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60
오규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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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 저 담벽, 저기 저 라일락, 저기 저 별, 그리고 저기 저 우리집 개의 똥 하나, 그래 모두 이리 와 내 언어 속에 서라. 담벽은 내 언어의 담벽이 되고, 라일락은 내 언어의 꽃이 되고, 별은 반짝이고, 개똥은 내 언어의 뜰에서 굴러라. 내가 내 언어에게 자유를 주었으니 너희들도 자유롭게 서고, 앉고, 반짝이고, 굴러라. 그래 봄이다.

 

 봄은 자유다. 자 봐라, 꽃피고 싶은 놈 꽃피고, 잎 달고 싶은 놈 잎 달고, 반짝이고 싶은 놈은 반짝이고, 아지랑이고 싶은 놈은 아지랑이가 되었다. 봄이 자유가 아니라면 꽃피는 지옥이라고 하자. 그래 봄은 지옥이다. 이름이 지옥이라고 해서 필 꽃이 안 피고, 반짝일 게 안 반짝이던가. 내 말이 옳으면 자, 자유다 마음대로 뛰어라.

 

창밖에는 목련이 어느새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젠 정말 봄이다, 봄. (08/03/11)

 

 한동안 봄만 되면 못 견디게 몸이 근질거렸던 적이 있습니다. 다투어 피는 봄꽃들이 마음을 간질였던 탓일까요. '자유롭게 서고, 앉고, 반짝이고, 굴러라.'라는 말이 참 반가웠던 건 그 때문이었지요. 언어와는 상관없이, 아니, 언어를 뛰어넘는다는 표현이 더 적확하려나요. 말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봄 기운들. 그 기운 속에서 스스로의 가난한 언어들도 어느새 함께 날아다니던 그런 행복한 날들이 있었습니다. 목련, 매화, 벚꽃,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수수꽃다리, 아그배… 창밖으로 바라보기만 해도 싱그럽던 캠퍼스의 시간들이 문득,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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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
김현아 지음, 유순미 사진 / 호미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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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은 봄인가봅니다. 겨우내 함께 했던 좀 무거운 녀석들보다 한두 시간 가볍게 읽을거리들에 더 손이 가는 걸 보면 말입니다. 꽃내음을 한가득 안고 와 풀어놓는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당신을 만나러 천천히 발길을 옮깁니다.
 
 언제부터 싹텄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한동안 여성-근대는 내가 세상을 보는 틀이었습니다. 꽤나 어릴적부터 체득했던, 아니 체득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으로서의 자의식. ‘탈근대’라는 담론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했던 근대와 시간의 연속선상에서의 근대 같은, 아마도 역사에의 호기심이라 명명할 수 있는 그런 것들. 지금은 그 때의 시선과는 달라졌다지만 이런 배경을 깔고 있었기에 ‘그 여자’에 대해 말하는 것이 더 반가웠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왜 박제상의 부인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서로 다른 모습으로 전해지는 것입니까. 유학자였던 김부식과 승려였던 일연의 차이, 문벌귀족이 세도를 누렸던 고려 전반기와 몽고의 침입으로 내외가 편할 날 없었던 고려 후반기의 차이를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 남성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역사에서는 ‘왜 천년 전, 신라에만 여왕이 있었을까?’라는 질문에는 답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박제상의 부인 - 그렇습니다. 이름도 전해지지 않지요, 그녀는 - 이 치술신모가 되었다는, 전설 한 조각에 의지해서 당대의 생각을 읽어보려 노력할 뿐입니다. 다음에 당신과 경주를 걷노라면 천년 전 불었을 바람의 끝자락이 답을 해주지 않을까 기대하며 말입니다.
 
 어느새 시간은 흘러 16세기 후반의 강릉입니다. 전란이 있기 전이라 아직 종법 질서가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했을 무렵, 여기서 사임당과 난설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두 사람은 같은 시대를 살았으며, 당대로서는 드물게 자기의 이름을 남긴 여성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두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은 사뭇 다릅니다. 혹 역사에 기록될만한 아들을 두었느냐며 그 이유를 찾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난설헌은 요절한 천재 여류 시인이라는 이름 아래 시로서 기억됩니다. 반면 사임당은 시도 썼지만 그보다는 세밀화를 그린 것으로 기억됩니다. 말리고 있던 벌레 그림을 닭이 쪼아먹었다던가 얼룩이 진 치마에 탐스러운 포도를 그려 그것을 가렸다던가 하는 일화를 떠올려보면 알 수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남성의 영역’에 얼마만큼 다가갔느냐가 두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의 차이를 가져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신의 능력보다 ‘현모’로만 소비되는 사임당 - 친정을 떠난 뒤의 사임당의 작품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시간과 경제력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 의 복원을 꿈꾸며, 세상과의 불화 속에서 난설헌이 바랐던 선계를 그려보며, 강릉에 가면 오죽헌과 지월리를 두루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학부 때의 한 강의로 흘러갑니다. 근대사 수업을 들으며 신여성과 관련된 발표를 맡아, 그즈음 출간된 여러 연구물들을 살피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녀들의 연애관, 교육관, 사회관……. 과연 신여성들은 무엇을 꿈꾸었겠습니까. 그리고 ‘모던걸’이라는 호칭 - 모던(modern)걸이자 모단(毛斷)걸, 때로는 ‘못된’걸이라고도 불리었다고 합니다 - 아래 이름을 남긴 그녀들은 이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한 나혜석이나 비구니가 되어 속세를 떠난 김일엽. 그러나 혹자는 이들이 불행했을까, 라며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혼한 여성은 행복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통념, 젊어서 여승이 된 사람에게는 피치못할 사연이 있을 거라는 편견. 그러나 그녀들의 삶은 단지 순간에 충실했을 뿐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자신을 글로 솔직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당신과 함께 갈 수덕사에서는 대웅전의 장중함만 보고 올 것이 아니라 그녀들을 만나는 꿈 한 자락을 묻어두고 와야겠습니다.
 
 미처 다 헤어보지 못한 이들이 남았지만, 오늘의 발걸음은 여기서 접어야 할 듯합니다. 이는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간 속에, 기억 속에 다른 모습으로 덧칠된 당신. 당신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은 언제이겠습니까. 당신을 만날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당신의 흔적을 더듬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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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3-12 0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반갑습니다. 잘 지내죠?
부여답사에서 만났던 부산아가씨라는 댓글을 이제 봤어요.ㅜㅜ
늦었지만 반가움에 달려왔으니 용서해주시기를...
이 책 '그 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도 제가 반해서 꼼꼼한 리뷰를 쓴 책이네요.^^
 
<도롱뇽과의 전쟁>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도롱뇽과의 전쟁
카렐 차페크 지음, 김선형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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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도롱뇽들과 거래가 시작된 순간, 즉 중국의 매매를 기점으로 Since Andrias Scheuchzeri(안드리아스 스케우크제리. 어느새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난 이 도롱뇽 종의 학명이다)라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는 비공식적인 용어로 시작되었으나, 어느새 전면으로 등장하여 현재는 서력 대신 쓰이고 있다. 

… (전략) … 인간의 역사를 다루면서 전쟁에 대해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여태까지 인간의 역사에서 도롱뇽과의 전쟁만큼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전쟁은 없었다. 

 전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일정 규모 이상의 집단이 극단적인 견해 차이로 인해 유혈사태가 벌어지는 것이 전쟁이다. 먼 고대로부터 내려온 '전쟁을 피 흘리는 정치'라는 유명한 경구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이것이 다는 아니다. 전쟁이 일어나기 위해 가장 먼저 충족되어야 할 것은 이질적인 두 존재가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만남이 전쟁의 전제라고? 그렇다. 서로의 존재조차 모른다면 충돌이 일어날 수 없다. 실제 서력이 사용되는 동안 일어난 많은 전쟁은 미지와의 조우로 인해 발생했다. 즉, 서로 다른 둘 이상의 존재가 만나서 생존, 신념, 이권 등 그 무엇이 되었든 간에 양립이 불가능함을 인지해야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인간과 도롱뇽과의 전쟁도 처음에는 아주 작은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이하, 인류의 역사를 아직 서력으로 기록하던 때 - A.D. 1936년 출판된, 카렐 차페크의 <도롱뇽과의 전쟁>이라는 기록에 많은 부분을 의존했음을 밝힌다.) 

 A.D. 19세기, 아직은 모험과 낭만이 남아있던 그 때에 인간은 도롱뇽과 조우하게 된다. 이전에도 인간과 도롱뇽의 접촉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원주민들은 도롱뇽을 '바다악마'라 부르며 경외시할 뿐이었다. 따라서 인간이라는 종(種)과 도롱뇽이라는 종(種)의 만남을 처음으로 이끌어낸 것은 J. 반 토흐 선장이라 할 수 있다. 진주를 채취하는 중에 그는 도롱뇽에 대해 알게 되고, 해저 작업에 익숙한 신체적 특징과 도구 사용을 곧잘 따라 배우는 지능을 확인한 뒤, 이들을 사업에 이용하려고 구상한다. 이 시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G. H. 본디라는 사업가다. 그는 J. 반 토흐 선장의 이야기를 듣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협력을 한다.
 이들의 사업은 나날이 번창한다. 특히 단순한 도구의 사용 뿐 아니라, 인간과 유사하게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보고되면서 도롱뇽의 활용 폭은 넓어지게 되었다. 이런 사실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역시 사업가들이었다. J. 반 토흐 선장이 죽고나서, G. H. 본디는 주주총회에서 '도롱뇽 신디케이트'라는 이름으로 도롱뇽들을 최대 효율로 양식하여 다양한 분야에 활용하게끔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해야 될 점은, 이들이 그야말로 사업가이자 책상물림이라는 것이다. 카렐 차페크의 저작에 의하면 G. H. 본디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도롱뇽이 뭔지 제가 알아야 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저한테 도롱뇽이 어떻게 생겼는지 걱정할 시간이 있을 것 같아요?' 이처럼 대상에 대한 애정 없이 당장 눈앞의 자기 이익만을 위해 행동함으로써, 도롱뇽에 관한 사업은 제어할 수 없는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후의 역사는 카렐 차페크가 인용하고 있는 포본드라라는 사람의 자료에 상당 부분을 빚지고 있다. 비록 일부 출처가 불명확하다든가, 체계적인 목적에 따라 수집된 것이 아니라는 단점은 있지만, 당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원사료이기 때문이다. 이를 관찰하면 당시의 S-트레이드(도롱뇽 교역이라고 한다. 당대의 사료는 이를 Slave Trade라 번역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있으나, 200여 년이 지난 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결국 다를 것이 없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의 실상을 복원할 수 있다. 또한 도롱뇽이 어느 날 심해에서 불쑥 튀어나온 신비스러운 존재가 아니라,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질서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도롱뇽을 활용함으로 벌어지는 유토피아에 대한 찬양이 횡행하게 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그 때를 되돌아보자면, 모든 것이 잘 되어가는 것 같았던 그 때가 사실은 문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인간은 새로운 종(種)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 편안한 도구로만 받아들였던 도롱뇽이 인간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인간은 도롱뇽이 바다가 있어야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드는 것에만 신경을 썼고(그것도 도롱뇽의 노동력을 이용해서!), 해군력 증강을 핑계로 도롱뇽의 손에 무기를 쥐어주는 것을 경쟁적으로 계속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도롱뇽과 인간들 사이에는 주기적으로 교전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물론 도롱뇽의 입장에서는 자기 방어라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 때의 기록을 확인할 길은 없다. 그저 어느 순간 확인해 보니 지금과 같은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세계의 곳곳에서 도롱뇽과 인간은 전쟁을 벌였다. 물론 그 동안에도 인간은 여러 가지의 길을 걸었다. '도롱뇽 마니아'라는 예술계의 아방가르드 운동이 일세를 풍미했으며, 이에 반대하는 'X의 경고'라는 익명의 소책자가 유행하기도 했다. 이렇게 도롱뇽에 대한 대응을 두고 인간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도롱뇽들은 지구를 자기 뜻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대규모의 자연재해를 그들 스스로가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이는 전적으로 인간의 책임이라 할 수 있다. 도롱뇽의 값싼 노동력을 마음껏 이용했던 것은 인간이며,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지형을 바꾼 것 또한 인간이다. 도롱뇽들이 지능이 있고,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돌아볼 줄 몰랐다.
 결국 도롱뇽들은 우두머리 도롱뇽의 지도 아래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알린다. '인간에 대한 적의는 전혀 없다. 다만 우리가 살 물과 해안, 모래톱이 더 많이 필요할 뿐이다. 새 모래톱을 건설하는데 매립 자재로 쓰려면 여러분의 대륙이 필요하다.' 인간은 수많은 나라들로 나뉘어 있었기 때문에 이해 관계를 조정할 수 없었다. 파두스 의회와 같은 세계연합 비상대책회의가 열렸지만,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어떤 인간들은 도롱뇽의 편에 붙어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결국 중국부터 몰락의 길을 밟는다.

 그 때 당시의 지도와 비교해 보면, 지금은 육지의 비율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현재는 지구에 산맥이라 부를만한 것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카렐 차페크의 신뢰할 만한 기록은 중국의 매매 직전에 서술을 멈추고 학자 특유의 낙관적인 전망을 펼치고 있다. 도롱뇽이 인간이 걸어왔던 것과 유사한 역사를 밟아갈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하여 그는 도롱뇽간의 세계대전으로 인해 모든 도롱뇽이 멸망하고, 살아 남은 인간이 역사를 전설로 윤색하여 전하면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것을 말한다. 그러나 2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도롱뇽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똑똑하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역사를 돌아보지 못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했던 인간과 달리, 도롱뇽은 인간의 역사를 배워 얻은 교훈을 놀라울 만큼 활용한다. 그리하여 여전히 인간은 한줌의 땅 위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그저 이 아이들이 나를 용서해 줬으면 좋겠구나.'라는 발언에 대해 고찰할 필요가 있다. … (후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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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에 살기 동문선 현대신서 43
자크 르 고프 외 지음, 최애리 옮김 / 동문선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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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는 후기에서 ‘서양 중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가 생동감 넘치는 내용을 잘 살려주는 제목일 테지만, 시중에 나온 다른 책들의 제목을 그대로 본뜰 수 없어 애매한 대로 이와 같은 제목을 취한다고 밝히고 있었다. 하지만 배경지식의 차이였을까. 『어떻게 살았을까』 시리즈가 평이하게 다가왔던 반면 이 책은 ‘상식’보다는 조금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충분히 재미있지만. 본문은 ‘사랑과 가족’부터 ‘신앙과 성직자’, ‘돈’, ‘폭력’, ‘여가’, ‘도락’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삶을 잘 보여주는 여섯 개의 주제로 크게 나누어져 있었다.

 ‘사랑과 가족’에서는 수정체 역시도 하나의 생명으로 간주하고 피임이나 낙태를 금하는, 잘 알려진 가톨릭의 이미지와는 다른 ‘사랑’의 얘기들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쾌락으로, 혹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관계를 가지고 아이를 낳은 여자들이 저지른 영아살해나 유기는 일견 이해 못할 것도 아니지만 낳은 사람도 죽임 당하거나 버려진 아이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상생활에까지 깊숙이 개입했던 교회의 그림자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사생활 - 흔히 ‘배꼽 아래 일’이라고 표현하는 것 - 에 국가가 개입하는 일을 꺼려하지만, 당시에는 참으로 지켜야 할 일도 많았던 듯. 연간 전례들과 여성의 월경이 금기로 적용했으며, 남성 상위만이 합법적이고, 혼외정사나 간통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그리고 억압이 많은 사회가 그렇듯 이 같은 금기는 ‘우화시’에서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중세의 독특한 장르인 이 ‘우화시’를 좀 더 연구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법한데. 그야말로 블랙 코미디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신앙과 성직자’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제목 뒤의 그림이었다. 단순한 선이지만 그래서 더욱 효과적으로 지옥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내 보여주고 있었다. 죽음 뒤의 세계는 과연 있을까? 나야 피식 웃으면서 넘어갈 뿐이지만 성경이 하나의 절대적인 텍스트였던 -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텍스트 이상의 그 무엇이었던 - 중세에는 최후의 심판과 그에 따라 가게 될 곳이 삶의 중요한 화두였다. 때문에 이 시기에 등장한 ‘연옥’, 즉 ‘형벌은 불가피하지만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는’ 곳에 대한 관념이 발달하게 되었고. 그렇지만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착하게 살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착하다는 기준이 지금과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당대 지옥을 묘사한 많은 그림들이 실제로 행해진 고문의 모습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사람이 사람한테 어떻게 저럴 수가 있냐는 생각을 했으니까. 사실 그건 지금이라고 해서 크게 다른 것 같지도 않아서 더 씁쓸할 뿐. 그리고 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유령을 들먹이는 거야 새삼 놀라울 것도 없는 이야기니.

 ‘돈’에서는 자본주의의 선구자라 불리는 경영인 쉬제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프랑스 왕들이 죽어서 묻히는 생 드니를 그렇게 만든 이가 바로 그이니 말이다. 그리고 ‘과거의 복원’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뷰’라는, 역사에서는 다소 파격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는 자크 르 고프와의 인터뷰. 중세 고리대금업자라면 돈만 아는 구두쇠 유대인이라는 이미지가 박혀있던 내게 - 그렇지만 이건 대부분의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어릴 적에 읽은 <베니스의 상인>이 꽤 오래 영향을 미치고 있구나. - 고리대금업을 일정정도 허용하는 대신 ‘누가 누구에게, 왜, 어떤 조건으로’에 관한 논의를 발전시킨 중세의 고리대금업자에 대한 이야기는 꽤 재밌는 것이었다.

 그리고 ‘폭력’에서는 공공연한 구경거리였던 사형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 ‘치욕에 중심을 둔 예식’이었다고. 문득 비디오에서 봤던 내용이 생각났다. 사방이 트여있는, 그래서 모든 이들이 자신을 볼 수 있는 마차를 타고 단두대로 향하던 마리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이들을 한 번 더 보지도 못하고, 그냥 마차를 타고 가고 싶다는 마지막 소원도 이루지 못한 채 말이다. 아무리 ‘과시적 처형’이 제한되어 있었다고는 하나 - 책에서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지만 신명재판이나 마녀사냥 등은 ‘과시적 처형’이 아닐까. 과연 이런 것들이 적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 여러 군데에서 실제 행해졌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당대에야 사형이 오락의 기능도 겸했다지만, 지금 사형이 존속하는 것은 왜일까. 형벌이 교화에 그 목적이 있다면야 변화 가능성을 아예 없애버리는 사형은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며, ‘일벌백계’는 잠시 억압의 기능은 할 수 있겠지만 단지 그때뿐이지 않나. 별로 교육적이지도 못하고.

 ‘여가’‘도락’의 경우, 내게는 두 개의 카테고리가 큰 분류의 기능을 하지 못했다. 여가시간에 즐기는 걸 보통 ‘도락’이라고 하지 않던가. 특히 ‘여가’에 있는 수렵이나 다른 스포츠들이 별로 흥미를 끌지 못하는 주제이기도 했고. 대신 의복을 다루는 부분에서 이때부터 ‘유니섹스’가 유행했구나, 줄무늬 옷은 나쁘다는 것의 상징이구나 하는 건 굉장히 흥미 있게 봤다. 하지만 역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먹을 것에 대한 이야기. 먹는 것과 보고 즐기는 것을 조화시킨 ‘프장 연회’의 모습은 한 번 쯤 나도 저런 생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특히 ‘고귀한 본성’ 때문에 땅에서 나는 것은 먹지 않고 하늘과 이웃한 과일들이나 새의 고기를 주로 먹은 귀족들의 얘기는 그저 실소를 자아낼 뿐.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즐기는 사이에 성 밖에서는 겨우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걸 익히 알고 있으니 마냥 곱게만은 볼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중세의 이모저모를 잘 보여주는 책을 읽으며, 흔히들 알고 있듯이 ‘암흑의 시대’로 중세를 규정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앙시앙 레짐을 설명할 때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구체제’는 ‘신체제’를 주장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것이며 모든 모순을 뒤집어쓰고 어두운 면이 더 부각된다는 건 여기도 마찬가지일 듯. 중세의 ‘암흑’ 이미지, 특히 ‘중간 세기’라는 어정쩡한 이름은 바로 뒤를 이은 르네상스인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책에서 접한 중세는 모든 역사가 그렇듯 한 마디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다층적인 면을 가지고 생동감 있게 움직이고 있는 시간들이었다. 이처럼 ‘현대적 편견’을 깨는 책들을, 앞으로 살아가면서도 계속 만나기를 기대할 뿐. (사실 능력이 된다면 직접 써보고도 싶은데 얼마만한 내공이 필요할지는 감히 상상도 못하겠다. 박상익의 『번역은 반역인가』에서 번역이 거인의 어깨를 딛고 조금 더 멀리 내다보는 것이라고 한 것처럼 지금은 그저 다른 이들의 저서를 읽고 조금이라도 더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면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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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이 쉽게 읽는 유럽역사 이야기
자크 르 고프 지음, 샤를레 카즈 그림, 주명철 옮김 / 새물결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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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종일 연구실에 있던 날, 동기 녀석이 심심해 죽겠다며 읽을 책 있냐고 하기에 손에 잡히는 대로 준 것이 바로 『청소년들에게 들려주는 유럽 역사 이야기』. 글씨도 크고 그림도 많으며 무엇보다 얇으니 한 번 읽어보라고 권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책을 돌려주며 “누나, 다 못 읽겠어요. 읽기는 편한데 눈에는 잘 안 들어와요.”라고 했었지. 무슨 얘기인지 책을 받아들고 잠깐을 고민했다. 읽기 편하다는 건 내가 얘기했던 장점들- 글씨가 크다, 그림이 많다, 얇다 같은 걸 말할 텐데, 눈에 잘 안 들어온다는 건? 녀석은 내용을 파악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나는 쉽고 재미있게 읽었던 책인데 왜 녀석은 이런 반응을 보였던 걸까. 아마 챕터 제목을 건너뛰는 내 버릇과 같은 습관을 가졌을 수도 있고 - 안 좋은 버릇이긴 한데, 무의식중에 잘 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 책은 제목이 많은 것을 얘기해주고 있기 때문에 신경을 써서 차분하게 읽어 내려갔지만. - 어쩌면 너무 요약에 길들여져 있는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보았다. 역사책은 단순히 사실을 기술하고 있다고만 생각한다면 이처럼 질문을 던지고 생각해보게 하는 책에는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개관 부분에서 책은 ‘유럽과 아시아의 이웃들은 서로 치고받으면서 문화를 주고받습니다’라고 얘기한다. 바다를 뺀 지구 땅 넓이의 7%에 불과하다는 유럽. 특히 세계 전도에서는 아시아 쪽 러시아보다도 작은 유럽대륙의 넓이가 드러난다. 그런데 실제 느끼기에도 그런가? 내가 배웠던 세계사 교과서는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여전히 유럽이 반 가까이 되는 분량을 차지하고 있었다. 오히려 아프리카나 다른 지역의 역사는 들어가서 괜히 복잡해졌다는 느낌을 줄 뿐. 머릿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세계 일주라는 걸 그려보았을 때에도 그 대부분은 유럽에서 보내는 시간이었지 다른 곳은 애초부터 염두에 두지 않았다. 면적으로는 ‘6대주’의 7% 밖에 되지 않는 유럽을 이렇듯 절대적인 영역으로 기억하게 된 걸까? 근대 이후 유럽의 식민주의와 연관 있겠거니 생각하면서 일단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아시아에서 신과 함께 온 공주’에서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아름다운 여성, 으로서의 유럽 이미지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분명히 신화 속의 에우로파는 공주였단 말이지.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서양은 동양을 타자화시키며 신비스런 이미지의 정적인 국가들, 이라는 오리엔탈리즘을 유포시킨다. 그 속에는 남성적 서양/여성적 동양의 이분법이 들어가 있고. 탈근대 논의가 진행되면서 이 같은 시선을 없애려고 노력하지만 쉽지는 않다. 세상을 보는 프레임이라는 게 그렇게 잘 바뀌는 건 아니니까. 다만, 이처럼 쉽게, 그리고 역지사지의 자세로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들이 널리 읽혔으면 하고 생각할 뿐.

 ‘서로 뒤섞이는 인구’는 민족적 순수성이라는 키워드를 쉽게 풀어내고 있었다. 사실 오래된 역사를 자랑할수록 단일민족일 가능성은 없다. 아니, 애초에 단일민족이 있는지도 문제. 우리나라에서는 ‘단군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단일민족임을 열심히 강조해왔지만, 환웅과 웅녀의 결합은 북방계 이주민과 토착민의 결합인 만큼 거기서부터 혼혈이 시작되는 걸. 그런데 왜 새삼스럽게 문제를 삼는 건지. 나치 독일이 먼 얘기만은 아닌 것 같아서 계속 씁쓸했다.

 ‘눈물 나는 사순절, 웃음 나는 사육제’는 중세의 풍습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바흐친의 카니발 설명은 왠지 낯익어서 반가웠다고나 할까. 지배질서에 대한 전복을 해학으로 포장할 수 있다는 게 궁핍한 생활이지만 그만큼의 정신적인 여유는 가지고 있었다는 걸로 보이고. 수용미학과 구성주의를 지나 대화이론을 배우면서 즐거웠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그리고 유난히도 눈을 뗄 수 없었던 소제목, ‘프랑스 혁명은 유럽을 폭발하게 만들었습니다. 혁명에 찬성합니까, 반대합니까?’ 혁명은 과연 이상의 실현일까? 물론 혁명을 이끌고, 역사에 이름이 남은 사람들에게는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격변기의 세상에 삶이 완전히 휩쓸려버린다면? 모든 이에게 공통적인 이상이 있었으며, 모두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 이상의 실현에 동의했을까. 뒤숭숭한 요즈음의 정세와 맞물려 자꾸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내용 부분에서 또 하나 눈여겨 봐야할 것은 샤를레 카즈의 삽화였다. ‘유럽 가족’에서 스페인 여사, 프랑스 여사, 이탈리아 여사 등 유럽의 나라 이름 대부분이 여성형이란 점을 이용하여 하이힐을 신은 대륙 삽화를 함께 배치한 것은 상당히 이채로웠다. 특히 ‘야만인, 은 유럽에 수많은 나라를 세웠습니다’에서 양면을 가득 채운 지도- 시체로 가득한 유럽은 당시 상황을 어떤 설명보다 간결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유럽은 막상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도 그것을 모른 채 식민지로 만듭니다’에서도 마찬가지로 그 시대가 개인에게는, 특히 약자에게는 어떻게 다가갔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설명이랄까. ‘도시, 상인, 학교’에서는 <월리를 찾아서> 같은 분위기로 사육제의 흥성스러움이 잘 드러나 있었지만, ‘샤를마뉴의 손자들은 제국을 나누어 갖는다’에서는 세 사람이 영토를 당기는 것으로 표현하는 게 좀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지. 어쨌든 전반적으로 내용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좋은 삽화들이었다. 우리 교과서가 이렇게 바뀌어도 재밌을 텐데. 유물의 사진을 싣는 경우야 좀 다르겠지만 지도나 다른 삽화의 경우는 ‘이것만으로도 당시의 상황을 보여줄 수 있다.’는 의지가 있다면 천편일률적이고 재미없는 그림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특히 영상에 익숙한 세대가 보는 것이니만큼 말이다.

 대체적으로 ‘그때 거기’의 먼 역사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근·현대사에 비중을 더 둠으로써 역사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는 역사 교과서의 문제와도 곧바로 직결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국사 교과서는 해석이 정립되지 않았다는 핑계로 근·현대사는 소략하게 다루고 있으며, 한국 근·현대사 과목이 독립된 이후,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에서는 교과서에 소략하게 다루어진 근·현대사를 실제 수업에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를 모르고서야 현재의 사회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던가? 그리고 ‘지금 여기’를 보는 눈이 키워지지 않고서야 어떻게 내일을,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겠나? 그런 점에서도 우리 교과서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본다. 특히 이 책이 분열과 통합이라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그려내고,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갈 길을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더욱 말이다.

덧. 판형은 일반적인 책보다 조금 큰 편이라 보기 시원했는데, 날개는 좀 불편했다. 별로 두껍지 않은 책임에도 바깥의 종이 표지와 책 자체 양쪽에 다 날개가 있었기 때문에 부담스러웠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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