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발자국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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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처음 해보는 일은 계획할 수 없습니다. 혁신은 계획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혁신은 다양한 시도를 하고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해나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중요한 건 계획을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완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계획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끊임없이 바뀌는 상황에 맞춰 계획을 수정하면서 실행해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습니다. 특히 처음 해보는 일에서는 계획보다 실행력이 더 중요합니다.

 

블링크(blink)가설 : 전문가들일수록, 문제를 직면한 순간 자신의 오랜 총체적 경험을 바탕으로 빠르게 판단할 때 의외로 맞을 때가 많다고 주장합니다. 심사숙고하고 오랫동안 분석해서 얻은 결과보다 훨씬 더 나은 결과를 보여줄 때가 많다는 겁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의사결정을 한 후 빠르게 실행에 옮기고,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끊임없이 의사결정을 조정하라. 이것이 의사결정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사회적 성취를 이룬 사람들을 연구해서 찾아낸 훌륭한 의사결정법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인지적 유연성이 떨어집니다. 인지적 유연성이란 상황이 바뀌었을 때 자신의 전략을 바꾸는 능력을 말하는 데, 그걸 잘 못하게 돼요. 의사결정이 빨라졌으니까 잘못될 가능성은 조금 더 높아졌을 텐데, 고집스럽게 안 바꾸니까 자신의 성공사례에 오히려 발목이 잡혀 결국 실패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거죠.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가 말하는 이른바 휴브리스(hubris : 지나친 자기과신)가 바로 이런 겁니다. 영웅는 결국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어준 경험에 발목이 잡히는 거죠. 우리는 나이가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생각이 늘 열려 있으신 분들, 그래서 자신이 잘 못했다는 걸 인정하고 의사결정을 바꿀 수 있는 분들, 젊은이의 말을 경청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르신들을 매우 존경합니다. 그리고 그러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을 잘 알죠.

 

결핍이 욕망을 만듭니다. 뭔가 부족해야 그 결핍 때문에 뭘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요. 결핍이 되기 전에 욕망이 충족된 경험을 오랫동안 쌓아오면서 무언가를 절실히 욕망하지 않은 세대로 성장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욕망의 자본주의 시대다. 요즘 젊은이들은 집어등에 달려드는 오징어 떼 같은, 그러니까 그 욕망이 자신에게 좋은지 나쁜지도 잘 모르면서, 심지어는 독이 되는 욕망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내달리고 있다. 학습된 욕망, 부모로부터 혹은 사회로부터 내려와 스며든 욕망들이 자신의 욕망인 줄 알고 열심히 추구하다가 동력을 잃어버리면 어느 순간 좌절하고, 벽을 만나 실패하면 더 이상 추동할 힘이 없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는 게 지금 우리 사회입니다.

 

어른들도 아이들만큼 놀이를 좋아합니다. 놀 때 매우 행복하죠. 하지만 할 일 목록 가운데서 늘 하고 싶은 것 대신 해야 할 것을 먼저 지워나가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우리 어른들입니다. 이래선 안 됩니다. 일과 삶의 균형, 이른바 워라벨이 중요합니다. 일만큼이나 놀이가 중요합니다.

 

뇌를 쓰려면 많은 에너지가 들기 때문에, 되도록 습관적인 선택을 통해 인지활동에 에너지를 쓰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신경과학작들은 실망이란 내가 선택을 하기 전에 기대한 것에 비해 결과 값이 못 미칠 때 우리가 겪게 되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정의합니다. 실망은 뭔가를 끊임없이 예측하고, 그 예측 결과가 실제 결과와 비슷한지 아니지를 비교하는 능력 때문에 얻게 되는 고통입니다. 결과가 기대만 못할 때 말이죠.

 

어제 얻은 지식, 사고방식, 생각, 고정관념, 습관을 오늘의 문제에도, 내일의 문제에도 계속 적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전략을 지식활용(exploitation)이라고 부릅니다. 과거의 지식과 경험을 오늘의 문제에 적용하면 예측 가능한 안정적인 결과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조직에서 선호하는 전략입니다.

 

징크스나 미신을 믿는 이유는 미래라는 굉장히 통헤하기 어렵고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그것을 통제하기 위해 인과관계를 억지로 갖다 붙인, 그래서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입시와 관련해서 유독 미신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시험 결과에 대한 확신은 없고, 시험을 잘 치러야 한다는 욕망은 강하고, 노력 이상의 행운을 필요로 하는 상황, 다시 말해 결과에 대한 기대는 높은데 미래에 대한 통제권이 약할수록 우리는 그 간극을 극복하기 위해서 아무 상관도 없는 인과관계를 끄집어내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음모론은 발견된 사실들 가운데 비어 있는 영역, 즉 설명이 되지 않는 영역을 메우고 싶어 하는 우리 본능과 관련 있습니다.

음모론은 사건과 사건 사이에 끊어져 있는 고리를 연결해 세상을 잘 짜인 스토리로 이해하려는 노력, 이를 위해 인과 관계를 만들려는 노력의 산물입니다.

 

행복은 예측할 수 없을 때 더 크게 다가오고, 불행은 예측할 수 없을 때 감당할 만하다라는 겁니다. 행복은 예측할 수 없는 뜻밖의 상황에서 기대 이상의 무언가를 얻었을 때 우리에게 찾아오고요, 이미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기대감이 사라진 상황에선 어떤 것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행복은 보상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고 기대와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미래를 알 수 있다면 행복도 사라질 겁니다. 반면 불행은 미리 안다면 그 크기가 엄청날 겁니다. 우리가 불행이 닥친다는 사실을 몰랐을 때는 결국 견디고 감내하지만, 예고된 불행은 그 순간 더 큰 불행이 시작이 됩니다.

 

어릴 때부터 남들과 다른 경험을 하는 사람이 창의적인 사람이 되는 데, 우리나라는 불행하게도 반대죠. 어떻게 하면 남과 똑같은 경험을 먼저 하느냐를 중요하게 여기죠. 남들이 다 한 걸 우리 애가 안 하면 불안해하죠. 똑같은 방식으로 교육받기를 원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창의적인 어른으로 성장하려면, 부모는 어떻게 해야 우리 애가 남과는 다른 경험을 쌓고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현상을 들여다보는 사람으로 성정할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제4차 산업혁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사물인터넷을 통해 아톰 세계를 고스란히 비트화해서 비트 세계와 일치시키면 이 빅데이터를 클라우드 시스템 안에 저장해서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아톰 세계에 맞춤형 예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산업으로 전환을 말합니다. 제4차 산업혁명을 제안한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아톰 세계와 비트 세계가 일치하는 것을 가상 물리 시스템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을 중국에서는 유사한 개념으로 O2O(Online to Offline)라고 부르는데, 다소 제한된 용도로만 사용합니다.

 

1780년대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하고 조지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차를 만들면서 제 1차 산업혁명, 제조와 유통의 혁명이 시작됐습니다. 가내수공업이 아니라 대량생산이 가능한 기계가 등장했고, 우리 동네에서 만든 물건을 다른 동네에서 소비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1900녀대 들어 땅을 사서 공장을 짓고 사람을 고용하면서 전기를 기반으로 한 대량생산체제, 이른바 포드의 모델 T로 상징되는 벨트컨베이어 시스템이 등장하면서 제2차 산업혁명, 전기 혁명이 시작됐습니다. 제3차 산업혁명은 디지털 혁명이었습니다. 1950년대 컴퓨터가 등장한 이래 개인용 컴퓨터가 발명되고 거기에 인터넷, 모바일 기술이 더해졌습니다. 제4차 산업혁명은 제 3차 산업혁명의 결과물인 디지털 기술이 아톰 세계와 비트 세계를 일치시키고 이를 1,2차 산업혁명의 결과물인 유통,제조업에 접목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산업 구조를 만들겠다는 1,2,3차 산업혁명의 융합 혁명인 셈입니다.

 

행복은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다 - 오스카 레번트

 

의심하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확신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 볼테르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기기들을 엔지니어들은 일상 단절 기기 (Just-a-moment devices)라고 부릅니다. 나 잠깐만 비트 세계로 들어갔다 올게하는 거죠. 지금은 대부분으 스마트기기가 일상 단절 기기입니다만, 우리가 현실 세계에 살면서도 단절 없이 비트 세계와 상호작용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그 미디어를 훨씬 더 매력적이라고 느낄 겁니다. 이런 기술을 일상몰입 기술 (life-immersive technology 혹은 seamless technology)이라고 부릅니다.

 

오늘날 테크놀로지는 그 어떤 것보다도 자본과 권력에 기생하고 좌우되면서도, 인간에게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난 세상을 선하하기 위해 발달했습니다. 디지털 혁명과 제4차 산업혁명, 그리고 블록체인 혁명이 그 결과물입니다. 인간이 조금 더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적이며 수평적으로 동등한 사회 속에서 살 수 있기를 바랐고 이에 기여하고 싶어 했던 사람들의 이상을 알아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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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 - 신화에서 찾은 '다시 나를 찾는 힘'
구본형 지음 / 와이즈베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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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상자란 애초부터 없었다. 처음에 나는 희망이 왜 모든 나쁜 것들과 함께 한 상자에 들어 있어야 하는지 이해하게 되었을 때 기뻤다. 행복 속에는 희망이 없다. 이미 행복한 사람은 희망하지 않는다. 희망은 결핍과 불행과 고통 속에서만 자라나는 환각이다. 그러니 희망이 있어야 할 자리는 모든 불행, 모든 악덕, 모든 결핍이 있는 곳이다. 그것이 아직 상자 속에 남아 있는 이유도 다른 불행의 씨앗들은 이미 다 발아하여 그 숙주를 무한히 괴롭히고 있지만, 희망만은 미래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은 여전히 마음의 상자 속에 감춰져 있는 것이다.

 

사랑은 보증서 없는 헌신이다. 우리의 사랑이 서로의 가슴 속에 더 큰 사랑을 키워내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자신을 모두 바치는 것이다. 사랑은 믿음을 가진 행위다. 믿음이 적은 사람은 사랑이 적은 사람일 수 밖에 없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스티브 잡스는 성공을 바라는 젊은이들에게 늘 배고파해라 (stay hungry)라고 말했다.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지 말고, 점점 더 많이 쌓아두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이룬 것을 거부하라는 뜻이다.

 

키르티무카 : 불교에 수용되어 불교 사원을 수호하는 상징인 귀면 장식으로 흔히 볼 수 있다.

키르티무카는 영광의 얼굴이라는 뜻이다. 시바 신이나 부처의 대좌 밑에 이 가면 같은 얼굴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생명은 생명을 먹고 산다. 삶은 다른 것을 죽여 먹어야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생명에 대한 폭력일 수 밖에 없다. 이 고뇌를 단박에 끊어버린 인물이 바로 키르티무카인 것이다. 키르티무카, 다른 것을 먹을 수 없어서 자신을 뜯어먹어야 했던 아귀, 스스로를 죽임으로써 자아라는 허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괴물, 그를 통하지 않고는 각성도 대오도 부처도 없다는 괴물

 

살아야 할 가치가 있는 삶인가? 라고 물음으로써 카뮈는 자신의 철학을 시작한다. 삶은 살아야 할 가치가 있는가, 혹은 없는가?를 판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철학적 문제라는 것이다.

 

죄악에는 허다한 도구들이 있지만 그 모든 죄악의 공통점은 거짓말이다. - 호메로스

 

균형감의 부재는 모든 어리석음의 근본 원인이다. 가장 많이 얻은 자도 탐욕스러운 자고, 가장 많이 잃은 자도 탐욕스러운 자다. 인간은 탐욕을 벗어날 수 없다. 제우스의 완승이다. 그러나 인간은 탐욕을 더 나은 차원의 삶에 이르는 에너지로 씀으로써 행복한 불행에 이를 수 있다. 아직 가지지 않은 것을 염원하는 자, 영원히 행복할 것이고 또한 영원히 불행할 것이다. 인생을 사랑하는 것과 인생을 탐하는 것은 종이 한 장 창이다. 그 섬세한 경계에 서서 늘 우리의 삶이 탐욕으로 흐르지 않도록 조망할 수 있기를 바란다.

 

현명함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스 델포이의 아플론 신전에 있는 기둥에는 '메덴 아간 (Meden Agan)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솔론의 말로 전해지는데, 그 말은 어떤 것에도 지나치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그의 현명함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잠언이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 입문에서 인류는 세 번의 치욕을 겪었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 모욕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다. 인류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그 크기를 알 수 없는 광활한 우주 체계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경험을 하게 됨으로써 초라해졌다는 것이다. 그 다음 모독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었다. 진화론은 신의 창조를 통해 인간에게 특권이 주어졌다는 생각을 파괴해버렸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다 같은 진화의 과정을 거친 필멸의 존재일 뿐이라는 것이다. 세 번째 가장 민감한 상처는 프로이트다. 왜냐하면 자아가 자신의 집안에서조차 주인이 아니며, 자신의 정신생활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 대한 초라한 정보만을 접하고, 이에 의존할 수 밖에 없음을 정신분석학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의식되지 않는 것, 즉 무의식이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기 때문에 내가  나의 전부가 아니며, 내가 알지 못하는 내가 나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에게 가장 중요한 상징이 바로 이 오이디푸스 신화다. 오이디푸스가 알지 못하는 일, 즉 라이오스 왕의 살해자를 찾아가는 과정은 결국 내가 모르는 나를 추적하는 과정이었다. 나의 존재의 근원이면서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을 찾아나서는 것을 상징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악의 평범성 그것은 바로 생각하지 않는 죄에서 비롯된다. 시키는 일을 그저 따르는 자들, 그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하지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생각을 갖지 않음으로써 주도적 삶도 사라졌다.

 

신에게는 배꼽이 없다. 부모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의존하지 않으며, 늙지 않으며, 죽지 않는다. 이미 완성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탯줄을 가지고 있으니 의존하는 존재이며, 늙는 존재이며, 죽는 존재이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늘 자라야 한다. 제우스는 스물여섯 번째 불행으로 판도라의 마음상자 속에 탯줄을 넣어두어 인간들이 스스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존하게끔 만들었다.

 

자기를 잘 경영한다는 것은 근원적으로 자신의 힘의 원천에 끊임없이 맞닿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내 내면의 혈류를 타고 끊임없이 피로 흐르는 내 힘의 원천은 어디서 오는가? 나는 아직 미친 듯이 나를 다 써본 적이 없다.

 

엘리시온(Elysion)은 평범한 자들의 저승 세계인 하데스와는 구별되며, 오직 신에 의해 선택된 자, 영웅적 행위를 한 자들만이 죽은 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평야였다.

 

지식의 대통합은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에 의해 통섭 (consilience)이라는 개념으로 재조명받게 되었다. 통섭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19세기의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윌리엄 휴웰이다. 그는 컨실리언스가 서로 넘나든다라는 의미라고 이야기하고, 강의 비유를 들어 이 개념을 설명했다. 수많은 개울이 모여 강을 이루는 것처럼 먼저 밝혀진 학문적 발견들이 하나둘 합쳐져 하나의 커다란 지적 대융합의 강을 이루게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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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힘 2 - 합격을 부르는 최적의 효과 그림의 힘 시리즈 2
김선현 지음 / 8.0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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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적인 실험에서는 오방색을 활용한 그림이 심신의 변화를 유도하고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지요.

오방색이란 적색, 백색, 청색, 황색, 흑색의 다섯 가지 색을 말하는 데, 이 색들이 우리 몸의 각 기관과 연결된다고 보는 한의학의 음양오행 사상과 연관이 있는 것이었죠.

 

색깔이 주는 힘도 강렬합니다. 인간의 뇌는 시각 정보를 처리할 때 과거 경험이나 기억을 동원하게 되는 데, 빨간색은 불과 태양을 연상시킵니다.

 

아몬드는 봄이 오기 전 겨울의 추위 속에서 꽃을 피우는 나무입니다. 그만큼 생명력과 희망을 뿜어내지요. 이런 아몬드 나무가 단단하게 중심을 이루는 가운데, 고흐는 아래 밑동은 버리고 가지에 피어난 꽃에 집중을 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고 살렴. 네 인생에서 이렇게 꽃과 열매가 맺히기를 바란다.라는 삼촌의 사랑과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움직인다네.

 

색채는 건반이고 눈은 망치다. 영혼은 많은 줄을 가진 피아노다.

 

환경은 내게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나를 통해서 환경이 나아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깜깜한 바다에 빛이 되는 저 황금 물고기처럼요. 미술치료에서도 어려운 환경에 대한 원망이 들 때는, 내가 현실에서 가장 가까이 할 수 있는 걸 찾아보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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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힘 - 최상의 리듬을 찾는 내 안의 새로운 변화 그림의 힘 시리즈 1
김선현 지음 / 8.0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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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통해 나를 찾고 편안함을 찾고 위안을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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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종 요업이라는 치료 효과가 있습니다. 내가 토하고 싶을 때 가라앉혀봐라가 아니라 토하라고 하면 속이 편하죠? 내가 걸리는 A라는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이 걸린다고 해서 A를 부정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A에 동화되는 것이 훨씬 위안이 됩니다.

 

벽에 걸어놓을 그림은, 사람의 영혼을 맑게 씻어주는 환희의 선물이 되어야 하고 즐겁고 유쾌하고 예쁜 것이어야 한다.

 

대인관계에 원만함을 보이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주황색을 많이 꼽지요. 빨간색처럼 강하지는 않으면서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고, 노란색처럼 쾌할하면서 그보다는 편안함을 주기 때문입니다.

 

행복하면 핑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핑크는 선천적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색이기 때문이죠. 미국의 어느 감옥에서 죄수들 간의 폭력 다툼이 하도 많아 궁여지책으로 감방의 색깔을 핑크로 바꿔봤더니 훨씬 잠잠해지더라는 겁니다. 핑크가 엄마라는 이미지와 양수, 자궁의 고유한 색상을 대변하기에, 모성본능을 지닌 여자아이들이 본능적으로 따스함을 느끼는 색상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을 합니다.

 

우리는 매우 당연하게 돈이 있으면 좋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돈이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명품을 살 수 있고, 여행도 갈 수 있고, 사회적으로 과시도 되는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시간을 살 수 있다는 점이 크다고 이야기 합니다. 돈이 있으면 자기 시간을 활용하는 데 돈을 쓸 수 있거든요.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물건을 구매하기 (소유) 보다 무언가를 하는 편(경험)이 훨씬 더 큰 만족감을 주고, 수입과 상관없이 타인을 위해 돈을 쓸 때 더 큰 행복을 느낀다는 결과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런 실망도 하지 않으니 다행이지.라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실망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게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

 

쉴 시간이 없을 때가 바로 휴식이 필요한 순간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이 세상을 동굴에 비유했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현상은 동굴 벽에 비쳐 어른거리는 그림자일뿐이지만, 우리는 좁은 동굴에서 빠져나오려는 생각 자체를 못하고 내가 보는 것만 참되다며 믿으며 산다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과 함께 검토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 말을 거꾸로 하면, 살아갈 가치가 있는 삶은 바로 검토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나를 들여다보고 스스로의 삶을 검토함으로써 마음의 균형을 일군 사람이라면, 외부의 기준과 가치에 휘둘려 내가 텅 비어버리는 일은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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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미술관 - 그림, 한눈에 역사를 통찰하다 이주헌 미술관 시리즈
이주헌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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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도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단지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보는 것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것은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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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라는 용어가 오늘날 일상에서 빈번히 오르내리는 단어가 된 것은 전적으로 독일의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 덕이다. 막스 베버는 카리스마라는 용어를 종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과학 분야에서 재활용했을 뿐 아니라 개념 자체를 재창조했다. 베버가 재창조한 카리스마의 개념은 고대의 기독교적 의미와는 거리가 먼, 철저히 세속적으로 변형된 것이었다.

베버는 정당한 지배의 유형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합법적 지배와 전통적 지배, 그리고 카리스마적 지배가 그것이다. 합법적 지배는 법제화된 법칙의 합법성에 따라 지배하는 것이고, 전통적 지배는 전통이 허락한 지위에 따라 지배하는 것이다. 카리스마적 지배는 추종자의 자발적 복종에 따라 지배하는 것으로,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의 영웅적 행위나 모범적인 특징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베버가 이처럼 지배자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용어로 카리스마를 사용하게 됨에 따라 이후 카리스마는 은총의 선물보다는 뛰어난 지도자의 능력이라는 의미로 전용되게 된다.

 

세속적 금욕주의가 잘 나타나 있는 대표적인 그림이 바니타스 (Vanitas) 정물화다. 바니타스라는 말은 라틴어로 허영, 헛됨, 무상함을 뜻한다. 성경 전도서에 나오는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Vanitas vanitatum et omnia vanitas)는 말씀을 그림으로 풀어 표현한 것이 바로 바니타스 정물화인 것이다.

 

자식을 낳은 여성은 단지 반만 어머니일 뿐이며, 자식을 양육한 여성만이 완전한 어머니다. - 야코프 카츠

 

서구 자본주의가 합리성을 띨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금욕적 프로테스탄티즘이라는 막강한 윤리적 동력이 존재했기 때문인 것이다. 자본주의든 그 무엇이든 윤리의 힘을 상실한 체제는 도덕적 해이를 불러오고 그 체제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종교개혁 이후 네덜란드를 비롯한 프로테스탄트권의 미술이 전하고자 한 핵심 메시지가 바로 이런 윤리의 상실과 도덕적 해이에 대한 경고였다. 윤리와 삶은 일치시키고 그에 의지해 노동과 사회를 합리화하려는 시대에 미술은 이런 내용과 표현으로 적극적인 응답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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