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갠 날  (이면우)


  운전기사 뒷머리 면도자국 파르스름하다
  그는 파란불 켜진 건널목 세 개를 연달아 통과했다.
 
  생의 어떤 날은 구름 한점 없는 하늘 펼쳐지기도 한다.고
  나는 말할 수 있는 나이다 그러나 휴일 외곽도로에서
  텅 빈 버스의 굉장한 속도에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공기 가득 음악 품은 듯 서늘히 저항하는 오전
  지금 이 행운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님을 그러나
  아주 잠깐 새 깨닫도록 된 나이인 것이다.
 
  그렇다 핸들 쥔 저 장갑의 시리도록 흰빛은 이윽고
  땅에 떨어진 목련꽃잎처럼 누렇게 바랠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하늘의 보상처럼 햇빛 공기 속도가
  핏속에 녹아드는 중인 청년에게 나는 소리없이
  띄엄띄엄, 생각나는 대로 말을 건넨다.
 
  행운을 꽉 움켜쥐려 하지 말고
  가볍게, 계속 끌고 가라고
  바로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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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5-09-21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자꾸 움켜쥐게 되니...행운은 쉽게 오지 않나봐요...

검둥개 2005-09-21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하동문예요... ^^;;; 플레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