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 않게, 머리가 무거운, 부담스러운 벽을 맞닥뜨렸다. 이런!

단전호흡, 기체조에 관한 막연한 관심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책꽂이에 80년대에 사보았던 '丹'이라는 소설, '한단고기'라는 소설 따위도 여전히 꽂혀있다..

아들놈의 부산한 장난끼에 관한 질책을 듣고서, 곧바로 단학원을 찾아간 것도 그 막연한 관심이 잠재해 있었겠거니.

첫 날, 별 생각없이 한 두 달 다녀보자고 방문했는데, 당연히 최소 몇 개월은 수련을 해야한다는 투이고, 어찌어찌 분위기에 휩쓸리다보니 아들놈은 6개월, 나는 1년과정의 가입신청서에 싸인을 하게 되었다.

물론 3년치 수련비를 내면 평생회원이 된다는 말도 옆에서 계속 하긴 하더라.

적잖은 돈을 카드로 긋고 나오면서, 마음이 좀 걸리긴 했지만 그만큼 기대가 컸기에 거부감이 강하진 않았다.

날마다, 일종의 스트레칭과 비슷한 가벼운 기체조와 행공 등을 배운다. 다른 거라면, 단전치기와 장운동(복식호흡을 준비하는), 그리고 '지감'이라고 하는 손바닥 기를 느끼게 하는 자세 등이 있을까?

매일 오후에 두 번의 수련이 있는데 그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어쨌든 일주일에 사흘이라도 가보자고 다니는 중이었다.

첫 날 가입할 때, 나는 가부좌를 잘 못한다고 했더니, 수련원 사람이 "경락을 짚어보면 어디가 막혀 있는지 알 수 있다" "보름 정도 수련하면 그 정도는 다 된다"는 얘기를 한다.  아, 기가 통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기도 짚어낼 줄 아나보다 하는 작은 감탄을 했을 법하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 수련 중인데, 원장인가 하는 사람이 따로 불러낸다. 왠일인가 싶어 의문스레 쳐다보니, 척추를 좀 만져주겠단다.

수련 중에도 몰두하지 않고 제멋대로, 하다가 쉬다가 반복하는 아들녀석이 어느 날 불려가더니, 원장이 온몸을 우지끈(?) 눌러대서 죽을 뻔 했다고 과장스레 떠들던 생각이 났다.

그래, 경락을 짚는다는 걸까? 흠, 그럼 나도 가부좌가 금방 되려나?

아무튼 따라 가서 엎드려 누워, 안마 비슷한 걸 받았다.

집에서 남편이나 아이들 안마를  해주다보면, 받는 사람은 몰라도 해주는 사람은 상당히 힘들다는 걸 안다.

그래서 원장이 거푸 힘주어 경락인지 뭔지, 척추 부근을 힘주어 누를 때마다 "으구" 하는 신음과 함께, 미안함이 커지더라.

뭐, 나름대로 어느만큼 수련이 된 사람일테고 남자이니 나보다는 덜 힘들래나? 하는 생각으로 그 미안함을 덮어보려고도 했지만, 나중엔,  뇌를 자극하겠다는  심산인 듯, 머리를 두드리고 뒷목 경추를 자극하는는 동작들까지 죄다 받노라니 개운하고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어 좋기도 했지만, 그만큼 베푸는 사람에 대한 상당히 부담과 미안함, 죄송스러움 등도 덩달아 커졌다.

마음의 불편함이 점점 커지려는데 마침 동작을 멈추고, 앉아서 수련이 어떻느냐는 등의 질문을 한다.

그러더니 나한테 '평생회원 가입'을 종용한다.

가입 때 연회원으로 가입해서, 한  달 정도 지났으니 그만큼만 제외하고 나머지를 평생회원비로 돌려서 처리할 수도 있다고, 평생회원이 되면 훨씬 안정적이 되어 수련도 더 잘된단다.

게다가 매달 한번씩 1박2일의 심성수련이 있는데, 거길 다녀오면 한 단계 상승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며칠 전에 수련 후 '나눔'인가를 하던 때가 떠올랐다. (정확한 말을 모르겠다. 수련 후 회원-'도우'라고 한다- 들이 둘러앉아서 그 날 수련에 대한 소감을 말하는 시간이다.)

심성수련을 다녀왔다는 두 분이 소감을 얘기하는데, 정말 너무 좋았다고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다고 진심으로 얘기를 하더라. 그 븐도 사실 '기'를 믿지 않았는데, 막상 그 수련 동안에 실제로 체험하고 보니 너무나 좋더라고. 생활이 변하게 된다고, 누구에게나 진심으로 권하고 싶다고 그랬다.

수련복에 각개인의 수련 시작 날짜가 적혀 있다. 그 분의 가입일을 보니 나보다 한 달 정도 먼저 시작한 사람들이더라.  '심성수련'이라는 대단한 용어 덕에, 최소 1,2년은 수련을 한 사람들이 다녀오는 교육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그 사람들 소감을 들으니 대체 어떤 내용의 교육일까 궁금한 마음이 들어 한번 가보고 싶단 생각도 들었지만 1박2일이라, 언감생심? 우리 집 아저씨의 동그랗게 커질 눈이 떠오를 뿐이다.

그런데 지금 원장이 눈 앞에서 권하는 게 바로 그거다. 심성수련.

게다가 나더러 '뇌호흡 선생'을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도 한다. 잘 할 것같다고. 학교 때 전공은 뭐였냐고까지 묻는다.  뇌호흡 선생?

평생회원, 심성수련, 뇌호흡선생.

눈 앞에서 권하는 게 세 가지다.

"....심성수련이야 한번 해보고 싶지만 남편 땜에 어려울 것같구요...평생회원....글쎄요...명색이 제가 가톨릭신자인데, 깊지 않은 신앙이지만 아직은 어느만큼 그 한계 안에 있고 싶은데...수련 하다보면 다소 신앙과 모순된 부분도 있는 것같구요....좀...아직은..."

딱 부러지게 "싫어요"소리를 잘 못하는 부류의 사람인 데다가 ,  딱히 싫다는 얘기를 할만한 그런 내용도 아닌 것같아, 그저 막연히 앉아있을 뿐인데, 원장은 계속 나로부터 긍정적인 대답을 듣겠다는 듯, 뜸을 들이며 쳐다보고만 있다. 예의 그 웃음을 띄우고.

"...물론 그러시죠. 그렇지만, 신앙같은 것도 한번쯤은 되짚어 볼 때도 필요한 것이고....무엇보다 자신의 본질을 깨닫고 들여다보면 막힌 기가 뚫리고...."

조근조근 얘길 하는데, 어떤 순간엔 마치 뭔가를 들어줄 때까지 치맛꼬리 붙잡고 졸라대는 아이인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에이, 그냥 하라는 대로 평생회원으로 돌릴까 하는 심정까지 불쑥 생겨날 정도로.  1,2분 종용과 침묵이 거듭되는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더 공기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이 나이에 새삼스레 내 안의 이유가 아닌, 외적인 이유로 '신앙'을 되짚어 보고 어쩌고 하란 말이람?  뭐야, 이건? 분위기 잔뜩 잡아놓고 거부하기 어렵게끔 유도한 게 아니야? 하는 의심이 슬며시 들기 시작했다.

또 섣부르게 결정짓다 나중에 속앓이 하게 되지 않을까싶기도 하고.  심지어는, 내가 1,2년 안에 죽어버릴지 알게 뭐야? 내일 일을 어찌 안다고 '평생' 이라는 거야? 하는 코미디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무쟈게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 30분 정도 지났나보다. 수련이 끝나고 득달같이 아들이 쫓아온다.

"엄마, 뭐해?!"

"응...그냥 얘기..."

"무슨 얘기?!"

원장이 옆에 있든 없든 아랑곳없이 물어대는 아들 녀석을 보노라니 웃음이 나온다. 저 녀석의 또 이유없는 보디가드 근성이 발동되었나보다.

원장이든 뭐든, 모르는 남자가 엄마를 뫼셔 가서, 다른 방에서  -물론 문도 없는 방이지만- 장시간(30분)을 보냈다는 게 영 께름한 모양이다.

입모양으로 '나가서 얘기하께' 해도 소용이 없다.

"왜? 무슨 얘기했는데?!" 계속 큰소리로 물어댄다.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는 내 대답에, 여전히 기대하는 눈빛으로, 다음 주까지 답을 들려달라는 원장의 말을 뒤로 하고, (아! 부담!!)

얼른 옷갈아 입고, 아들놈 붙들고 나왔다.

"엄마 뭐 했어?" 한다.

"뭐하긴 임마....몰러...자꾸 부담을 준다..."

"무슨 부담?"

"글쎄말여. 엄마한테 평생회원 하라구..."

"근데 뭔 얘기가 그렇게 길어? 30분도 넘었어!!!"

휴...영감! 저런 아들 있으니 마누라 한 눈 팔기나 하겠남?

돌아오면서 드는 생각이 께름한 게,  문득 그 심성수련이라는 것도 수련비라는 것을 내는 게 아니겠나싶고, 뇌호흡 선생을 하라는 것도 일정기간 교육을 받으라는 얘기가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겹쳐서, 뭔가 '수련'보다는 '상술'에 가깝지 않나 하는 의심이 불현듯 커졌다.

밤에 인터넷으로  단학, 단월드, 기체험  이런 내용들로 검색해보았다. -좌간, 인터넷은 좋은 것이야~~-

아니나다를까. 그런 내용들이 적지 않다. 초기 수련생에게도 끊임없이 평생회원가입을 종용한다는 것이며,  지도자 과정을 습득하라고 채근한다는 것이며, 지속적 심성수련을 하라는 것이며, 그런 과정도 일회성의 것들이 아니라, 매번 또다른 내용의 교육을 받도록 채근한다는 식의 불만들이 적지 않았다. 당연히, 계속 되는 수련을 위해 적잖은 비용을 지불케 한다는 것등,  내가 의심하는 내용으로 회의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적지 않았다. 다니다보면 "기감이 뛰어나십니다"는 식의 칭찬에 마치 자신이 금방 도통하게 되지나 않을까하는 기대까지 갖게 된다는 내용도 있었다. 아하, 그 칭찬이라는 것도 순수한 것이 아니었을까?

차라리 단학원보다는 국선도를 택해라는 내용도 있었다.

그제서야, 단학원과 국선도는 다른 기관이로구나, 하는 것도 알았다.

나로서는 집 주변에 단학선원(단월드)밖에 없어서 달리 선택할 것도 없었지만.

갑자기 오만 정이 뚝 떨어졌다.

생각처럼, 수련 과정이 차근차근 어떤 체계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닌 것같고,

매번 기초수련자나 기존 수련자나 구분없이 한데 모아놓고, 비슷비슷한 기체조와 행공, 따위를 하는 것도 기대에 미흡하게 여겨졌다. 

물론 이제 기초를 배우는 나나 아들을 생각하면 독자적 의지로 시간을 쪼개어 개인적으로 행한다는 것이 어려우니,그 정도 기본적인 기체조만으로도, 선원에 가서 시간을 채우고 오는 것이 도움이 되긴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잦은 종용과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내가 가서 온전한 수련이 되겠나 싶은 마음이 커졌다.  더우기나 나처럼 대범하지 못하고 소심한 사람이야 도무지 그 부담을 마음에서 떨치기가 어려울 테니 말이다.

하필 메일함에는 카드결제메일까지 날아와 있다. 내역서를 열고보니 갑자기 속이 썩썩거린다.

에잇, 그만둬야지... 하는 마음을 먹었다.

인터넷으로 다른 기관을 찾아보며 당장 가서 해지해달라고 해야지...하는데, 한번도 이런 중도해지 같은 걸 해본 적이 없는 지라 더럭 겁이 난다.  가입신청할 때 사인을 했는데 그 내용이 뭐였을까? 그걸 가지고 트집삼아 안된다고 하면 어쩌지?

소보원에 가서 검색을 해봐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대강 환불이 된다고 써진 것같긴 한데, 내용을 살피지 않고 사인했던 게 맘에 걸린다.

아..이래서 분위기라는 게 무섭다는 거로구나. 그 때 그 분위기에서 섣불리 그렇게 사인했던 게 후회스럽지만, 그 때는 묘하게 그렇게 되고 말았다.

내 발등을 내가 찍은 게지,뭐.

단학선원에서 좋은 성과를 얻은 사람도 분명히 있겠지만, 마치 모종의 결집력을 요구하는 종교 단체같은 느낌이 점점 강하고, '국기에 대한 경례'같은 것에서 오는 거부감이 적지 않으니, 이 즈음에서 나는, 발을 어떻게 뺄까 하루 종일 고민한다.

아들놈 정신수련은 달리 시켜야할까보다.

세상엔 만만한 구석이라곤 없구나, 다시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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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2008-01-16 0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물론...지도자분이 수련 시작하신지 얼마 되지 않은 분께 부담을 드린건 잘한 일은 아니지만, 정말로 심성수련은 다녀오시면 본인이 진정 원하는 것이 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될 거예요. 그리고 평생회원에 관해서는, 물론 갑자기 내기에는 적은 돈은 아니지만, 대신 그 돈으로 평생의 건강보험을 드는 셈입니다. 평생회원이 되면 지도자분께서 정기적으로 어디가 안 좋은지 점검과 관리를 꾸준히 해주십니다. 그리고 평생회원이든 일반회원이든 센터를 옮기는 것도 자유롭구요. 뇌호흡 선생에 대한 추천은 아무래도 도우님의 기운이 남달라 추천을 하신 모양인데...너무 귀찮게 생각마시고 딱 부러지게 거절을 하신 후에 수련을 꾸준히 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한국단편문학선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
김동인 외 지음, 이남호 엮음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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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딸 때문에 작년 말쯤엔가 읽어둬야 한다고 샀던 책들 중 하나가,  이 책입니다.
아아...정말 이렇게 맛날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 어려서 읽던 맛하고 정말 다르네요. 
김동인, 현진건, 이광수,나도향,최서해,김유정,채만식,이상,이효석,이태준,정비석,염상섭.
감자,.. 운수 좋은 날,..무명, 물레방아, 동백꽃...등등.
너무나 탁월한 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의 단편들 중에 어디 이 단편들에 비길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의구스럽습니다.
짧은 소설 하나에 집약된 수많은 이야기들, 그 사회적 배경, 자연 풍경의 묘사,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어린 날, 모호하고 낯설면서도 경이롭게 느껴졌던 첫 문장, 이상의 '날개'도 새삼스럽구요.

게다가 그들은 왜 그렇게 다들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는지.
이미 스무살, 서른 젊은 나이에 충분히 제 몫을 다해버렸다는 것인지.
한편으론 그들이 부럽기까지 합니다.

2편은 5,60년대 소설,김동리, 황순원, 오영수, 손창섭, 박경리, 강신재,..등등의 소설인데 아무래도 1편만큼의 감동은 덜하네요.

2003년에 읽는 1920년대 소설들이 어느 하나 고리타분하거나 구태의연함 없이 생생하게 감겨오는 게 너무나 살갑기까지 합니다.

나이 들어 다시 읽는 옛 단편들의 맛, 다른 어떤 맛에 비길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이 맛을 알아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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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여행기
조나단 스위프트 지음, 이동진 옮김 / 해누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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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18세기 초에 쓰여진 소설이라기엔 도리어 아연할 만큼의 예리하고 신랄한 사회비평서 같습니다.
물론 소설이니 흥미롭습니다.
그렇지만 그 소설에 담겨진 비판적 작가의 시각이 지금 이 시점의 인간사에 대입시킨다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신랄하고, 반면 아직도 똑같은 비판이 가능한 인간사라는 게, 21세기를 살고 있는 한 사람의 입장에서 참 서글프기까지 합니다. 인간의 역사란 어쩔 수 없는 오류들을 끊임없이 반복할 수 밖에 없는 것인지.
소인국과 거인국을 넘나들고 하늘을 나는 섬나라와 그 주변국, 말이 다스리는 세상인 준마종족의 나라까지,작가의 상상력은 놀랍기만 합니다.
준마종족의 나라에서 그려진 '야후'라는 이름의 지극히 야만적인 존재로의 인간. '야후'라는 단어가 이 소설에서 처음 등장했다네요. 
소설을 덮고 나니, 사람 살이에 대한 과거, 현재,미래...에 대해서 막연한 심난함이 생겨납니다.
과연 '발전'이나 '진보'란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고등학생 딸이 먼저 읽었는데, 재미있다네요. 고등학생 정도, 교양삼아 읽으면 좋을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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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 사계절 1318 문고 2 사계절 1318 교양문고 2
로버트 뉴턴 펙 지음, 김옥수 옮김 / 사계절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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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가난과 더불어 살아가는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이라고 썼다가 고쳤다. 가난을 긍정적으로 살아가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어린 소년의 이야기를 읽다가 엉뚱하게 '성향'에 관한 잡념들만 피어올랐다.
대물림하는 가난에 찌들린 사람들이 갖게 되는 그악스러움과 악착, 생존을 위한 몰염치 등에 대해, 그 가난을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이 쉽게 욕할 수 있는 것인가하는 따위의.

누군가 씁쓸하게 써놓았던, 부자들에 대한 단상.
부자, 그들은 모두 어느만큼 거만하고 보잘 것 없는 인격을 가진데다,  졸부다운 모자람과 빈약한 교양을 가지고 있을 거야 하며 가볍게 치부해버리고 싶은 부자가 아닌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오히려 그러한 바람을 지닌 자의 치기를 가볍게 눌러버리는 가진 자의 여유와 너그러움, 풍성한 교양, 나눔의 미덕, 온화한 표정에 대해서도, 가지지 못한 자의 다친 자존심만 다독거리게 된다.

그저, 막연히 심정적으로...가난한 사람들을 쉽게 욕하지 말라, 당장 눈 앞의 것들을 쥐지 않으면 다시는 갖지 못할 것에 대한 절박함이, 지금 누군가에게 모두 주어버려도 뒤돌아서서 다시 장만할 수 있는 넉넉한 부를 가진 사람들이 갖는 여유에 빗대서 쉽게 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고싶은 심정.

물론 책 속의 소년에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그저 '가난'에 대해서 그런 잡념이 들었던 것 뿐이다.
문자도 몰라서 자기 이름도 쓰지 못하는 소년의 아버지는 남의 땅을 빌어 농사를 짓고, 돼지백정 노릇을 하며 가정을 꾸려나가는 가난한 가장이고,
소년 또한 학교를 다니면서도 매일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그런 아빠를 따라다니며 상당한 노동을 감당해내는 열 세 살 아이이다.
어쩌면 책 속의 소년은 정말 긍정적으로 가난을 이겨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웃에게 선물 받은 돼지를 애지중지 키우고 그 돼지를 데리고 더 번화한 도시의 동물 전시회에 나가기도 하며, 어쩔 수 없이 어느 날 그 돼지를 아버지 손에 의해 죽여야 했고, 매일 꾸준히 반복되던 노동 후에 기어이 외양간에서 숨진 아버지의 장례를 의연히 치러야 했던 소년.

...그렇게 책은 끝났다. 자전적 성장소설이란다.
나는 가슴 뜨듯하게 읽어내며 속으로 '힘겹지 않은 10대들이 얼마나 있으랴?' 싶었는데
운동장에서 축구공 차며 뛰어노는 게 최고인 줄 아는 발랄한 열 세 살 내 아들은 "뭐야, 이거?" 한다.       특별한 이야기도, 갈등도, 대단한 결말도 없는 이야기가 '뭐야, 이거?' 정도로만 느껴지나보다.  네 녀석이랑 나랑은, 자라는 세상이 너무 다른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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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는 아파트가 없다 - 초록도깨비 낮은산 작은숲 15
김중미 지음, 유동훈 그림 / 도깨비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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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만석동...인천에 가게 되면 만석동엘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중미란 이름이 먼저 눈에 들어와, 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기억하며 보게된 책입니다.

90년, 93년, 97년, 2000년 이렇게 4남매의 일기가 이어지네요.
90년대라...7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제 입장으로는 이 책 속의 풍경들을 꼭 그 만큼 세월 저 쪽으로 미뤄두고 살았던 것같습니다. 아, 이런. 뒤늦게 깨닫습니다. 90년대에도, 2000년에도,2003년에도 여전히 상미,상윤이,상민이, 상희같은 아이들이 자라고 있음을...

"...이 동네에는 아파트가 없다. 나는 도시에 오면 아파트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다 판잣집이다..." 전남 진도에서 갓 이사온 풍경에서 시작합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 그런 동네에서도 어른이나 아이나 서로 부대껴가며 때로는 힘들게, 때로는 정을 나누며 십 년 세월을 보냅니다. 그런 동네도 밀려오는 개발 바람에는 배겨낼 재간이 없습니다. 사람들도 한적해지고 점점 좁아져오는 동네. 점점 늘어나는 아파트에도, 서민빌라에도 들어갈 수 없고, 밀려나면 또 어디론가 더 구석진 곳으로, 더 암담한 풍경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아이들.

높이 치솟은 아파트, 열악한 주차공간, 아이들이 뛰어놀며 바라볼 트인 공간 하나 없다는 것이 불만이었던 나는 이제 만석동의 상미,상윤이,상희,상민이를 생각합니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부지런히 살아간다고 해서 더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닌 세상, 부익부 빈익빈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며 당장 내 손바닥만을 들여다보고 사는 삶이 아닌, 정말 더 나은 사람살이가 어떤 것일까 다시한번 고민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다같이 맑은 꿈,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이라면 정말 좋겠습니다.

정갈한 소묘, 일기형식으로 된 짧은 글들이라 애들이나 어른이나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책을 덮고 잠시 그 아이들을 한번 더 생각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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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한마리날다 2004-08-11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천 만석동.....아파트 있는데...만석고가다리 주변 모두 아파트인데...그중간쯤에 단층짜리 건물들이 즐비해 있긴 하지만서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