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마침내 행복했던가? 아주 그렇지는 않았다. 그녀는 의심과 자신감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거울 앞에서 옷을 벗을 때면 그녀는 그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어떨 때는 자기 몸이 자극적이라고 느끼고 어떨 때는 무미건조하다고 느끼곤 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타인의 시선에 내맡기고 있었으며 거기에는 커다란 불확실성이 있었다. / 하지만 희망과 의심 사이에서 망설이긴 했어도 그녀는 이전의 너무 조숙했던 체념에서는 확실히 벗어났다. 언니의 테니스 라켓이 이제는 그녀를 풀 죽게 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몸은 마침내 몸으로 살았고 그녀는 그렇게 사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이 새로운 삶이 속임수 약속이 아닌 다른 것이길, 오래 지속되는 진실이길 소망했다. 그녀는 엔지니어가 그녀를 대학의 긴 의자와 태어난 집에서 빼내 주길, 그리고 이 사랑의 모험을 인생의 모험으로 만들어 주길 소망했다. 그녀가 임신을 그렇게 열광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녀는 자기 자신과 엔지니어 그리고 아이를 그려 보고 있었고, 그녀에게는 이 삼인조가 하늘의 별들에게까지 올라가 우주를 가득 채우는 것만 같았다. / 앞 장에서 이미 설명했거니와 엄마는 곧 깨달았다. 사랑의 모험을 추구하던 남자는 인생의 모험을 두려워하고 그녀와 더불어 하늘의 별까지 올라가는 이인조 조각상으로 변하기를 조금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나 우리는 또한 안다. 이번에는 애인의 냉담함이 내리눌러도 그녀의 자신감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매우 중요한 무언가가 확실히 변했다. 얼마 전까지도 연인의 눈이 마음대로 내려다보던 어머니의 몸은 이제 자기 역사의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선 참이었다. 그 몸은 타인의 눈에 대한 몸이기를 그쳤고, 아직 눈을 가지지 않은 누군가를 위한 몸이었다. 외부의 표면은 이제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몸은 내부 장기로, 아직 아무의 눈에도 보인 적 없는 다른 몸에 가닿고 있었다. 외부 세계의 눈들은 그러니까 비본질적인 모양만을 포착할 수 있을 뿐이었고 엔지니어의 견해조차 몸의 그 위대한 운명에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으므로 이제 아무 상관이 없었다. 몸은 마침내 독립성에, 그리고 완전한 자율성에 도달하게 되었다. 점점 불러 오고 보기 흉해져 가는 배는 이 몸에게는 끊임없이 커져 가는 자부심의 저장고였다. (18-19)

연인이 그녀의 가슴에 입 맞출 때 그것은 나중에 여러 시간의 의심과 불신으로 대가를 치러야 하는 한순간이었다. (19)

아, 전혀 아니었다! 사랑의 행복이라 일컬은 것이 자기에겐 단지 고통스러운 노역일 뿐이었다는 걸 그녀는 그에게 말하지 않았고, 망가진 자기 배가 얼마나 수치스러웠는지도 말하지 않았으며, 또한 신경발작이 있었다는 것도, 무릎을 다쳤다는 것도, 일주일 내내 잠을 자야 했다는 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런 솔직함은 그녀 본성에 맞지 않았으므로, 그리고 그녀는 이제 마침내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고자 했으므로, 그런데 솔직하지 않아야만 자기 자신일 수 있었으므로, 그래서 그녀는 그런 말들을 하지 않았다. 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는 것, 그것은 터서 갈라진 자국 투성이 배를 다시 다드러낸 채 벌거벗고 누워 있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84)

그는 이제 더 이상 방금 겪은 것에 종속되지 않았고, 그가 방금 겪은 것이 그가 쓴 것에 종속되어 있었다. (91)

보통 돌이킬 수 없는 무언가가 막 일어나려는 찰나가 되면 사람들은 사건의 진행을 (이에 대해 자신이 하여간 최소한의 힘이라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더 가속시키는 법이다. (192)

이제 그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자신의 삶 전체가, 버려진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아무 데도 전화 걸 수 없는 수화기를 마주하고 그저 하염없이 서 있는 기나긴 기다림일 뿐이었다는 것을, 이제 그의 앞에는 하나의 출구밖에 없었다. 버려진 전화 부스에서 나오는 것, 빨리 거기에서 나오는 것. (249)

당신은 한 아이에 대한 이르지 오르텐의 아름다운 시를 아마 알 것이다. 그 아이는 어머니의 몸속에서는 행복했으나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가혹한 죽음, 빛과 무서운 얼굴들로 가득한 죽음으로 느끼며, 그래서 뒤로, 어머니 안으로, 매우 감미로운 그 향기 속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한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젊은이는 어머니 몸 안에서 자기 혼자 가득 채우고 있던 이 우주의 안전함과 단일성에 대한 향수를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으며, 또한 이타성의 망망대해 속 한 방울 물처럼 흔적도 없이 자신을 집어삼키는 어른들의 상대성의 세상 앞에서 불안을 (또는 분노를)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열렬한 일원론자이며 절대성의 메신저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자신의 시로 자신만의 우주를 엮어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혁명가는 단 하나의 사상으로 주조된 근본적으로 새로운 세상을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사랑에서도 정치에서도 타협을 인정하지 않는다. 반항하는 학생은 역사를 통틀어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부르짖으며, 스무 살 빅토르 위고는 진창길에서 약혼녀 아델 푸셰가 발목이 드러나게 치마를 들어 올리는 것을 보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펄펄 뛰다. 난 옷보다는 정숙한 게 훨씬 중요한 것 같아. 나중에 그는 엄격한 편지에서 그녀를 이렇게 비난하고는 또 위협한다. 어떤 건방진 녀석이 감히 당신을 쳐다봐서 내가 그 친구 따귀를 때리는는 일이 벌어지게 하고 싶지 않으면 내가 지금 하는 말 명심해야 해!
이렇게 비장한 위협 소리를 들으면 어른들의 세상은 웃음을 터뜨린다. 시인은 연인의 발목이 저지른 배신에, 그리고 군중의 웃음소리에 상처를 받고, 그리하여 시와 세상의 갈등의 드라마가 시작된다.
어른들의 세상은 절대성이란 환상에 지나지 않음을, 인간의 그 무엇도 위대하거나 영원하지 않음을, 남매가 한 방에서 자는 것이 지극히 정상임을 잘 안다. (361-362)

노하자는 시끌벅적한 젊은이들을 지켜보다가 문득, 이 강당에서 자유의 특권을 지닌 이는 자신뿐이며 그것은 자신이 나이가 들었기 때문임을 깨닫는다. 사람이 자기 무리의 의견을, 대중과 미래의 의견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이 들었을 때뿐이다. 나이 든 사람은 이제 가까이 다가온 죽음과 더불어 혼자이며, 죽음에는 눈도 귀도 없으며, 그러니 죽음한테 잘 보일 필요가 없다. 이제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다. (285)

그녀는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있는 그대로와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을 구분하지 않는, 그리고 자기 마음의 욕망과 진실을 같은 것이라 여기는 그런 예외적 영혼에 속했다. 그녀는 분명 사십 대 남자에게 했던 말을 기억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또한 자기가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지금 기억의 실제 존재 권리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449)

사랑했던 아내가 죽은 후로 그는 여자의 눈물을 아주 싫어했다. 여자들이 자기네 삶의 드라마에 그를 배우로 집어넣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를 두렵게 하는 것처럼, 여자의 눈물은 그를 두렵게 했다. 그런 눈물에서 그는, 운명이 없는 자신의 평화로운 삶에서 자기를 끌어내려고 온몸을 조이는 촉수를 보았다. 그는 눈물이 혐오스러웠다.
그래서 그는 좋아하지 않는 물기가 손에 느껴지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어서 이 눈물의 힘에 이번에는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며 훨씬 더 심하게 깜짝 놀랐다. 사실 이것은 사랑의 눈물이 아니며,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고, 책략도, 무슨 협박 수단도, 소동을 부리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 눈물은 그냥 다만 그렇게 눈물로 흘러내리는 데 족할 뿐이며, 사람에게서 보이지 않게 슬픔이나 기쁨이 새어나오듯 아가씨의 눈에서 흐르는 것임을 그는 알았다. (458-459)

오로지 진정한 시인만이 시라는 거울의 집이 얼마나 서글픈지를 안다. 유리창 너머에는 멀리서 울리는 총격 소리, 떠나고 싶어 불타는 마음이 있다. 레르몬토프는 군복 단추를 여민다. 바이런은 침대 머리맡 탁자 서랍에 권총을 넣어 둔다. 볼케르는 자신의 시구절 속에서 군중과 더불어 행진한다. 할라스는 저주를 시로 쓴다. 마야코프스키는 자기 노래의 목을 짓밟는다. 찬란한 전투가 거울 속에서 맹위를 떨친다. / 하지만 조심하라! 시인들이 실수로 거울 집의 한계를 넘어서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느니, 그들은 총을 쏠 줄도 모르고, 또 쏜다 해도 자기 머리나 맞히기 때문이다. (473)

명예는 네 허영심의 허기일 뿐이다. 레르몬토프. 명예는 거울의 환상이며, 명예는 내일이면 여기 존재하지 않을 이 무의미한 관객을 위한 공연일 뿐! / 그러나 레르몬토프는 젊고, 그가 살고 있는 순간순간들은 영원과 같으며, 그를 쳐다보고 있는 이 몇 신사 숙녀들은 세상이라는 대강당이다! 그가 이 세상을 사나이답고 굳센 걸음으로 걸어 나가느냐, 아니면 살아갈 자격도 없게 되느냐, 둘 중 하나인 것! (491)

권총 한 발이 발사되고 레르몬토프는 가슴에 손을 가져갔고,
야로밀은 발코니의 얼음장 같은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졌다. / 오, 나의 보헤미아여, 그대는 그렇게나 쉽게 총성의 영광을엉덩이를 걷어차는 익살로 바꿔 버리는구나! / 그렇지만 야로밀이 레르몬토프의 패러디일 뿐이라고 해서 우리가 그를 비웃어야 할까? 화가가 가죽 코트를 입은 앙드레 브르통을 모방했다고 해서 우리가 화가를 비웃어야 할까? 앙드레 브르통 역시 자기가 닮고 싶어 했던 어떤 고귀한 것의 모방이 아니었는가? 패러디란 인간의 영원한 운명이 아닌가? / 게다가 이 상황을 뒤집어 보는 것보다 더 쉬운 일도 없다. // 권총 한 발이 발사되고 야로밀은 가슴에 손을 가져갔고, 레르몬토프는 발코니의 얼음장 같은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졌다. (494-495)

엄마는 행복의 커다란 눈물방울을 통해 세상을 본다. 그녀 주변 모든 것이 물기 속에 흐려진다. 형태의 속박에서 풀려난 사물들은 기뻐하고 춤춘다. (511)

야로밀은 자기에게 말하고 있는 이 여인(엄마)이 늘 한결같이 자신을 사랑했음을, 한 번도 자기를 떠난 적이 없음을, 자신이 한 버도 그녀를 잃을까 두려워한 적이 없음을, 그녀가 자신을 한 번도 질투하게 만든 적이 없음을 깨닫는다. (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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