 세 여자의 고민을 21세기의 내가 여전히 똑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영화<사도>를 아이들과 함께 보았다.

 나는 예전에 본 영화지만, 아이들이 영정조 시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역시 조선에서는 세종대왕 다음으로는 영정조인듯.

 비극적이지만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영정조 시대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이다.

 아이들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었다는 내용까지는 알고 있었다.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에 나오는가 싶기도 하고. 요즘 아이들이 열독하고 있다.

 그런데 그 자세한 이야기는 잘 모른다. 그러니 이해가 안 갈 밖에.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인 왕이라니.

 물론 영화<사도> 또한 그 이야기를 어느 한 관점에서만 다룬 이야기일 뿐이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면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서도 질문이 많았다. 아직 아이들에게는 어려운 이야기인가 보다. ㅎㅎㅎ

 

 이번 주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현실너머편> 을 읽으려 한다.

 아, 또 업무용으로 <안네의 일기>를 읽고 있는데, 어린이용이지만 내가 읽기에도 손색이 없다.

 어릴 때 읽고 다시 읽으니 새록새록 재미가 있다. 음. 이 역시 재미있다로 표현하기에는 어린 안네에게 좀 미안한데,

 가슴이 아릿하다고 하면 위로가 될까.

 다 읽고 아이들에게도 읽히려 한다.

 안네는 13살, 우리 큰 애는 11살.

 서로 일면식도 없지만, 이 틈에 인사나 해두렴. 세상엔 이렇게 살다 간 언니도 있단다.

 

 <세 여자>도 그렇고, <사도>, <안네의 일기>도 그렇고

 사는 건 생각보다 비극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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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氏의 <토지>에 대해서는 늘 한쪽 발을 담구고 있는 느낌이다. 언젠가 다시 읽고 싶고, 권하고 싶어 안달이다. 서희, 길상이는 물론 홍이, 봉순이, 월선네는 문득 문득 그리워지곤 한다.

 

그만큼 애정과 존경을 갖는 글이 조정래氏의 작품들이다. 그의 글을 읽으며 굽이굽이 숨겨진 애환의 역사를 공부할 수 있었다.

 

우리 한반도의 이념과 사상, 왜 하나가 되기가 평화로움을 이루기가 그토록 힘들며, 그 깊고 가슴 아픈 골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깨닫게 해준 <태백산맥>.

 

일제시대부터 해방까지의 우리 민족의 절절한 아픈 삶을 그려놓은 <아리랑>. 싸락눈을 몰고 온 늦은 가을의 찬바람 앞에 서 있는 그들, 용서하고 용서 받을 수 있었을까.

 

<한강>은 전후부터 80년대 초까지의 이야기인 까닭에 내가 기억하고, 간접적으로 겪은 일이 얼픗얼픗 섞여 있어, 무심히 지나쳤던 우리 누이, 오라버니들이 지녔던 암담한 소망의 눈빛을 이 책을 읽으며 진정으로 이해했다고 해도 그조차 너무 얄팍한 감상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내 곁의 가까운 이는 자신의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며 책장을 일찍이 덮었다. 부모님 시대의 지긋지긋했던 가난을 되돌이키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내 의식과 다른 내 형제, 동료들의 아픔을 외면했던 가책?

나와 다른 길을 가는 그들을 그다지 대면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현대화, 공업화 앞에 농촌이 무너져가는 과정. 서독으로 외화벌이를 나선 간호원, 광부. 월남전에 참가했던 젊은이들의 허탈한 귀국. 내 남편의 삶도 보태졌던 사우디아라비아의 근로현장. 포항제철의 설립. 학교에서 가장 비중을 많이 차지했던 반공이야기. 이승만, 박정희 정권의 몰락. 연좌제에 묶여 스러져가는 젊음. 이런 경제 발전의 모순으로 생겨난 굶주림이 이야기의 흐름이 된다.

 

인내와 고통이 몸부림치던 비극 속에서 나는 아무런 상처 없이 성장했다. 친구였던 성북동 제갈숙, 청운동 서영란, 그들의 집에 놀러 갈 때 엄마는 큰 맘 먹고 낙원시장에 가서 새 원피스를 사 입혀 주셨다.

식모 살던 계숙이 언니, 엄마가 늘 콜록거렸던 친구 매희, 예민했던 탓일까 욕심이 많았던 때문일까 갖고 싶었던 것이 유난히 많았던 경숙, 흰 블라우스가 얼마나 입고 싶었던지 그 한을 풀고 싶어 딸 승현이에게 원 없이 사 입혔다고 했다. 그네들 모두의 흔적이 한강 어디쯤엔가 녹여져 있으리.

 

천두만, 나상득 아저씨, 갈포댁, 유일민과 임채옥, 유일표, 월해덕, 서동철, 이상재와 허미경. 청량한 겨울 하늘의 뭇별 같이 가슴을 시리게 한다.

격랑시대, 불신시대. 20년이 지난 오늘도 아무런 자극이나 자책없이 매스컴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어떤 시대에 어떤 생을 살아낼까.

삐죽삐죽 얼굴을 내민 겨울 밭의 초록빛 겨울 보리 같이 신선하고 아름다운 우리 아이들.

인내하며 지혜롭게 살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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