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뢰제의 나라 ㅣ 푸른도서관 1
강숙인 지음 / 푸른책들 / 2003년 7월
평점 :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에게 읽으라고 사 준 책은 내가 잘 읽지 않게 되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내 책 읽기도 바빠서였을까?
한참 역사에 관심이 있어하는 아들놈의 관심이 옆길로 새기 전에(요즘은 곳곳에 유혹하는 만화책들이 너무나 많아서), 서둘러 책 몇 권을 사주었다. 집에 온 책 읽지도 않는 엄마가 서점에 가서 책을 일일이 사줄 리는 없어서, 대강 알라딘에서 책소개를 보고 몇 권 골라주었다.
강숙인의 뢰제의 나라는 그렇게 우리집에 왔다. 그러나 아이의 관심도 엄마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책꽂이 한구석에 작은 몸을 웅크리고 서있을 뿐이었다.
며칠 전, 학교에서 도저히 책이라고 할 수 없는 걸 읽고 분노에 차서 출판사에 편지까지 쓴 후, 집에 와서 잡은 책이 뢰제의 나라였다. 일단 표지 그림이 정말 좋았고, 오랜만에 아이보다 먼저 아이의 책을 읽는 기분도 좋았다.
그러나 책을 잡자마자 나는 그 속에 빠져들었다. 아이들을 다 내팽개친 채, 그 책이 내 손에서 끝날 때까지 꼼짝도 안 하고 책을 읽었다.
뢰제의 나라는 사후의 세계이다. 찢어진 청바지에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저승사자가 다함이를 실수로 데려간다. 그러나 하필 다함이가 간 그곳은 탄핵정국(?)이다. 옥황상제인 뢰제를 네 명의 대제가 힘으로 죽이고, 그 혼까지 가둬버린 것이다. 잘못 갔으니 그냥 돌아오면 되는 걸, 다함이는 그 속에 휩쓸린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되는 건 우리가 사는 세상이나 다를 바가 없다.
다함이는 뢰제의 아들인 천랑을 도와서 뢰제의 혼을 구한다. 자신이 뢰제의 아들인 줄 모른 채, 항상 앞장서고 자신을 희생하면서 의 를 지키는 천랑, 자신들의 신성을 빼앗긴 채 야수로 변해 있었던 백호, 현무, 청룡, 주작. 이들에게 신성을 되찾아주는 천랑과 다함, 그리고 운백.
세상으로 돌아온 다함이는 아마 살아가는 내내 자신의 본성을 잃어버리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럼 다함이를 따라 다함이가 보고 느낀 것을 똑같이 보고 느꼈던 나는. 나는 나의 본성을 잃어버리고 살진 않는지 생각해 본다.
'나'를 항상 중심에 놓고 살다 보니, 정작 나의 본성은 잃어버린 채, 다른 사람의 눈으로 내 행동의 잣대를 삼지는 않았나,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잣대에 맞춰 살도록 강요하지는 않았나.
작가가 우리나라 선도의 경전인 옥추보경을 공부한 후에 쓴 책이어서일까? 책을 덮고 보니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책이란 무릇 이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