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단 한 번의 삶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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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12월 27일 크리스마스라는 특별한 날로부터 이틀이 지난 특별할 것 하나도 없는 날.. 

나에게는 아니 작가가 말한 <단 한번의 나의 삶>에서는 특별한 날로 기억될 지어다. 

냐면 거의 십년 만에 글을 쓰기 때문이다. 


비평을 받는 전문적인 작가도 아니고, 남들의 기대치를 충족시켜 줄 하등의 이유도 없는 내가 글 하나 쓰는 거에 강산이 변할 뜸

을 들인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삶의 여유라는 녀석 때문이다. 


20대에는 소설이나 에세이는 시간 낭비라 느꼈다. 남들에게 나 자신을 증명해야 일자리가 주워졌기 때문에 돈 벌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실용적인 책만 옆에 두고자 했다. 하지만 그런 책에는 따뜻함이 없다. 정답과 오답만 있었고 그래야만 했다. 


30대에는 조직에 살아 남기 위해 자기 개발 서적에 몰두해야 했다.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와 어깨를 나란히 맞추고자 부단히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다 쓰러지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줄 책을 또 읽었다. 조직에서 쫓겨 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스리는 책을 읽었고, 야망을 가슴에 품되 표나지 않게 감출 수 있는 처세술 책을 읽었다. 그러다 아이가 생겼고 나 자신을 위해 책을 읽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무책임한 가장의 모습이었다. 남의 이야기를 읽는 대신 나는 나의 시간을 오롯이 돈과 치환될 수 있게 살아야 했다. 그 무렵 책은 내가 쉽게 가질 수 없는 도도한 녀석이었다. 특히 나의 삶과 상관 없는 인문, 순수, 철학과 같은 녀석은 사치품과 다름 없었다. 그 때부터 나는 책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다. 아니, 여우가 포기한 신 포도처럼 나와 관련 없는 존재라고 치부했다. 


40대에는 지상 최대의 과제인 여유로운 자산 확보를 위해 재테크 관련 책들을 읽었다. 재테크 서적이 주는 장점은 금방 내가 손쉽게 부자가 될 거 같다는 착각이다. 나도 조만간 그들과 같이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판타지" 그러나 실상은 냉정했고 나는 빈번히 실패를 주워 담아야 했다. 


지금.. 내 인생에 오지 않을 거 같던 아니 예전에는 절대 와서는 안될 거 같던 "50"이라는 나이를 코 앞에 두고 

이제 비로소 삶의 여유라는 녀석이 나에게 살짝 다가왔고, 더 이상 먹고 사는 고단함에 허우적거리지 않아도 되니, 불쑥 그 동안 일부러 외면하고 살았던 나의 <단 한번 삶>이 그리고 김영하 작가의 단 한번의 삶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인생은 일회용으로 주어진다." 


맞다. 나는 일회용이다. 일회용이니 그 용도에 맞게 삶을 단순하게 살다 가면 되는 데, 나는 명품이 되기 위해 영구 불변의 걸작이 되려고 인생을 갈아 넣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세포는 작가의 말대로 무한히 복제되지 않으며, 복제될 때마다 열화된다.

오늘 나는 단 한번의 삶에게 제일 건강하고, 아름답고, 똑똑한 모습이라는 이야기다. 내일의 나는 오늘 보다는 아프고, 늙었고,흐리멍텅 해진다는 이야기니 오늘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살다가 신이 나를 수거해 갈 때 웃으면서 가자. 그리고 추하게 일회용품이 재활용품이 되려고 욕심 내지 말자. 



"고결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은 운에 크게 좌우된다. 다시 말해 인간이 범죄자가 되지 않고, 선량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칸트적 "선한 의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삶이 조금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는 것은 내가 이제 꿈을 꾸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10대 딸들은 고단하다. 

아직 사회의 쓴 맛을 보지 않았기에 모든 것은 자기 하기 나름이다. 하면 된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고 미래의 밝은 꿈을 꾼다. 물론 나도 최소한 아빠의 양심은 있어서 딸들에게 너희는 할 수 있어, 최고! 라고 응원한다. 

하지만 나와 마주하게 되면 나는 진실을 알고 있다. 사회는 운이 100%라고 그렇다고 운이 전부라고 이야기 하기 어렵다. 

운을 받을 수 있는 계급에게만 운이 주워지기 때문이다. 마치 카드 사용자에게 추첨을 통해 황금 10돈을 주는 데, 그 추첨 대상은 연간 3천만원 이상 카드 실적이 있는 대상자에 한함이라고 할까. 

철이 든다는 것은 이번 생에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다음 생에서 가능한 일을 구분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다음 생에게 가능한 일은 포기하고 (냉정하게 말하면 포기를 강요 당하고) 마음 아파하지도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포기를 강요하게 만드는 녀석은 평생 내 인생에 발목을 잡는 "돈"이라는 녀석이라는 것을 속상하지만 인정하게 된다. 

오늘의 나는 꿈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가진 자원에서 남의 눈치 안보고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인생 사업 계획을 세운다. 

매년 실적 달성율은 50% 미만이지만, 하지만 괜찮다. 이걸 문제 삼아 저성과자로 내쫓을 권리가 있는 내 인생의 사장은 나밖에 없으니. 


이 책은 인생의 중반을 넘어선 타인의 일기장을 비밀스럽게 훔쳐보는 묘미가 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읊조리게 된다. 맞다. 내 인생도 이제 중반을 넘어서는 구나, 나에게도 많은 일들이 있었지. 

그리고 용케 지금까지 왔지. 


많은 얼굴들이 나의 머리 속에서 마음 속에서 스쳐 지나가고 이제 젊지 않은 내 모습을 현실적으로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다짐한다. <단 한번의 삶>인데 한번 이렇게 살기는 아쉽다. 


"나 답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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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삶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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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12월 27일 크리스마스라는 특별한 날로부터 이틀이 지난 특별할 것 하나도 없는 날.. 

나에게는 아니 작가가 말한 <단 한번의 나의 삶>에서는 특별한 날로 기억될 지어다. 

냐면 거의 십년 만에 글을 쓰기 때문이다. 


비평을 받는 전문적인 작가도 아니고, 남들의 기대치를 충족시켜 줄 하등의 이유도 없는 내가 글 하나 쓰는 거에 강산이 변할 뜸

을 들인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삶의 여유라는 녀석 때문이다. 


20대에는 소설이나 에세이는 시간 낭비라 느꼈다. 남들에게 나 자신을 증명해야 일자리가 주워졌기 때문에 돈 벌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실용적인 책만 옆에 두고자 했다. 하지만 그런 책에는 따뜻함이 없다. 정답과 오답만 있었고 그래야만 했다. 


30대에는 조직에 살아 남기 위해 자기 개발 서적에 몰두해야 했다.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와 어깨를 나란히 맞추고자 부단히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다 쓰러지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줄 책을 또 읽었다. 조직에서 쫓겨 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스리는 책을 읽었고, 야망을 가슴에 품되 표나지 않게 감출 수 있는 처세술 책을 읽었다. 그러다 아이가 생겼고 나 자신을 위해 책을 읽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무책임한 가장의 모습이었다. 남의 이야기를 읽는 대신 나는 나의 시간을 오롯이 돈과 치환될 수 있게 살아야 했다. 그 무렵 책은 내가 쉽게 가질 수 없는 도도한 녀석이었다. 특히 나의 삶과 상관 없는 인문, 순수, 철학과 같은 녀석은 사치품과 다름 없었다. 그 때부터 나는 책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다. 아니, 여우가 포기한 신 포도처럼 나와 관련 없는 존재라고 치부했다. 


40대에는 지상 최대의 과제인 여유로운 자산 확보를 위해 재테크 관련 책들을 읽었다. 재테크 서적이 주는 장점은 금방 내가 손쉽게 부자가 될 거 같다는 착각이다. 나도 조만간 그들과 같이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판타지" 그러나 실상은 냉정했고 나는 빈번히 실패를 주워 담아야 했다. 


지금.. 내 인생에 오지 않을 거 같던 아니 예전에는 절대 와서는 안될 거 같던 "50"이라는 나이를 코 앞에 두고 

이제 비로소 삶의 여유라는 녀석이 나에게 살짝 다가왔고, 더 이상 먹고 사는 고단함에 허우적거리지 않아도 되니, 불쑥 그 동안 일부러 외면하고 살았던 나의 <단 한번 삶>이 그리고 김영하 작가의 단 한번의 삶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인생은 일회용으로 주어진다." 


맞다. 나는 일회용이다. 일회용이니 그 용도에 맞게 삶을 단순하게 살다 가면 되는 데, 나는 명품이 되기 위해 영구 불변의 걸작이 되려고 인생을 갈아 넣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세포는 작가의 말대로 무한히 복제되지 않으며, 복제될 때마다 열화된다.

오늘 나는 단 한번의 삶에게 제일 건강하고, 아름답고, 똑똑한 모습이라는 이야기다. 내일의 나는 오늘 보다는 아프고, 늙었고,흐리멍텅 해진다는 이야기니 오늘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살다가 신이 나를 수거해 갈 때 웃으면서 가자. 그리고 추하게 일회용품이 재활용품이 되려고 욕심 내지 말자. 



"고결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은 운에 크게 좌우된다. 다시 말해 인간이 범죄자가 되지 않고, 선량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칸트적 "선한 의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삶이 조금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는 것은 내가 이제 꿈을 꾸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10대 딸들은 고단하다. 

아직 사회의 쓴 맛을 보지 않았기에 모든 것은 자기 하기 나름이다. 하면 된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고 미래의 밝은 꿈을 꾼다. 물론 나도 최소한 아빠의 양심은 있어서 딸들에게 너희는 할 수 있어, 최고! 라고 응원한다. 

하지만 나와 마주하게 되면 나는 진실을 알고 있다. 사회는 운이 100%라고 그렇다고 운이 전부라고 이야기 하기 어렵다. 

운을 받을 수 있는 계급에게만 운이 주워지기 때문이다. 마치 카드 사용자에게 추첨을 통해 황금 10돈을 주는 데, 그 추첨 대상은 연간 3천만원 이상 카드 실적이 있는 대상자에 한함이라고 할까. 

철이 든다는 것은 이번 생에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다음 생에서 가능한 일을 구분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다음 생에게 가능한 일은 포기하고 (냉정하게 말하면 포기를 강요 당하고) 마음 아파하지도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포기를 강요하게 만드는 녀석은 평생 내 인생에 발목을 잡는 "돈"이라는 녀석이라는 것을 속상하지만 인정하게 된다. 

오늘의 나는 꿈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가진 자원에서 남의 눈치 안보고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인생 사업 계획을 세운다. 

매년 실적 달성율은 50% 미만이지만, 하지만 괜찮다. 이걸 문제 삼아 저성과자로 내쫓을 권리가 있는 내 인생의 사장은 나밖에 없으니. 


이 책은 인생의 중반을 넘어선 타인의 일기장을 비밀스럽게 훔쳐보는 묘미가 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읊조리게 된다. 맞다. 내 인생도 이제 중반을 넘어서는 구나, 나에게도 많은 일들이 있었지. 

그리고 용케 지금까지 왔지. 


많은 얼굴들이 나의 머리 속에서 마음 속에서 스쳐 지나가고 이제 젊지 않은 내 모습을 현실적으로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다짐한다. <단 한번의 삶>인데 한번 이렇게 살기는 아쉽다. 


"나 답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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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발자국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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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해보는 일은 계획할 수 없습니다. 혁신은 계획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혁신은 다양한 시도를 하고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해나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중요한 건 계획을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완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계획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끊임없이 바뀌는 상황에 맞춰 계획을 수정하면서 실행해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습니다. 특히 처음 해보는 일에서는 계획보다 실행력이 더 중요합니다.

 

블링크(blink)가설 : 전문가들일수록, 문제를 직면한 순간 자신의 오랜 총체적 경험을 바탕으로 빠르게 판단할 때 의외로 맞을 때가 많다고 주장합니다. 심사숙고하고 오랫동안 분석해서 얻은 결과보다 훨씬 더 나은 결과를 보여줄 때가 많다는 겁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의사결정을 한 후 빠르게 실행에 옮기고,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끊임없이 의사결정을 조정하라. 이것이 의사결정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사회적 성취를 이룬 사람들을 연구해서 찾아낸 훌륭한 의사결정법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인지적 유연성이 떨어집니다. 인지적 유연성이란 상황이 바뀌었을 때 자신의 전략을 바꾸는 능력을 말하는 데, 그걸 잘 못하게 돼요. 의사결정이 빨라졌으니까 잘못될 가능성은 조금 더 높아졌을 텐데, 고집스럽게 안 바꾸니까 자신의 성공사례에 오히려 발목이 잡혀 결국 실패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거죠.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가 말하는 이른바 휴브리스(hubris : 지나친 자기과신)가 바로 이런 겁니다. 영웅는 결국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어준 경험에 발목이 잡히는 거죠. 우리는 나이가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생각이 늘 열려 있으신 분들, 그래서 자신이 잘 못했다는 걸 인정하고 의사결정을 바꿀 수 있는 분들, 젊은이의 말을 경청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르신들을 매우 존경합니다. 그리고 그러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을 잘 알죠.

 

결핍이 욕망을 만듭니다. 뭔가 부족해야 그 결핍 때문에 뭘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요. 결핍이 되기 전에 욕망이 충족된 경험을 오랫동안 쌓아오면서 무언가를 절실히 욕망하지 않은 세대로 성장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욕망의 자본주의 시대다. 요즘 젊은이들은 집어등에 달려드는 오징어 떼 같은, 그러니까 그 욕망이 자신에게 좋은지 나쁜지도 잘 모르면서, 심지어는 독이 되는 욕망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내달리고 있다. 학습된 욕망, 부모로부터 혹은 사회로부터 내려와 스며든 욕망들이 자신의 욕망인 줄 알고 열심히 추구하다가 동력을 잃어버리면 어느 순간 좌절하고, 벽을 만나 실패하면 더 이상 추동할 힘이 없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는 게 지금 우리 사회입니다.

 

어른들도 아이들만큼 놀이를 좋아합니다. 놀 때 매우 행복하죠. 하지만 할 일 목록 가운데서 늘 하고 싶은 것 대신 해야 할 것을 먼저 지워나가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우리 어른들입니다. 이래선 안 됩니다. 일과 삶의 균형, 이른바 워라벨이 중요합니다. 일만큼이나 놀이가 중요합니다.

 

뇌를 쓰려면 많은 에너지가 들기 때문에, 되도록 습관적인 선택을 통해 인지활동에 에너지를 쓰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신경과학작들은 실망이란 내가 선택을 하기 전에 기대한 것에 비해 결과 값이 못 미칠 때 우리가 겪게 되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정의합니다. 실망은 뭔가를 끊임없이 예측하고, 그 예측 결과가 실제 결과와 비슷한지 아니지를 비교하는 능력 때문에 얻게 되는 고통입니다. 결과가 기대만 못할 때 말이죠.

 

어제 얻은 지식, 사고방식, 생각, 고정관념, 습관을 오늘의 문제에도, 내일의 문제에도 계속 적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전략을 지식활용(exploitation)이라고 부릅니다. 과거의 지식과 경험을 오늘의 문제에 적용하면 예측 가능한 안정적인 결과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조직에서 선호하는 전략입니다.

 

징크스나 미신을 믿는 이유는 미래라는 굉장히 통헤하기 어렵고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그것을 통제하기 위해 인과관계를 억지로 갖다 붙인, 그래서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입시와 관련해서 유독 미신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시험 결과에 대한 확신은 없고, 시험을 잘 치러야 한다는 욕망은 강하고, 노력 이상의 행운을 필요로 하는 상황, 다시 말해 결과에 대한 기대는 높은데 미래에 대한 통제권이 약할수록 우리는 그 간극을 극복하기 위해서 아무 상관도 없는 인과관계를 끄집어내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음모론은 발견된 사실들 가운데 비어 있는 영역, 즉 설명이 되지 않는 영역을 메우고 싶어 하는 우리 본능과 관련 있습니다.

음모론은 사건과 사건 사이에 끊어져 있는 고리를 연결해 세상을 잘 짜인 스토리로 이해하려는 노력, 이를 위해 인과 관계를 만들려는 노력의 산물입니다.

 

행복은 예측할 수 없을 때 더 크게 다가오고, 불행은 예측할 수 없을 때 감당할 만하다라는 겁니다. 행복은 예측할 수 없는 뜻밖의 상황에서 기대 이상의 무언가를 얻었을 때 우리에게 찾아오고요, 이미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기대감이 사라진 상황에선 어떤 것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행복은 보상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고 기대와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미래를 알 수 있다면 행복도 사라질 겁니다. 반면 불행은 미리 안다면 그 크기가 엄청날 겁니다. 우리가 불행이 닥친다는 사실을 몰랐을 때는 결국 견디고 감내하지만, 예고된 불행은 그 순간 더 큰 불행이 시작이 됩니다.

 

어릴 때부터 남들과 다른 경험을 하는 사람이 창의적인 사람이 되는 데, 우리나라는 불행하게도 반대죠. 어떻게 하면 남과 똑같은 경험을 먼저 하느냐를 중요하게 여기죠. 남들이 다 한 걸 우리 애가 안 하면 불안해하죠. 똑같은 방식으로 교육받기를 원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창의적인 어른으로 성장하려면, 부모는 어떻게 해야 우리 애가 남과는 다른 경험을 쌓고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현상을 들여다보는 사람으로 성정할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제4차 산업혁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사물인터넷을 통해 아톰 세계를 고스란히 비트화해서 비트 세계와 일치시키면 이 빅데이터를 클라우드 시스템 안에 저장해서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아톰 세계에 맞춤형 예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산업으로 전환을 말합니다. 제4차 산업혁명을 제안한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아톰 세계와 비트 세계가 일치하는 것을 가상 물리 시스템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을 중국에서는 유사한 개념으로 O2O(Online to Offline)라고 부르는데, 다소 제한된 용도로만 사용합니다.

 

1780년대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하고 조지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차를 만들면서 제 1차 산업혁명, 제조와 유통의 혁명이 시작됐습니다. 가내수공업이 아니라 대량생산이 가능한 기계가 등장했고, 우리 동네에서 만든 물건을 다른 동네에서 소비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1900녀대 들어 땅을 사서 공장을 짓고 사람을 고용하면서 전기를 기반으로 한 대량생산체제, 이른바 포드의 모델 T로 상징되는 벨트컨베이어 시스템이 등장하면서 제2차 산업혁명, 전기 혁명이 시작됐습니다. 제3차 산업혁명은 디지털 혁명이었습니다. 1950년대 컴퓨터가 등장한 이래 개인용 컴퓨터가 발명되고 거기에 인터넷, 모바일 기술이 더해졌습니다. 제4차 산업혁명은 제 3차 산업혁명의 결과물인 디지털 기술이 아톰 세계와 비트 세계를 일치시키고 이를 1,2차 산업혁명의 결과물인 유통,제조업에 접목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산업 구조를 만들겠다는 1,2,3차 산업혁명의 융합 혁명인 셈입니다.

 

행복은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다 - 오스카 레번트

 

의심하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확신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 볼테르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기기들을 엔지니어들은 일상 단절 기기 (Just-a-moment devices)라고 부릅니다. 나 잠깐만 비트 세계로 들어갔다 올게하는 거죠. 지금은 대부분으 스마트기기가 일상 단절 기기입니다만, 우리가 현실 세계에 살면서도 단절 없이 비트 세계와 상호작용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그 미디어를 훨씬 더 매력적이라고 느낄 겁니다. 이런 기술을 일상몰입 기술 (life-immersive technology 혹은 seamless technology)이라고 부릅니다.

 

오늘날 테크놀로지는 그 어떤 것보다도 자본과 권력에 기생하고 좌우되면서도, 인간에게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난 세상을 선하하기 위해 발달했습니다. 디지털 혁명과 제4차 산업혁명, 그리고 블록체인 혁명이 그 결과물입니다. 인간이 조금 더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적이며 수평적으로 동등한 사회 속에서 살 수 있기를 바랐고 이에 기여하고 싶어 했던 사람들의 이상을 알아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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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 - 신화에서 찾은 '다시 나를 찾는 힘'
구본형 지음 / 와이즈베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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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상자란 애초부터 없었다. 처음에 나는 희망이 왜 모든 나쁜 것들과 함께 한 상자에 들어 있어야 하는지 이해하게 되었을 때 기뻤다. 행복 속에는 희망이 없다. 이미 행복한 사람은 희망하지 않는다. 희망은 결핍과 불행과 고통 속에서만 자라나는 환각이다. 그러니 희망이 있어야 할 자리는 모든 불행, 모든 악덕, 모든 결핍이 있는 곳이다. 그것이 아직 상자 속에 남아 있는 이유도 다른 불행의 씨앗들은 이미 다 발아하여 그 숙주를 무한히 괴롭히고 있지만, 희망만은 미래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은 여전히 마음의 상자 속에 감춰져 있는 것이다.

 

사랑은 보증서 없는 헌신이다. 우리의 사랑이 서로의 가슴 속에 더 큰 사랑을 키워내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자신을 모두 바치는 것이다. 사랑은 믿음을 가진 행위다. 믿음이 적은 사람은 사랑이 적은 사람일 수 밖에 없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스티브 잡스는 성공을 바라는 젊은이들에게 늘 배고파해라 (stay hungry)라고 말했다.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지 말고, 점점 더 많이 쌓아두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이룬 것을 거부하라는 뜻이다.

 

키르티무카 : 불교에 수용되어 불교 사원을 수호하는 상징인 귀면 장식으로 흔히 볼 수 있다.

키르티무카는 영광의 얼굴이라는 뜻이다. 시바 신이나 부처의 대좌 밑에 이 가면 같은 얼굴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생명은 생명을 먹고 산다. 삶은 다른 것을 죽여 먹어야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생명에 대한 폭력일 수 밖에 없다. 이 고뇌를 단박에 끊어버린 인물이 바로 키르티무카인 것이다. 키르티무카, 다른 것을 먹을 수 없어서 자신을 뜯어먹어야 했던 아귀, 스스로를 죽임으로써 자아라는 허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괴물, 그를 통하지 않고는 각성도 대오도 부처도 없다는 괴물

 

살아야 할 가치가 있는 삶인가? 라고 물음으로써 카뮈는 자신의 철학을 시작한다. 삶은 살아야 할 가치가 있는가, 혹은 없는가?를 판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철학적 문제라는 것이다.

 

죄악에는 허다한 도구들이 있지만 그 모든 죄악의 공통점은 거짓말이다. - 호메로스

 

균형감의 부재는 모든 어리석음의 근본 원인이다. 가장 많이 얻은 자도 탐욕스러운 자고, 가장 많이 잃은 자도 탐욕스러운 자다. 인간은 탐욕을 벗어날 수 없다. 제우스의 완승이다. 그러나 인간은 탐욕을 더 나은 차원의 삶에 이르는 에너지로 씀으로써 행복한 불행에 이를 수 있다. 아직 가지지 않은 것을 염원하는 자, 영원히 행복할 것이고 또한 영원히 불행할 것이다. 인생을 사랑하는 것과 인생을 탐하는 것은 종이 한 장 창이다. 그 섬세한 경계에 서서 늘 우리의 삶이 탐욕으로 흐르지 않도록 조망할 수 있기를 바란다.

 

현명함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스 델포이의 아플론 신전에 있는 기둥에는 '메덴 아간 (Meden Agan)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솔론의 말로 전해지는데, 그 말은 어떤 것에도 지나치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그의 현명함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잠언이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 입문에서 인류는 세 번의 치욕을 겪었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 모욕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다. 인류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그 크기를 알 수 없는 광활한 우주 체계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경험을 하게 됨으로써 초라해졌다는 것이다. 그 다음 모독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었다. 진화론은 신의 창조를 통해 인간에게 특권이 주어졌다는 생각을 파괴해버렸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다 같은 진화의 과정을 거친 필멸의 존재일 뿐이라는 것이다. 세 번째 가장 민감한 상처는 프로이트다. 왜냐하면 자아가 자신의 집안에서조차 주인이 아니며, 자신의 정신생활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 대한 초라한 정보만을 접하고, 이에 의존할 수 밖에 없음을 정신분석학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의식되지 않는 것, 즉 무의식이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기 때문에 내가  나의 전부가 아니며, 내가 알지 못하는 내가 나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에게 가장 중요한 상징이 바로 이 오이디푸스 신화다. 오이디푸스가 알지 못하는 일, 즉 라이오스 왕의 살해자를 찾아가는 과정은 결국 내가 모르는 나를 추적하는 과정이었다. 나의 존재의 근원이면서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을 찾아나서는 것을 상징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악의 평범성 그것은 바로 생각하지 않는 죄에서 비롯된다. 시키는 일을 그저 따르는 자들, 그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하지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생각을 갖지 않음으로써 주도적 삶도 사라졌다.

 

신에게는 배꼽이 없다. 부모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의존하지 않으며, 늙지 않으며, 죽지 않는다. 이미 완성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탯줄을 가지고 있으니 의존하는 존재이며, 늙는 존재이며, 죽는 존재이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늘 자라야 한다. 제우스는 스물여섯 번째 불행으로 판도라의 마음상자 속에 탯줄을 넣어두어 인간들이 스스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존하게끔 만들었다.

 

자기를 잘 경영한다는 것은 근원적으로 자신의 힘의 원천에 끊임없이 맞닿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내 내면의 혈류를 타고 끊임없이 피로 흐르는 내 힘의 원천은 어디서 오는가? 나는 아직 미친 듯이 나를 다 써본 적이 없다.

 

엘리시온(Elysion)은 평범한 자들의 저승 세계인 하데스와는 구별되며, 오직 신에 의해 선택된 자, 영웅적 행위를 한 자들만이 죽은 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평야였다.

 

지식의 대통합은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에 의해 통섭 (consilience)이라는 개념으로 재조명받게 되었다. 통섭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19세기의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윌리엄 휴웰이다. 그는 컨실리언스가 서로 넘나든다라는 의미라고 이야기하고, 강의 비유를 들어 이 개념을 설명했다. 수많은 개울이 모여 강을 이루는 것처럼 먼저 밝혀진 학문적 발견들이 하나둘 합쳐져 하나의 커다란 지적 대융합의 강을 이루게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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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힘 2 - 합격을 부르는 최적의 효과 그림의 힘 시리즈 2
김선현 지음 / 8.0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추가적인 실험에서는 오방색을 활용한 그림이 심신의 변화를 유도하고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지요.

오방색이란 적색, 백색, 청색, 황색, 흑색의 다섯 가지 색을 말하는 데, 이 색들이 우리 몸의 각 기관과 연결된다고 보는 한의학의 음양오행 사상과 연관이 있는 것이었죠.

 

색깔이 주는 힘도 강렬합니다. 인간의 뇌는 시각 정보를 처리할 때 과거 경험이나 기억을 동원하게 되는 데, 빨간색은 불과 태양을 연상시킵니다.

 

아몬드는 봄이 오기 전 겨울의 추위 속에서 꽃을 피우는 나무입니다. 그만큼 생명력과 희망을 뿜어내지요. 이런 아몬드 나무가 단단하게 중심을 이루는 가운데, 고흐는 아래 밑동은 버리고 가지에 피어난 꽃에 집중을 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고 살렴. 네 인생에서 이렇게 꽃과 열매가 맺히기를 바란다.라는 삼촌의 사랑과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움직인다네.

 

색채는 건반이고 눈은 망치다. 영혼은 많은 줄을 가진 피아노다.

 

환경은 내게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나를 통해서 환경이 나아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깜깜한 바다에 빛이 되는 저 황금 물고기처럼요. 미술치료에서도 어려운 환경에 대한 원망이 들 때는, 내가 현실에서 가장 가까이 할 수 있는 걸 찾아보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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