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팡의 소식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한희선 옮김 / 비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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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일본소설이 넘쳐나는 것 같다. 일본소설을 좋아하는 나지만 요즘은 좀 짜증이 날 정도다. 이제는 그만 봐야겠다는 생각이 몇 번씩 든다. 예전에야 새로 나온 일본소설이라고 하면 무조건 봤지만 이제는 웬만하면 패스다. ‘루팡의 소식’도 그래서 패스했었다. 패스했는데 사람들 리뷰가 너무 좋단 말이지! 패스했던 내 몸을 조금씩 비틀더니 마침내 돌아서게 만들었다. 만남. 이 ‘소식’을 듣게 된 건 그렇게 시작했다.

15년 전 자살로 처리된 여자 선생이 사실은 살해됐다는 엄청난 제보! 먹고 마시며 즐기던 경찰들은 당황한다. 뭐 이런 게 있나 싶은 심정이겠지. 설상가상으로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화들짝! 경찰들은 당장 일어나서 용의자들을 잡아온다. 용의자들에게 급하게 진실을 말하라고 하는데 그들은 엉뚱한 소리만 한다. 시험 답안지를 보러 학교에 갔다는 그런 말만 한다. 시간은 계속 흐르는데 용의자들의 말은 빙빙 돌기만 하다.

빙빙 도는 말들. 경찰들은 애가 타겠지만 나는 즐거웠다. 단도직입적으로 살인사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좌우앞뒤에서 살인사건을 구상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에서 사건을 재구성할 수 있게 만들어주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충격적인 반전도 즐겁다! 정말 깜짝 놀랐다. 경찰들의 화끈한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다. 무능력한 경찰이 아니라 전력을 다하는 경찰들은 의외로 매력적이다. 끝에 가서 감동을 주는 것도 좋다. 추리소설 하나 보면서 별의별 즐거움을 다 얻은 것 같다.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한다. 놀랍다. 이런 데뷔작을 쓰다니, 너무 멋진 거 아니야?

며칠 전에 SK가 코나미컵에서 주니치를 이겼다는 소식을 듣고 무진장 즐거워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루팡의 소식’이 몇 배 더 즐겁다. 즐겁고 따뜻하고 기분 좋은 이 소식! 어찌 듣지 아니하겠는가. 다시 생각해봐도 빙그레 웃음을 주는 소설인 것 같다.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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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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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눈 쌓인 옥상에서 아이가 추락했다. 사람들은 아이가 놀다가 실족사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한 사람, 같은 건물에 살고 있던 ‘스밀라’만큼은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믿었다. 사람들은 스밀라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도 스밀라의 생각은 굳건했다. 왜냐하면 아이는 옥상에 올라가는 걸 두려워했다는 걸, 일종의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걸 스밀라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밀라는 사람들의 만류를 무시하고 혼자서 비밀을 파헤치려고 한다. 아이가 왜 죽었는가? 이 질문이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의 시작이다.

덴마크 소설은 처음이 아닌가 싶었다. 그 첫 만남이 추리소설이라니. 그 추리소설의 시작이 ‘아이가 왜 죽었는가?’ 라니…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계속 읽어나가다가 엄청난 사실을 알아버렸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연 질문, 그것은 점점 커다란 문제들을 밝혀내는 단서가 됐다. 1이 답인 문제인 줄 알고 풀어보는데 답은 백단위를 넘어간다. 그래서 백단위가 답인 줄 알고 계속 풀었더니 어느새 천단위가 넘어가고 또 천단위가 답인 줄 알았더니 만단위가 넘어가고… 이런 과정이 필연적으로 반복되면서 문제가 커진다. 소설이 조금씩 웅장해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아이의 죽음에서 시작된 소설이 돈에 미친 문명을 비판하는 이야기까지 하는데 신기하게도 그것이 아주 차갑게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작가가 좀 흥분해서 쓸 법도 한데 아주 초연하다. 그러면서도 무서운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니 약간은 오싹한 느낌이 든다. 얼음덩어리를 손에 쥐고 있는 그런 느낌처럼 말이다. 차가운 방식으로 뜨거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이 독특한 서사!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스밀라를 지켜보면서 황석영의 ‘바리데기’에 나오는 ‘바리’가 생각났다. 묘하게 닮았다. 바리가 따뜻하다면 스밀라는 차가운 사람이지만 세상을 비판하면서 그것을 포옹할 줄 아는 모습이 닮은 것 같다. 사람들이 스밀라를 만나보라고 말하더니만, 역시 이유가 있었다. 스밀라와 데이트해서 기뻤다. 그 감각을 구경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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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 - 미국의 식민지 대한민국, 10 vs 90의 소통할 수 없는 현실
지승호 지음, 박노자 외 / 시대의창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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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을 덮고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20:80도 아닌, 10:90의 사회가 되어버린 이곳에서, 그렇게 극렬해지는 양극화현상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책이 말하는 것이 내 가슴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박노자, 홍세화, 김규항, 한홍구, 심상정, 진중권, 손석춘. 지승호가 7명을 만나 나눈 이야기들은 그랬다. 10%의 부자들을 위해 움직이는 이 사회, 물신 숭배주의가 판치는 대한민국의 심장부를 그대로 가르는 책이었다.

독특하게도 인터뷰집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터뷰만 있는데 그래서인지 읽기가 편했다. ‘대화’라서 그런지 눈으로 읽으면서도 귀에 쏙쏙 들어왔다. 특이한 일이다. 그동안 인터뷰라는 걸 보면 읽기는 편하지만, 기억하지 못했다. 흘려버렸다. 주고 받는 말들이 너무 짜고 치는 고스톱 같아서 그랬던 것 같다. 너무 의도한 질문으로 도배된 그런 것? 한마디로 "how are you?"하고 물으면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대답하는 그런 의도된 질문과 대답들이 많다. 물렁물렁해서 너무 재미없는, 하품 나오게 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은 무슨 이유인지 그렇지 않았다. 줄을 치며 책을 읽는 것처럼 집중이 됐고 읽고 난 뒤에도 책에 적혀 있는 말들이 가슴 속에서 떠다니는 것 처럼 기억이 났다. 어째서 이런 것일까? 이런 경험이 신기해서 그 이유를 따져보니 책에 있는 말들이 너무 중요한 것들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미국의 ‘자발적 식민지’가 된 이 나라, 삼성공화국이라는 단어가 기정사실화된 이 나라, 돈이면 무엇이든 되는 이 나라, 가짜 보수가 지배하는 이 나라에 대한 고발과 비판이 있으니까 잊어버리라고 해도 기억하게 되는 것 같다.

인터뷰하는 사람이 특이한 것도 내용을 기억하게 만든 것 같다.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왜냐하면 대답하는 사람보다 그에 대해서 더 많은 걸 아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당사자도 기억 못하는 일이나 발언을 찾아내서 물어보는데 정말 대단하다. 엄청난 노력이 엿보인다. 대충 해도 될 것 같은데, 정말 공부해서 왔다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인지 내용이 정말 알차다. 하긴, 이렇게 노력했는데 당연한 일이겠지.

‘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은 읽고 나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인터뷰와 다르게 검은 하늘을 가르는 번개처럼 인상적이다. 이 인상적인 느낌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아니, 그냥 나누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누자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권한다. 이 글을 보는 당신, 나눕시다! 이 지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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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매혈기 - 글을 통해 자신을 단련시킨 한 평론가의 농밀한 고백
김영진 지음 / 마음산책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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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매혈기도 들어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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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매혈기 - 글을 통해 자신을 단련시킨 한 평론가의 농밀한 고백
김영진 지음 / 마음산책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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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영진이 누구인지 몰랐다. 신간 소개를 보고서야 ‘영화 평론가’라는 사실을 알았다. 평론가가 쓴 책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키지 않았다. 평론가들의 글이 워낙에 ‘그들만’의 글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숱하게 경험한지라 그랬다. 그럼에도 이 책을 보게 된 건, 제목 때문이었다. ‘허삼관 매혈기’를 연상시키는 제목이 구체적으로 뭔가를 그려줬다. 속는 셈치고 보기로 했다. 결국 나는 속았다는 생각을 했던가. 아니다. 책을 읽는 동안 굉장히 유쾌했다. 거의 모르는 영화와 영화인 이야기가 도배돼있음에도 읽는 것이 즐거웠다. 영화라는 것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김영진이라는 사람의 마음을 엿보고 그 마음 위에서 그려지는 펜글씨를 구경하는 것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샘물이 퐁퐁 샘솟는 것과 같이 즐거웠다.

‘평론가 매혈기’는 크게 3부작으로 나눌 수 있다. 1부는 김영진이라는 사람의 어린 시절에 관한 것이다. 무턱대고 하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인데, 꽤 재밌다. 일단은 평론가답지 않게 글을 짧으면서도 재밌게 써서 그렇다. 톡톡 튀는 그런 느낌을 준다. 영화에 대한 예찬을 울부짖는 것도 매력적이다. 무협영화에 대한 소리도 즐겁고 미성년자 고관람불가 같지도 않은 관람불가 영화를 보러 다닌 추억담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평론가로 사는 것을 본 것도 큰 수확이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던 고루한 평론가가 아닌, 열심히 살아가고, 오늘도 꿈을 꾸고 있는 평론가를 발견했으니 제법 묵직한 수확을 얻었다. 평론가로 살아가는 진지한 내용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고.

2부와 3부에는 그가 만난 영화감독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솔직히 말하면 내가 아는 영화감독이나 본 영화는 거의 없었다. 어디서 귀동냥이나 한번 했던 그 정도였다. 그래도 읽는데 지장은 없었다. 지장? 오히려 김영진의 글을 보면서 의욕이 불탔다. 그 영화를 직접 보고 싶다는 열망이 끊어 올랐다. 김영진이 원한 건 아니겠지만, 앞으로 봐야할 영화 목록을 얻기도 했다. 무엇 때문에 볼 것인지가 아주 분명한 그런 영화 목록들을 손에 꽉 쥔 지금, 그것도 큰 수확이라 해야겠다.

이런 평론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서 기쁘다. 앞으로 영화 잡지나 신문에서 그의 이름이 보이면 열심히 읽을 것 같다. 이런 책을 읽어서 만족스럽다. 지금 당장 이 책에 담긴 노래들을 전부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영화라는 것에 다가서게 될 것 같다.

평론가의 책을 보고 영화를 보고 싶어졌다니… 김영진이 알면 기뻐할까?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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