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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 기상.
일어나자마자 빨래감을 한 가지만 돌리고, 오늘 할 일을 가능한 한 내일로 미루라!는 평소의 신념에 따라 쌓인 설거지감 해결하면서 아침밥.
7시면 달리기하러 나간 남편이 돌아오고, 술이 떡이 되어 들어온 다음날이더라도 아침밥은 한상 차려 먹고 가야 하는 남편 앞에 한상 대령.
(남편이 보면 기절하겠다. 자기가 담은 김치 네 가지에 마누라라고 한 일은 밥하고 설거지밖에 없으면서...)

아이들 깨우고, 숙제 안한 것 없나 점검하고, 부랴부랴 안한 숙제 시키고, 밥 차려주고, 그 사이에 빨래 널고...
그러다 보면 셋째가 일어나서 안아달라고 쫓아다니고...
아침 8시 반. 아이들 먼저 가라고 쫓고, 화장은 하는 둥 마는 둥, 셋째 옷 입혀서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출근.

그렇게 들어서는 도서실에서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다.
작년부터 쌓여 있던 책들을 출근 열흘만에 몽땅 처리하고(도우미 엄마들의 찬사를 받았다... 남편은  잘한다 잘한다 하면 하루 아침에 매운 재 석섬도 불 사람이라고 나를 놀린다. 솔직히... 인정한다.), 오늘부터는 서가를 뒤집어 엎기 시작했다.

813... 아직 손을 못대고,
823 중국동화(인기 있는 만화 삼국지가 여기 있다)
833 일본 동화(창가의 토토가 여기 있다)
843 영국 미국 동화(해리포터가 젤 인기 있다. 아직도.)
853 독일동화(왕도둑 호첸플로츠가 인기가 있더군. 도서실에 근무하기 전까진 몰랐던 책이다.),
863 프랑스 동화, 873 스페인동화, 883 이탈리아 동화...

그리고 900번대로 들어가서, 세계 역사, 한국 역사, 여행 답사안내서, 한국위인, 세계위인...
오늘은 여기까지 엎었다.

집에 오니, 온 몸이 쑤시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런데 큰아이는 열이 나서 혼자 이불 쓰고 자고 있고(보통은 도서실에서 나와 함께 돌아오는데, 오늘따라 열쇠를 달라고 했다. 먼저 집에 가 있겠다고. 어쩐지 이상하더라.),
셋째는 넘어져서 코피가 나고,
둘째는 그 사이에서 셋째의 과자를 뺏어먹으면서 울리고 있다.

이게 사는 걸까... 한참 멍청하게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선다.

밥통에는 밥 되는 소리가 들리고, 밥통 한가운데에 밥공기를 넣고 쌀을 조금만 담아 두었으니, 그건 아마 큰애의 죽이 되어 나오겠지.
오징어젓갈 한 접시면 밥을 뚝딱 비우는 아이이니, 어떻게든 또 한 그릇 먹어줄 거라 생각한다.

오늘은 학교도서관 일기가 아니라 직장맘 일기다....

이것이 사는 게 아니여...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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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실에서 일하다 보면 하루해가 뚝딱이다.
아침에 9시도 되기 전부터 밀려오는 아이들을 상대하다 보면, 하루종일 화장실 한 번 못 간 날도 있다. 누가 책임질껴...
점심은...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집어넣고 뛰어와야 한다. 도우미 어머니들이 두 분이 오시지만, 점심시간에 밀려드는 아이들을 감당하기는 힘들다. 한 학기에 두 번 하는 봉사라서 지난 번에 일러드린 내용도 새로 일러드려야 하고, 나도 엄마들이 계실 때에야 비로소 서비스다운 서비스(책도 찾아주고, 책 찾는 방법도 가르쳐주고 등등)를 할 수 있다.

말이 나온 김에 이번엔 엄마들 얘기를 해볼까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나도 그런 엄마였으면서 흉을 본다고 책망한다면... 어쩌랴... 할 수 없다. 그래도 입이 근질거려서 말해야겠다.


며칠 전에 보름 이상 연체된 아이들에게 독촉장을 보냈다.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효과 만점인 방법은 담임선생님을 통해 보내는 방법이다.(음, 비열한 사서교사...)
그런데 엄마들에게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 우리 애가 그 책 가방에 넣어서 가져가는 것 봤는데요?
  (네, 그랬겠지요. 그런데 도서실에는 안가져왔거든요. 애한테 도서실에 반납했는지 물어보세요.)

- 우리 애가 전화 좀 해달라네요. 그 책 반납했다구요.
  (그러면 아이 좀 바꿔주세요. 애가 몇학년이지요? 헉, 3학년이요? 내일 쉬는 시간에 직접 오라구 하세요.)

- 아이가 책 꺼내왔던 장소에 직접 꽂아두었다는데요?
  (반납을 해야지 그냥 꽂아두면 제가 어떻게 아냐고요...)

어떤 어머니는 아이 이름으로 책을 직접 빌려가신다. 그리고 밤마다 아이 머리맡에서 읽어주신단다. 정말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 살아남기 라는, 정말 불티나는 만화책을 빌려간다. 아이가 그 책을 빌려다 달라고 했단다.

-그럼 만화책도 읽어주십니까?

-네. 우리 애는 버릇이 되어서, 책은 늘 읽어줘야만 들어요.  글쎄 엊그제는 지가 책을 빌려왔는데, 저한테 툭 던져주면서 엄마가 읽어줘 그러고 자기는 눕잖아요. 어휴, 언제까지 그래야 하나 모르겠어요.

-아유, 그래도 책 읽어주는 게 아이에게 그렇게 좋대요. 몇학년인데요?

-5학년이요...

-헉...%$*&()

5학년짜리 아이에게 만화책을 머리맡에서 읽어주는...맹자 어머니도 왔다가 울고 갈 훌륭한 어머니다.

며칠 후, 아이 이름을 기억했다가 그 아이를 유심히 살폈다.

버릇이 좀 없기는 했지만,

멀. 쩡. 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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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에 단 한 번도 써먹을 일이 없을 줄 알았던 2급정사서 자격증과 사서사 자격증을 써먹을 일이 생겼다.
아이들 학교에서 도서도우미를 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사서교사가 그만 둔다는 것이다. 신혼이었던 선생님은 남편을 따라 부산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남편이 발령이 났다나.
그런데 이 자리가 일당을 받는 자리라서 사람 구하기가 힘들다는 도서도우미 회장의 회유와 협박에 넘어가서 내가 덜컥 맡았다. 몇 달만 맡으면 될 거라는 말도 한몫했고, 내 아이들이 다닐 학교의 도서실이니 마음껏 재미있게 운영해보자는 말도 한몫했다. 그래서 결국, 9 to 5 출퇴근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결혼하고 처음이다.

드디어 첫 출근.
새벽부터 일어나서 아이들 준비시키고, 밥 먹이고, 초등학교 두 아이와 4살 늦둥이까지, 세 아이의 손을 잡고 8시 30분 경에 집을 나섰다.
평소의 내 걸음으론 1분 거리인데, 아이들과 함께 가니 10분이 더 걸린다.
셋째네 어린이집(학교 바로 앞에 있는)에 들러 셋째 보내고, 다음엔 1층에서 둘째 보내고, 3층에서 큰애 보내고, 그리고 4층의 도서실로 출근했다. 자주 들르던 곳이었지만, 내 자리다 생각하니 아늑하게 느껴진다. 물론 조금은 겁도 나고.

난데없이 교감선생님 호출. 일주일에 한두 번이나 얼굴을 보면 된다던데 출근하자마자 무슨 일일까.
방송으로 하는 아침조회 시간에 카메라 앞에서 전교 어린이들을 상대로 인사를 하게 하셨다. 헉, 이럴 줄 알았으면 좀 갖춰입고 올건데. 도서실이 좀 심난해서 첫날부터 작업복 차림으로 출근했다가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큰애와 둘째네 교실에선 난리가 났단다. 지 친구 엄마인 아줌마가 선생님이 되었으니. - 걔네들은 아직도 나를 아줌마라고 부른다...얘들이 증말...(아줌마라고 불러도 좋다. 책만 많이 읽어라!)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가는데, 점심시간에 갑자기 2학년 여자애가 울면서 나타났다.
선생님, 저 신발 잃어버렸어요...엉엉...
도서실 앞 사물함에 신발주머니를 뒀는데, 없어졌단다. 그냥 가면 선생님이 챙겨놓겠다 했더니 엄마한테 혼난다고 절대 안 된단다. 그럼 기다렸다가 점심시간 지나고 아이들이 좀 가고 나면 찾아보자 했더니 그것도 안 된단다. 학원에 늦는다나...
음, 사서교사의 역할이 이런 거구나...
결국 어떻게 신발주머니를 찾게 되었다.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이런 일이 또 일어난다면 참 당황스러울 것 같다. 여전히...

오후에는 내내 아이들이 숨겨놓은 책 보물찾기를 했다.
키큰 녀석들은 서가 위에 숨겨놓고, 어떤 녀석들은 히터 뒤에, 또 어떤 녀석들은 다른 책들 사이에 교묘하게 숨겨놓았다. 주로 만화책들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대출을 할 수 없는 아이들이 다음에 와서 읽으려고 숨겨놓은 것이다.

이런 나쁜...^^


그거 다 찾아서 제대로 꼽고 보니, 하루해가 금방 가고, 나의 첫날도 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재미있다.

(돈만 많이 주면 금상첨화일텐데... 했더니, 돈 많이 주는 자리라면 내 차지가 될 수는 없었을 거라고 남편이 충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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