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묘사하는 이런 느낌을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교길은 늘 그랬던 것 같다. 언제나 여름 햇살이 약간 기울어진 각도로 담장을 치고 골목을 데우고 있었다. 길바닥의 잔돌을 밟으며 집에 가면 엄마는 늘 자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 때는 가라고 가라고 해도 시간이 가지 않았다. 고여서 흐르지 않는 연못물처럼 시간은 눈 가는 곳 어디에나 차 있었다.
여러 카테고리를 만들어 놓았지만 속으로 내가 제일 끔찍이 여기는 것은 이 곳이다. 남들에게 읽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읽으려고 고른 시를 이 곳에 올려놓는다. 올려놓고 읽고도 종종 까먹으니 가끔 들어와 내 서재에 내가 올린 시들을 내가 다시 읽는다. 사실은 순전히 이 목적으로 만들어놓은 코너다. 시집이라고는 기형도 전집 한 권만 달랑 들고 집을 떠나온 나는 그러니까 선견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한 때 나는 내가 반짝이는 싸구려 비닐구두에 담긴 늙은 영혼이라고 생각했었다. 이제 구두는 다 낡아서 많이 길이 들었나? 그런데 내 영혼은 이제서야 겁을 집어먹는다.
아주 가까운 피안 (황지우)
어렸을 적 낮잠 자다 일어나 아침인 줄 알고 학교까지 갔다가 돌아올 때와 똑같은, 별나게도 노란빛을 발하는 하오 5시의 여름 햇살이 아파트 단지 측면 벽을 照明할 때 단지 전체가 피안 같다
내가 언젠가 한번은 살았던 것 같은 생이 바로 앞에 있다
어디선가 웬 수탉이 울고, 여름 햇살에 떠밀리며 하교한 初等學生들이 문방구점 앞에서 방망이로 두더지들을 마구 패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