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신은 곧 여든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센티미터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킬로그램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여느 때보다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 자리가 생겼습니다. 오직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당신에게 이 몇 마디를 꼭 한 번 
        전하고 싶었습니다.

                                                      - 앙드레 고르, 'D에게 보낸 편지'


        갑자기 떠나게 되었습니다. 찾아가서 말로써 오늘 제가 먼저 가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만 대화란 항상 의외의 방향으로 나가 버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글로써 알리는 것입니다. 간단히 쓰겠습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제 자신이기 때문에, 적어도 제가 어렴풋이나마 사랑하고 있는 옛날의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옛날의 저를 오늘의 저로 끌어 놓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할 작정
        입니다. 저를 믿어 주십시오. 그리고 서울에서 준비가 되는 대로 소식 드리면 당신은 
        무진을 떠나서 제게 와 주십시오. 우리는 아마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김승옥, '무진기행'


         당신은 여인이니 부디 어여쁘시기 바랍니다.      

                                                   - 윤대녕. '상춘곡'

 
2.


 

 

 

 




                  

고종석의 신작 '어루만지다'가 나왔다. 그의 팬을 자처하는 나로서는 책꽂이에 그의 1판 1쇄를
한 권 더 늘린 것에 흡족함이 든다. 비록 그것이 비루한 소유욕이라 할 지라도 말이다. 그의 예전
책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국어의 풍경들', '도시의 기억', '엘리야의 제야', '제망매' 등을
읽은 적이 있는 이라면 순우리말 단어를 표제삼아 때로 감미롭고, 때로 은밀하며, 때로 야하기도 한
그의 음운론과 사랑론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모국어의 속살'이라는 말처럼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 중의 하나인 '사랑'을 묘사하는데 외래어와
외국어가 차지할 구석은 비교적 적어보인다. 딱딱한 뉘앙스의 번역어의 냄새보다는 부드럽고 친근한
(이것도 편견일 지 모르겠다) 고유어 쪽이 더 감성 내부를 자극하지 않을까. 물론 언어의 구사력에
따라 외래어와 외국어로도 넘치는 열정과 가슴속 심연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마음을 담아 '사랑'의
진정성을 표현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으나 고종석이 뽑아놓은 41개의 고유어들은 비단 연인 뿐
아니라 우리가 보듬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루만지'기에 부족함도 넘침도 없다.

그가 서문에서 밝힌 대로, 그리고 그의 글쓰기의 방식에 따라 어쩌면 이것은 '사랑'의 말이라기
보다 사랑의 '말'인지도 모르겠다. 섬세한 감정만을 묘사하기에 그가 늘어놓은 어휘 하나하나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얼핏 글의 부드러움을 빼고 건조함을 더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사랑에
대한 지혜보다는 한국어에 대한 지혜를 늘이기에 더 적합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이 편린들이 그 속에 우리가 주위에 두고도 잘 알지 못했던, 또는 그 의미를 간과했던
세밀한 뉘앙스를 다시 일깨워준다. 그래서 다시 말하면 사랑의 '말'을 통해 '사랑'의 말을
곱씹게 만든다. 나는 그의 이런 지성이, 감성이 부럽고 존경스럽고 무척이나 좋다. 

 
3.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가 왜 '편지'에 대해서 쓰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어쩌면 '편지'란 그가
늘어놓는 그 모든 사랑의 말들을 한 장의 종위에서 다 쓸 수 있다는 것에서 고르의 편지처럼,
김승옥의 편지처럼, 윤대녕의 편지처럼, 사랑의 말의 총체가 될 수도 있을텐데.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편지'는 순우리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순우리말 사전을 뒤적이면서 편지에 대응하는
순우리말이 없음에 적잖이 놀랐다. 편지를 꽂아두는 통에도  '고비'라는 순우리말이 있는데 정작
주대상인 편지에 대해서는 순우리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만일 순우리말이라는 제약을
조금 헐겁게 대한다면 '편지'를 나만의 42번째 목록에 올리고 싶다. 

 
이런 표현들을 좀 좋아한다. 예를 들어 '방안에 홀로 앉아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아마도 이 편지는
조금 길어질 듯 합니다' 같은 넋두리들 말이다. 절절한 사랑의 감정을 혀끝에서 맴도는 소리로 읊어
주어 심장을 직접 울릴 수도 있으되 손끝으로 눌러쓴 활자들을 통해 온 몸에 스며들게 만들어 주는 편지는 그만의 매력이기도 하다. 나는 아마도 이 땅의 대부분의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편지를 통해
상대방에게 뜻을 전하기를 즐기는 편은 아니다. 외려 써놓고도 부치지 못한 채 서랍 한 구석에 박혀
있다 때를 놓쳐 버려지기 일쑤이다. 또, 아마도 이 땅의 대부분의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내 인생의
대부분의 편지는 군생활동안 주고받은 것이 9할은 넘을 것이다. 그 때는 활자가 아니라면 세상과
소통하는 길이 거의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 때 내게 편지를 써준 여인들이 있었으나 나는 그 여인들이 내게 연정을 품었는지, 아니면 순수한
우정의 발로였는지 모른다. 또한 내가 쓴 편지들이 연정의 발로였는지 답답함을 해소하고자함이
었는지 구분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 때 내 손끝을 떠난 활자들은 내 몸의 일부를 떼어내어그들과
같은 시공을 공유하고자 하는 바람이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것은 또한 반대로  그들이
누리고 있는 있는 평범한 일상들이 그들의 손끝을 떠난 활자들을 통해 내게 오롯이 전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기도 하다. 

 바람이 찬 밤에 편지를 썼다.
아마도 부치지 못한 편지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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