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갑자기 휴즈가 나가서 가뜩이나 채광도 안좋은 방이 달빛마저 없으니 칠흑빛이
되어 버렸다.  구석을 뒤져 촛불을 꺼내 밝혀두고 있으니 초라함이 없지 않으나 은근한
풍취가 오는 듯하여 과히 나쁘지 않다. 벽 한켠을 비워두고 어릴때 했던 그림자 놀이
장난도 하면서 독수리며, 개며, 꽃봉오리들이 이리저리 흩어지는 모습들을 보며 홀로
청승을 떨고 있는 것도 즐겁지 않다할 순 없겠다.

플라톤 같은 이들이 봤으면 사물들이 모두 이데아의 한심한 그림자일테고 또 그 사물의
그림자를 가지고 여흥을 즐기려하니 그야말로 그림자의 그림자에 혹한 우둔한 짓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
 
나는 다산을 잘 모른다. 
주입식 교육의 탓에 그가 '목민심서'의 저자이며, 수원성 건축때 거중기를 이용했으며
서학에 적극적이었고 머나먼 전남 강진으로 유배되어 초당을 지어 살았다는 얇은 정보가
내가 아는 거의 대부분이다. 그의 대표적 저작인 '목민심서'는 전공자가 아닌 나로서는
그 현대적 의의를 논하기에는 과문하고, 제목만 들어 알고 있는 흠흠신서니 경세유표니
하는 저서들은 구하려는 시도조차도 해본 적이 없다. 다만 그가 오규 소라이를 알고 있었다
는 것과 시대에 열린 인물이었으며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으면서도 각각의 깊이가 얇지
않았음은 어렴풋이 느낄 정도이다. 




 
얼마전 분황을 보기 위해 경주행 기차를 올라타면서 유마경 강의록과 다산의 문집 한 권을
챙겨간 적이 있었다. '뜬 세상의 아름다움'이라는 낭만적인 제목을 단 이 책은 다산이 저술
한 '여유당 전서' 가운데서 격조가 뛰어난 글들을 가려 엮은 것이다. 조선 후기 유학에 있어
선구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무게를 넘어 이 속에는 흔히 유학자들에게 가지는 선입견인
꼬장꼬장함의 인상을 단순히 넘게해 줄만큼 다양하고 인간적인 면모들이 담겨 있다. 

 




개중에는 악보를 빌려달면서 '째째하게 굴지말고 빌려주십시오' 라고 한다든가  개고기를
맛있게 요리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같이 유배를 갔던 형 약전에 대한 그리움,  기득권
세력에 대한 반감, 의미없어 보이는 세상에 대한 애착,  친한 친구들에 대한 우정이 가감없이
펼쳐진다.

나는 이 속에서 '그림자 놀이 菊影詩序'를 아껴두고 음미하는데 그 내용이 사뭇 낭만적이다.
짧지 않은 중후반부를 인용해보면,


    하루는 남고와 윤이서에게 들러 그와 이야기하다가, 
    "오늘 저녁에는 저희 집에서 주무시면서 저와 국화 구경이나 하십시다" 
    하였다. 이서는 
    "국화가 아름답기야 하지마는 무슨 밤에 구경할 거리가 된단 말인가."
     하더니 병을 핑계로 사양한다. 


    나는 
    "한 번 보시기나 하십시오"
    하고는 굳이 청하여 함께 돌아왔다. 저녁이 되자  짐짓 동자에게 촛불을
    꽃 한 송이에 바싹 갖다대게 하고는, 남고는 끌어다 보여 주며, 
     "기이하지 않습니까?"
     하였다. 남고는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이상하이. 자네 말이, 나는 이것이 기이한 줄 모르겠네"
    한다. 그래 나도,
     "그렇지요"
    하였다. 

    잠시 후 다시 동자에게 원래 법식대로 하도록 시켰다. 그래서 옷걸리며 책상 등
    산만하고 울멍줄멍한 물건들을 모두 치우고, 국화의 위치를 정돈하여 벽에서 
    약간 떨어지게 한 다음, 촛불을 적당한 곳에 놓아서 국화를 비치게 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기이한 무늬, 이상한 형태가 온 벽에 가득 찬다. 
 
    그 중에 가까이 있는 것은 꽃과 잎이 서로 어우러지고 가지와 곁가지가 정연해서
    마치 묵화를 펼쳐 놓은 듯하다. 그 다음 것은 너울너울 얇은 깃털 옷을 입고 춤추듯
    나풀대는데 마치 달이 동쪽으로 고개에 뜨자 뜰의 나뭇가지가 서쪽 담장에 비치는
    것 같다. 그 가운데 멀리 있는 그람자는 구름이나 노을이 엷게 깔린 듯 흐릿하고 
    모호한가 하면, 파도가 질펀하게 일렁이듯 사라져버리기도 하고 소용돌이치기도
    해서 언뜻언뜻 비슷한 듯도 하지만 무어라 형용할 수가 없다. 

    이것을 보자 이서는 큰 소리를 지르며 기뻐 날뛰더니, 손으로 무릎을 치며 
    "기이하구나! 이상도 하구나! 천하의 절승이로구나!"
    하고 감탄한다. 

    감탄이 진정되자 술을 내오게 하였다. 술이 거나해지자 함께 시를 지으며 즐겼다.
    이때 주신과 혜보과 무구도 같이 모였다. 

                                                  
-----------




흔히 국화를 오상고절 傲霜孤節 이라 부른다. 그것은 가을의 서리를 오만하게 여길 정도의
절개를 나타내는 말이다. 세도정치와 당쟁의 먹구름이 가을 서리처럼 차갑게 세상을 덥고
있을 때에도 정약용은 경전을 가려 읽고 당대의 목민관들이 가져야할 응당한 윤리에 대해서
논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던 과학에도 눈을 가리지 않고 있었다. 그러하기에 오상고절의 국화
는 그에게 잘 어울려 보인다.

늦가을이라 하기엔 이미 차가워져 버린 공기가 피부에 와닿은 한 밤에 그림자 놀이에 취해
있다가 문득 예전에 읽은 얇은 책을 꺼내들고 잡생각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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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카가 없어서 핸드폰으로 찍어 구린 칼라가 되어 버린 왼쪽의 책은 박*연씨가 정성들여
구해준 포르투갈어본 장미의 이름 O nome da rosa 이다.  다음 컬렉션은 아마 중국어본
이나 러시아본 정도가 되지 않을까 스스로 예상하고 있었지만 전혀 생각지 못한 인연의
을 빌어 쉽게 구할 수 없을 것 같았던 포르투갈어본이 서가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쁜 일이다.  주연, 그라시아스.

포르투갈이라고 해봤자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은 기껏 부루마블을 통해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수도 리스본 (리스보아)이나 지리상의 발견을 논할 때 의례 등장하는
마젤란, 바스코 다 가마, 바르톨로뮤 디아스같은 탐험가들의 이름, 가까이는 에우제비오로
시작해 루이스 피구로 계승되어 호날두로 이어지는 축구 천재들의 계보 , 거기에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로 대표되는 전통음악 파두 정도일 것이다.
예전에 기억나는 오렌지 쥬스 CF에서 Tao Bon 따봉!! 이라는 말도 그리 낯설지는 않다.

아시다시피 포르투갈어는 대항해 시대의 제국주의 침략에 힘입어 이베리아 반도의 그리
크지 않는 나라인 포르투갈이외에도 브라질과 몇몇 포르투갈령 아프리카, 중국의 마카오,
의외로 인도의 한 지방에도 쓰이고 있다. 이것은 이 나라의 역사가 한때 그들의 입장에서는
찬란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의 차이, 본토 포르투갈어와 브라질산 포르투갈어의 차이는 예전에
잠시 언급한 적이 있으니 넘어가고, 특이한 정관사 O를 제외한다면 이름을 나타내는 명사
nome는 이탈리어어의 nome의 형태를 그대로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또한 nombre(스),
nom(불), name(독), namn(스웨던) 등과 같이 친족관계를 이루는 언어들의 분화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전치사da 역시 de la, der, della와 멀어보이지 않고 rosa는 말할 필요없이
이 낯선 언어가 옛날 로마 제국의 언어였던 라틴 속어에서 갈라저 나온 수많은 로망스 제어
중의 한 무리에 속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그러니까 초급 스페인어 정도에 익숙한 이라면, 

  Quero ver o libro da poetica de Aristoteles, aquele que todos consideran perdido,
  ou jamais escrito, e do qual tu guardaz talvez a unica copia, (엑센트는 생략) 

라는 포르투갈어 문장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책을 보고 싶습니다. 모두가 사라졌다고, 아니면 아예 쓰여지지도
   않았다고 생각하는 아마도 당신이 가진 유일한 한 권의 그 책 말입니다
." 

라는 정도의 의미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 

위의 문장에 관해서 다시 한 번 살펴보자면, 기나긴 현학과 교리 논쟁과 여러 사람의 죽음을
뚫고 마침내 음모의 정점에서 '웃음' 이라고하는 것의 실체가 드러나는 장면이다. 윌리엄의
지혜와 호르헤의 경륜이 불꽃튀며 작렬하는 순간, 독자는 공허함과 경박함의 표상으로서
반대로 공포를 극복하고 진정한 인간성에 다가설 수 있게만드는 도구로서의 웃음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인류가 형상을 인식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또는 문자로 대상을 나타내는 능력을 습득한 이래로
그들은 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을 희화화시킴으로서 그 공포를 극복해내왔다. 동굴벽화
에서부터 민화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목숨을 위협할 만한 맹수와 인간의 운명을 관장하는 신적
존재들은 거의 대부분 예외없이 혈거인의 손에서부터 화공의 손을 빌려 우스꽝스러운 형태로
나타난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과의 투쟁의 장에서 조금씩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다는 상징이기도
하다.  

   범부들에게는 웃음을 제어할 무기가 없기 때문에 이들을 영생으로 이끌고 배와 엉덩이와  
   먹을 것과 더러운 욕망으로부터 이들을 구하자면 마땅히 목자들은 이를 엄격한 규율 아래  
   에다 두어야 하는 것이오. - 호르헤 수사

그런 웃음을 '그리스도가 웃지 않았다'라는 하나의 명제로서 억압하고자 하는 시도는 덧없어보인다.
독실한 이의 입장에서는 경건함의 대상이 되어야할 존재가  회화화 되는 것을 나아가그 존재 또한
어떤 대상을 웃고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에코의 손을 빌려
아스토텔레스가 말하듯 

     제 1부에서 우리는 비극을 다루면서 이 비극이 연민과 공포를 야기시킴으로써 카타르시스    
     의 창출을 통해 이러한 감정을 씻어 내는 과정을 검토해 보았다. 이제 약속대로 희극을 풍자    
     광대극과 거불어 다루면서 이 희극이 어리석은 자들을 즐겁게 함으로써 비극과 같은 작용을    
     하는 과정을 검토해 보기로 하자. 

라는 문장을 통해 오래 전 문명의 총화를 누렸을 그리스인들이 어째서 비극과 동시에 희극이라는
장르를 창조해냈는지, 그리고 양 극단에 서있을 법한 희극과 비극이 실상 같은 효과를 노렸다는것을
알 수 있다. 사라진, 어쩌면 쓰여지지도 않았을 희곡으로 유추하는 것은 어려우니 비극을 통해 추론을
해보자면, 김상봉 교수는 그리스인이 비극을 만들었던 이유는 비극을 통해 슬픔을 생각하고 "슬픔의
의미와 고통의 존재 이유를 묻는 것,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 그리고 가장
깊은 슬픔과 절망 속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다시 '장미의 이름'의 대미 부분에 나오는 윌리엄의 말,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의 할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비웃게 하고, 진리로 하여금 웃게   
    하는 일일듯 하구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좇아야 할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겠느냐. 

과 일맥상통한다. 결국,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넘어서 그리도 유치에 보이는 '인류에 대한
보편적 사랑'이 웃음이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장미의 이름'이 소중한 이유는, 그리고 내가
끊임없이 이 서책을 모으려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들은 다시금 깨우쳐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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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을 쓰고자 함은 아님)

 

 

 

 

 

 

 

 

제목에서 알려주듯 이 책은 1900년 아르누보에서 시작해서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마치는
대장정을 다루고 있다. 연대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언뜻 쉽게 접근할 수 있어 보이지만  그러나
잰슨의 '서양미술사',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라든가 웬디 수녀의 책, 미술사학자라고 하는 모씨의
책처럼 일반인들이 교양을 위해서 접근하기에는 다소 힘겨워 보인다.

  투명성에 대한 브라크의 헌신은 그가 시각예술의 가시성에 충실했다는 것, 다시 말해 
  다이어페인으로서의 회화 전통에 충실했음을 나타낸다 

라든가 

   이런 사진의 가능성으로 인해 원작의 미학적 통일성은 해부되며 새롭고 충격적인 
  이식이 이루어진다.... 고전적인 미학은 부분에서 전체로 나아가지만 우리 시대의 
  미학은 전체에서 부분으로 나아가며, 이런  측면에서 사진 복제는 중요한 수단으로 
  부각된다


와 같은 서술들은 이 책을 박물관 여행에 앞서 사전 지식을 쌓으려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텍스트임을 보여준다. 상태좋고 다양한 도판으로 해설을 돕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서술의
방식이 작품의 도상이나 연원을 자세히 설명해준다는가하는 부분은 극히 적기 때문에 제목만으로
20세기 미술사를 개괄할 목적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다지 적합한 책은 아니다.  704페이지에 달하는
분량과 9만 5천원(!!)이라는 가격까지도. 

 미술사학계의 올스타 멤버들이라고 할 수 있는 할 포스터, 로잘린드 크라우스, 이브 알랭 브아, 벤자민
부클로 등 저자들이 대학원 미술사 세미나에서도 가볍지않게 다루는 수준의 텍스트를 썼던 사람들이기
도 하지만 원체 근-현대 미술 내외부에 걸려있는 담론들이 작품 자체보다 더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론에 익숙치 않다면 텍스트를 따라가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로쟈'님 역시 "공부하는 학생은 물론, 심도 있는 논의를 원하는 연구자 및 미술가들"이 아닌 경우에는 그냥 장서용으로 꽂아둠 직하다. 그런 게 '교양'이므로.." 라고 할 정도. ^^;

'미술史'에서 가장 필요없는 것이 '미술'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기는 한데 현대 미술사에 관한 개괄
을 마쳤거나 인문학적으로 다양한 방법론을 이용해서 작품과 그 배경을 분석해나가는 스타일에 관심
이 있는 이들에게는 매력적인 텍스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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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이 글은 쓰는 것은 통상적인 리뷰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 책이 친구들에
의해 번역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친구라고 했지만 걔 중에는 대놓고 친하다고 할 사람들, 충분히 알고
지내는 사람들, 친구라고 하기엔 얼굴만 알고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편집자의 노고가 돋보이는 대목은 이 책이 원서와 같은 구성을 취하고 있다는 것, 원서의 페이지수뿐
아니라 각 챕터별로 구성은 물론 분량까지도 거의 동일하게 맞추고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결벽에 가
까운 이 주문을 맞추기 위해 친구들이 기울였을 노력은 충분히 이 책의 출판을 자랑스럽게 만든다. 

문득 드는 생각은, 내가 만일 조금만 더 학교에 남아 있었더라면, 그래서 이 친구들과 조금 더 같이
있었더라면 내 이름도 이 책에 오를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다. 성격이 한 우물을 파지 못하고
여러 우물을 조금만 파다 지쳐버리는 타입이라 딱히 그럴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도 들지만 내가 아쉬운
만큼 친구들의 노고가 가상하기도 하다. 

올 봄 이 친구들을 만날 때 금해야할 인사말은 '번역 잘 되가냐'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표정에서 읽히는
지지부진한 작업의 진전도가 너무 뻔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와중에 홍대에서, 광화문에서 같이 했던
몇 번의 술자리와 밤새워 쳤던 고스톱이 그들의 작업에 심적으로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까하는 망상
(행여나 그랬을까싶지만) 으로 위로를 삼는다.
  
- 이거 참, 돈 주고 산 단행본 중에서는 젤 비싼 책인 듯, 어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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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 언론고시를 준비하던 내 룸메가 어느날 서류 합격 통보와 함께 받아온 용지에는

'사회 저명 인사의 추천서'라는 문구가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 언론사는 매일경제신문

이었다. 나는 그 이후로 매경이라는 언론사를 믿지 않기로 다짐했었다. 

 

기대에 실망하지 않게 이번 매경 칼럼은 아주 훌륭했다.  점점 더 일취월장 발전하여

한국 자본주의의 막장을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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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왕국의 언론 지배, 여기까지 왔다

[경제뉴스 톺아읽기] 매경 "흠집처럼 보이더라도 합리적으로 무시하자"
 

2007년 10월 31일 (수) 07:49:22 이정환 기자 ( black@mediatoday.co.kr)
 

   
     
 
삼성 법무팀장 출신 김용철 변호사의 핵폭탄급 양심선언은 언론에 '진실게임'이나 '논란' 정도로 소개되다가 이틀 만에 아예 지면에서 사라지고 있다. 31일 전국단위 일간지 가운데 비자금 사건을 다룬 곳은 한겨레와 경향신문, 조선일보, 그리고 매일경제가 전부다.

31일 매일경제 6면에 실린 데스크칼럼 <불편한 진실, 불량한 폭로>는 그야말로 왜곡과 궤변 덩어리다. 언론의 자본 종속이 어디까지 왔는가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동주 사회부장의 글이다. 좀 꼼꼼히 들여다보기로 하겠다.

비자금 기사, 한겨레 경향 조선 매경 뿐

이 부장은 "고위 공직자들이 재산등록을 회피하려 요리조리 꼼수를 쓰고 부자들이 어떻게든 가진 걸 감추려 든다 해서 나무랄 일만은 아닌 듯하다"고 글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애꿎은 테레사 수녀를 끌어들인다. "평생을 '빈자(貧者)의 어머니'로 살았던 성녀 테레사조차도 지갑 좀 보여달라 했다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대목에서는 아연실색할 정도다.


   
  ▲ 매일경제 10월31일 6면.  
 
고위 공직자들이 재산 등록을 회피하려 꼼수를 쓰는 건 그 재산이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자들이 가진 걸 감추려 드는 건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 부장은 "나무랄 일만은 아닌 듯하다"고 두둔한다.

테레사 수녀에게 지갑을 보여 달라고 했으면 아마도 그는 자랑스럽게 자신의 가난을 드러냈을 것이다. 가진 것을 숨겨야 하는 사람들과 물욕을 초월했던 테레사 수녀를 비교하는 이런 억측은 그를 모욕하는 것이다.

"진실게임 때문에 난장판 됐다"

이 부장은 "요즘 우리 주변에는 진실게임이 난무하고 있다"면서 "하루가 멀다하고 꼬리를 무는 폭로와 해명 속에 한국 사회는 온통 난장판이 됐다"고 적고 있다.

"'폭로의 귀재'들이 득실대는 정치권에서 상대방 대권후보의 과오를 진실게임으로 몰아가는 모습은 5년 전과 흡사하다. 국정감사는 난데없는 국회의원 향응접대 파문으로 엉뚱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검찰 수사도 만만찮다. 변양균·신정아씨 사건에 이어 국세청장 상납의혹이 불거지면서 검찰과 국세청은 피의자 진술의 신빙성을 놓고 끝장토론식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삼성에서 보통 사람은 엄두도 못낼 호사를 누리다 퇴직한 법조 출신 임원이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을 폭로하는가 하면, 대학 총장 부인이 편입학 대가성 돈을 받았다며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삼성그룹 비자금을 둘러싼 의혹을 진실게임으로 평가절하하는 것도 어처구니 없지만 이를 두고 난장판이 됐다고 개탄하는 건 도둑 잡으라고 외쳤더니 시끄럽다고 나무라는 꼴이다. 심지어 양심선언을 한 김용철 변호사를 두고 '폭로 전문가'로 매도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시기적으로 폭로의 유혹에 이끌리기 딱 좋은 철이다. 정권은 임기 말에 접어들어 휘청거리고, 대선은 코앞에 와 있고, 사회기강은 풀어질 대로 풀어져 있으니 폭로 전문가들에겐 이때다 싶을 것이다."

이 부장은 진실과 관련해 흔하게 생기는 세 가지 오류를 정리했다. 행간을 살펴보자.

"첫째, 사람들은 사실(facts)과 진실(truth)을 쉽게 혼동한다. 사실은 한 개 행위만으로 성립하지만 그것이 진실로 받아들여지려면 많은 사람이 공감할 만한 반복과 누적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어느 하룻밤에 달이 뜨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달이 사라졌다고 하는 건 진실이 아니라 주장이다."

누구도 김 변호사가 제기된 의혹을 진실로 혼동하지 않는다. 진실로 받아들여지려면 반복과 누적과정이 필요한 게 아니라 진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역할을 언론이 해야 한다. 그런데 이 부장은 진실이 아니라 주장일 뿐이라고 깎아 내리고 있다.

"자기 침실에 CCTV 설치할 용기 없으면 떠벌리지 마라"

"둘째, 모든 진실은 공개되는 것이 옳다는 착각이다. 신정아씨 누드사진이 각계 반발을 초래한 것처럼 진실에는 공개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자기 침실과 욕실에 CCTV를 설치할 용기가 없다면 진실을 모조리 다 밝히라고 떠벌리길 삼가야 한다."

삼성 비자금 의혹은 공개할 가치가 없는 의혹인가. 국내 최대의 재벌 대기업이 수천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과 침실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나. 이게 도대체 언론이 할 소리인가. 침실에 CCTV를 설치할 용기가 없으면 입을 다물라는 말인가.

"셋째, 진실은 누구 입에서든 나올 수 있다는 오해다. 진실성이 부족한 사람에게서 제대로 된 진실이 밝혀지는 걸 본 기억이 없다. 가치 있는 진실은 김대업 사건처럼 동네방네 시끄러운 입에서 나오기보다 오히려 앨 고어의 다큐멘터리처럼 송구스럽게 다가온다."

이 부장은 김 변호사를 김대업씨와 같은 사람으로 놓고 진실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단정짓는다. 그래서 김 변호사가 제기한 의혹은 가치 없는 진실이라는 이야기다. 의혹은 이제 막 제기됐을 뿐인데 이 부장은 무슨 근거로 가치 없는 진실이라고 판단하는 것일까.

궤변은 계속 이어진다. 이 부장은 우리가 인정해야 할 불편한 진실이 "우리 모두가 관음증 환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주장한다. "젊은 아가씨 치맛자락을 허락 없이 들춰보는 듯한 재미에 빠져 어느 것이 가치 있는 진실이고, 어느 것이 묻어 둘 진실인지를 혼동해선 안 된다"는 해괴한 주장을 늘어놓기도 한다.

의혹을 폭로하는 것과 젊은 아가씨 치맛자락을 들춰보는 것이 같은가. 삼성의 비자금 의혹은 과연 묻어둬야 할 진실인가. 이 부장의 진의는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치맛자락 들춰보는 듯한 재미에 빠져 있다"

"때론 사회의 흠집처럼 보이더라도 불완전한 인간이 모여사는 곳엔 '합리적 무시'가 필요하다. 도무지 양보와 인내를 모르는 폭로꾼들이야말로 사회를 위협하는 '한국판 탈레반'이라고 나는 폭로한다."

매경은 진실을 가리는 데 관심이 없다. 흠집처럼 보이더라도 합리적으로 무시하자는 이야기다. 양보하고 인내하자는 이야기다. 폭로가 사회를 위협한다고 한다. 이게 대한민국 언론의 참담한 현주소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칼럼이 버젓이 전국단위 일간신문에 실린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다른 경제지들의 반응도 놀랍다. 서울경제 등은 아예 노골적으로 삼성전자 찬가를 부르고 있다. 때가 때인만큼 화제를 돌리려는 물타기 또는 연막작전일 수도 있고 적극적인 지지 표명일 수도 있다. 삼성의 언론 지배력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경제지들은 광고 매출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재벌 대기업의 의혹을 무작정 덮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언론이라는 최소한의 책임감이나 자의식조차도 없다.

비자금 의혹에는 침묵…오찬 간담회 소식으로 도배

서울경제는 1면 <삼성전자 "2012년 매출 120조">에서 언론사 증권담당 데스크와 함께 한 오찬 간담회 소식을 전하고 있다. 비자금 관련 언급은 단 한 줄도 없다. 서울경제는 1면에 이어 3면을 통째로 털어 삼성전자의 '6대 신성장 엔진 육성' 계획에 대해 다루고 있다. <삼성전자 주가 너무 저평가>라는 주우식 부사장의 인터뷰를 따로 싣기도 했다. 오찬 간담회 관련 기사치고는 비중이 지나치게 큰 데다 딱히 새로운 내용도 없다.


   
  ▲ 서울경제 10월31일 3면.  
 
머니투데이도 1면과 3면에 걸쳐 삼성전자의 해외 M&A와 간담회 소식을 전하고 있다. 머니투데이는 3면 <삼성전자 "5년 뒤 매출 150조">에서 주우식 부사장이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을 만나기 위해 약속 신청을 해놓았다는 사실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고 전했다. 머니투데이도 비자금 관련 언급은 단 한 줄 없다.


   
  ▲ 머니투데이 10월31일 3면.  
 
한국경제도 1면과 17면에 걸쳐 같은 소식을 다루고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1면에 <삼성전자 500만화소 폰 글로벌 론칭> 사진을 내걸었다. 사태의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이처럼 언론이 침묵하고 있는 이상 이 사건은 영원히 미궁으로 빠져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침묵의 카르텔…검찰과 금감위도 미적미적

한겨레는 30일에 이어 31일도 1면과 3면, 4면에 걸쳐 삼성 비자금 의혹을 비중있게 보도했다. 한겨레는 4면, <"삼성, 2002년 대선자금도 비자금서 제공">에서 "지난 대선 때 삼성 계열사 사장들이 개인 명의로 정치권에 제공한 후원금은 모두 회사 비자금에서 나왔다"는 김 변호사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 한겨레 10월31일 4면.  
 
한겨레에 따르면 검찰은 "수사 의뢰가 들어오면 착수하지만 먼저 나서지는 않는다"는 입장이고 권혁세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국장도 "일정 정도 사실 관계가 드러나야 검사에 착수할지 여부를 알 수 있다"고 밝혔다.

한겨레에 따르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수사 의뢰를 하는 순간 삼성의 각본대로 김용철 개인의 문제로 끝날 수 있다"며 "당분간 검찰과 삼성의 대응을 지켜보며 2, 3탄 폭로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 조선일보 10월31일 사설.  
 
조선일보도 사설에서 문제제기를 했다. 당초 중립적인 입장에서 선회한 것이다. 조선은 "재무담당 임원이 회사와 관계도 없는 외부인의 재테크를 도와주기 위해 동료 임원의 이름까지 빌려 차명계좌를 만들었다"는 삼성의 주장이 석연치 않다고 지적했다. 조선은 비밀계좌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의 편의를 위해 은행으로부터 이런 협조를 받을 수 있을까"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경향신문도 사설에서 상황을 명확히 정리했다. 분명한 것은 김 변호사의 명의로 차명계좌가 개설됐고 출처가 불분명한 거금이 이 계좌로 입출금됐다는 것이다. 경향은 금융실명제 위반과 사문서 위조는 물론이고 "횡령과 조세포탈의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했다.
최초입력 : 2007-10-31 07:49:22   최종수정 : 0000-00-0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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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짐작에, 그 시절 비공식적으로  가장 인기있었던 무협지는 만화방 구석에서 파란색 표지를 
 둘렀었던 와룡강의 작품들이었겠지만 역시나 최고는 김용의 영웅문 3부작이 아니었을까. 물론
 영웅의 신화가 나중에 녹정기를 통해 부정되기는 했어도 가장 무협지다운 플롯과 개성을 지닌

 소설로서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의 3부작은 중고등학교 내내 읽고 또 읽어 책이 다
 닳아버려 또 사서는 밑줄칠 만큼 대단한 애정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영웅문을 좋아하는 친구들
 끼리 영퀴를 나누듯 '장무기가 광명정에서 멸절사태와 싸울 때 제일 먼저 구사했던 초식은 무슨
 파의 무슨 초식이었을까' 라든가 '홍칠공이 여생에게 전수해줬던 초식은 항룡십팔장 중의 제
 몇 장 무엇이었는가' 식의 영웅문 퀴즈를 서로 내곤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에어울프가 세냐
 전격 Z 작전의 키트가 세냐 식으로 김용의 작품 중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에 무림 최고의 고수 는과연 누구일까하는 것도 단골 메뉴 중의 하나였다. (아마도 독고구패)




 요즘에야 홍콩 드라마를 챙겨 볼 일이 없고 대세 또한 미드와 일드로 넘어간 지 오래이기는해도
 예전 홍콩 TVB에서 나오던 무협지 시리즈들은 중고등학교 시절 가장 흥미로운 볼거리 중의 하
 나였다. 주윤발과 유덕화의 치기 어린 시절도 포함되어 있고 지금은 영화사에 기록되어도 모자람이 없을 양조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니 혹여나 중간에 누가 하나를 빌려가서 이빨이 빠져 있으면 그거 기다리는 애환이란 마치 중요한 택배 기다리는 학의 심정의 그것과도 같은 것이었다.


 신필이라 불릴만한 김용의 필력이야 장대한 3부작 내내 유려하게 이어지기는 하지만 나는 수많은
 그의 문장 중에서 이막수가 읊조리던 싯구 '세상사람들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길래 생사를 가름
 하느뇨' 를 아직까지도 가장 사랑한다. 냉정하고 잔인한 야차의 모습을 지닌 그녀이지만 양과와 
 소용녀의 모습에서 자신을 버린 옛 연인를 떠올리고 결국 절정곡 (정을 끊어버리는 계곡일세)
 으로 몸을 던지며 내뱉던 그 싯구는 신조협려 문장 중의 가장 백미라 할 만하다.  소설 속에는 
 일부만이 인용되지만 량서우쭝이 지은 '강호를 건너 무협의 숲을 거닐다'에 보면 그 속에 얽혀
 있는 문헌사를 상세히 전하며 전문을 게재해 놓았다. 

 
         問人間                           세상사람들에게 묻노니
         情是何物  直敎生死相許  정이란 무엇이기에 끊임없이 생사를 가름하는가
   
         天南地北雙飛客             하늘과 땅을 가로지르는 저 새야,
         老翅幾回寒暑                 지친 날개로 추위와 더위를 몇 번이나 겪었던고.
         歡樂趣 離別苦                만남의 기쁨과 이별의 고통 속을 헤매는 
         是中更有癡兒女              어리석은 여인이 있었네.
    
         君應有語                        님께서 말이나 해주시련만
         渺萬里層雲 千山幕景       만리 첩첩이 구름 덮힌 산에 노을질 때
         隻影爲誰去                     외로운 그림자 누굴 찾아 날아갈꼬.
    
         橫汾路  寂寞當年蕭鼓      분수의 물가를 가로 날아도 그 때 피리와 북소리 적막하고
         荒煙依舊平楚                  초나라엔 거친 연기 의구하네.

         招魂楚些何磋及               초혼가를 불러도 탄식을 금하지 못하겠고
         山鬼自啼風雨                  산귀신도 비바람 속에 몰래 흐느끼는구나.
         天也妬 未信與                 하늘도 질투하는지 더불어 믿지 못할 것을
         鶯兒燕子俱黃土               꾀꼬리와 제비도 황토에 묻혔네. 
       

         千秋萬古 爲留待騷人       천추만고에 어느 시인을 기다려 머물렀다가 
         狂歌痛飮                        취하도록 마시고 미친 노래 부르며
         來訪雁丘處                     기러기 무덤이나 찾아올 것을.


   금나라 시인 원호문의 '매피당' 중의 일절인 이 구절은 기러기의 죽음에 빗댄 절절한 가사로서 
   연인을 잃어버린 한 여인의 피토하는 서정가이자 16년 또한 오직 한 사람만을 기다렸던 양과와
   소용녀의 이야기를 대변해주는 애절한 연가이도 하다.  한 가족 몰살하는 것쯤은 아무렇지않게
   여기는 비정한 살수이지만 이쁘니까 다 용서되는 이막수와 선녀의 용모를 가진 것으로 묘사되는
   소용녀는 그러니까 그 시절 남중고딩들이 한번쯤 가질만한 판타지의 여인들인 것. 나는 비교적
   현실적으로 조민을 가장 좋아했다. 

 


   (조민(여미한), 장무기(양조위), 주지약(기억 안남) )

 

   내 취향으로는 사조영웅전이 장대한 스케일을 만끽하는 재미가 있었고 신조협려는 양과와 소용녀
   의 가슴아픈 사랑에 감정이입을 했었어도 읽는 재미 자체는 장무기의 의천도룡기가 으뜸이었다. 4권
   이 지나야 본격적으로 그의 활약상을 볼 수 있는 것이 분량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지만 
   (3부 1,2,3 권은 언제부터인가 책꽂이에서 보이지 않았다. ) 그만큼 또 밀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좋았고 압도하는 무공을 지니고 있었어도 그 나이때에 그럴 법한 우유부단한 성격 또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좋았다.  후에 여러 편이 다시 제작되어 몇몇 배우가 장무기의 역을 맡았어도 
   양조위가 그 역활에 가장 어울려 보였던 것도 아마 그런 면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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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영구 선배와 함께 일을 나갔다가 의천도룡기가 새로 번역되어 나왔음을 들었다. 김일강
  의 번역으로 익숙했던 것을 다시 보니 어투가 현대식으로 많이 바뀌었고 예전에 누락되었던 부분
  들이 많이 보완되어 원래 6권짜리였던 것이 8권으로 증보되었다. 전체 작품을 '백량체'의 구성으로
  40장으로 나눈 각 장마다 제목을 붙인 것도 달라진 부분이다. 주요 부분들은 큰 변화가 없었지만 
  몇몇 인물들의 이름표기가 변한 것 - 소소, 은이정 - 이라든가 여운을 많이 남겼던 마지막 부분 -
  세 번째 소원 이야기로 즐거워하던 조민과 장무기앞에  주지약이 나타나 훼방을 놓던 - 이 원작에 
  따라 약간 늘어지는 것등 의 변화는 낯설고 아쉬운 부분들도 있다.  시네마 천국처럼 차라리 몰랐
  더라면  더 좋았을 법한 감독판을 보는 기분이랄까. 헌 것이 새 것보다 나을 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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