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스타워즈 보러 시내 나갔다가 헌책방에서 산 책이다. 뉴욕타임즈 베스터셀러였다는 이 책의 저자들은 최근에 비슷한 주제로 신작을 낸 바 있다. 우연히 그 신작에 대한 기사를 읽은 후에 헌책방에서 이 책을 보고 3불 하길래 집어든 거였다. 직장생활에 아직 적응이 잘 안 돼서 심각한 글은 영 읽을 수가 없길래 날라리책이라도 읽으려고 한 거였는데 예상대로 널럴하고 별 내용 없는 책이었다. 그래도 마지막에 긴장이 고조되면서 나름대로 재미있게 마친 기념으로 여기다 리뷰를 하나 쓴다.
내용은 Nanny라는 NYU (뉴욕대학교) 여대생이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생활비 충당을 위해 유모(nanny)일을 하면서 좌충우돌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것인데, 사실 사건이 뭐 많기보다는, 미국 맨하탄의 삐까번쩍한 저택 아파트에 사는 때부자들의 세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를 자어낸다.
원래 사람들에게는 부자들의 생활을 엿보고 싶은 관음증 심리가 조금씩은 다 있는지라 (뭐 본인이 부자면 그런 심리가 없겠지만서도) 이 책에 리얼하게 묘사되는 맨하탄의 백만장자들의 화려한 저택과 생활상, 그리고 고용자들에게는 뻔뻔스러울 정도로 안하무인인데다가 돈에 치사하기까지 한 행동거지가 은근한 재미를 준다.
대학 내내 생활비 조달을 위해 부자집들을 여럿 돌며 (그래봤자 맨하탄의 갑부들 수준은 아니고 강남의 중상층 정도였다) 과외 하느라고 고생한 기억이 나서 나는 나름대로 공감할 태세까지 갖춘 터였다. (왜 꼭 과외비는 날짜 밀려서 안 주고, 수업취소는 5분 전에 하지를 않나, 등등등...거기다가 자식은 머리가 좋을뿐 노력을 안해서 그렇다는 환상까지 유지시켜줘야 한다) 헌데 유모일은 과외선생일에 비할바 아니게 끔찍스럽다는 걸 알게 됐다. 물론 주인공 내니는 아동교육 전공이고 아이를 끔찍하게 사랑한다는 점에서 그 일도 나름대로 매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빽빽 울어대는 애들을 보면 정신이 멍해지는 나는 그 일을 그것도 몇 시간씩 해야 한다는 게 충격이라 (이러다 나중에 애 생기면 어쩌려나 모르겠다, 정말; 자기 자식은 다르다니까 또 모르지만), 왜 차라리 맥도날드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지 이해가 잘 안 됐다. 특히 부모에게 악세사리 취급당하며 사랑에 굶주리는 4살짜리가 불쌍해서 모욕도 감수하며 내니가 그 집에서 온갖 뒤치닥거리를 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한숨이 절로 나오는 거였다.
재미있는 건 이 책의 주인공은 내니이지만 사실 더 인상적인 인물은 내니를 고용한 4살짜리 남자애 Grayer의 엄마 Mrs. X.라는 거다. 대학에 다닐 때는 장학금을 받아야 했을 정도로 가난했던 여자는 Mr. X라는 갑부를 만나 결혼해 상류사회의 일원이 되지만 남편의 무관심과 외도로 번민한다. 이 Mrs. X는 또 싸가지 무지하게 없고 고용인들에게 잔인하며 자식에 대한 모성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고 낭비벽이 심한 인물이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으로, 남편의 무관심과 결혼에 대한 모든 트러블을 마치 존재하지 않는 양 행동하는데 도가 튼 인물이다.
아마 이런 인물상이 맨하탄 갑부 부인들에게 흔한 인물상인가 본데, 끔찍스런 인간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만들면서도 흥미를 자아낸다. 이 책에서는 내니가 중심이라 이 인물이 자세히 다루어지지 않지만, 내 사견엔 이 인물이 중심이었으면 책이 더 재미있었을 것 같다.
뭐랄까, 권력과 부를 가진 남자 덕으로 화려한 생활을 누리려는 여자의 심리와 그 생활이 주는 여가를 돈쓰는 데 바치는 허영 가득한 행태가 (작가의 주된 의도는 아니었겠어도) 내게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하나 더, 인상적이었던 건 세상에서 아마 인구밀도가 방글라데시보다도 더 높을 언제나 사람들이 우글거리고 번잡스럽기 그지없는 뉴욕의 맨하탄에 높이 솟은 그 센트럴 파크 주변의 폼나는 고층 빌딩들은 한 층에 기껏 한 식구 혹은 두 식구만 거주하는 넓디넓은 빈 공간들이라는 거다. 때로는 여러층이 한 식구의 집인 경우도 있을 정도로. 그러니 정말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이 빈부의 우주적 격차라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