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스라고 불리운다는 응달에서 잘 자라는 담쟁이를 아무도 안 데려가면 버려진다 해서 다니던 직장에서 구조해왔다. 가지 중의 하나는 내 키의 한 배 반은 족히 되도록 길다. 나는 과연 이것이 내 거주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궁금하다. 먹기는 흙 파먹고 일주일에 한 컵 물만 먹는 것이 무슨 수로 저 길다란 가지에 달린 잎들을 다 건사하는지 신기하기도 하다. 내게 지금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기도 한 것 같은데 단어를 몇 개 썼다가 지우고 또 같은 짓을 한다. 싹이 고개를 디밀고 올라왔다가 흙 속으로 머리를 되쳐박는다. 저런. 어제는 바빠서 한 동안 연락을 못 하고 지냈던 선배와 무료 인터넷 폰서비스란 걸 이용해서 장장 세 시간이나 통화를 했는데 그녀는 잊혀지는 것이 마음 아프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우리는 우리가 고향이라거나 비슷한 이름으로 부르는 장소를 공동으로 추억했다. 보고 싶은 사람도 딱히 없고 눈에 박히는 그 무엇도 없는데, 엉뚱하게 김 오르던 정종의 그 따뜻한 온기라거나, 거리의 음식, 가파르고 좁은 골목길, 술집이 줄줄이 늘어선 정신없는 뒷길, 열차가 쉴새없이 떠나고 또 도착하는 청량리역 시계탑, 뭐 그런 것들만 목이 매이게 그리운 것이다. 그것들은 빈 푸대자루 같은 우리 마음 속에 묵은 감자처럼 굴러다니고 있었다. 사람들이란 덧없고, 추억을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믿음직한 사물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