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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신은 곧 여든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센티미터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킬로그램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여느 때보다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 자리가 생겼습니다. 오직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당신에게 이 몇 마디를 꼭 한 번 
        전하고 싶었습니다.

                                                      - 앙드레 고르, 'D에게 보낸 편지'


        갑자기 떠나게 되었습니다. 찾아가서 말로써 오늘 제가 먼저 가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만 대화란 항상 의외의 방향으로 나가 버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글로써 알리는 것입니다. 간단히 쓰겠습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제 자신이기 때문에, 적어도 제가 어렴풋이나마 사랑하고 있는 옛날의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옛날의 저를 오늘의 저로 끌어 놓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할 작정
        입니다. 저를 믿어 주십시오. 그리고 서울에서 준비가 되는 대로 소식 드리면 당신은 
        무진을 떠나서 제게 와 주십시오. 우리는 아마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김승옥, '무진기행'


         당신은 여인이니 부디 어여쁘시기 바랍니다.      

                                                   - 윤대녕. '상춘곡'

 
2.


 

 

 

 




                  

고종석의 신작 '어루만지다'가 나왔다. 그의 팬을 자처하는 나로서는 책꽂이에 그의 1판 1쇄를
한 권 더 늘린 것에 흡족함이 든다. 비록 그것이 비루한 소유욕이라 할 지라도 말이다. 그의 예전
책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국어의 풍경들', '도시의 기억', '엘리야의 제야', '제망매' 등을
읽은 적이 있는 이라면 순우리말 단어를 표제삼아 때로 감미롭고, 때로 은밀하며, 때로 야하기도 한
그의 음운론과 사랑론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모국어의 속살'이라는 말처럼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 중의 하나인 '사랑'을 묘사하는데 외래어와
외국어가 차지할 구석은 비교적 적어보인다. 딱딱한 뉘앙스의 번역어의 냄새보다는 부드럽고 친근한
(이것도 편견일 지 모르겠다) 고유어 쪽이 더 감성 내부를 자극하지 않을까. 물론 언어의 구사력에
따라 외래어와 외국어로도 넘치는 열정과 가슴속 심연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마음을 담아 '사랑'의
진정성을 표현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으나 고종석이 뽑아놓은 41개의 고유어들은 비단 연인 뿐
아니라 우리가 보듬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루만지'기에 부족함도 넘침도 없다.

그가 서문에서 밝힌 대로, 그리고 그의 글쓰기의 방식에 따라 어쩌면 이것은 '사랑'의 말이라기
보다 사랑의 '말'인지도 모르겠다. 섬세한 감정만을 묘사하기에 그가 늘어놓은 어휘 하나하나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얼핏 글의 부드러움을 빼고 건조함을 더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사랑에
대한 지혜보다는 한국어에 대한 지혜를 늘이기에 더 적합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이 편린들이 그 속에 우리가 주위에 두고도 잘 알지 못했던, 또는 그 의미를 간과했던
세밀한 뉘앙스를 다시 일깨워준다. 그래서 다시 말하면 사랑의 '말'을 통해 '사랑'의 말을
곱씹게 만든다. 나는 그의 이런 지성이, 감성이 부럽고 존경스럽고 무척이나 좋다. 

 
3.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가 왜 '편지'에 대해서 쓰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어쩌면 '편지'란 그가
늘어놓는 그 모든 사랑의 말들을 한 장의 종위에서 다 쓸 수 있다는 것에서 고르의 편지처럼,
김승옥의 편지처럼, 윤대녕의 편지처럼, 사랑의 말의 총체가 될 수도 있을텐데.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편지'는 순우리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순우리말 사전을 뒤적이면서 편지에 대응하는
순우리말이 없음에 적잖이 놀랐다. 편지를 꽂아두는 통에도  '고비'라는 순우리말이 있는데 정작
주대상인 편지에 대해서는 순우리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만일 순우리말이라는 제약을
조금 헐겁게 대한다면 '편지'를 나만의 42번째 목록에 올리고 싶다. 

 
이런 표현들을 좀 좋아한다. 예를 들어 '방안에 홀로 앉아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아마도 이 편지는
조금 길어질 듯 합니다' 같은 넋두리들 말이다. 절절한 사랑의 감정을 혀끝에서 맴도는 소리로 읊어
주어 심장을 직접 울릴 수도 있으되 손끝으로 눌러쓴 활자들을 통해 온 몸에 스며들게 만들어 주는 편지는 그만의 매력이기도 하다. 나는 아마도 이 땅의 대부분의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편지를 통해
상대방에게 뜻을 전하기를 즐기는 편은 아니다. 외려 써놓고도 부치지 못한 채 서랍 한 구석에 박혀
있다 때를 놓쳐 버려지기 일쑤이다. 또, 아마도 이 땅의 대부분의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내 인생의
대부분의 편지는 군생활동안 주고받은 것이 9할은 넘을 것이다. 그 때는 활자가 아니라면 세상과
소통하는 길이 거의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 때 내게 편지를 써준 여인들이 있었으나 나는 그 여인들이 내게 연정을 품었는지, 아니면 순수한
우정의 발로였는지 모른다. 또한 내가 쓴 편지들이 연정의 발로였는지 답답함을 해소하고자함이
었는지 구분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 때 내 손끝을 떠난 활자들은 내 몸의 일부를 떼어내어그들과
같은 시공을 공유하고자 하는 바람이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것은 또한 반대로  그들이
누리고 있는 있는 평범한 일상들이 그들의 손끝을 떠난 활자들을 통해 내게 오롯이 전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기도 하다. 

 바람이 찬 밤에 편지를 썼다.
아마도 부치지 못한 편지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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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이안 시대는 나라 시대를 거쳐 지금의 교토에 도읍을 정한 때로서 통일신라와 그 연대가 겹친다.
이 때는 귀신과 인간이 한 곳에 머물렀다하고 신화와 실제가 공존하며 수많은 비술과 주문들이 사람과
자연을 축복하기도, 죽이기도 하곤 했다 한다.  마치 삼국유사의 그것처럼 향가를 숭상하는 자들이
낭랑한 소리를 높여 노래를 읊으니 산과 들의 귀신들이 감동했다는 것과 같은 모티브이다.  요절한
천재 작가 아구타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몽'에는 '헤이안 시대의 센티멘털리즘'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과 같은 이치로 빚어진 고대인의 상상력의 결실일 것이다.

 



오카노 레이코의 명작 '음양사'는 이 시대를 재구해낸 만화이다. 이미 영화로 2편 제작되어 아베노
세이메이라는 매력넘치는 음양사가 낯설지 않고 귀신과 인간의 경계가 그리 다르지 않음을, 공포의
대상이 아닌 이해의 대상으로서 귀신의 모습들을 때론 코믹하게 때론 극적이게 보여준다.  7편에는
여름 청량전의 시대회 에피소드가 실려있다. 청량전에 천황과 내궁들이 모두 모이고 좌방과 우방은
각각 최고의 시인에게서 받은 시를 내세워 노래로 읊음으로서 그 고하를 가리는 것이다. 여기에
헤이안의 대표 시인 미후노 타다미가 등장한다. 그는 스스로 최고의 시를 내었다고 자부했으나
시를 읊었던 강사가 차례를 틀림으로써 결국 시대회에 패하게 되자 실의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내세에서도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시인의 숙명. 그는 청량전에 앞뜰에서 스스로
지은 시를 읊는 유령이 되어 나타난다. 
 








일본의 카드 놀이로도 유명한 백인일수 百人一首 는 일본 고전문학에서 뛰어난 100편의 시를 가려 엮은 책이다. 바로 여기에 타타미가 청량전 시대회에서 읊었던 시가 담겨 있다. 


         戀すてふ 我が名はまだき 立ちにけり 
         人知れずこそ 思ひそめしか

         슬픈 사랑이여, 내이름은 마타키. 우두커니 설뿐
         사람의 만남이란 여하한 인연일꼬.

책 안에서는 낭만섞인 수사로 오역되어 있는데 고전 일본어를 현대어 역으로 제대로 바꾸어 보면

 
          戀をしているという私のうわさが,はやく廣まってしまった。
          誰にも知られないように,ひそかに思っていたのに…

         사랑에 빠져버렸다는 내 소문이 빨리도 퍼져버렸구나.
         아무에게 알려지지않도록, 남몰래 사모하고  있었건만

고사기이든 삼국유사이든 고대의 기록들은 현대인의 이성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신화들이
마치 사실처럼 기재되어 있다. 때로 그것은 황당한 미몽의 기록이거나 지배자의 정당화 논리를
미화시킨 것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고대인들의 상상력이 지금의 사람들과는 다른 층위의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과 지금의 사람들이
그리 다르지 않음은 시대를 관통해 흐르는 보편적 정서의 힘의 통해 알 수 있다. 그것은 '사랑'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수많은 신화와 전설과 연가를 통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사랑에 대해 읊어 왔다.
그것은 죽음만큼이나 보편적인 주제이다.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것이 없다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빠져있다고 느끼는가 보다. 그래서 외사랑이든, 짝사랑이든, 운명을 뛰어넘는
사랑이든 사랑은 궁궐에서 여항까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지금까지 즐겨 읊는 소재로 남아있다.  


 이미 내게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언어의 분열처럼 다가오는 지금의 초현대시와는 달리 1000년도
더 이전의 한 시인이 남들에게 들키지 않고 몰래하려한 사랑에 대해 읊은 이 시를 나는 아주 좋아한다.
특히 '남몰래 사모하고 있었건만'이라는 결구에서 '남몰래'라는 구절이 마음에 와닿는다. 때로 사랑은
주위사람에 축복받는 행복의 대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또 때로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자신만의 애절함의 대상일 수도 있다. 이국의 땅에서 낯설은 수사로 이 애절함을 잘 잡아낸                  시인의 읊조림은 그래서 더욱 가슴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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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의 고독, 고독의 일초.

어둑한 천장의 스크린으로 음악이 흐르고 책장이 펼쳐진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우주로부터의 귀환]을 읽으며,

카디건스의 'Sabbath Bloody Sabbath'를 듣는 밤이다. 

모래바람 속에 펄럭이는 누더기 깃발같은 시간.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너를 똑똑히 기억해야 하고

내 영혼을 애타게 돌봐야 한다. 

오랫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그 순간에도 지구가 자전하고 있다.

자전의 시간은 하루, 24시간이고 1,400분이고, 86400초다.

첨단의 물리학 원리로 만들어진 

'원자시계'가 정한 '세계협정시時'의 표준 '1초'란

'외부로부터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는 

세슘 원자가 9,912,531,770번 진동하는 시간'이다. 

절대 시간이다. 

그런데 이와는 다른 실제 지구의 

'자전시時'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하루에

700,000분의 1초씩 느려지거나 빨라지거나 하는 오차를 보인다. 

그 이유는 험준한 산맥을 넘는 바람 때문이라거나,

대양의 해류변화 때문이라거나,

예측할 수 없는 지각변동때문이라거나

하는 설이 있을 뿐이다.

과학적인 원자시와 실질적인 자전시가

미세하게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는 지구과 우주의 운행이 

언제나 반드시

일정하게 안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이유로 '윤초 (閏秒, leap second)'가

도입되었다. 

1972년 이래,

6개월에서 2년 6개월 사이에 한 번씩,

'국제지구자전국 IERS'에 의해

세계협정시에 윤초인 1초가 더해지거나 빼진다. 

하여 그 1초는

내가 알게 된 

가장 고독한 1초다.

말없이 먼 곳으로부터 와서

오랫동안 기다리는

59초와 61초.

1초의 고독.

너를 데려가지 못한 나의 어둠은

그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우주의 운행이 

언제나 반드시

안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것.

사랑이 변질된다거나,

사랑은 순간에만 가능하다거나,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짧은 찰나를 위해

우리의 전 생애가,

우리의 전 우주가

사용된다는 사실이다

1초는 무한하고 고독하다.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이고,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에 대한 진정이다. 

미국의 우주비행사였던 

에드워드 깁슨은 말한다.

'왜인지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우리들의 우주는 어쩔 수 없이 좋은 것입니다. 

그저 그런 것으로 우리들의 눈앞에 있을 뿐이죠. 그걸로 된 것 아닐까요'

                    - 이신조,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너를 기억하기 위해 필요한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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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배원이라는 존재가 그닥 살갑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군대 시절을 제외하자면 편지쓰기를
그닥 즐겨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려서부터 제복에 대한 묘한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편지를 받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오기만을 기다리는 편지
라면 더더욱 말이다.


http://www.for-munhak.or.kr/ -> 문학나눔

http://www.munjang.or.kr/mai_multi/djh/mailman_write.asp?group=3 - >문학 집배원 신청.


어떻게 가입이 되어있는지 모르지만 '문학나눔'에서 일주일에 두 번 편지를 보내온다. 물론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이메일이다. 내가 좋아하기도 하는 김연수씨는 문장배달을, 시인 나희덕씨는 시배달을 한다. 한국어라는 언어가 이뤄놓은 유산들 중에서 각각 산문과 운문의 가장 높은 경지에 달했다고 해도 좋을 두 사람의 안목으로 고르고 고른 글들이니만큼 순도도 높다. 수많은 스팸메일들 중에서도 두 편지가 단연 빛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생각해보건데, 영롱하게 조탁된 이 짧은 글들에 안도하고 위로받는 것이 어쩌면 어느새 한 권의 책을 읽는 것도 버거워하게 된 지금의 나를 위장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 비록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나만을 위해 보내지는 것은 아니더라도 또 한 번 안도하고 위로받는다. 그래서 그저 그런 것으로 내 눈앞에 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 된 것 아닐까.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에 대한 진정이다. '
물론 그 진정은 전달은 될 수 있으되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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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당신을 원망하는 일이 사랑이겠습니까.
 

이제 낱낱이 저에게 스미는 것들을 찾아 
 

저는 어두워질 것입니다 홀로 빛날 당신의 


중심을 위해 저는 오래 더럽혀질 것입니다.

 

                                       - 샘가에서, 이성복



늦은 해에 군대를 갔던 내가 가장 다행스러웠던 것은사령부의 행정병이었던 탓에
막사의 화장실이 여느 일반 화장실 못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작대기 하나와 둘은
어떤 개인행동도 용납되지 않던 시절, 문자는 최대의 호사였다. 그래서 나는 취침
점호가 끝나면 화장실 변기에 앉아 담배를 피며 책을 읽거나, 편지를 쓰거나, 친구
들이 보내준 시집을 필사하며 이 긴 겨울과 여름이 두 번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도 변하고 인걸은 간데 없어도 문자만은 예전의 추억과 욕망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었기에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치욕을 일깨워주는 이성복의 시들을 특히나 사랑했다.
칙칙한 군용 종이위에 거칠게 필사해둔 그의 시들을 주머니에 놓고 가당찮은 낭만을
부리는 것은 더없는 즐거움이기도 했다. 결국 육체의 옥죄임이 정신을 풍요롭게
하지 않았던가. 한획 한획 필사할때마다 드러나는 하나의 어휘들은 그 자체로 시였고
사랑이었고 자유였다. 그 공간이며 그 시간이며 그 남루한 일상들이 때로 희뿌연 안개
속에 모호해지고 어느새 문자의 아우라가 몸을 감싸주기도 했다.

세번째 봄이 오고, 전전해에 옮겨 심어둔 들꽃들이 더 이상 향기를 뿌리지 않고 잡초처럼
무성해졌을 때 나는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어쩌면 빛을 흐리게 만드는 것은 익숙함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때에도 참모부 뒷마당에는 산수유 꽃이 피어 있었다. 
 


나는 해석하는 시보다는 바라보는 시를 좋아한다. 참신한 비유나 혀를 내두르는 필력보다
때로 거칠고 유치하기까지한 언어로 찬찬히 쓰다듬어주기를 좋아한다. 신용목의 시집은
그런 응시, 바라봄, 쓰다듬어주기가 들어있는 시들로 가득 차 있다. 나는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거나 그 향기에 취하기보다는 그저 그곳에 무심히
피어있는 꽃들이 마음에 든다. 돌 사이에 피어있는 산수유처럼.

산다는 것은 산수유 꽃빛만큼 아득하다고 한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물집은 몸에 가둔 시간이라 한다. 그 또한 그럴 것이다.
오랜만에 연필을 들어 필사를 했다. 

 
 

 

 

 


 

------


   산수유꽃


         신용목


데인 자리가 아물지 않는다

시간이 저를 바람 속으로 돌려보내기 전 가끔은 돌이켜

아픈 자국 하나 남기고 가는 저 뜨거움

물집은 몸에 가둔 시간임을 안다


마당귀에 산수유꽃 피는 철도 독감이 찾아 옆구리에

화덕을 끼고 자다 나는 停年이 되어버렸다

 


노비의 뜰에나 심었을 산수유나무

면도날을 씹는 봄 햇살에 걸려 잔물집 노랗게 잡힐 적은

일없이 마루턱에 앉아 동통을 앓고 문서처럼 서러운

기억이 많다

 


한 뜨거움의 때를 유배시키기 위해 몸이 키우는 물집

그 수맥을 짚고 산수유가 익는다고 비천하여

나는 어깨의 경사로 비탈을 만들고 물 흐르는 소리를 기다리다

늙은 것이다

 


시간의 문장은 흉터다 둑 위에서 묵은 편지를 태웠던

날은 귀에 걸려 찢어진 고무신처럼 질질 끌려다녔다

날아간 연기가 남은 재보다 무거웠던가

사는 일은 산수유 꽃빛만큼 아득했으며


나는 천한만큼 흉터를 늘리며 왔고 데인 데마다

산수유 한 그루씩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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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강탈, 태안 기름유출, 대선, 크리스마스같은 굵직굵직한 사건들에 매여있다보니
한 달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흘러가버렸다.  가야할 공연도 가지 못하고 봐야할
책들도 여전히 책장위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통탄하는 중에 몇몇
매체와 사이트에서는 여전히 '올해의 책'을 발표했다.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책들은
물론 출간 자체가 의미있었던 여러 분야의 다양한 책들이 실려있는 것을 보니 그간
참 책을 읽지 않았구나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메이저 신문사에서 선정한 리스트들은 그다지 개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그저 그런
무난한 것인데 비해 시사IN에서 발표한 송년 특집 '올해의 책'은 두껍지 않은 분량 중
에서도 15페이지에 걸쳐 하나의 책만 아니라 각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작품들을 여러
출판사의 편집자와 해당 전공자 및 전문가들의 추천을 받아 충실하게 싣고 있어 마음에
든다. 지난 호수를 구하려다 실패했는데 마침 정기 구독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 도움을
구했더니 흔쾌히 빌려준 동기 조제행 'PD'에게 감사를.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704
- 하단의 관련 기사 란을 보면 각 분야에 대한 자세한 서평과 수상 이유들을 꼼꼼히 적어놓았다.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book_m.aspx?pn=071226_media
-  알라딘은 주요 신문과 협회에서 뽑은 올해의 책을 잘 정리해두었다.

 

 

 

 

 

 

 

 


실린 책중 에서는 스스로 광팬이라 자부하는 김연수의 책과,  최장집 선생의 책만을 구입해서 읽었을
뿐 부끄럽게도 나머지는 제목마저 생소하다. 다른 매체를 보면 김훈의 '남한 산성' ,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  루트버스타인의 '생각의 탄생',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우석훈 교수의
'88만원 세대' 황석영의 '바리데기', 등이 고루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오늘 교보에 들러 '세계만물그림
사전'을 보니 편집자의 노력이 한 눈에 보이는 역작이었다. 사람 인체의 세부에서부터 주위의 공구들,
기계들, 거의 모든 생물-무생물체를 그림과 함께 한-영-불-독-서 5개국어로 인덱스를 달고 있어 11만
원이라는 거금이 아깝지 않다. 

 

 

 

 

 

 

 

 

자기만의 2007 올해의 책 리스트를 만들라하면 파스칼 키냐르의 새 소설집 '섹스와 공포',  고종석의
'바리에테', '1900년 이후의 미술사', 문혜진의 '검은 표범 여인', 마루야마 마사오의 '문명론의 개략을읽는다', 재출간된 박홍규 교수의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 강독',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
열차' 경향신문 출판부의 '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절망', 진태원씨의 번역으로 다시 나온 자크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 윤대녕의 '제비를 기르다' 정도를 추가하고 싶다.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예전의 포스팅을 기억하는 독자분이나 지인들은 눈치채셨겠지만 '1900년 이후의 미술사'는 친구
들의 노작이라는 이유로도 (물론 그 질 또한 보장할 수 있지만), 그리고 올해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문혜진 시인의 시집은 친구의 와이프라는 정말 개인적인 이유도 들어가 있다. ^^

 수습 시절에는 뇌가 굳을까봐 기를 쓰고라도 책을 보고 영화를 돌렸었는데 이제 몇 년 흘렀다고
조금 나태해진 것은 아닌가하는 반성을 하게된다.  내년 이맘때쯤에는 지금의 부끄럼이 조금은
줄어들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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