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장의 습관 (나희덕)

 

방에 마른 열매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오늘 아침이었다.

책상 위의 석류와 탱자는 돌보다 딱딱해졌다.

향기가 사라지니 이제야 안심이 된다.

그들은 향기를 잃은 대신 영생을 얻었을지

모른다고, 단단한 껍질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려본다.

지난 가을 내 머리에 후두둑 떨어져 내리던

도토리들도 종지에 가지런히 담겨 있다.

흔들어보니 희미한 종소리가 난다.

마른 찔레 열매는 아직 붉다.

싱싱한 꽃이나 열매를 보며

스스로의 습기에 부패되지 전에

그들을 장사지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때 이른 풍장의 습관으로 나를 이끌곤 했다.

바람이 잘 드는 양지볕에

향기로운 육신을 거꾸로 매달아

피와 살을 증발시키지 않고는 안심할 수 없던,

또는 고통의 설탕에 절인 과육을

불 위에 올려놓고 나무주걱으로 휘휘 저으며

달아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던 나는

건조증에라도 걸린 걸까.

누군가 내게 꽃을 잘 말린다고 말했지만

그건 유목의 피를 잠재우는 일일 뿐이라고

오늘 아침 방에 들어서는 순간

후욱 끼치던 마른 꽃 냄새, 그 겹겹의 입술들이,

한 번도 젖은 허벅지를 더듬어본 적 없는 입술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나비처럼 가벼워진 꽃들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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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시를 읽었을 때는 시인이 말리려 부라부라 애쓰는 것은 욕망이라고만 단순하게 생각했다. 과도한 욕망이 가져오는 파괴적 종말을 미리 피하려는 사람의 바지런함.

하지만 그건 너무 좁은 해석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라지는 향기는 꼭 욕망의 진한 그 향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가 두려워 도망치는 것은 어떤 순수의 정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의 그 순수의 변질에 대한 두려움. 그래서 아끼는 것에서 수액을 뽑아 안전히 말려 더이상 우리를 위협하지 않는 그것의 아름다움만 안락하게 감상하려는 유혹.

부패하는 것은 무거워지면서 스스로의 파멸과 그 추함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그런 운명을 피한 어떤 것들은 가비얍게 날아오른다.

하지만 그 가벼움이란, 한편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지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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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송이 2005-06-19 0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거운 현실을 대체하는 한 조각 기억. 빈 세계 입장권

검둥개 2005-06-19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그렇단 말이죠?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