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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고요를 만나다 - 차(茶) 명상과 치유
정광주 지음, 임재율 사진 / 학지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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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도 곁에는 차 한잔이 우려지고 있다.
평소 커피를 즐기지 않아서 홍차와 녹차등을 자주 먹는 나에게 이 책은 하나의 명상책을 넘어 감성 자극을 해주기도 하고 차에 대하여 새삼 더 깊은 지식을 주기도 한 좋은 책이었다.

책을 처음 받았을때부터 든 느낌은 책이 참 예쁘다라는 생각이었다. 정제된 구도의 사진들과 어떻게 이렇게 절묘한 사진이 찍혔을까 하는 임재율작가의 사진들이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었다. 글쓴이 정광주님이 심리학을 전공했기 때문인지 평소 명상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나에게 이 책은 좋은 지침서가 되었다.

남편과 함께 제주도에서 들렀었던 오설록 뮤지엄 생각이 많이 났다. 추천 코스에 오설록 뮤지엄이 있길래 인터넷에서 조사 해본뒤 가보게 되었는데, 정말 그 기분은 생각보다 너무 좋았다. 고즈넉한 산자락에 둘러싸인 뮤지엄과 넓으면서도 나무로 된 인테리어가 사람을 차분하게 해주는 곳이었고, 여러 종류의 차들 향을 맡아보며 이것저것 고른 것 같다. 남편은 차를 평소엔 즐기지 않았지만, 여기를 다녀온 이후로는 나서서 다기를 사고, 일주일에 5일정도는 녹차를 함께 마시게 되었다.

책은 그런 즐거운 기억들을 떠올리며 읽기에 참 좋았다. 시구절 같은 글귀들을 천천히 눈으로 따라 읽어가면서 편안함과 안정을 주었다. 책의 구성은 차명상의 의미 및 실제, 다양한 차를 통한 오감 깨우기 및 각기 다른 품성 느끼기, 차를 마시고 난 후 명상을 통한 내면으로의 여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억에 남는 구절들이 참 많았다.



-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은 '과거'에 형성된 사고의 틀로 살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23쪽)

- 가루차가 몸에 흡수되어 몸 구석구석을 초록으로 물들인다고 생각해 보길.(55쪽)

- 버려진, 한때 아름다웠던 꿈의 조각들이 이곳에서 아직 눈을 반짝입니다.(61쪽)

- 폭설과 폭언의 공통점은...치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끝자락이 아름답지 않습니다.(65쪽)

- 한계 지은 마음은 한계된 자각을 유도하기 때문입니다.(74쪽)



(여기서부터는 왠일인지 존댓말로 서평을 작성하게 되네요. 책의 영향인가봅니다.) 명상을 함께 하면서 읽었던 책이기에 오히려 일부러 천천히 읽게 되는 책이었습니다. 뒷장을 마구 넘겨가며 읽는 책이 아니라 책 한페이지의 구절을 곱씹고, 사진을 함께 감상하고, 지금 마시고 있는 차를 느끼는 시간. 책이 나에게 준 여유로움이었습니다.

차가 주는 따뜻한 차훈은 평소에도 참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잔에 갓 담아낸 차에서 나오는 차훈에 얼굴을 대고 그 온기를 한참이나 쐬었던 적이 생각났습니다. 점점 가을이 다가오면서 이런 차훈이 좋아지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네요. 그리고 차를 다 마신 후 텅 빈 찻잔에 아른하게 남아있는 차의 냄새도.

차를 덖는 사람의 정성을 느끼면서 차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제주도 오설록 뮤지엄에서 차를 직접 덖는 것도 보고 갓 덖은 차를 사와서 종종 마시는데, 얼마전에는 차 덖는 모습이 티비에도 나오더군요. 그 장면을 보는데 차를 덖는것이 너무 뜨거워 목장갑을 5장이나 겹쳐서 끼어도 그 뜨거움은 참기 힘든 것이라고 합니다. 그 뜨거움을 이겨내며 덖았던 사람들의 고행까지 고스란히 담겨있는 차 한잔. 저도 저절로 감사의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책은 차에 대한 자세한 설명들이 함께 있어서 더욱 유익했습니다. 차를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 준비는 어떻게 하고 마무리는 어떻게 하는지. 그리고 차의 종류는 무엇이 있는지 등등을 차와 관련된 전문용어와 함께 소개해 주었습니다.

예전에 일본에 교환학생으로 가서 그곳 학교에서 교양수업으로 다도와 향도를 배웠던 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한 학기는 다도를 다른 한 학기는 향도를 배웠는데, 다도 수업은 가루차(맛차)를 배웠습니다. 작은 부채(선)와 다도를 즐기는 다과를 담은 종이(따로 팝니다)를 매 시간마다 지참하고 다과비용으로 5천엔을 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있었던 그 수업은 찻물을 떠올리는 작업부터 물을 끓이고 그리고 차를 격불하는 섞는 과정까지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당시엔 경건한 마음가짐 보다는 매 시간 다른 다과가 나오는 것에 더 즐거워하며 맛있는 차와 맛있는 다과를 먹는 시간이 너무 기다려졌었는데요. 차를 격불하는 과정에서는 끝에 항상 일본글자 'の'를 그리며 마무리 짓는 것도 기억이나네요. 그때 처음으로 가루차를 먹었었는데 그 농후함과 거품의 느낌은 아직도 제 입술에 아련히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유용한 정보도 얻었는데요. 차를 다 마시고 난 후 남은 찻잎과 물을 거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팁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그렇지 하는 것인데, 지금까지 한번도 실행해본적이 없기에 이제는 이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창가에 있는 작은 화분 2개가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데 그 아이들에게도 차를 마시게 해주고 싶습니다.



차를 마시면서 하얀 다기에 남는 차의 테두리. 그 테두리가 오늘처럼 아름답게 보인 적이 없네요. 많은 교훈과 많은 생각을 나눠준 이 책에 다시 한 번 감사하며 맛있는 차를 함께 마십니다. 다음에는 차를 구입할 때 더 다양한 차를 구입할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소개된 티 샤워도 한번 해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지를 생각하며, 잠이 안오는 밤이면 베게를 베고 침대에 누워 와선을 즐겨봐야겠지요. 오늘 하루도 좋은 책이 제 마음속에 남습니다.







(이 서평은 '학지사'로부터 무료로 제공 받아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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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딕 라운지
박성일 지음 / 시드페이퍼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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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음악 앨범 한 장을 통째로 산 듯한 느낌이다.

이 책은 작곡가 상일의 음악과 그 음악을 쓰던 배경이 된 것들을 여실히 보여주는 한 권이라고 말 할 수 있다.

헬싱키와 스톡홀롬의 건축, 디자인, 음악을 다루었다고 책 소제목에 나온 것처럼, 이 책에는 북유럽의 독특한 건축 스타일과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심플하면서도 자연적이고 개성 있는 디자인들을 많이 소개해 주고 있다. 그 중에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레고도 있고 이케아도 있다. 마지막 섹션에는 간간이 소개되었던 음악에 대해 집중적으로 나온다. 맨 마지막 페이지에는 9곡의 곡을 들을 수 있는 QR 코드의 집합체. 그리고 가사...

 

정말 글 쓰는 재주가 있는 음악가라면 매번 이런 식으로 앨범을 발매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우 만족도가 높은 책이다. 최근 스마트 폰으로 QR 코드를 찍어 여러 정보를 얻는다는 것까지 배려하여 책 표지부터 QR 코드로 책의 정보를 알 수 있는 동영상을 담아내고 있다. 배경음악으로는 작가의 음악이 흐르고 있다. 너무나 절묘하며 대단한 마케팅이 아닐 수 없다. 책 구석구석 여러 곳에서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이 책은 정말 여러 감각을 이용하게 한다. 많은 사진들과 동영상들로 시각을 자극하고, 음악을 듣게 해주면서 청각을 만족시키며, 갓 발간된 새 책의 냄새와 핀란드만의 라떼 커피의 맛을 생각하게 해 주고, 차가운 겨울 바람으로 헬싱키의 냉동고 같은 날씨를 느끼게 해 주었다. 더불어 잊었던, 애써 잊고 있었던 지난 사랑의 아픔까지도..통증까지도 일깨워 주었다

 

지금 내 귀에는 Quando가 흐르고 있다. 이 겨울에 정말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는 곡이라 마음에 든다. 창 밖을 보면 눈이 내리고 있고, 방 안에는 벽 난로 불빛만으로 방을 밝히고, 따뜻한 차 한잔 들고 벽 난로 앞에 앉아서 창 밖을 바라보는 그런 그림이 떠오르는 노래다. 물론 난 벽 난로도 눈 내리는 창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하지만 이 노래는 크리스마스 시즌인 이 때에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 같다. 한동안 반복해서 들을 듯하다.

 

 '헤이'

 북유럽과 인사를 하고 들어간 이 책 속에서 만난 것은 느릿한 헬싱키의 겨울을 그대로 담은 음악이다. 65페이지에 소개되고 있는 Trapped in Ahjo Bar라는 곡은 바의 분위기가 배경으로 깔린 라운지 음악이다. 바에 들어가면 들을 수 있는 잔 부딪히는 소리, 수다 소리, 웃음 소리.. 곡이 끝나는 부분에도 다시 나오게 되는 바의 노이즈는 이제 바에서 문을 나서는 분위기를 물씬 풍겨주고 있다. 바에 들어가다. 바에서 나오다.

 

 책에는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 등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고 있는데, 더 좋았던 것은 작가가 흥미를 가지고 있는 분야에 대한 것만 다이제스트로 이야기를 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저 여러 가지를 말해 주고 싶어서 자잘한 것까지 얘기를 했다면 좀 넘어가고 싶었을 법하지만, 작가는 처음부터 자신이 다루어야겠다고 말한 건축, 디자인, 음악 컨텐츠를 끝까지 관철시켰다. 소개된 많은 장소 중에서 특히 가 보고 싶다고 생각한 곳이 헬싱키에 있는 '카빌라 수오미'. 영화 '카모메 식당'의 배경으로 쓰였다는 곳인데 이 곳을 직접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날 자극한 것이다.

 

 헬싱키를 떠나면 스톡홀롬으로 이동을 한다. 이 곳부터는 본격적으로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풀어 놓는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란다 공항의 관제탑 사진이었다. 137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 관제탑은 나의 상식을 깨 버렸다. ! 관제탑이 이렇게 생길 수도 있구나 라는 것을 일깨워준 사진이라서 마음에 든다. 헬싱키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사진을 꼽으라고 하면, 46페이지에 있는 사진을 꼽겠다. 집집마다 번지수를 표시하는 구조물 사진. 작가도 이게 꽤 마음에 들었는지 이 책의 표지에 가장 처음으로 실어 놓았다. 매우 심플한 번지수 표시. 그리고 디자인을 고려한 것이 우리 나라의 번지수 표시와 다르다. 이 깔끔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1914년 어느 과학자의 하루'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각났던 영화가 있다. '이터널 선샤인'. 짐 캐리가 나오는 영화인데 자신의 사랑했던 여인을 기억에서 지우려다 기억이 되살아나고 괴로워하는 그런 내용을 담았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하는데, 이 영화와 그 꿈을 녹화하고 고치게 해 주는 할아버지가 닮았다고 생각했다.

 

 '거짓을 말하고'라는 곡은 3가지 버전으로 들어 볼 수 있다. 3가지 버전이 너무나 개성이 강해서 어느 것이 오리지널이었는지 다시 들어볼 정도로 괜찮은 노래다. 아련한 아픔을 꺼내어주는 노래기도 하고, 가사에 담긴 느낌도 좋았고, 세 보컬의 음색이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으며, 편곡에 따라 노래가 얼마나 다르게 느껴지는지 잘 보여주는 하나의 모델이 되었다. 세 곡만으로도 즐겁게 플레잉 할 수 있으니 기회가 되는 사람들은 꼭 들어보길 바란다.

 

 책을 어느 정도 읽었을 때, 이 책에 대한 성급한 판단을 내려 봤었다. 우선 이 책은 초판본이라 오타가 많았다. 그리고 두 페이지에 걸친 사진은 한쪽의 사진이 초점이 틀린 사진이 나온다는 것. 그리고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많아서 흥미를 주긴 하지만 너무 디자인에만 치우치지는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안타까웠던 점은 정말 보고 싶고 궁금하게 만드는 건물에 대한 사진은 정작 게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사 박물관의 대형 배나 노르딕 박물관의 아름다운 외관이 없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QR 코드 활용과 트위터 주소 공개 등은 정말 현재의 흐름을 잘 캐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음악을 알리고, 자신의 생각을 알린다는 점. 그리고 이를 실천해 냈다는 점에 큰 점수를 주고 싶다.

 

 "겨울이 따뜻할 수 있을까?" (p.297)

 따뜻하다. 2010년 12월 21 현재. 내 겨울은 따뜻하다.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을 보내준 작가에게 한 마디.

 

 'Tak'(p.143 스웨덴어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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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스티븐 킹의 사계 봄.여름 밀리언셀러 클럽 1
스티븐 킹 지음, 이경덕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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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by 스티븐 킹

 

누구에게나 희망과 욕망은 있다. 하지만 그 희망과 욕망을 최대한으로 사용할 줄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옮긴이가 후기에서 말했듯이, 이 스티븐 킹의 사계 시리즈 중, 봄과 여름인 소설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우등생>은 인간의 희망과 욕망을 그린 소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그 희망과 욕망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세상의 끝을 맞이한 자들이다.

 

끈질긴 침착함으로 미치지 않고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은 앤디 듀프레이. 대체로 사람들은 영화보다는 역시 책으로 읽는 원작이 더 맛있다고 한다. 사실이다. 이 쇼생크 탈출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원작과 영화의 관계에 있어서는 영화가 소설을 거의 많이 따라왔다고 해도 될 만큼 칭찬할 만하다. 우선 스토리를 흘러가게 하는 나레이터 역할을 하는 <레드>의 연기와, 침착하고 단정하며 끈질긴 근성을 보여주는 표정을 지을 수 있었던 <앤디>의 연기가 너무 훌륭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영화의 원작이라고 하기엔 너무 분량이 적지 않았나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었지만, 그 생각은 스티븐 킹의 문체 아래에 곧 깔려버렸다. 스티븐 킹이 내뿜어 내는 문장과 단어들의 무게에 나의 졸렬한 생각이 곧바로 묻혀버린 것이다. 어쩜 이렇게 스토리를 짜임새 있고 맛있게 꾸려 나갈 수 있을까 하면서 책 한 권을 읽는 내내 감탄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영화와 원작을 잠시 비교해 보자면, 조금 아쉬웠던 장면은 앤디가 레드에게 리타 헤이워드의 포스터를 주문하는 장면이다. 책에서는 이 장면이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어 진다. 평소의 침착한 앤디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첫 사랑에 들뜬 사람처럼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이는 앤디의 모습을 그렸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점이 조금 아쉬웠다.

또 하나를 들자면, 아이러니 하게도 원작에는 없는 장면이었지만, 쇼생크 탈출을 이야기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꼽는 명장면 중의 하나로 거론되는 오페라 사건이다. 오페라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의 한 부분이다. 도서관에 끈질기게 기부를 부탁하는 앤디에게 도서관에서 몇 가지 물품을 보내주는데 그 중에 이 음반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화장실에 있는 간수를 가두어 놓고, 간수실의 마이크를 통해 죄수들에게 자유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영화 아마데우스의 모차르트가 아하하하하며 그 특유의 웃음 소리를 던져줄 것 같은 짜릿한 장면이다.

 

그것을 보고 있는 사이에 인간이 뭔가 예쁜 것, 손으로 정성을 다해 만들어 낸’(그것이 인간과 동물의 차이라고 생각한다.)것을 보았을 때 느끼는 따스한 기분을 느꼈다. (p.54-55)

 

스티븐 킹은 때때로 이렇게 사람을 감상에 젖어 들게 하는 따뜻한 문장을 내놓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그가 맘에 들었다. 교도소 내에서도 태연자약하던 앤디 듀프레인이 어떤 식의 감성과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지 이렇게 섬세한 묘사를 통하여 우리 앞에 넌지시 보여주었던 것이다.

 

문제에 대한 시각을 바꾸어 보자고 할 때, 스티븐 킹은 이렇게 말한다.

 

하여간 이 문제를 망원경의 반대쪽에서 들여다보지 않겠나? 괜찮겠지.” (p.98)

 

슬프기까지 할 정도로 멋진 한 마디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장면에 밑줄을 긋고 이 한 마디를 깊이 깊이 음미했다. 앤디와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레드의 침착하고 노련함을 보여주는 이 수사법 말이다.

 

스티븐 킹이 자신의 소설 쇼생크 탈출에 대해 명쾌하게 한 단락으로 요약한 부분이 있다.

 

작은 새들 가운데는 새장 안에서 기를 수 없는 새도 있다. 그뿐이었다. 날개 색깔이 너무도 선명하거나, 노래 소리가 너무 아름답거나, 좀 색다른 것이 있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 새를 놓아주거나 아니면 먹이를 주려고 새장을 열었을 때 스스로 손을 빠져나가 날아가기도 한다. 애초부터 그 새를 새장에 가두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 마음은 오히려 안심하게 되지만, 그 새가 없어졌기 때문에 집은 전보다 더 쓸쓸하고 공허하게 된다.

이것이 그 이야기다. (p.156)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두 번째 여름 시리즈 이야기인 <우등생>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을 때이다. 평소부터 전쟁에 관한 것이라면 영화, 해외 드라마, 인문 교양서, 블로그 등을 닥치는 대로 봐왔던 나이기에, 이 독일 전범에 대한 이야기와 노인이 되어버린 듀센더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는 토드에게 몰입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코 적은 분량이 아닌 이 소설을 금새 해치워 버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등생>의 이야기가 절반 정도 진행 되었을 때, 이제는 슬슬 결말이 나야 할텐데, 과연 어떤 식으로 결말을 지을 것인가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었다. 스티븐 킹을 내심 믿고 있었기에, 그의 스토리 텔링이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었는지 책장을 하나 하나 넘기면서 느낄 수 있었다. 그 나머지 절반의 이야기는 실로 정말 흥미로웠으며, 기나긴 밤을 짧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이 소설은 영화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로 재탄생 하게 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이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다. 아마도 구하기가 조금 힘들 듯 하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 본 결과 주인공 토드역에는 영화 의뢰인의 그 훈훈한 소년이. 그리고 독일인 고문관 듀센더역할에는 반지의 제왕간달프로 너무나 친숙했던 그 분이 맡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 머릿 속에서는 그 두명의 배우가 서로를 의심하며 싸우며 고뇌하며 분투했다.

 

토드의 학교 선생님이 말했듯이 토드는 인생 최고의 관심사를 그의 인생에서 일찍 찾아내었다. 거기까지는 좋았지만 그 관심사에 푹 빠져버리고 그 관심사의 대상을 자신의 일생으로 끌어들인 데에 이 소설의 외나무 줄타기는 시작되는 것이다.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듯한 느낌을 느끼는 토드는 독일 전범이 자신의 동네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그를 만나기로 결심을 하게 된다.

 

토드는 소설 첫 부분에선 너무나 평범한 백인 미국인 소년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에겐 내가 동경하는 요소가 여럿 있었으니. 그중 하나는 사진에 관심이 있는 아버지를 둔 덕택에 집에 암실이 있었고, 아홉 살 때부터 직접 현상을 할 수 있던 능력이다. 그리고 어린이임에도 불구하고 장난감이 아닌 진짜 지문 채취기 세트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도 물론 엄마 아빠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것이라고 한다. 얼마나 멋진 부모님인가!!

 

잠시 여기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나온다. 바로 스티븐 킹의 장난에 잠시 빠져보는 것이다. 다음 내용을 보면 금새 알게 될 것이다.

 

그 수속을 해 준 은행가는 내가 주식을 산 다음해에 부인을 죽이고 교도소에 들어갔어….”

(중략)

전부 그 은행가가 골라 준 것이야. 듀프레인이란 사람이었다. 내 성과 비슷해서 기억하고 있어. 그가 성장주를 골라 줄 때만큼 부인을 능숙하게 죽이진 못한 모양이야.” (p.200-201)

 

이 얼마나 재밌는 장난인가!! 방금 쇼생크를 탈출했던 듀프레인이, 지금은 듀샌더의 입을 통해 다시 출연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작품에 나왔던 사람을 다른 작품에 등장시키는 즐거운 장난을 종종 하는 작가들이 있는데, 스티븐 킹의 이런 장난에 매우 즐거워져서 더욱 독서를 유쾌하게 할 수 있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처럼 토드는 노인을 매주 수요일 마다 방문을 했고, 그 때마다 토드가 그토록 원하던 오싹오싹한 이야기를 버번 냄새와 함께 들을 수 있었다. 한 달 텀으로 계속 진행되던 책의 챕터는 중간을 지나서는 날짜에 대한 언급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된다. 즉 책의 마무리 부분으로 접어들었다는 이야기이다.

 

과거의 공포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열쇠는 머리로부터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거의 공포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 오히려 친구처럼 꼭 안아 주는 것이라고 그 아이가 알려 주었으니까. (p.256)

 

이후부터 이야기는 소년과 노인의 부랑자 살인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답답함과 욕망을 살인으로 해소하는 그들의 행동은 서로에게 털어 놓지는 않지만 은연중에 느끼게 된다. 하나의 행동 혹은 일요일 신문에 난 가십 거리를 통하여.

 

토드의 할아버지는 말에 의하면 아무도 행복하게 죽을 수는 없지만, 잘 죽을 수는 있다(p.308)”고 했다. 자신의 정체가 드러났고 위기감을 느낀 듀샌더는 다량의 수면제인 세코날을 통해서 스스로 자살을 택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행복하게 죽지는 못했지만 잘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서로를 죽이는 악몽을 꾸고, 서로를 죽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지만, 결국 노인은 자살을 택했고, 소년은 자신의 윈체스터 30-30을 택했다. 결코 토드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던 노인은 끝까지 토드라는 소년을 심리적으로 고문했고, 서로를 정신적을 강간했다. 아주 차가운 녀석이어서 입 안에서는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도 결국은 얼음을 내뱉었던(p.471) 소년은 그의 총과 함께 체포되었고, 그 후의 이야기는 그저 독자의 상상에 맡겨야만 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 희망의 봄과 타락의 여름까지 왔다. 곧 실제로 더운 여름이 다가올 것이다. 그 전에 나는 자각의 가을과 의지의 겨울까지 홀짝 거리며 밑줄 그을 준비를 마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언제든지 스티븐 킹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귀를 활짝 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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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즈 2008.12
더북컴퍼니 편집부 엮음 / 더북컴퍼니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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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싱글즈 부록이 참 맘에 든다. 내가 매우 좋아하는 오리진스 립글로즈이기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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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토피아 뉴스
윌리엄 모리스 지음, 박홍규 옮김 / 필맥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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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선하다. 이런 풍자 소설을 이제야 알게 되어서 아쉽지만, 끝까지 읽을 가치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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