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스라고 불리운다는 응달에서 잘 자라는 담쟁이를 아무도 안 데려가면 버려진다 해서 다니던 직장에서 구조해왔다. 가지 중의 하나는 내 키의 한 배 반은 족히 되도록 길다. 나는 과연 이것이 내 거주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궁금하다. 먹기는 흙 파먹고 일주일에 한 컵 물만 먹는 것이 무슨 수로 저 길다란 가지에 달린 잎들을 다 건사하는지 신기하기도 하다. 내게 지금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기도 한 것 같은데 단어를 몇 개 썼다가 지우고 또 같은 짓을 한다. 싹이 고개를 디밀고 올라왔다가 흙 속으로 머리를 되쳐박는다. 저런. 어제는 바빠서 한 동안 연락을 못 하고 지냈던 선배와 무료 인터넷 폰서비스란 걸 이용해서 장장 세 시간이나 통화를 했는데 그녀는 잊혀지는 것이 마음 아프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우리는 우리가 고향이라거나 비슷한 이름으로 부르는 장소를 공동으로 추억했다. 보고 싶은 사람도 딱히 없고 눈에 박히는 그 무엇도 없는데, 엉뚱하게 김 오르던 정종의 그 따뜻한 온기라거나, 거리의 음식, 가파르고 좁은 골목길, 술집이 줄줄이 늘어선 정신없는 뒷길, 열차가 쉴새없이 떠나고 또 도착하는 청량리역 시계탑, 뭐 그런 것들만 목이 매이게 그리운 것이다. 그것들은 빈 푸대자루 같은 우리 마음 속에 묵은 감자처럼 굴러다니고 있었다. 사람들이란 덧없고, 추억을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믿음직한 사물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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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2005-12-15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둥개님이 추억하시는곳이 제가 추억하는 곳과 같은것 같네요. 혹시 대학이 같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hanicare 2005-12-15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이란 덧없고, 추억을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믿음직한 사물들 뿐이다.

음...절창이십니다.

--저도 사물에 기댈 때가 많습니다. 누구랄 것 없이 간사스런 제 마음을 돌이켜 볼 때 사람이 덧없는 거 맞습니다. 덧없는 걸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에 가족을 만들고 친구를 만들고 어떻게든 허무의 찬바람을 피할 지붕을 만들려고 안달복달하나 봅니다.

*추억을 만지작거린다는 것 자체가 늙어가는 것이겠지요. 겨울 추위가 점점 뼈에 사무치는 걸 보니 어린 시절에서 하나도 발전한 게 없는 내가 수 십년을 살아왔다는 게 사실같습니다.가끔 자고 일어나면 내가 살고 있는 것이 꿈같다는 생각도 자주 들거든요.

blowup 2005-12-15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덧없다, 는 말을 중얼거리며 살아야 할 나이가 되었군요. 우리가.
오늘 검둥개 님 글은 왜 이리 추운 거야요?

검둥개 2005-12-17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줄리 님, 언 제 한 번 이 쪽 근방에 안 오세요? ^^ 저 참이슬도 아 직 두 팩이나 남았는데 ^^

hanicare님, 무슨 그런 과분한 말씀을 하시나요. 이걸 쓴 날 제 마음이 좀 헛헛했었나 봐요. 사람이란 얼마나 간사 스러운지 모르겠어요. 마음이 문풍지처럼 이리 퍼덕 저리 퍼덕거리는 걸 보면요. 마음은 또 저대로 살아보겠다고 그러는 거겠지만요.

namu님, 점집 차리셔도 되겠습니 다. ^^ 사람 마음을 잘 짚으시는군요. 사 주 카 페 같은 걸 하시면 제가 님 샌드위치를 먹으러 자주 갈 텐데요...

2005-12-17 1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검둥개 2005-12-18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오늘두 들어왔는데 안 계시구만요. 우어~~~ 이따 저녁쯤에 다시 시도해볼께요. 주말이라 역시 가능성이 쩝. 속삭님의 이야기는 언제나 너무 재미있어요. 요즘 괜히 우울증이 치밀어서 고생을 하구 있었는데 알라딘에 들어와서 리뷰 다써놓고 날려먹어서 그것 땜에 화가 나는 바람에 우울증이 격멸됐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