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우리의 행복이 물질적 요인이 아닌 사회적 요인에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인간은 극히 사회적인 동물이다. 그래서 (어느 시점을 지나면) 돈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가 돈으로 무엇을 살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돈으로 주변에서 어떤 위치에 서게 되느냐가 정해지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그리 놀랍지 않다. 아버지가 종종 하시던 말씀이 또 있다. "돈은 우렁찬 갈채다." - P70

그러면 행복의 결정 요인에는 또 무엇이 포함될까? 대부분은 쉽게 예상 가능한 것들이다. 리처드 레이어드는 책에서 7대 요인을 거론한다. "우리의 가족 관계, 우리의 경제 상황, 우리의 일, 우리의 공동체와 친구들, 우리의 건강, 우리의 개인적 자유, 우리의 개인적 가치관. 이 중 건강과 소득을 제외하면 모두 인간관계의 질과 연관되어 있다."

 행복경제학계의 또 다른 저명 인사 존 F. 헬리웰도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헬리웰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구 조교"를 자처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일찍이 행복의 의미와 성취법을 탐구한 탁월한 철학자였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한순간 느끼는 쾌락이나 고통과 인생을 잘 살 때 느끼는 더 깊은 차원의 만족감을 철저히 구별하면서, 실제로 행복에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후자라고 설파했다. 그는 이 더 깊은 차원의 만족감이 좋은 기분이 아니라 좋은 행실에서 나온다고 가르쳤다. 여기서 좋은 행실이란, 삶에 균형감을 주면서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게 해 주는 고결한 습관을 기르고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은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혜안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들이 존재한다. 헬리웰과 동료 학자들은 ‘세계 가치관 조사World Values Survey’라는 방대한 데이터를 주기적으로 분석한다. 세계 가치관 조사는 150여 개국 국민의 인생 만족도를 조사하고 그 72 밖에 그들의 특징과 사회적·경제적 환경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젝트다. 헬리웰을 포함한 연구자들이 데이터를 처리해 얻은 결과를 보면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 중 4분의 3은 다음과 같은 6가지 요인으로 설명된다.

 

ㆍ사회적 지원: 힘들 때 믿고 의지할 사람이 있는 것.

ㆍ아량: 사람들은 관대하게 행동할 때, 그리고 주변에 관대한 사람들이 있을 때 더 행복하다.

ㆍ신뢰: 부정부패는 인생 만족도를 저해한다.

ㆍ자유: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스스로 결정할 자유가 있다고 충분히 느끼는 것.

ㆍ1인당 소득

ㆍ건강 수명(평균 수명에서 아픈 기간을 제외한 수명-옮긴이)

 

 그런데 이 목록에서 6가지 요인 중 4가지가 사회관계와 연관 되어 있다. 6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은 사회적 지원이다. 이것을 포함해 전문 용어로 ‘관계재relational goods’(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재화-옮긴이)라고 할 사회적 요인이 총 4가지나 되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요인 대부분을 차지한다. 《세계 행복 보고서》 2015년 판을 인용하자면, 인생 만족도와 사회적 유대 73 의 강력한 연관성은 "지리와 시간의 차이를 떠나 인생 만족도 데이터에 대한 실증적 분석에서 거의 예외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심리학 실험 역시 동일한 결론이 나온다. 사람들은 건강과 관계 중에서 굳이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몸은 좀 덜 건강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더 많은 관계를 맺었을 때 더 큰 만족감을 느낀다고 한다. 소득이 중요하긴 하지만 이미 살펴본 대로 무조건 중요하게 작용하진 않는다. 특히 다른 사람들이 물질적으로 자신과 같은 수준이거나 더 높은 수준일 때 소득의 힘은 감소한다.

 이탈리아 경제학자 스테파노 바르톨리니와 프란체스코 사라치노가 27개국(주로 선진국)의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실제로 국민 소득 증가와 함께 인생 만족도가 증가하는 현상은 단기간(2년 정도)에만 나타나고 이후에는 사람들이 소득 증가분에 익숙해졌다.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경제성장이 행복에 끼치는 영향은 완전히 소멸된다. 이와 반대로 어떤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강해지거나 그 밖에 여러 형태로 사회적 유대감이 강화되면 단기적으로는 만족감이 조금 증가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크게 증가한다. 이처럼 사회적 유대의 효과는 누적되고 지속된다. 소득으로 만족감을 유지하려면 계속해서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신뢰를 쌓고 관계를 형성하는 등 여러 형태로 사회적 지원을 확보하는 것은 행복을 차곡차곡 저 74 축한다. - P71

 가장 친밀한 형태의 사회적 유대, 많은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적 유대는 결혼이다. 우리의 아내와 남편은 우리가 가장 먼저 의지할 수 있는 의사요 간호사요 상담사다. 우리의 배우자는 양육의 동반자이자 인생의 역경에 함께 맞서는 동지다. 결혼을 하면 친족과 지인의 범위가 2배 정도 넓어지고, 모든 형태의 유대 관계 중에서 제일 중요한 관계인 가족이 만들어진다.(이런 이유로 동성애자들은 결혼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열렬히 투쟁했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볼 때 결혼, 특히 초혼이 행복에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반대로 이혼은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당연하다. 한 통계 추정치에 따르면 파경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연간 약 10만 달러가 필요하다고 한다. - P74

 나는 쉰 살이 되던 2010년에 현재 살고 있는 주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자마자 마이클과 결혼했다. 우리는 이미 10년 이상 동거 중이었고 우리의 소중한 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정부가 발급하는 종이 쪼가리"(일부 회의론자들이 결혼을 지칭할 때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을 다 떠나서 당시 미국 내에서도 극히 일부 주에서만 인정된 우리의 결혼이 최소 10만 달러 가치가 있었다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물론 결혼을 통해 우리가 더 가까워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우리가 부부로서 지역 사회에 더 단단히 편입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P75

 만일 내가 마흔 살에 행복의 역설을 알았더라면 내 인생 이력서의 진가를 인정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일로 그토록 혼란스러워하진 않았을 것이다. 스무 살 때 했던 생각과는 다르게, 마흔 살의 내가 비교하는 대상은 스무 살의 내가 아니었다. 나는 다른 40대 동년배와 나를 비교했다. 그중 많은 이가 좋은 관계를 지속하고(대체로 나보다 더 오래), 부를 축적하고(대체로 나보다 더 많이), 직업상 높은 위치에 있었다(대체로 나보다 더 높이). 물론 나는 대다수 살마보다 형편이 나았지만 대다수 사람은 내 비교군이 아니었다. 내 안에서 내가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고 다그치던 비판자의 목소리는 유감스럽게도 자꾸만 나보다 나은 사람과 나를 비교하라고 했다. 이것이야말로 최악의 태도다.

 리처드 레이어드는 이렇게 쓰고 있다. "행복의 비결이 하나 79 있다면 나보다 성공한 사람과 비교하고 싶은 마음을 버리는 것이다. 비교를 하려면 상향식으로 하지 말고 하향식으로 할 일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건실한 조언을 따르기란 쉽지 않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는 우리의 마음가짐만이 아니라 나이에 따라 좌우되는 탓이다. - P78

 당시에는 주관적 요인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오즈월드가 별종으로 취급됐다.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 시절에 스스로에게 했던 말을 지금도 젊은 학자들에게 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내 연구를 좋아하면 그건 내 연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때 난 진짜 보통 고집이 아니었어요. 뭐가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고 확신했죠." - P92

 블랜치플라워와 오즈월드는 재혼하면서 마음가짐이 바뀐 걸까, 아니면 마음가짐이 바뀌면서 행복한 재혼 생활이 가능해진 걸까? 그들과 나눈 대화를 돌이켜보니 행복 곡선의 방향 변화가 인생과 선택의 결 변화와 어떤 식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는 나나 당사자인 그들이나 절대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이것은 어떤 데이터 세트로도 풀 수 없는 불가사의다. 나는 다만 곡선의 변곡점을 돌아 행복해진 두 남자를 만났다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앤드루 오즈월드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50대 초반이 되니까 만족감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아요." 그러자 돌아온 그의 일성.

 "예순은 돼 보고 말해요!" - P117

 하지만 잠깐.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여러 면에서 다를 공산이 크다. 그들은 소득이 더 많을 수 있고(가난하면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많이 구입할 수 없다) 더 건강한 생활 습관(담배를 더 적게 피우고 운동을 더 많이 하는)을 유지하고 있을 수 있다. 그들은 더 젊고 학력이 높을 수 있다. 또는 그냥 원래부터 더 행복한 사람일 수도 있다. 이처럼 식단과 행복의 관계가 양쪽에 모두 영향을 미치는 제3의 요인 때문에 나타난다고 볼 수 있는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싶은 건 "채소를 많이 먹는 사람이 평균적으로 더 행복한가?"가 아니라 "채소 섭취 자체가 행복과 정신 건강과 연관이 있는가?"다. 그리고 그 대답이 "그렇다"인 것이야말로 과일과 채소에 관한 연구에서 도출된 더 흥미로운 결과다. - P131

그런데 이 결과는 과일과 채소를 더 많이 먹는 것 가체가 행복도를 높이는 원인임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그랬을 때 더 행복해진다고 한들 나는 별로 놀라지 않을 테지만, 사회과학에서는 본래 인과성causality을 확증하기가 어렵다. 과채의 기울기가 알려 주는 건 순전히 연관성association이다. 두 변수 사이에 앞으로 실체를 설명해야 할 모종의 독립된 관계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 P132

 그 결과 U자 곡선을 제외한 나머지 형태 중에서 내가 제일 많이, 무척 많이 본 인생 만족도의 궤적은 상승하는 선 모양이었다. 이런 우상향 패턴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대개 성인기 초반에 불행과 격동을 겪은 후 그런 과거와 작별을 고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 P122

 이런 현상은 행복과 나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 미국의 내노라하는 심리학자인 마틴 E. P. 셀리그만Martin E. P. Seligman은 《진정한 행복: 새로운 긍정심리학으로 지속적 성취를 위한 잠재력 일깨우기》(한국어판: 《마틴 셀리그만의 긍정심리학》, 물푸레, 2014)에서 다음과 같은 행복 공식을 제시한다.

 

H=S+C+V

(H: 지속적인 행복의 수준, S: 이미 설정된 행복위 범위, C: 삶의 상황, V: 자의로 다스릴 수 있는 요소)

 

간명하고 일견 타당해 보이는 이 공식은 더 행복해지기 위한 143 길을 모색할 때 일종의 이정표가 된다. 이 중에서 ‘이미 설정된 행복’의 점수는 주로 유전자와 성격에 의해 결정되므로 우리가 어떻게 할 여지가 별로 없다. 반대로 ‘삶의 상황’과 ‘자의로 다스릴 수 있는 요소’인 행동과 감정의 패턴은 노력을 통해 행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 좋은 공식이다. 하지만 행복 곡선에 따르면 이 공식에는 빠진 항이 하나 있고 그 항을 추가하면 이렇게 바뀐다.

 

H=S+C+V+T

 

 여기서 T는 ‘시간’을,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이 듦’을 뜻한다. T는 스물다섯에도, 마흔다섯에도, 예순다섯에도 중요하지만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 P142

 만약 행복 공식의 이런 요소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어떻게 될까? 각각의 경우에 따라 다 달라진다. 바로 이 때문에 U자의 저류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실제로 각 개인의 사례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내가 수정한 공식을 보자면 총 4개 항 중에서 2개(이미 설정된 행복의 점수와 나이)는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다. 나머지 2개 중 하나(인생과 태도에 대한 자발적 선택)는 전적으로 우리 소관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삶의 상황)는 우리가 145 어쩔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어쩌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삶의 상황을 다스리고 개선하는 일이 우리의 인생 과제 중 하나가 된다. - P144

그렇다면 여기서 얻을 수 있는 메시지는 단순한 운명론("행복은 애초에 성격에 각인된 것이니까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어.")이나 극기론("다른 것은 우리가 어쩔 수 없으니 감정과 태도를 잘 다스려야지.")이 아니다. 그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년에 감정적 위기나 붕괴를 피할 수 없다는 속설 역시 아니다.

 행복 공식에 담긴 메시지는 내가 볼 때 근본적이라고 할 만큼 중요하지만 학계와 사회에서 그에 걸맞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견해며, 이제부터 이 책의 남은 부분에서 논해 보려고 하는 관점이다. 그것은 바로 "시간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다. - P145

 내가 ‘시간이 중요하다’고 할 때나 행복 공식의 T 항목을 언급할 때는 사실 서로 다른 이 두 개념을 뭉뚱그려 말하는 것이다. U자 곡선을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 개념인 ‘나이 듦’인가? 아니면 절대적 개념인 ‘시간’인가? 답은 "둘 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영장류 친족에게도 나이와 행복의 관계가 나타난다는 건 시간이, 정확히 말하자면 사회적 나이가 아닌 연대기적 나이가 그 자체로 중요하다는 의미다. 침팬지는 육체적으로 나이가 들지만 자신이 몇 살인지는 모르고 생일이나 은퇴를 기념하지도 않는다. 지구상에서 탄생일로부터 흐른 시간을 계산하고 일정한 증가 시점마다 불장난과 건강에 안 좋은 음식으로 축하하며 구획을 짓는 종은 인간이 유일하다.

(…)

 인간만이 유일하게 주변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자신이 나이 드는 과정에서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집요하게 따진다. 그래서 똑같은 50세지만 평균 수명이 80세인 사회보다 60세인 사회에서 훨씬 나이 든 것처럼 느껴지고 사실상 더 나이가 든 것이다. - P148

 어차피 그의 인생 만족도 연구는 별 호응을 못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연구가 내가 박사 과정에서 처음으로 한 프로젝트였어요. 거시경제학자들 앞에서 발표했다가 말 그대로 비웃음만 샀던 기억이 아직 생생합니다. 그딴 걸 연구할 생각을 하다니 웃긴다는 반응이었죠. 인생 만족도 기대치 같은 것에 도대체 누가 관심을 갖겠냐는 거였어요." - P166

둘째, 젊은 사람들은 항상 미래의 인생 만족도를 과대평가한다. 상당한 수준의 예측 오차가 절대 우연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일관성 있게 나타난다. 마치 시애틀 거주자들이 매일 화창한 날씨를 기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 P168

그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긍정적 예측 오차는 생물학적 실수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각인된 현상으로 보인다. 우리를 속이고 때로는 비참하게까지 만들지만 우리가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 P179

 사람들을 뇌 스캐너에 들어가게 한 후 동일한 과정을 거치면 뇌에서 긍정적인 정보와 부정적인 정보가 처리되는 부위가 서로 181 다르게 나타난다. 따라서 부정적인 정보가 단순히 긍정적인 정보의 반대라고 말할 수 없다. 더욱이 샤롯과 동료 학자들은 뇌의 특정한 부위에 자기磁氣 에너지를 쏘면 낙관 편향이 사라지는 것을 포착했다. 긍정적인 정보는 적극 수용하고 부정적인 정보는 차단하는 경향이 정서적 전망을 할 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지 기능에 각인되어 있다는 뜻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항상 그렇다는 건 아니다. 예외는 있다. 경미한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한다. 그들은 우울하지 않은 사람들만큼 긍정적인 정보를 잘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동시에 부정적인 정보 또한 더 잘 받아들이기 때문에 더 현실적이다.

- P180

샤롯은 《낙관의 과학》에서 "희망은 우리 정신의 긴장을 완화하고,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고, 신체 건강을 증진한다. 아마 이것이 낙관성의 가장 놀라운 이점일 것이다.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낙관론자가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산다"라며 "낙관성은 단순히 성공과 관련 있는 것을 넘어 성공을 불러온다" - P182

하이트는 이성을 공보관에 비유한다. 우리가 직감 차원에서 한 선택을 합리적 차원에서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도덕심리학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은 이겁니다. ‘직관, 나도 모르게 생기는 육감을 주시하라. 이성은 그냥 따라올 뿐이다’."

 하이트는 이성을 코끼리 등에 탄 사람에 비유한다. 이 설명법은 워낙 인상적이어서 이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이트에 따르면 종래에는 감정과 이성을 말과 기수에 비유 187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기수는 말이 뱀을 보거나 단체로 날뛰는 상황만 아니라면 말을 조종할 수 있다. 이 비유는 하이트가 여러 연구를 통해 얻은 결과와 배치되었다. 그중에는 하이트 자신이 피실험자가 된 자연 실험(연구자의 개입 없이 자연히 발생한 상황을 관찰하는 연구법-옮긴이)의 결과도 포함되어 있다. "총각 시절에 연애할 때 큰 실수를 저지를 때가 종종 있었어요. 내가 실수할 게 뻔히 다 보였는데 말이죠. 대형 사고인 줄 알면서도 사고를 칠 게 다 예상됐어요. 뭐가 올바른 행동인지 알고, 나쁜 짓을 하는 심리 역시 다 알면서 나 자신을 멈출 수가 없었죠."

- P186

 이런 자동적 작용은 의식적 작용과 다르게 임의로 발생한다. 보통은 피곤하다고 해서 둔화되지 않으며, 의지력이나 집중력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이 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인지할 수 없고 다만 결과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렇다. "그냥 ‘팍’ 떠오르는 거죠. 하지만 사실 그 사람이 매력적이란 걸 알기까지 신경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연산이 이뤄진 겁니다." - P188

코끼리는 자연 선택에 따라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전략은 타인에게 깊은 인상 주기, 타인의 감탄 자아내기, 자신의 상대적 지위 상승시키기 등이다. 코끼리는 ‘행복’이 아니라 ‘명망’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무엇이 명망을 높이는 일인지 알기 위해 끝없이 타인을 관찰한다. 코끼리는 자신의 진화적 목적을 추구할 뿐, 설령 다른 데서 더 큰 행복을 찾을 수 있다 한들 무시한다. 만일 모든 사람이 한정된 분량의 명망을 좇고 있다면 전부 제로섬 게임, 영원한 군비 경쟁, 부의 증가가 행복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 세상에 갇혀 있는 것이다. - P192

 혹시 코끼리의 비유가 그의 인생살이에 영향을 미쳤는지 묻자 하이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요! 이젠 내 인생과 정신을 내 194 가 조작해야 하는 기계라거나 내가 완공해야 하는 건축물이나 도시로 보지 않아요. 그냥 나 자신을 적절한 경험에 적절히 노출하면 나머지는 시간이 알아서 할 거라 생각하죠. 인생에서 중요한 건 코끼리와 탑승자가 사이좋게 협력하도록 교육하고 훈련하는 겁니다." - P193

혹시 노년의 사회생활은 ‘시들어 말라 죽음’이 아니라 ‘가지치기’에 가깝지 않을까? 나이 들면서 정서적 우선순위에 변화가 생 237 기는 것 아닐까? 카스텐슨의 설명을 계속 들어 보자. "사람들이 하는 말이 소중한 사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관심이 많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그냥 같이 앉아 얘기나 좀 하는 정도인 사람한테는 별 관심이 없거나 젊었을 때보다 훨씬 관심이 덜 간다고 했어요. 이게 바로 선택성 이론이죠. 감정은 그대로지만 감정을 줄 대상은 사람이든 사물이든 더 신중하게 선택하는 거예요." - P236

저자들은 시간을 모니터링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주장한다. 젊은 사람들은 불확실한 미래의 대비책으로 새로운 정보와 새로운 사람을 찾아서 지식과 인맥을 증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시간이 한정되어 있을 때는 사회적 유대, 사회적 지원, 감정의 절제 등 단기적인 목표가 최우선순위에 놓인다. 이런 조건 아래서는 미래에서 현재로 초점이 이동한다. 사람들은 끈끈한 정 240 을 느낄 수 있는 사회적 파트너를 찾고, 정서적 경험은 한층 큰 복잡성을 띤다." - P239

지금 이 순간을 살기. 하루하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241 긍정적인 것을 음미하기. 부정적인 것에 덜 매달리기. 수용하기. 과민 반응하지 않기. 현실적인 목표 설정하기. 소중한 관계 우선시하기.

 모두 현대 심리학과 고대 지혜에서 인생에 만족하기 위한 방법으로 누누이 말하는 비결이다. 그렇다고 청년기나 중년기에 꼭 철저한 현재 지향적 인간이 돼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젊을 때는 야심이 있어야 하고 사회에는 야심 찬 모험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정서적 선택성 이론을 알면 노년에 만족도가 상승하는 의외의 현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카스텐슨의 이론은 시사한다. "나이가 들면 가치관이 변한다"고.

- P240

정리하자면 이렇다. 간혹 폴처럼 행복 곡선의 밑바닥에서 실존적 위기와 내면의 드라마를 경험하는 사람이 있긴 하다. 그렇지 269 만 그와 달리 중년의 전환기가 심심하고 은근하게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사람이 더 많다. 그래서 보통은 본인조차 그런 변화를 뚜렷이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극적인 길이든 점진적인 길이든 간에 방향성은 동일하다.
이 길은 타인을, 그리고 지혜를 향한다.

- P268

그런데 "지혜의 영역들"은 무엇일까? 제스트는 단독으로, 또 공동으로 고대와 현대의 문헌, 동양과 서양의 문헌, 전통과 과학의 274 문헌에서 지혜에 대한 지혜를 샅샅이 뒤졌다. 그래서 무엇을 알게 됐는지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혜라는 개념이 시대와 지역을 넘어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게 보전되어 왔다는 거요."
 현대 학자들이 내린 지혜의 정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특질들이 반복해서 언급된다.
 공익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는 친사회적 태도와 연민, 실용적인 인생의 지식, 실용적인 지식을 응용해 개인 문제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모호성과 불확실성을 처리하고 다양한 관점을 보는 능력, 정서적 안정성과 감정 통제력, 성찰 능력과 공평무사하게 자신을 이해하는 능력.
 서양 문헌에 비하면 《바가바드 기타》에서는 욕구와 물질적 쾌락을 다스리는 능력을 많이 강조한다. 하지만 제스트는 입싯 V. 바히아Ipsit V. Vahia와 2008년 《정신의학Psychiatry》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바가바드 기타》에서 말하는 지혜의 개념을 현대 과학 문헌과 비교하면 인생에 대한 풍부한 지식, 감정 절제력, 공익에 대한 기여(연민/희생), 통찰(겸손을 중심에 둔) 등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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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근무하던 학교에 남궁증이라는 선배 교사가 있었다. 그 선생님과 나는, 네 명이 근무하는 작은 교무실에서 함께 근무했다. 당시 나이가 50대 중반 정도셨는데, 아이들이 이 선생님 앞에만 오면 그렇게 까불었다. 가만히 지켜보니 흥미로운 것이 있었다. 아이들은 마치 ‘남궁증 선생님이 나를 가장 예뻐한다‘고 믿는 것처럼, 까불고 장난을 치는 것이었다. 비단 몇 명의 아이가 아니었다. 선생님을 찾아오는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믿고 까불었다. 선배 교사의 내공이 대단하셨다. 아, 그때 알았다. 당신이 나를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는, 나를 무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이 믿음이 있어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말도 마음도 자유로이 노닌다. 이러한 믿음이 없으면 꿈도 못 꿀 장면이다. - P90

또 절반. 한 시절을 견딘다는 것을 생각했다. 한 시절을 견디는 일에는 늘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기대어 갈 마음의 언덕 하나 나에게 내준다. 덕분에 이런 길도 저런 길도 울지 않고 깔깔거리며 걷는다. 날마다 전화해서 늘어놓는 온갖 푸념을 다 들어주는 이도, 새로운 일이 있는 길로 손을 끌어주는 이도, 어려운 일을 만나면 언제든 연락하게 되는 이도, 다 그런 사람들이다. 강준이도 그런 사람이었다. 소규모의 수업인 데다가 학습의욕이 낮은 녀석들이 많아서, 자칫하면 적당히 때우는 마음으로 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강준이와 아이들은 다 같이 열심히 하고 뭐든 협력하려고 애썼다. 강준이는 나의 감정을 살피는 담당이기도 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은 얼마나 건방진가. 얼마나 진실하지 못한 자만인가.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주게 될지, 누가 누구에게 어떤 마음을 받게 될지 미리 알 수 없다. 인생이 그렇다. 강준이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이다. - P95

아이들이 적은 인상 깊은 문장은 남의 일기장을 읽는 것 같았다. 얼굴도 모르는 아이의 마음 한복판에 별안간 서게 된 듯하다. 학교에서 전교생의 독서토론 수업을 이끌고, 몇백 명을 독서동아리에 발을 들여놓게 하고도 미처 몰랐다. 인상 깊은 문장을 쓰는 것이 마음을 들키는 결정적인 방법이라는 것 말이다. 마음의 맨살이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몇 글자 안 되는 문장에 가슴이 뻐근하다. - P112

어른인 나에게도 그런 존재는 필요하다. 나의 마음을 순하게 만드는 사람. 사납고 날 선 마음의 결을 조용히 빗질해서 얌전하게 만드는 사람. 싸우듯이 살다가도 팔다리에 긴장 풀고 몸도 마음도 평평하게 눕게 만드는 그런 사람. 이런 사람 하나 없다면 누구도 멀쩡하게 살아가기 힘들다. 소년에게는 더 절실한 존재, 사무치게 필요한 존재가 아닐까. - P177

쓸모를 짐작할 수 없는 일이 있다. 그것을 만드는 사람도, 누군가에게 그것을 주는 사람도, 사용하는 사람도 예측할 수 없는, 그런 쓸모라는 것이 세상 어딘가에서 생기기도 한다. 존재하기도 한다.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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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격차와 같은 경제적 문제는 숫자로 드러내기 수월하기 때문에 성차별의 가시적인 지표로도 자주 쓰인다. 하지만 지표로 드러낼 수 없는, 성차별이 원인이 된 심리적 · 정서적 문제에는 보다 섬세한 분석이 필요하다. 가령, 여성은 남성보다 ‘노인이 되었다‘고 자각하고 혹은 사회적으로 구분되는 시기가빠르다. 가정 내 역할은 물론이고 사회에서도 역할의 모호함을 경험하게 되고, 주체적 의사 결정에서 일찌감치 밀려나며 소외되기 쉽다. 여성이 경험하는 가족 구성원의 병치레나 사별 등 특정한 생애 사건에서 요구되는 여성의 성역할 부담도 크다. 여성이 돌봄노동에 내몰려 소득 기회를 상실하고, 가정의 경제적 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는 것도 성차별로 비롯된 결과다. - P119

에이지즘(ageism)은 1969년 노인의학 전문의인 로버트 버틀러(Robert Butler)가 노인에 대한 차별에 주목하고 만든 용어다. 연령주의, 연령 차별주의 혹은 노인 차별이라고도 한다. 나이와 노인, 노화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편견이 결합된 연령주의는 노인에 대한 공공연한 비난과 편견, 과도한 권한 부여와 소외 등을 의식 ·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이는 사회적으로 표면에 드러나기도 하지만 개인의 내면에서 부지불식간에 발생하기도 한다고 버틀러는 지적한다. 앞선 ‘노인편견 실험‘ 결과처럼 대부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고 말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내면화한다.
차별을 차별로 인지하지 못하고 행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나이에 위험하다거나, 하면 안 된다거나 하는 나이를 이유로 만류하는 모든 일들 또,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는 말 속에도 연령주의는 깔려 있다. - P127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고, 지금 내가 뭘 할 수 있겠냐고 묻는 조경숙 씨의 눈빛에 허망함이 가득하다. 그런 그에게 유치원 봉사활동을 제안한 제작팀. 조경숙 씨는 제작팀과 함께 한 유치원을 찾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나오셔서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건 어떨까요? 동화책 읽기 봉사를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원장의 말에 조경숙 씨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복잡한 표정이 된다. 이런 기회를 갖게 된 건 큰 행운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은 복잡해지고 두려움이 커졌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실수는 안 할까. 그러다가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 경숙 씨.
‘난 할 수 있어. 괜찮아. 나는 아이들을 사랑하니까.‘
며칠 경숙 씨 마음이 이쪽으로 기울었다가 저쪽으로 기울었다가 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이 섰을 때 경숙 씨는 도서관을 찾아 동화책을 빌렸다. 50~60년 만에 펼쳐보는 동화책이었다. 경숙 씨는 읽기 연습을 시작했다. "번쩍번쩍 금도끼를 가지고 나왔어요." 금도끼를 강조해서 다시 읽어본다. 낭독에 리듬을 넣고 감정도 섞는다. 산신령 목소리는 더 굵게 바꾸고, 동물 울음소리도 연습한다. 그렇게 온종일 책과 씨름하며 경숙씨는 모처럼 즐겁다.
"뒷방 늙은이 취급만 받다가 불러주는 곳이 있고 할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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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은 사실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닙니다. 화두 의심에 제대로 걸리기 위해서는 수행자를 이끌어줄 스승, 눈 밝은 선지식善知識을 만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수행자가 의심을 갖고 본래의 마음자리로 나아가고 있는지, 허망한 경계에 걸려든 것은 아닌지, 그것을 감별해줄 스승이 있어야 하지요. 또 수행자가 화두타파하여 견성에 이르기까지 그것을 가로막는 모든 방해로부터 수행자의 마음을 지켜줄 스승의 법력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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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길을 택하든 가지 않은 길은 단지 가지 않았기에 아름답다. 내가 밟지 않은 낙엽이 소복이 쌓인 채 저 멀리 떨어져 있기에 아름답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숙명적인 동경과 아쉬움도 우리 삶의 한 부분이다. 덧붙여, 그러니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에 너무 빠지지 말고, 그저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겨두고, 내가 선택한 길을 가라는 뜻도 있을지 모르겠다. - P49

 일라이자는 ‘야수’의 내면을 알기 전부터 그의 외모에도 끌렸다. 물론 자신처럼 물을 좋아하는 고독하고 별난 존재라는 점에서, 또 영화 중에 말하는 것처럼 "그가 나를 바라볼 떄 내 결핍이나 불완전함을 의식하지 않고 나를 있는 그대로 행복하게 바라보기 때문에" 정신적 교감을 느껴서도 그렇다. 하지만 우선적으로 일라이자는 ‘그’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관객들이 어색하다고 지적하는 일라이자의 ‘야수’에 대한 급작스러운 사랑이 설명된다. 성애 장면도 마찬가지다. 미(美)라는 것은 육체의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기에 미묘한 육체적 욕망이 배제될 수 없으니까. - P108

반면에 스트릭랜드는 어류남을 흉측한 괴물이라고 부르며, 러시아 과학자를 보고는 "과학자는 예술가와 비슷해서 자기가 다루는 존재와 사랑에 빠진다."고 빈정거린다. 그런데 스트릭랜드의 이 말에 한 줄기 진실이 있다. 예술가와 과학자는 상통하는 데가 있다는 것, 둘 다 평범한 통념을 넘어선 넓은 시선으로 대상을 보고 뜻밖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 P110

 돈키호테와 산초가 방랑하다 어느 양치기 청년의 장례와 맞닥뜨린다. 그는 아름답고 부유한 독신주의 여성 마르셀라 때문에 상사병을 앓다 숨을 거둔 청년이었다. 그 말고도 많은 남자들이 마르셀라에게 반해 상사병을 앓고 있었다. 이때 마르셀라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비난을 퍼붓는다. 앞서 『메타모르포세이스』와 『데카메론』의 논리대로라면 마르셀라는 저주를 받아 돌이 되거나 죽어서 양치기 청년의 귀신에게 영원히 쫓겨 다녀야 마땅할 터. 그러나 마르셀라는 당당하고 논리정연하게 항변한다.

 "진정한 사랑은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야지 강요해서 되는 것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럴진대, 왜 오로지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 말했다는 이유로 내 뜻을 억지로 굽혀 그를 사랑해야 한다고 하는 겁니까? (…) 나는 자유롭게 태어났고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 고독을 선택했습니다. (…) 나는 그것을 그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욕망이 희망으로 지탱된다고 한다면, 나는 그리소스토모(상사병으로 죽은 청년)에게 아무런 희망도 준 적이 없으므로, 나의 잔인함이 아니라 그 자신의 집착이 그를 죽인 것입니다." - P130

 그러자 돈키호테는 엄숙한 목소리로 "마르셀라는 명확하고 충분한 논거를 들어 자신이 그리소스토모의 죽음에 아무런 책임이 없음을, 그리고 어떤 구애자의 소망에도 굴복할 뜻이 없음을 보여주었소. 이 여성을 따라다니고 귀찮게 굴기보다 경의를 품고 찬탄해야 마땅하오."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원치 않는 구애로 마르셀라를 괴롭히는 자는 가만 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돈키호테』는 놀라운 ‘현대성’을 갖춘 소설로 연구되고 있는데, 그 현대성에는 이것도 포함될 것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400년 전 세르반테스의 생각보다도 더 케케묵은 생각을 하고 있는 셈이다. - P131

"우리는 타인이 우리를 판단하는 잣대로 우리 자신을 판단한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무슨 말을 하건, 타인의 판단이 거기에 들어간다. (중략)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에서 살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타인의 판단과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저 말을 보면 ‘남 눈치 보기, 남과 비교하기, 인정과 관심 구걸’이 유난히 많은 우리 사회는 과연 ‘헬’로 등극할 만하다. 저 연극에서 세 남녀가 평범한 방처럼 생긴 저승에서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로 고민하고 싸우다가 그곳이 지옥임을 깨닫는 것처럼, 스스로 지옥을 엮어 갇혀 있는 셈이다. - P158

 앞서의 강연에서 사르트르는 "평판에 대해 걱정하면서, 또 스스로 바꿀 의지도 없는 행동에 대해 걱정하면서 사는 건, 죽은 채로 사는 것"이라고, 살아 있다면 "바꾸라."고, "우리는 지옥을 깨고 나올 자유가 있다."고 했다. 한번 그렇게 살아봐야겠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을 들을 때 타인이 주는 상처를 원망하는 대신, 사르트르의 의도대로 스스로 타인의 시선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지면서. - P159

어쩌면 ‘나대는 것,’ ‘잘난 척’에 대한 미움은, 본래 스스로 가질 필요도 없는 열등감을 가진 것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열등감은 개인의 성향 때문도 있겠지만, 획일화된 기준과 정답을 강요하고 거기에 어긋나는 사람들을 모욕하는 기존 우리 문화 때문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긴 열등감에서 비롯된 ‘잘난 척’에 대한 미움이, 자기 자신과 타 166 인 모두의 ‘앎’과 ‘새로운 앎에 대한 욕구’ 즉 창조의 원천인 호기심에 짓밟아 고만고만하게 만들어 버리고, 더욱 획일화되고 정체된 사회를 만드는 악순환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냥 다 같이 나대고 다 같이 잘난 척하면 안 될까? 서로의 나댐, 서로의 잘난 척을 관용하면서 ‘나도 잘나고 너도 잘났어.’, ‘아, 나 특이해. 어, 너도 특이해.’의 마인드로 산다면 우리 사회는 훨씬 열려 있고 다양하고 여유로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 - P165

‘맞아, 바로 이거야.’ 나는 속으로 외쳤다. 왜 이 책이 독일은 물론 유럽에서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에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은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한 게 아니라 규율사회와 성과사회가 공존 및 혼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한병철이 묘사한 서유럽처럼 ‘다른 것,’ ‘낯선 것’에 대한 배척과 부정이 거의 다 사라지고 ‘긍정성이 과잉’된 사회가 아니다. 여전히 ‘성공한 삶’에 대한 획일화된 기준이 강하고 그에 맞춰 남과 비교하는 강박이 있다. 또 막연한 공동체 도덕 ‘국민 감정’이 있어서 거기 어긋나는 사람들 (범죄자도 아닌 ‘이상’한 사람들까지) 전통의 형벌, 조리돌림을 당한다. 옛날처럼 북을 메고 마을을 몇 바퀴 도는 대신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로 말이다. 하지만 또 한 편에서는 ‘너는 뭐든지 될 수 있어!’ ‘시시하게 평범해지지 말자.’ ‘너만의 길을 찾아 가라!’라고 압박한다.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이 한병철의 말처럼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기업가"가 되라고 외 189 친다. 그러니 우리는 ‘규율사회의 복종적 주체’로서 남 눈치를 보는 동시에 ‘성과사회의 성과 주체’로서 ‘나 자신이 인정하는 나’가 되어야 한다. 어휴, 환장할 노릇이다. - P187

 노리코는 뭐든 구체적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다도를 시작한다. 다도는 다실에 들어설 때 걷는 법부터 수건을 접는 법, 차를 만드는 법, 마시는 법까지 ‘쓸모 없어 보이는’ 엄격한 형식이 잔뜩 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냐고, 이 동작은 무슨 의미냐고 노리코가 묻자 다케다 선생은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집중하다 보면 몸이 저절로 움직일 것이라고 답해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노리코는 그것을 깨닫는다.

 "정신이 들자 나는 그저 묵묵히 진한 차를 개고 있었다. 차 한 잔을 개는 일에만 내 마음 전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느새 초조함은 사라져 있었다. 나는 온전히 ‘여기’에 머물고 있었다."

 그건 바로 한병철이 『피로사회』에서 니체를 인용해 말한 "속도를 늦추어 멈춘 상태," "사색적 집중 상태"였다. 무한한 선택지에서 빠른 시간에 최적의 선택을 한다는 강박으로 바삐 움직이며 "활동과잉으로 치닫는 상태, 그럼으로써 도 191 리어 모든 자극과 충동에 아무 저항 없이 바로 바로 응하는 과잉수동성으로 전도되는 상태"와 정반대의 지점이었다.
 공교롭게도 멈춤은 불교 명상 수행의 양날개인 ‘지(止)’와 ‘관(觀)’ 중 ‘지’와 같은 말이기도 하다. 범어의 사마타(Samatha)에서 비롯된 ‘지’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멈추어 고요한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그런 상태로 관(觀) 즉, 자신과 세계를 통찰해서, 깨달음에 한 발 더 다가가는 것이다. 한병철은 형식이 사색을 위한 멈춤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모든 형식은 느리다. 모든 형식은 우회이다." - P190

 그리고 성인이 되어 새삼 깨달았다. 공덕천과 흑암천은 쌍둥이일 뿐만 아니라 아예 한 몸의 두 얼굴이며 결코 서로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고, 그 어느 쪽의 상태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그럼 둘 다 맞이할 것인가, 쫓을 것인가?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며 ‘불확실성 하의 선택’을 공부할 때 장난스럽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공덕천과 흑암천의 파워가 같아서 251 각각 주는 이익과 손해의 크기가 동일하고 그 확률이 반반이라고 전제하면, 위험회피적(risk-averse)인 사람은 둘 다 쫓아내고 위험선호적(risk-loving)인 사람은 둘 다 맞아들일 것이라고.

 불교 철학에서는 둘 다 물리치는 것이 희비와 고락의 굴레에서 벗어나 니르바나에 도달하는 길이라고 들은 것 같다. 하지만 속세에서 치열하게 살고자 하는 인간은 둘 다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그 둘이 언제나 함께라는 사실만 잊지 않으면 혼탁한 세상에 중심을 잡고 서서 버틸 수 있을 것이다. - P250

 그렇게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사랑은 가족과 인간에 대한 사랑뿐만이 아닐 것이다. 20세기 초 세라핀이라는 괴짜 화가는 가족 없이 남의 집 하녀로 전전하면서 아무도 봐주지 않는 그림을 수없이 그렸다. 자연과 예술에 대한 샘솟는 사랑에서였다. 그 사랑에 조응해서, 그와 전혀 연고 없는 이들이 그를 재발견했고 기억한다. 기억되는 것, 그건 결국 사심 없는 사랑만이 받을 수 있는 사랑의 보답인지도 모른다.​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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