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애들 어떻게든 밥을 먹여 보내려고 갖은 애를 쓰다보면, 제일 만만한 게 김밥 한 줄 휘딱 말아서 쥐어주는 건데.
그나마도 잠에 취해서 등교 시간 빠듯하게 일어나는 녀석들한테는 그것도 쉽질 않다.
이번 주는 녀석이 주번이다. 그래봤자 20분 빨리 가는 건데, 엄마의 조바심과는 달리 녀석은 너무나 느긋하다!
"넌 걱정도 안되냐? 시간 맞춰 가고 싶지 않아?"
"응, 뭐. 꼭 맞춰서 안 가도 괜찮아."
저런 세상 편한 녀석을 봤나?
내가 직접 보진 않았어도 주번 담당 선생님한테 잘못 걸리면 기합 받을 게 뻔한 데 말이지.
주번 하느라고 아침에 더 바빠서 밥 먹고 가기가 여의치 않았는지, '주먹밥'을 만들어달랜다.
저번에 한 달 동안 학원 다니는데 학원 뒤 분식집에서 먹던 500원짜리 주먹밥이 맛있었단다.
"엄마, 엄마! 밥에다 아무것도 넣지 말고 그냥 동그랗게 말아서 그 가운데에다 참치 넣고 김으로 싸주면 돼요. 알았죠?"
전 날 저녁에 당부를 받았는데 아침에 뒤늦게서야 생각이 나서 바쁘게 밥을 하고 소금, 참기름, 깨를 넣고 비볐다.
전쟁 때도 아닌데 아무 모양도 없이 맨숭맨숭 맨 밥보다는 색깔이라도 좀 나아 보여야 하지 않겠나 싶어 당근을 잘게 썰어서 밥에다 넣었다.
참치에 마요네즈를 좀 넣고 비벼서 주먹밥 한 가운데 집어넣고 동그랗게 뭉쳐서 김가루를 묻혀내는데,
겨우 일어나서 씻고 교복 입고 내 옆으로 다가오던 녀석이 당근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린다.
"엄마, 내가 아무것도 넣지 말랬잖아!"
"괜찮아아. 쪼오끔 넣었어. 아무것도 없는 주먹밥이 어딨냐?"
하, 요 녀석 또 아침부터 오만 인상을 찌푸리고 주먹밥 도시락을 투덜대며 가져간다.
욱! 쫓아가서 다시 뺏어버리고 싶었다. 아니 녀석이 즈네 엄마도 가뜩이나 아침잠이 많은 사람인데, 그런 달디 단 잠을 다 쫓고
지들 생각해서 맛나게 먹어보라고! 좋아하지 않는 당근, 쪼꼼씩이라도 멕여보려고 시늉만 내서 좀 넣었건만
아침부터 감히 제 녀석이 툴툴거려!
다녀오겠습니다도 볼멘 소리로 겨우 내뱉고 현관을 나선다.
흠...맘 약한 제 녀석 속도 내가 알지. 지금 깐에는 많이 신경이 쓰일 걸? 제 기분대로 엄마한테 인상은 썼지만 뒤가 한참 켕길걸?
문 밖에서 녀석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고, 5cm쯤 열린 현관문 안쪽에서 나도 한참 서 있었다.
문을 열고 욘석을 야단쳐 말어?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래, 엄마는 아이들의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주어야 한단 말이지?
그래, 까짓. 내가 참지. 흠흠흠...
참았다.
그래도 그대로 말면 안되지.
어제 저녁에 녀석한테 말했다.
"임마, 아침에 엄마가 많이 참았다는 거 알어 몰라?"
"흐응...알어알어.엄마 내가 잘못했어."
"주먹밥 잘 먹었어?"
"응..그거 난리 났어. 애들이 다 뺏어 먹고. 당근 넣어서 맛 없을 줄 알았는데 맛있더라구."
"그럼, 임마.엄마가 어련히 알아서 해줬을까...! 엄마가 아침에 화나는 걸 참았어. 엄마가 어제 엄마는 아이들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줘야한다, 는 걸 읽었기 때문에 애써 참은 거야, 임마!"
"그게 무슨 말이야? 감정의 쓰레기통? 머..그냥 엄마가 다 참아줘야 한다는 거지?"
"다 참아줘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냥 이 오마님이 참아줬다는 거지!"
"응,그래그래. 엄마 잘했어. 하여간 엄마, 나 낼도 싸 줘, 응?"
웬 때 아닌 주먹밥인지.
오늘은 덕분에 밥을 한 솥 했다.
학교에 가져 가서 먹고 꼭 거울 봐야 한다고 했는데
김쪼가리 잇새에 끼우고 수업 받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다.
갑자기 주말의 수학 과외 시간이 한 시간 늘었다고 금요일 새벽에 학원 가야 한다는 딸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와서 주먹밥 싸대고 하다보니
아침부터 대단한 엄마 노릇이라도 한 것같다.
아~함. 하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