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단 한번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다른 사람의 삶을 살짝 엿보는 것은 참 흥미진진한 일이다. 아마 그래서 과하다 싶을 만큼 시청률에 민감한 텔레비전에서도 휴먼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꾸준한 인기를 누리면서 장수하고 있으리라. 살짝 엿보는 사람의 삶이 너무 잘나면 별로 재미가 없다. 그런 위인전은 어렸을 때나 읽는 것이다. 어릴 때는 오르려고 애쓰면 오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으니까.

그러나 점점 희망이 없어지고, 점점 이만큼의 생활이라도 안주하려고 노력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그런 끔찍한 나이가 되고 나면, 이젠 나보다는 좀 나은 듯한, 그렇지만 또 따지고 보면 나처럼 다소 허술한 그런 사람의 삶을 엿보고 싶어진다. 게다가 그 사람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욱 좋아진다. 장영희의 <내 생애 단 한번>이라는 에세이를 읽으면서 꼭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맛깔나는 문체는 덤이었다.

장영희는 서강대 영문과 교수란다. 아버지도 서울대 영문과 교수였고, 40대 중반을 넘어선 것으로 보이는 지금쯤은 아버지의 후광을 벗어버리고도 싶어지련만, 장왕록 박사의 딸인 것을 몹시도 자랑스러워한다. 아버지와 함께 교과서를 집필하던 중,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억하며 쓴 글을 읽을 때는 체면을 차리지 못하고 줄줄 울어버렸다.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는 아들에게, '응, 책을 읽다가 감동을 받아서.'라고 당당하게 말하면서.

내가 이 책에서 엿본 장영희라는 여자는, 영어회화 시간에 발음이 별로 좋지 않아 학점을 어떻게 줄까 망설이게 하던 학생이 우연히 길에서 노인을 상대로 선행을 베푸는 것을 보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야말로 영어보다 중요한 만국공용어라는 생각에 과감하게 A를 주는 멋있는 교수이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으면서, 노인이 사투 끝에 잡은 돗새치를 다 먹어버린 상어떼를 보고 '어떻게 하면 상어떼처럼 살아가지 않을 수 있을까' 학생들이 교훈을 얻기를 바라는 따뜻한 교수이며, 젊었을 때는 사랑한다는 연애편지 한 번 받아보지 못했지만, 아직까지도 학생들에게 사랑한다는 편지를 받는 인기 교수이다.

그녀를 만난 후, 요즘 여러 가지로 삭막했던 내 가슴에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온다.
아, 진짜 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