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disjunction 님, 

댓글에서 이런 질문을 주셨죠?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좋은 글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 예전에 읽고 쉽게 지나쳤던 부분이 있었는데, 어쩌다 관련 논의를 하다보니 제가 이해를 못 한 부분이 있어서 질문을 드리게 됐습니다. 과소결정에 대한 부분인데요, 혼자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국내의 관련 자료들이 오래돼서 선생님 글 이외에는 구하기가 쉽지 않아 도저히 답이 안 나와서 질문을 드립니다.

 

선생님이 인용하신 알튀세르의 글에는 과소결정이 혁명이 일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혁명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결정 내지 조건이며, 더욱이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만이 아니라, 사회주의 자체 내에서 혁명의 진전, 공산주의의 실천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결정 내지 조건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대목을 볼 때, 모순의 과소결정이 혁명의 불가능성만을 의미하는 소극적 개념인지,아니면 과소결정이 혁명의 특정한 방향성을 최소로 지시한다고 보아야 할지 궁금해집니다.

 

모순에 대해 모든 구성적 요소들의 모순의 다양성과 복잡성, 혁명 이후의 회귀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이 그 모순의 과잉결정이라면이 과잉결정과 접두어를 공유하는 과소결정은 그 모순의 최소치일테고그래서 알튀세르 자신이 문턱이라고 표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알튀세르는 혁명을 가능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결정 내지 조건이라고 말하지는 않고 있어서 혼란스럽네요.선생님이 자본주의에 내재해 있는 공산주의의 경향 내지 잠재력을 실현하려고 하는 것은 다른 것들의 쟁점을 과소결정하는 것이라 하셨을 때에는, 과소결정을 혁명을 불가능/가능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결정 내지 조건의 양가성으로 보는 것을 염두에 두고 계신 것 같은데 제가 잘못 생각한 것인지요?

 

추가로, 저는 이 대목을 이란 혁명과 관련해서 생각해보았는데 어떠한 이해가 알튀세르의 관점에서 합당한지 궁금합니다. 이란 혁명 역시 모순의 과잉결정 속에서 발생했고, 또 과잉결정된 요소로 인해 퇴행적 이데올로기들이 강화되고 작동했다고 말할 수 있겠죠. 그런데 과소결정에 주목한다면, 이란 혁명이 공산주의 혁명이 아니었던 까닭은 1) 종교적 모순의 과소결정에 의해 경제 모순은 부차적인 것이 되었다 2) 경제 모순의 과소결정의 문턱에 의해 경제 모순이 부차적인 것이 되었다 3) 1,2에서 시도하는 구분 자체가 과잉-그리고 과소결정을 이해하는데 적절하지 않고 과잉-그리고 과소결정 개념에 대한 이해가 어긋나있다. 셋 중 어떻게 이해하는 쪽이 옳을까요?

 

짧게나마 답변해주시면 정말 감사 할 것 같습니다 :)

 



간략하게나마, 제 의도를 더 정확히 해명할 겸, 몇 자 답변을 해보겠습니다.

 

질문의 핵심은 중 어떤 것이 과소결정개념의 본질적인 의미인가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제 생각에는 과소결정처럼 이해하는 게 적절합니다. 처럼 혁명의 특정한 방향성을 최소로 지시하는 것은 과소결정개념이 아니라, “모순이라는 개념이 감당해야 할 몫이겠죠. 가령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 즉 사회주의/공산주의 혁명의 방향성을 지시하는 것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겠죠. 반면 과소결정은 이러한 모순이 폭발하는 것, 즉 이행이 일어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조건들의 부재 내지 결여를 표현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의 경우는 표현이 좀 혼란스럽네요. “모순에 대해 모든 구성적 요소들의 모순의 다양성과 복잡성, 혁명 이후의 회귀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이 그 모순의 과잉결정이라면이라고 하셨는데, 사실 과잉결정 개념은 모순을 구성하는 요소들, 그리고 그 모순의 존재조건들의 응축(condensation)과 전위(displacement)라고 할 수 있겠죠.

 

따라서 에서 접두어의 공유에 대해 말하셨는데, 이러한 공유가 의미하는 것은, 모순은 스스로 폭발하여 이행을 실현하지 않고, 오히려 모순이 폭발하여 이행을 이루는 것은 그 구성 요소들 및 조건들이 응축하고 전위할 수 있느냐 아니면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점이죠.

 

(6-1) 알튀세르는 초기와 달리 후기에 가면, 모순의 과잉결정과 모순의 과소결정을 서로 상이한 의미를 갖는 개념으로 구별한다. 1975년에 발표한 아미엥에서의 주장이 이를 간명하게 보여준다.


(6-2) 더 나아가 1975년 텍스트에서 알튀세르가 모순의 과잉- 그리고 과소-결정(sa sur- et sa sous-détermination)”과 같은 표현을 사용한 것은, 개념적으로 상당히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표현은 모든 결정은 항상 과잉과 과소를 함께 수반함을 뜻하며, 이런 경우에만 목적론적 관점에서 벗어나, 역사의 우연성을 일시적이거나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 운동의 상수로 개념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6-3) 그런데 이렇게 우연성의 우연”(발리바르)의 개념적 계기를 받아들이게 되면, 더 이상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또는 계급적 모순은 역사적 운동을 규정하는 유일하거나 지배적인 모순이라고 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은 존재론적으로 다원적인 모순들 가운데 하나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6-4) 그런데 이 경우 사고를 복잡하게 하는 것은, 이러한 다원적인 모순들 또는 적대들 사이의 관계가 상호 보완적이거나 친화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만약 그렇다면, “절합”(articulation)을 말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듯, 계급 모순을 중심으로 설정하는 것 자체가 이미 다른 모순들에 대해서는 그 모순의 폭발을 과소결정하는 것일 수 있다.


(6-5) 이것이 알튀세르의 과소결정 개념, 그리고 우발성의 유물론이라는 개념이 지닌 철학적 흥미로움이면서 난해한 점이다.

 

이란혁명에 관한 부분은 딱 부러지게 말하기가 좀 어렵네요. 다만 1)의 경우는 종교적 모순의 과소결정에 의해 경제 모순은 부차적인 것이 되었다기보다는 종교적 모순의 과잉결정에 의해 경제 모순은 부차적인 것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게 맞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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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junction 2021-11-07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과소결정과 과잉결정에 대해서 다소 혼란을 겪고 있었는데, 제가 처음에 정리한대로 생각하는게 역시 맞았던거 같네요. 과소결정의 역할에 대해 논의하다보니 과잉결정에서의 응축과 전위를 간과하면서 더 논의가 꼬였는데, 선생님 답변 덕분에 다시 길을 제대로 잡은거 같습니다.
이란혁명 관련 부분은 1) “종교적 모순의 과잉결정에 의해 경제 모순은 부차적인 것이 되었다˝고 썼어야 하는데 실수로 여기에서도 과소결정이라고 표현을 해버렸네요; 전반적으로 혼란스러운 질문이었는데 답변에서 잘 정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balmas 2021-11-08 13:48   좋아요 0 | URL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공부에 큰 진전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