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스티븐 킹의 사계 봄.여름 밀리언셀러 클럽 1
스티븐 킹 지음, 이경덕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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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by 스티븐 킹

 

누구에게나 희망과 욕망은 있다. 하지만 그 희망과 욕망을 최대한으로 사용할 줄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옮긴이가 후기에서 말했듯이, 이 스티븐 킹의 사계 시리즈 중, 봄과 여름인 소설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우등생>은 인간의 희망과 욕망을 그린 소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그 희망과 욕망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세상의 끝을 맞이한 자들이다.

 

끈질긴 침착함으로 미치지 않고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은 앤디 듀프레이. 대체로 사람들은 영화보다는 역시 책으로 읽는 원작이 더 맛있다고 한다. 사실이다. 이 쇼생크 탈출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원작과 영화의 관계에 있어서는 영화가 소설을 거의 많이 따라왔다고 해도 될 만큼 칭찬할 만하다. 우선 스토리를 흘러가게 하는 나레이터 역할을 하는 <레드>의 연기와, 침착하고 단정하며 끈질긴 근성을 보여주는 표정을 지을 수 있었던 <앤디>의 연기가 너무 훌륭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영화의 원작이라고 하기엔 너무 분량이 적지 않았나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었지만, 그 생각은 스티븐 킹의 문체 아래에 곧 깔려버렸다. 스티븐 킹이 내뿜어 내는 문장과 단어들의 무게에 나의 졸렬한 생각이 곧바로 묻혀버린 것이다. 어쩜 이렇게 스토리를 짜임새 있고 맛있게 꾸려 나갈 수 있을까 하면서 책 한 권을 읽는 내내 감탄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영화와 원작을 잠시 비교해 보자면, 조금 아쉬웠던 장면은 앤디가 레드에게 리타 헤이워드의 포스터를 주문하는 장면이다. 책에서는 이 장면이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어 진다. 평소의 침착한 앤디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첫 사랑에 들뜬 사람처럼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이는 앤디의 모습을 그렸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점이 조금 아쉬웠다.

또 하나를 들자면, 아이러니 하게도 원작에는 없는 장면이었지만, 쇼생크 탈출을 이야기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꼽는 명장면 중의 하나로 거론되는 오페라 사건이다. 오페라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의 한 부분이다. 도서관에 끈질기게 기부를 부탁하는 앤디에게 도서관에서 몇 가지 물품을 보내주는데 그 중에 이 음반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화장실에 있는 간수를 가두어 놓고, 간수실의 마이크를 통해 죄수들에게 자유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영화 아마데우스의 모차르트가 아하하하하며 그 특유의 웃음 소리를 던져줄 것 같은 짜릿한 장면이다.

 

그것을 보고 있는 사이에 인간이 뭔가 예쁜 것, 손으로 정성을 다해 만들어 낸’(그것이 인간과 동물의 차이라고 생각한다.)것을 보았을 때 느끼는 따스한 기분을 느꼈다. (p.54-55)

 

스티븐 킹은 때때로 이렇게 사람을 감상에 젖어 들게 하는 따뜻한 문장을 내놓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그가 맘에 들었다. 교도소 내에서도 태연자약하던 앤디 듀프레인이 어떤 식의 감성과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지 이렇게 섬세한 묘사를 통하여 우리 앞에 넌지시 보여주었던 것이다.

 

문제에 대한 시각을 바꾸어 보자고 할 때, 스티븐 킹은 이렇게 말한다.

 

하여간 이 문제를 망원경의 반대쪽에서 들여다보지 않겠나? 괜찮겠지.” (p.98)

 

슬프기까지 할 정도로 멋진 한 마디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장면에 밑줄을 긋고 이 한 마디를 깊이 깊이 음미했다. 앤디와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레드의 침착하고 노련함을 보여주는 이 수사법 말이다.

 

스티븐 킹이 자신의 소설 쇼생크 탈출에 대해 명쾌하게 한 단락으로 요약한 부분이 있다.

 

작은 새들 가운데는 새장 안에서 기를 수 없는 새도 있다. 그뿐이었다. 날개 색깔이 너무도 선명하거나, 노래 소리가 너무 아름답거나, 좀 색다른 것이 있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 새를 놓아주거나 아니면 먹이를 주려고 새장을 열었을 때 스스로 손을 빠져나가 날아가기도 한다. 애초부터 그 새를 새장에 가두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 마음은 오히려 안심하게 되지만, 그 새가 없어졌기 때문에 집은 전보다 더 쓸쓸하고 공허하게 된다.

이것이 그 이야기다. (p.156)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두 번째 여름 시리즈 이야기인 <우등생>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을 때이다. 평소부터 전쟁에 관한 것이라면 영화, 해외 드라마, 인문 교양서, 블로그 등을 닥치는 대로 봐왔던 나이기에, 이 독일 전범에 대한 이야기와 노인이 되어버린 듀센더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는 토드에게 몰입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코 적은 분량이 아닌 이 소설을 금새 해치워 버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등생>의 이야기가 절반 정도 진행 되었을 때, 이제는 슬슬 결말이 나야 할텐데, 과연 어떤 식으로 결말을 지을 것인가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었다. 스티븐 킹을 내심 믿고 있었기에, 그의 스토리 텔링이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었는지 책장을 하나 하나 넘기면서 느낄 수 있었다. 그 나머지 절반의 이야기는 실로 정말 흥미로웠으며, 기나긴 밤을 짧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이 소설은 영화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로 재탄생 하게 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이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다. 아마도 구하기가 조금 힘들 듯 하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 본 결과 주인공 토드역에는 영화 의뢰인의 그 훈훈한 소년이. 그리고 독일인 고문관 듀센더역할에는 반지의 제왕간달프로 너무나 친숙했던 그 분이 맡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 머릿 속에서는 그 두명의 배우가 서로를 의심하며 싸우며 고뇌하며 분투했다.

 

토드의 학교 선생님이 말했듯이 토드는 인생 최고의 관심사를 그의 인생에서 일찍 찾아내었다. 거기까지는 좋았지만 그 관심사에 푹 빠져버리고 그 관심사의 대상을 자신의 일생으로 끌어들인 데에 이 소설의 외나무 줄타기는 시작되는 것이다.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듯한 느낌을 느끼는 토드는 독일 전범이 자신의 동네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그를 만나기로 결심을 하게 된다.

 

토드는 소설 첫 부분에선 너무나 평범한 백인 미국인 소년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에겐 내가 동경하는 요소가 여럿 있었으니. 그중 하나는 사진에 관심이 있는 아버지를 둔 덕택에 집에 암실이 있었고, 아홉 살 때부터 직접 현상을 할 수 있던 능력이다. 그리고 어린이임에도 불구하고 장난감이 아닌 진짜 지문 채취기 세트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도 물론 엄마 아빠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것이라고 한다. 얼마나 멋진 부모님인가!!

 

잠시 여기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나온다. 바로 스티븐 킹의 장난에 잠시 빠져보는 것이다. 다음 내용을 보면 금새 알게 될 것이다.

 

그 수속을 해 준 은행가는 내가 주식을 산 다음해에 부인을 죽이고 교도소에 들어갔어….”

(중략)

전부 그 은행가가 골라 준 것이야. 듀프레인이란 사람이었다. 내 성과 비슷해서 기억하고 있어. 그가 성장주를 골라 줄 때만큼 부인을 능숙하게 죽이진 못한 모양이야.” (p.200-201)

 

이 얼마나 재밌는 장난인가!! 방금 쇼생크를 탈출했던 듀프레인이, 지금은 듀샌더의 입을 통해 다시 출연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작품에 나왔던 사람을 다른 작품에 등장시키는 즐거운 장난을 종종 하는 작가들이 있는데, 스티븐 킹의 이런 장난에 매우 즐거워져서 더욱 독서를 유쾌하게 할 수 있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처럼 토드는 노인을 매주 수요일 마다 방문을 했고, 그 때마다 토드가 그토록 원하던 오싹오싹한 이야기를 버번 냄새와 함께 들을 수 있었다. 한 달 텀으로 계속 진행되던 책의 챕터는 중간을 지나서는 날짜에 대한 언급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된다. 즉 책의 마무리 부분으로 접어들었다는 이야기이다.

 

과거의 공포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열쇠는 머리로부터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거의 공포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 오히려 친구처럼 꼭 안아 주는 것이라고 그 아이가 알려 주었으니까. (p.256)

 

이후부터 이야기는 소년과 노인의 부랑자 살인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답답함과 욕망을 살인으로 해소하는 그들의 행동은 서로에게 털어 놓지는 않지만 은연중에 느끼게 된다. 하나의 행동 혹은 일요일 신문에 난 가십 거리를 통하여.

 

토드의 할아버지는 말에 의하면 아무도 행복하게 죽을 수는 없지만, 잘 죽을 수는 있다(p.308)”고 했다. 자신의 정체가 드러났고 위기감을 느낀 듀샌더는 다량의 수면제인 세코날을 통해서 스스로 자살을 택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행복하게 죽지는 못했지만 잘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서로를 죽이는 악몽을 꾸고, 서로를 죽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지만, 결국 노인은 자살을 택했고, 소년은 자신의 윈체스터 30-30을 택했다. 결코 토드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던 노인은 끝까지 토드라는 소년을 심리적으로 고문했고, 서로를 정신적을 강간했다. 아주 차가운 녀석이어서 입 안에서는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도 결국은 얼음을 내뱉었던(p.471) 소년은 그의 총과 함께 체포되었고, 그 후의 이야기는 그저 독자의 상상에 맡겨야만 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 희망의 봄과 타락의 여름까지 왔다. 곧 실제로 더운 여름이 다가올 것이다. 그 전에 나는 자각의 가을과 의지의 겨울까지 홀짝 거리며 밑줄 그을 준비를 마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언제든지 스티븐 킹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귀를 활짝 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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