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살의 시 (서원동)
도시에서 살아오며 수십년
기댈 언덕도 없이
무작정 정해놓은 제목도 없이
찢겨진 깃발처럼 잠시도 쉬지 않고
우리들은 제각기 저마다의 몫이
있으리라 믿으며 살아왔다.
끝끝내 아무것도 없으면서
술을 마시거나 걷거나 책을 보다가도
먼 일처럼 이따금 세상을 생각하면
세상은 누구의 품속에 간직된 바 없이
돌아앉아 저 혼자 있는 것 같은데도
누군가 열심히 회전시키듯 잘도 돌아가고
그러나 아무도 주인이 되어 본 적은 없으며
누구도 주인이 될 순 없었다
시작도 끝도 없지만
우리들은 반드시 무엇이 있으리라 믿으며
생각하고 살아간다
막연히 죽고 태어나 뜻없이 연명하며
그렇지만 나는 삼십이립의 서른살
나이수만큼 살아왔었고
모르지만 앞으로도 어떻게 지낼 것이다
그렇게 모두들 살다 떠났으며
나 또한 그들의 방식처럼
눈물겹도록 살아갈 것이다
앞으로도 수십년 덜닦인 면도날처럼
스스로 살갗을 찔러대면서
막연한 무엇인가를
새처럼 허공에 날려보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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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원동이란 시인을 몰랐고 이 시도 처음 읽어보는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게 좋은 거여서 이렇게 이국 타향에 나와서도 맘이 땡길 때 그럴듯한 시를 찾아볼 수가 있으니, 나는야 행복한 시대에 살고 있구나. 서른에 관해 쓰인 시들은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을텐데도 딱히 마음이 가는 것이 없다. 최승자의 것은 너무 악스럽고, 이수명의 것은 왠지 간유리처럼 모호한 느낌이 들고, 한 때 인구에 회자된 최영미의 것은 대책이 없다. 이러저러해서 인터넷을 뒤지다가 우연히 이 시를 발견했다.
시를 읽고서는 막연히 젊은 시인일 거라 생각했지만, 이 시인은 1950년에 출생했고 77년에 등단했단다. 그러니까 이 시는 시인 자신이 서른이 되었을 때쯤 무렵에 쓴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80년도다. 그러니 구세대에게나 신세대에게나 서른을 맞는 느낌이란 것에는 뭔가 어쩔 수 없는 방식으로 겹치는 부분이 있는가보다.
정작 나 자신이 서른 고개를 넘던 순간에는 서른이란 나이에 대한 아무 생각이 없었다. 복잡한 일들이 있었고 머리는 뒤숭숭했으며 풍랑 많은 바다의 쪽배처럼 몸은 자주 뭔가에 부대낌을 당했었다. 이 시에 나오는 구절대로 그야말로 '찢겨진 깃발마냥' 만신창이가 된 줄도 모르고 살았던 거다.
봉천동의 철거촌에 한 번 갔던 적이 있다. 경사진 언덕에는 부서진 건물들의 철근이 흉하게 구부러진 채 드러나 있고 벽에는 구멍들이 커다랗게 나 있었다. 그리고 그 구멍을 채운 것은 전부 하늘. 그래도 골목길에는 콧물이 말라붙은 얼굴을 한 아이들이 있었다. 이 시가 마음에 들었던 건 잊고 있었던 그 풍경을 내게 상기시켜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철거민들의 고통을 내가 십분의 일이라도 이해할 수 있으랴마는, 그 풍경에는 뭔가 서른이라는 말이 주는 울림과 상통하는 것이 있는 듯 싶다.
알라딘의 작가파일을 지나가다가 소설가 김형경이 이렇게 말한 것을 읽었다. '30대란 마음이 늙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절망한 시기'였다고.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정말로 무릎을 치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다, 마음은 늙지 않는 것이다. 20대의 공명욕이나 쓸데없는 감상은 싹싹 쓸어다버린대도 남는 것은 늙지 않는 마음이었다는 작가의 그 말.
그래서 남들 태어나 연명하며 살고 죽고 하듯 그렇게 저도 살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끝끝내 늙지 않는 마음을 놓지 못하고, 짐스러우면서도 애틋한 그 마음과 더불어 가는 것이 서른 이후인가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