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 꽃잎보다 붉던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박범신 작가의 소설은 처음이다. 내가 소설에 관심이 없던 시절이 길어서 그의 소설을 읽어보지는 못했다. 몇해전 <은교>라는 영화를 보고도 원작을 한번 읽어봐야지 했을 뿐 읽지는 못했다.

그는 계속 왕성하게 작품을 발표했고 <소금>이 나왔을땐 평도 너무 좋아서 꼭 한번 읽어봐야지 했는데 결국은 이 작품에 먼저 닿았다. 사랑을 믿지 않는 메마른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많이.......촉촉해졌다.

첫페이지에 작가의 말을 대신한 듯한 작가의 글이 있다. 사실 처음엔 있는 줄도 모르고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다 읽고 난 뒤 조금은 멍해진 마음으로 다시 첫 장을 넘겨보니 아마도 부인에게 쓴 글인 듯도 하고 오랫동안 작가를 사랑해 온 팬에게 쓴 글인 듯도 한 작가의 글이 있었다.

# 사랑에서, 주호백과 닮은 당신, 나는 그러나 정염과 슬픔 사이의 골짜기를 낮은 포복으로 갈팡질팡 여기까지 왔네. 사랑의 끝엔 무엇이 있느냐고 누가 물었을 때 ˝그야 당연히 사랑이 있지!˝ 당신은 담담하게 대답했어. 내가 한없이 비루하게 느껴졌던 그 순간, 나는 이 소설의 작은 뼈 하나를 얻었다네. 사랑의 지속을 믿지 않는 남자 곁에서 그것의 영원성을 한번도 의심하지 않고 살아온 오랜 당신, 독자들에게 진솔하게 허락을 구하면서, 나이 일흔에 쓴 이 소설을 부끄럽지만 나의 `당신`에게 주느니, 부디 순하고 기쁘게 받아주길!
2015년 10월 내 생일 저녁에


이야기는 한 할머니(윤희옥)가 죽은 남편(주호백)의 시신을 닦아주고 마당 매화나무 아래에 묻어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정성이 어찌나 지극한지 장례식도 없이 혼자서 마당에 묻겠다는 의식이 별로 의아하지 않을 정도다. 그리고 나서 할아버지가 남긴 일기장을 읽어보는데 거기엔 조금 충격적인 이야기가 있다. 2005년 할머니의 생일날, 고급 레스토랑을 예약한 할아버지의 계획을 마다하고 신촌의 라면집에서 조촐한 생일 파티를 한 날, 왜 구태여 당신이 그 곳을 찾아갔는지 다 알고 있노라고, 당신의 모든 추억은 기실 당신보다 내가 더 샅샅이 기억하고 있다고, 당신만을 평생 보고 산 나와 달리, 당신은 평생 동안 한사코 나를 보지 않았다고, 당신은 가인 형만을 품고 살았다고, 내가 당신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비밀을 당신에게 들키지 않아 참 다행이라고, 앞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당신을 죽이지는 않고 당신의 뇌만 꺼내어 바꿔놓고 싶다고.
평생을 할머니만 바라보며 복종의 삶을 살았던 남편인데 일기장에는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을 조심스럽게 꺼내놓고 있는 것이다.

사실 할아버지는 뇌출혈과 치매를 앓고 있었고 그 병간호를 하는 할머니에게 문득 문득 모진 말을 해대곤 하였다. 그 평생의 억울함이 터져나온 것 같은 마음을 보듬으며 할머니는 비로소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간절해진다. 그동안 너무나 불공평했던 사랑을 이제 수평으로 맞추고 싶어져서 자기 자신도 파킨스 병에 걸렸다는 걸 알면서도 병간호에 최선을 다한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욕을 하고 막 대할수록 할아버지 앞에서 몸을 낮추고 빌고 또 빌면서 그제서야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깨달은 자신을 원망한다. 그렇게 생의 마지막 순간에 뜨겁게 사랑하고 너무나 보내기 싫은 남편을 떠나 보내는 나만의 의식을 치르고 나서 할아버지의 일기장을 보게 된 할머니.
일주일 후, 할머니는 파출소에 가서 `실종` 신고를 한다.

# 죽은게 아니다. 영원한 실종이다. 갚아야 할 죄가 있다면 남은 인생에서 다 덜어내어 살아 있을 때 그와 수평을 이루고 싶다. 남은 꿈은 그것뿐이다. 내게 남겨진 시간은 그러므로 당연히 실종된 그를 찾아 헤매는 고단한 과정에 바쳐질 터이다. 발바닥엔 물집이 생기고, 입술은 부르트고, 삭은 관절들은 걸음걸음마다 내려앉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관없다. 굽잇길마다 비바람이 불고 물길마다 그 법이 깊을망정. 죄를 벗어 기워 사랑의 값을 완성하고자 하는 길일진대. 그 굽잇길 그 물길이라 할지라도 왜 더러 꽃인들 피어 있지 않겠는가. (30쪽)

주호백은 윤희옥보다 세살이 어렸다. 그리고 사랑에 있어서는 늘 약자였다. 평생을 함께 살면서도 `누나`라고 불렀는데 그가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기 시작하자 가끔 `당신`이라고 부른다.

`당신`

# 당신이라는 호칭을 들을 때마다 나는 눈물겨웠다. 그와 나의 관계에서 우리가 절실하게 가닿고 싶었던 수평적 관계가 완성되는 느낌이 그 호칭에 깃들어 있었다. 발작이 심해질 때 분노에 차서 이년! 저년! 하고 나를 부른 적도 물론 있었다. 그것은 그의 내재된 분노를 푸는 데 일조했다. 나는 그러므로 그 호칭 역시 싫지 않았다. 그의 분노를 쇠약하게 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훨씬 더 참혹한 욕도 기쁘게 들을 마음의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었다. 그리고 차츰 그는 나를 희옥누나 혹은 누나라고 불렀다. 그의 기억이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올라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와의 관계를 수평적이라고 느낀 건 당신이라는 호칭을 들을 때였다. 눈물겹고 따뜻하고 또 공평한 낱말이었다.(349쪽)

소설에서 나는 주호백의 한결같은 사랑에 감동했고, 윤희옥의 아련하고도 슬픈 첫사랑에 울었고, 세상과 타협할 줄 몰랐던 김가인의 짧은 생에 마음 아팠다. 그리고 결국은 공평하고 진정한 사랑으로 완성되어 가던 주호백과 윤희옥의 삶을 보면서 사랑이란 것은 퇴색되기 마련이라고 믿으며 더이상 어떤 노력도 해보려고 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 당신, 이란 말이 왜 이리 슬플까. 함께 견뎌온 삶의 물집들이 세월과 함께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눈물겨운 낱말이다. 그늘과 양지, 한숨과 정염, 미움과 감미가 더께로 얹혀 곰삭으면 그렇다, 그것이 당신일 것이다. (267쪽)


지금보다도 더 나이가 들어서 `당신`이란 말을 듣는다면 바로 그런 기분일 것 같다. 사실 나에게 `당신`이란 말은 평소에 서로의 호칭으로 자주 쓰는 말은 아니다. 남편도 평소엔 당신이란 말을 쓰지는 않는데 가끔 편지를 쓸 때면 당신이라고 부른다. 그 때의 느낌이, 편지를 받았다는 기쁨과는 또 다른 어떤 미묘한 감정이 들곤 했는데 그게 `당신`이라는 말에서 나왔다는 걸 이 소설을 읽다가 문득 깨달았다. 세월과 함께 삶의 물집들이 쌓이고 쌓여 온갖 감정들이 곰삭은 말, 눈물겹고 따뜻하고 공평한 말 `당신`
소설을 읽다보면 그 의미가 새삼 와 닿을 것이다.

처음엔 너무 평범한 제목이 아닌가 싶었는데 작가가 역시 괜히 한국 문학의 거장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일상의 말에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작가의 힘을 느낀다. 그것만이 아니라 책을 읽으며 내가 미처 몰랐던 우리말들을 많이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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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12-14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로라님 덕분에 `박범신`작가도 알게 되었어요.ㅎ 그러고보니 저도 한국 소설을 무척 무지 읽지 않은거 같아 반성스런 마음도 듭니다. 이 소설에서 부부사이에서 혹은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당신`이라는 의미는 `너`라는 의미를 넘은 그 무엇. 애뜻한 그 무엇이 포함된 단어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실종신고` 에서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살리미 2015-12-14 22:19   좋아요 0 | URL
처음부터 죽은 남편을 마당에 묻는 다거나 그러고나서 실종 신고를 한다거나 하는 설정 자체가 워낙 독특하기도 했고 그들의 사연이 또 기구하기도 해서 무척 재밌게 읽었답니다. 이 소설에서 주호백은 일생을 윤희옥만 바라보며 그녀의 아이를 키우고 온갖 희생을 다하는 인물인데 비해 젊은 날의 윤희옥은 주호백이 안중에도 없었던 사람이었어요. 애초에 너무 기우는 사랑이었죠. 그러다 칠십이 훨씬 넘은 나이에 깨닫게 되는 사랑과 그 사랑의 공평함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들이 참 특별하게 다가왔어요.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이 소설에서 `당신`이란 단어의 특별함이 문득 떠오르더라고요.
글솜씨가 없어서 제대로 전달하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읽고 나서 오래 여운이 남는 소설이 참 좋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