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저녁을 바라보는 고요한 시선



영화 ONCE를 봤다.


이웃이 더블린 시내에서 길거리 음악가 노릇을 해 번 잔돈을 훔쳐보겠다고
뜀박질 실력도 없으면서 잔돈이 든 기타 케이스를 들고 뛰는 한심한 건달이 등장하는 첫 장면이 무첫 인상적이었던 영화. 

결국 추격 끝에 생포된 건달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파 죽겠어서 그랬다. 미안해. 내가 정말 아파 죽을 것 같아서 그랬어."
이렇게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불쌍한 목소리로 사과를 한다.
"어머니는 잘 계시냐?"

이어지는 주인공의 대꾸는 더 걸작.
"우리 어머니 죽은 지가 언젠데."
"다음부터는 차라리 그냥 돈을 좀 달라고 해라. 이렇게 숨차게 뛰어다니게 좀 하지 말고!"

낮에는 사람들이 척 들으면 아는 인기 가요를 연주하고 인적이 뜸한 밤에만 목이 터져라 자작곡을 노래하는  사내.

어느 밤 그렇게 한 곡을 끝내고 나자 어둑한 거리에 한 여자가 서서 열심히 박수를 치고 십센트를 기타 케이스에 넣어준다.
왜 이렇게 좋은 곡을 낮에는 연주하지 않느냐고 물으면서.

돈을 벌려먼 인기 가요를 연주해야 한다고 답하자,
그녀는 돈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거냐고,
지금 내가 돈을 이렇게 넣어주지 않았느냐고 반론한다.

"글쎄 이렇게 겨우 십센트를 받았잖아요!"
 여자가 방금 넣은 돈을 들어 보이며 목소리를 높이는 사내.

"그럼 직업을 갖지 그래요?"
여자는 끈질기게 묻는다.
"나 직업 있어요."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남자.
"무슨 일을 하는데요?"

후버 청소기를 고치는 가게에서 일한다고 하자 여자의 얼굴이 금새 환해진다.
고장난 후버 청소기가 집에 있다며 내일 그걸 이리로 가져오겠다는 여자.

그들은 만나서 반갑다며 악수를 나눈다.





체코에서 아일랜드로 이민온 여주인공이 고장난 진공청소기 후버를 끌고 주인공과 태연히 시내를 걸어 공짜로 피아노를 치게 해주는 악기점으로 들어서는 장면은 왠지 가슴 한 켠을 서늘하게 하는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영화에 나온 노래들은 실제로 주연을 한 두 배우,
아일랜드인 글렌 한스라드(Glen Hansard) 와 체코인 마르케타 이르글로바(Markéta Irglová)가 작곡하고 부른 것이다.

The Swell Season (은성한 시절) 이라는 이름의 밴드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의
2007년 11월 18일 워싱턴DC 콘서트 라이브를 볼 수 있는 링크: 
http://www.npr.org/templates/story/story.php?storyId=12100950

영화로 얻은 인기가 믿기지 않는 듯 어수룩한 그들의 목소리가 왠지 친숙하게만 들린다.

콘서트 장소에 들어서는 이들을 붙잡고 티켓이 없어서 못 들어가게 됐다고 하소연하는 사내를 위해
글렌 한스라드는 그 자리에서 기타를 매고 직접 몇 곡을 불러줬다고 하는데.
( http://catesmusings.wordpress.com/2007/08/02/the-swell-season  )

너무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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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8-01-14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랙백 이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신기하네요.^^

'은성한'이라는 표현이 참 좋습니다.
괜히 가슴 설레네요.

검둥개 2008-01-14 13:52   좋아요 0 | URL
저두 해보고 신기했어요. 항상 트랙백이 뭔지 궁금했거덩요.
페퍼 아래루 쭈욱 가서
먼댓글 바로쓰기라는 링크를 클릭하고 쓰니까 이렇게 되더이다. ^^

은성(殷盛)하다, 는 말 참 좋지요?
성하고 성하다 이런 뜻이라네요.
(혹시나 해서 쓰기 전에 사전 찾아보고 썼다는.)

한자말이 왠지 정답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한자 한자에 뜻이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같은 의미를 다른 글자로 두 번 반복해서 쓸 수 있다는 데 왠지 묘미가 있는 듯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