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안 시대는 나라 시대를 거쳐 지금의 교토에 도읍을 정한 때로서 통일신라와 그 연대가 겹친다.
이 때는 귀신과 인간이 한 곳에 머물렀다하고 신화와 실제가 공존하며 수많은 비술과 주문들이 사람과
자연을 축복하기도, 죽이기도 하곤 했다 한다.  마치 삼국유사의 그것처럼 향가를 숭상하는 자들이
낭랑한 소리를 높여 노래를 읊으니 산과 들의 귀신들이 감동했다는 것과 같은 모티브이다.  요절한
천재 작가 아구타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몽'에는 '헤이안 시대의 센티멘털리즘'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과 같은 이치로 빚어진 고대인의 상상력의 결실일 것이다.

 



오카노 레이코의 명작 '음양사'는 이 시대를 재구해낸 만화이다. 이미 영화로 2편 제작되어 아베노
세이메이라는 매력넘치는 음양사가 낯설지 않고 귀신과 인간의 경계가 그리 다르지 않음을, 공포의
대상이 아닌 이해의 대상으로서 귀신의 모습들을 때론 코믹하게 때론 극적이게 보여준다.  7편에는
여름 청량전의 시대회 에피소드가 실려있다. 청량전에 천황과 내궁들이 모두 모이고 좌방과 우방은
각각 최고의 시인에게서 받은 시를 내세워 노래로 읊음으로서 그 고하를 가리는 것이다. 여기에
헤이안의 대표 시인 미후노 타다미가 등장한다. 그는 스스로 최고의 시를 내었다고 자부했으나
시를 읊었던 강사가 차례를 틀림으로써 결국 시대회에 패하게 되자 실의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내세에서도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시인의 숙명. 그는 청량전에 앞뜰에서 스스로
지은 시를 읊는 유령이 되어 나타난다. 
 








일본의 카드 놀이로도 유명한 백인일수 百人一首 는 일본 고전문학에서 뛰어난 100편의 시를 가려 엮은 책이다. 바로 여기에 타타미가 청량전 시대회에서 읊었던 시가 담겨 있다. 


         戀すてふ 我が名はまだき 立ちにけり 
         人知れずこそ 思ひそめしか

         슬픈 사랑이여, 내이름은 마타키. 우두커니 설뿐
         사람의 만남이란 여하한 인연일꼬.

책 안에서는 낭만섞인 수사로 오역되어 있는데 고전 일본어를 현대어 역으로 제대로 바꾸어 보면

 
          戀をしているという私のうわさが,はやく廣まってしまった。
          誰にも知られないように,ひそかに思っていたのに…

         사랑에 빠져버렸다는 내 소문이 빨리도 퍼져버렸구나.
         아무에게 알려지지않도록, 남몰래 사모하고  있었건만

고사기이든 삼국유사이든 고대의 기록들은 현대인의 이성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신화들이
마치 사실처럼 기재되어 있다. 때로 그것은 황당한 미몽의 기록이거나 지배자의 정당화 논리를
미화시킨 것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고대인들의 상상력이 지금의 사람들과는 다른 층위의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과 지금의 사람들이
그리 다르지 않음은 시대를 관통해 흐르는 보편적 정서의 힘의 통해 알 수 있다. 그것은 '사랑'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수많은 신화와 전설과 연가를 통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사랑에 대해 읊어 왔다.
그것은 죽음만큼이나 보편적인 주제이다.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것이 없다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빠져있다고 느끼는가 보다. 그래서 외사랑이든, 짝사랑이든, 운명을 뛰어넘는
사랑이든 사랑은 궁궐에서 여항까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지금까지 즐겨 읊는 소재로 남아있다.  


 이미 내게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언어의 분열처럼 다가오는 지금의 초현대시와는 달리 1000년도
더 이전의 한 시인이 남들에게 들키지 않고 몰래하려한 사랑에 대해 읊은 이 시를 나는 아주 좋아한다.
특히 '남몰래 사모하고 있었건만'이라는 결구에서 '남몰래'라는 구절이 마음에 와닿는다. 때로 사랑은
주위사람에 축복받는 행복의 대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또 때로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자신만의 애절함의 대상일 수도 있다. 이국의 땅에서 낯설은 수사로 이 애절함을 잘 잡아낸                  시인의 읊조림은 그래서 더욱 가슴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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