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서 부치는 편지
부뢰 외 지음, 유영하 옮김 / 민음사 / 2001년 4월
평점 :
품절


어느 책에서인가, 쇼팽의 녹턴을 들을 때는 후쫑의 것을 들으라고 권한 것을 본 기억이 있다. 후쫑은 중국 출신의 피아니스트. 폴란드로 유학을 가 피아노공부를 했다.
그러던 중 본국에서 우익으로 몰리면서 중국으로 돌아가면 피아노를 계속 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영국으로 망명을 했고, 그의 부모는 집안에서 장개석의 사진이 한 장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홍위병들에게 몰리자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자결을 했다고 한다.
돌아갈 수 없는 조국, 다시는 볼 수 없는 부모 형제... 이런 상황들이 쇼팽과 그의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듯, 후쫑의 쇼팽 연주는 누구도 따라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고.
그가 연주하는 녹턴을 듣고 싶어서 인터넷을 뒤졌지만 내 실력으로는 찾기가 힘들다. 그냥 그렇게 잊고 있었다.

어느 날, 광주에 사는 큰언니가 메일로 책을 한 권 권했다.
[상하이에서 부치는 편지]. 민음사에서 나온 책이다.
원제는 傅雷家書. 부뢰 집안의 편지쯤으로 해석이 될라나 모르겠다. 미술사를 전공하고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부뢰(傅雷) 부부가 외국에 유학 가 있는 아들, 피아니스트 부총(傅聰)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부뢰는 장남 부총에게 음악적인 재능이 발견되자마자 즉시 초등학교를 중퇴시킨 후, 영어 수학은 가정교사에게, 제자백가, 좌전, 사기 등은 직접 가르쳤다고 한다. 그리고 하루에 일고여덟시간씩 피아노 연습을 하게 했다고 한다.
피아노유학을 떠난 후에는 편지를 통해 아버지가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주었다. 그 편지들의 모음이 바로 이 책이다.

책 속의 아버지는 시종일관 반듯하다.

나는 내 일생 중 어느 시기에도, 심지어 연애를 가장 열렬히 했을 때에도 학문을 잊지 않았다. 학문, 예술이 첫째고, 진리가 첫째며 애정은 둘째다. 이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는 나의 원칙이다.

이런 식의 학문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들,

너에게는 원래 두 가지 버릇이 있다. 하나는 남의 집에 갔을 때 방에 들어가 외투는 벗어도 목도리는 그냥 하고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늘 손을 윗옷 주머니나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있는 것이다. 두 가지 다 서양 예절에는 맞지 않는다...(중략)... 선생님이나 윗사람에게 이야기할 땐 "손을 바로 드리우고 몸을 꼿꼿이 세워야 한다". 이런 예절이 습관이 되면 평생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자세에 관한 이야기들,

편지 봉투에 글씨를 너무 크게 쓰지 말아라. 표면 전체를 다 차지했더구나. 두 통의 편지 중 한 통은 길 이름 일부를 우표가 가렸고 한 통은 내 이름 한쪽을 덮어버렸다. 편지 봉투에 우표 붙일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지 않느냐? 내가 너에게 쓴 편지 봉투를 잘 보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등의 사소한(이렇게 말하면 부뢰가 벼락을 내리겠지만) 것들까지 시종일관 부뢰는, 우리 식의 표현으로 하자면 선비, 서양 식의 말로 표현하자면 젠틀맨이다.

피아노 연습을 어떻게 하라는 것부터, 스승을 대할 때의 자세, 스승을 바꾸고 싶을 때의 방법, 러시아어나 영어 등 외국어를 배울 때의 공부방법 등 하나하나 옆에 놓고 삶의 교본으로 삼아야 할 말들이 엮여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내 부총이 되어 숨이 막힌다. 요즘 나의 관심은 육아와 교육이니, 당연히 아버지의 입장에 동조하면서 아이를 반듯하게 키우려는 아버지의 부성에 경의를 표해야 하지만, 난데없이 숨이 막힌다.

나도 이런 편지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내가 대학 4학년 때, 아버지는 영국으로 1년 동안 공부를 하러 가셨고 엄마는 아버지를 따라가셨다. 함께 가서 나도 어학연수라도 하고 싶었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으셨던 부모님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셨고, 나 역시 소심한 성격 탓에 부모님을 조르지 못했다.

막상 영국에 도착하시자 부모님은 내내 두고 온 막내가 걸리셨던 모양이다. 매주 월요일이면 하숙집에는 봉함우편이 한통씩 꼬박꼬박 배달되었다. 반듯하고 깨알같은 글씨로 쓰인 엄마의 편지였다.
처음에는 눈물을 삼키며 봉투를 뜯었다. 그런데 편지 내용은 늘 이런 것이었다.

사랑하는 막내에게!
이번 여행 중에 영국의 이곳 저곳에서 한국 학생들을 더러 만나게 되었다. 그때마다 네가 더욱 그리워지더구나. 방학은 어떻게 효과적으로 보냈다고 생각되느냐?
대학생활의 마지막 방학인데 네 뜻만큼 효과도 컸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다. 이제 마무리 잘 하고, 후학기에도 유종의 미를 구둘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고, 밝은 생활이 되기를 바란다. 아줌마랑 네 방 언니에게 안부 전하기 바란다. 엄마가.

**에게!
캠브리지에도 단풍이 곱고 낙엽도 쌓이는 것을 볼 수 있구나. 그러나 여름 내내 시들어 있던 잔디는 이제야 제철을 만난 듯 싱싱하게 돋아나고 있어서 영국의 특징을 볼 수 있는 좋은 예인 듯하다.
요즘 시험공부가 바쁜 모양이구나. 곁에서 누가 뭐라 하든 들뜨지 말고 차분하게 공부하기 바란다.
한 번 가버린 학창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 이곳 캠브리지 칼리지에서 이번에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교수 발령을 받은 젊은이도 그동안 함께 공부하는 한국인들을 전혀 만나지 않고 외롭게 공부에만 전념한 결과의 영광이라고 한다. 열심히 하기 바란다. 특히 건강에 조심해라. 안녕! 엄마가.

엽서라서 이 정도였지만, 봉함우편에 든 편지들은 최소한 이 다섯 배쯤의 길이. 칼같이 배달되는 월요일의 편지에는 늘 이런 내용들이 들어 있었다.
수해가 나서 가슴이 아프다고 하면 가슴 아파하는 것은 옳지만 흔들리지 말고 공부에 전념하라고 하셨고, 먼저 취직된 친구가 부럽다고 하면 또 부러워만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염려하신다는 내용이었다.
내 편지 한 마디 한 마디를 음미하시고 그에 대한 답을 보내시는 것이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답장을 하는 것이 겁이 나서 안 하면, 자식의 도리에 대해서 얘기하셨고, 아예 공부에 대해 안 쓰는 날에는 요즘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답장이 왔다. 숨이 막혔었다.

이 책을 읽고, 갑자기 엄마의 편지들이 생각이 났다. 결혼하고 여덟 번이나 이사를 하느라 많이 없어져버렸다.
다시 꺼내 읽었더니 왜일까? 이제야 눈물이 난다. 이제야 가슴에 사무치고, 이제야 그때 열심히 살지 못했던 것을, 그때 치열하게 살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게 된다.
그때 내가 답답했던 것은 엄마의 편지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갖지 못하고 있던 비전 때문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로 기억될까. 늘 반듯하고, 늘 곧았던 엄마를 보고 자랐는데, 어쩌면 늘 말만 앞세우고 늘 신경질이나 내던 엄마로 기억되지는 않을까.

<상하이에서 부치는 편지> 다시 한 번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다. 밑줄도 긋고, 다시 한 번 나의 몸가짐을 반듯하게 해 본다.
부뢰 부부는 중국의 문화혁명 때, 홍위병들의 비판이 옳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살을 했다고 한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반듯하다.

반듯하게 살고 싶다. 부뢰처럼, 엄마처럼...

아, 부총이 바로 후쫑이었다. 쇼팽의 곡을 어느 누구보다더 잘 친다는 그 후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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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8-21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이제야 읽습니다.
읽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