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실에서 일하다 보면 하루해가 뚝딱이다.
아침에 9시도 되기 전부터 밀려오는 아이들을 상대하다 보면, 하루종일 화장실 한 번 못 간 날도 있다. 누가 책임질껴...
점심은...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집어넣고 뛰어와야 한다. 도우미 어머니들이 두 분이 오시지만, 점심시간에 밀려드는 아이들을 감당하기는 힘들다. 한 학기에 두 번 하는 봉사라서 지난 번에 일러드린 내용도 새로 일러드려야 하고, 나도 엄마들이 계실 때에야 비로소 서비스다운 서비스(책도 찾아주고, 책 찾는 방법도 가르쳐주고 등등)를 할 수 있다.

말이 나온 김에 이번엔 엄마들 얘기를 해볼까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나도 그런 엄마였으면서 흉을 본다고 책망한다면... 어쩌랴... 할 수 없다. 그래도 입이 근질거려서 말해야겠다.


며칠 전에 보름 이상 연체된 아이들에게 독촉장을 보냈다.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효과 만점인 방법은 담임선생님을 통해 보내는 방법이다.(음, 비열한 사서교사...)
그런데 엄마들에게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 우리 애가 그 책 가방에 넣어서 가져가는 것 봤는데요?
  (네, 그랬겠지요. 그런데 도서실에는 안가져왔거든요. 애한테 도서실에 반납했는지 물어보세요.)

- 우리 애가 전화 좀 해달라네요. 그 책 반납했다구요.
  (그러면 아이 좀 바꿔주세요. 애가 몇학년이지요? 헉, 3학년이요? 내일 쉬는 시간에 직접 오라구 하세요.)

- 아이가 책 꺼내왔던 장소에 직접 꽂아두었다는데요?
  (반납을 해야지 그냥 꽂아두면 제가 어떻게 아냐고요...)

어떤 어머니는 아이 이름으로 책을 직접 빌려가신다. 그리고 밤마다 아이 머리맡에서 읽어주신단다. 정말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 살아남기 라는, 정말 불티나는 만화책을 빌려간다. 아이가 그 책을 빌려다 달라고 했단다.

-그럼 만화책도 읽어주십니까?

-네. 우리 애는 버릇이 되어서, 책은 늘 읽어줘야만 들어요.  글쎄 엊그제는 지가 책을 빌려왔는데, 저한테 툭 던져주면서 엄마가 읽어줘 그러고 자기는 눕잖아요. 어휴, 언제까지 그래야 하나 모르겠어요.

-아유, 그래도 책 읽어주는 게 아이에게 그렇게 좋대요. 몇학년인데요?

-5학년이요...

-헉...%$*&()

5학년짜리 아이에게 만화책을 머리맡에서 읽어주는...맹자 어머니도 왔다가 울고 갈 훌륭한 어머니다.

며칠 후, 아이 이름을 기억했다가 그 아이를 유심히 살폈다.

버릇이 좀 없기는 했지만,

멀. 쩡. 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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