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황봉득 옮김 / 세종(세종서적) / 1994년 5월
평점 :
품절


처음 이 소설의 저자를 봤을 때 고개를 갸웃했다. 영국집사의 이야기인데 일본작가라니. 5살 때 이민가서 영국에서 자랐다는 약력을 읽고야 그렇구나, 했지만 그래도 좀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어려서 이민을 갔다 해도 영국에서 동양인으로 그 시절에 성장기를 보냈다면 영국집사의 이야기를 자기 소설의 소재로 삼을 것 같지는 않았다. 적어도 그게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는 이 사람은 정말로 외양만 동양인인 영국인인가봐,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옛스럽고 고풍스런 영국 집사의 말투가 얼마나 웃긴지 (대화의 내용과 무관하게) 배꼽을 잡아야 했다. 카즈오 이시구로는 주제에 따라 다른 문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아주 잘 훈련된 작가였다.

독서 전, 이 소설에 관한 두 가지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첫번째는 이 소설의 화자가 신뢰할 수 없는 화자(unreliable narrator)라는 것. 이 책은 전적으로 노집사 스티븐스의 회상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스티븐스의 회상은 나중에 부정확하며 편견에 치우친 것으로 밝혀진다. 두번째는 이 소설의 시각적 배경. 오래 전 명화극장에서 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미리 본 탓에 소설을 읽는 동안 내내 내 머리 속에서 주인공 미스터 스티븐스는 당연히 앤쏘니 홉킨스의 얼굴을, 또다른 주인공 미스 캔튼은 엠마 톰슨의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 책을 읽는 것은 지루하지 않았다. 처음에 이 책은 유쾌하고 코믹했으며, 읽어가면 갈수록 "정말 이 책의 화자가 신뢰할 수 없는 화자 맞어?"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전개가 유연했다. 그래서 마지막의 스리슬쩍 반전은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고, 막바지 부분에서는 그 때까지 스티븐스를 통해 서술되어온 달링턴 홀의 짦은 역사 뿐 아니라 이 소설 자체의 의미까지도 혼란스러워지는 경험을 했다. 아마 이런 것이 책읽기의 즐거운 혼란일까?

감정표현에 매우 인색한 것은 영국인들의 한 특징이라는데,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실로 영국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주제를 다룬 소설이 막바지 부분으로 치달으면서는 그야말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감상적으로 변한다. 절제의 미학과 극단적 감상주의가 이렇게 완벽하게 결합된 경우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이것은 아마도 저자가 일본계인 것과 관계가 있을까?) 

해가 막 저무는 부두가 벤치에 앉아 주인공 스티븐스는 우연히 같은 벤치에 앉게 된 낯모르는 사람에게 "나는 내가 수십년간 집사로 봉사한 달링턴경에게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래서 이제 나에게는 더이상 고용주에게 선사할 것이 남아 있지 않다"라고 흐느낀다. 그의 충성과 애정을 한 몸에 받은 그 달링턴경은 명예를 존중한 구식 영국신사였지만, 혼돈의 역사 속에서 길을 잃고 그만 잘못된 정치적 노선을 따르는 큰 우를 범한다. "달링턴경은 그래도 말년에 자신이 우를 범했음을 인정할 줄 알았다"고 스티븐스는 그의 고용주를 회상한다.

"그러나 그런 실수를 나는 나 자신이 범했다고조차도 말할 수 없지 않은가"라고 그가 한탄하는 바로 그 때, 부두에서는 해가 지고 가로등이 찬란하게 켜진다. 사람들은 일제히 박수를 친다. 그 때까지 기계공의 정확성을 가지고 경영해온 자신의 삶이 실은 무의미하게 낭비되었을 뿐임을 깨닫고 그가 처음으로 오열할 때, 작가는 하루 중에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해가 지는 그 저녁이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에 인생을 송두리째 낭비한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다. 스티븐스와 마찬가지로 미스 켄튼 역시 사랑 없이 결혼했으며 세 번이나 남편의 곁을 떠날 시도를 했다가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이런 이들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올려놓고 카즈오 이시구로는 그래도 그들에게 남아 있는 시간(the remains of the day)이 있고, 그 시간(evening)이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황혼의 인생을 황혼의 아름다움에 비견하는 이 감상주의가 시어빠진 신파로 전락하는 대신 소설의 인상적인 반전부로 기능할 수 있었던 것은 필시,  한 인간이 과연 얼마나 철저히 (심지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고 훼손할 수 있는지와 정직하게 대면한 작가의 용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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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16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7-16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아 있는 나날, 무지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엠마 톰슨이 이 영화에서 참 좋았어요.
늙은 집사의 고집이 안타깝고도 슬펐고요.^^

검둥개 2005-07-16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오타 고쳤습니다. 감사해요 ^^;;;

저도 엠마 톰슨이 너무 좋았어요. 근데 Love Actually에 보니까 많이 늙었더라고요. :)

비로그인 2005-08-14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해요. 인생의 황혼기에.. 제가 저의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어떤 느낌이 들까? 잘 살았고, 충분히 노력했다. 이제는 죽어도 원이없다.
혹은 뭐하고 살았니? 어쩜 그렇게 시간을 낭비했니. 되돌아가고 싶다.
전자와 후자중 어떤 생각을 할까? 그리고 꼭 전자를 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지요. 그러기위해서는 하루하루 한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 ^-^
가장 행복한 인간은 인생의 마지막순간, 행복한 미소를 짓고 눈을 감는자겠죠?

검둥개 2005-08-14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시장미님은 현자같은 말씀만 하세요. ^^ 누구든 자기 인생을 돌아볼 때 죽어도 원이 없다,는 생각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저는 이만큼 했어야 했다, 보다는, 할만큼 했다, 정도로 매일을 마무리하고 싶어요. 기대치를 줄이면 행복도가 높아지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