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氏의 <토지>에 대해서는 늘 한쪽 발을 담구고 있는 느낌이다. 언젠가 다시 읽고 싶고, 권하고 싶어 안달이다. 서희, 길상이는 물론 홍이, 봉순이, 월선네는 문득 문득 그리워지곤 한다.

 

그만큼 애정과 존경을 갖는 글이 조정래氏의 작품들이다. 그의 글을 읽으며 굽이굽이 숨겨진 애환의 역사를 공부할 수 있었다.

 

우리 한반도의 이념과 사상, 왜 하나가 되기가 평화로움을 이루기가 그토록 힘들며, 그 깊고 가슴 아픈 골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깨닫게 해준 <태백산맥>.

 

일제시대부터 해방까지의 우리 민족의 절절한 아픈 삶을 그려놓은 <아리랑>. 싸락눈을 몰고 온 늦은 가을의 찬바람 앞에 서 있는 그들, 용서하고 용서 받을 수 있었을까.

 

<한강>은 전후부터 80년대 초까지의 이야기인 까닭에 내가 기억하고, 간접적으로 겪은 일이 얼픗얼픗 섞여 있어, 무심히 지나쳤던 우리 누이, 오라버니들이 지녔던 암담한 소망의 눈빛을 이 책을 읽으며 진정으로 이해했다고 해도 그조차 너무 얄팍한 감상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내 곁의 가까운 이는 자신의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며 책장을 일찍이 덮었다. 부모님 시대의 지긋지긋했던 가난을 되돌이키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내 의식과 다른 내 형제, 동료들의 아픔을 외면했던 가책?

나와 다른 길을 가는 그들을 그다지 대면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현대화, 공업화 앞에 농촌이 무너져가는 과정. 서독으로 외화벌이를 나선 간호원, 광부. 월남전에 참가했던 젊은이들의 허탈한 귀국. 내 남편의 삶도 보태졌던 사우디아라비아의 근로현장. 포항제철의 설립. 학교에서 가장 비중을 많이 차지했던 반공이야기. 이승만, 박정희 정권의 몰락. 연좌제에 묶여 스러져가는 젊음. 이런 경제 발전의 모순으로 생겨난 굶주림이 이야기의 흐름이 된다.

 

인내와 고통이 몸부림치던 비극 속에서 나는 아무런 상처 없이 성장했다. 친구였던 성북동 제갈숙, 청운동 서영란, 그들의 집에 놀러 갈 때 엄마는 큰 맘 먹고 낙원시장에 가서 새 원피스를 사 입혀 주셨다.

식모 살던 계숙이 언니, 엄마가 늘 콜록거렸던 친구 매희, 예민했던 탓일까 욕심이 많았던 때문일까 갖고 싶었던 것이 유난히 많았던 경숙, 흰 블라우스가 얼마나 입고 싶었던지 그 한을 풀고 싶어 딸 승현이에게 원 없이 사 입혔다고 했다. 그네들 모두의 흔적이 한강 어디쯤엔가 녹여져 있으리.

 

천두만, 나상득 아저씨, 갈포댁, 유일민과 임채옥, 유일표, 월해덕, 서동철, 이상재와 허미경. 청량한 겨울 하늘의 뭇별 같이 가슴을 시리게 한다.

격랑시대, 불신시대. 20년이 지난 오늘도 아무런 자극이나 자책없이 매스컴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어떤 시대에 어떤 생을 살아낼까.

삐죽삐죽 얼굴을 내민 겨울 밭의 초록빛 겨울 보리 같이 신선하고 아름다운 우리 아이들.

인내하며 지혜롭게 살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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