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드의 Civilization and Its Discontents를 읽는 중인데 재미난 구절을 발견했다.
"전인류와 전세계를 보편적으로 기꺼이 사랑하겠다는 이 자세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견지일 것이다. ... 이 견해에 대해 내가 지닌 두가지 반대의견을 내놓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상대를 가리지 않는 사랑이란 사랑의 대상을 불공평하게 다룸으로써 사랑의 가치 자체의 일부를 잃는 듯 하다. 또한 모든 인간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한 개인을 사랑하는 대신 인류를 사랑하면 사랑이 가져오는 실망과 번민, 질투와 절망 등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자유로워지며 삶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고통을 초월할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한 프로이드의 응수는 그러니까,
아무나 다 사랑한다고 하면 그게 무슨 사랑이며,사랑도 가려서 해야 가치가 있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프로이드의 반론이 이랬다니 생각보다 평범하다 싶어 실망도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평범한 응수가 사랑과 가치의 본질이 전부 차별에 있다는 걸 꿰뚫어보는 통찰이기도 하다.
인상적인 것은 프로이드가그 사랑의 불평등함을 이렇게 확 뒤집어서 '정의'라는 말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사랑한다는 것은 정작 사랑의 대상을 불공평하게 대하는 것이라고.
전인류로부터 연인 하나를 딱 떼어 특별대접을 하는 처사처럼 세상에 불공평한 것이 없겠건만, 사랑의 옹호자 프로이드의 입장에서 보면 바로 그런 특별대접이야말로 사랑에 있어서의 정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