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매일매일 다른 사람이 된다. 나는 나이지만-나는 내가 나라는 것을 안다.- 또한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9쪽)

영화 <뷰티 인사이드>를 보면서 매일 다른 사람으로 깨어난다는 설정이 참 새롭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소재를 다룬 소설이 있다는 걸 알았다. 영화는 칸 국제광고제 수상작 The Beauty inside 가 원작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이 소설도 어느정도 영향이 있었던 건 아닐까 궁금해서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그 누구와도 하루 이상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면 어떤 기분일까? 영화에선 주인공이 18세 이후 갑자기 그런 일을 겪게 되지만 이 소설 속 주인공 A는 태어날 때부터 그런 운명이다. 하루 이상의 부모도 없고 하루 이상의 친구도 없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으니 운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이기 더 쉬울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이 상황은 영화보다 더욱 가혹하다. 그가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건 현실에서가 아닌 가상공간안의 이메일계정뿐이다. 그는 이 세상에 아무 끈이 없는 영혼만 있는 존재다.

청소년 소설이라 가볍게 읽힐 줄 알았는데 소설은 생각보다 훨씬 나를 사로잡았다. 모든 문장에서 나는 설득당했다.
열여섯살, 5994일째의 삶부터 그를 지켜본 결과 A는 굉장히 조숙하고 바르다. 이 몸 저 몸을 다니면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다른 방식의 삶을 보는 객관적인 시선을 갖게 된 때문이다. 하루만 살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몸이니까 마음내키는 대로 살 수도 있지만 A는 그러지 않는다. 몸을 빌려준 사람의 인생을 최대한 배려한다.

—나는 악마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한순간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점이 정말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란 말인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빠져나갈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분명 우리 모두에겐 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 죄를 저지르지 않는 쪽을 선택할 뿐이다. 매일 매일 우리는 죄를 저지르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나도 다르지 않다. (222쪽)

A는 리애넌을 만나고나서부터 그녀와의 관계를 지속하고 싶다는 욕망에 빠진다.
— 사람들은 자기 몸이 지속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처럼, 사랑도 당연히 지속될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사랑에서 가장 좋은 것은 지속적인 만남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80쪽)

지속적인 만남이 불가능한 A는 어떻게 리애넌과의 관계를 유지할까. 영화에선 며칠 잠을 안자면 모습이 안바뀌기도 하지만 A에겐 그런 일은 없다. 다음날이면 가차없이 새로 태어난다. (A는 항상 자신과 같은 나이의, 비교적 가까운 공간의 범위안에 있는 누군가로 태어난다)
리애넌과의 사랑을 어떻게든 이어가고 싶은 A의 노력이 소설의 중심 내용이 되는데 그 사이 A가 몸을 빌려 태어나는 여러 아이들의 상황도 흥미롭다. 있을 수 있는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의 거의 모든 경우의 수를 보여준다. 다양한 상황의 아이들로 태어난 A는 그 아이들의 인생을 최대한 배려하며 심지어 그 아이의 불행을 모른척 하지 않고 최대한 돕기까지 한다. (심지어 리애넌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의 도움(?)으로 리애넌과의 만남을 이어간다.

인상적이었던 부분! 조지라는 홈스쿨링을 하는 소년으로 깨어난 A는 리애넌과 도서관에서 만나는데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나는 이 책들이 요 몇 해 동안 내 동반자였다고 설명한다. 내 이야기는 늘 변한다 해도 이 책들은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는 친구고 내가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이야기라고 말해 준다.(288쪽)
아! 그렇겠구나. A에게 책은 그런 점에서 더욱 각별하겠구나. A가 그렇게 분별있는 아이로 자란게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마크로 태어난 날은 마크 할아버지의 장례식 날이었다. 난생 처음 장례식을 경험한 A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할아버지를 기억하고 추도하는 모습에 결국 눈물을 흘린다. 그는 결코 마크의 할아버지가 남긴 것과 같은 기억의 자취를 남기지 못할 것이고 그를 기억해 줄 누군가도 갖지 못할 것이므로. A가 눈물을 흘리는 순간 그 슬픔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진다. 장례식에서, 남들과는 다른 울음을 우는 A. 나도 목이 메어온다.

리애넌과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말하진 않겠지만 나는 이 소설의 결말을 사랑한다.

— 우주의 중심을 응시하면, 차가움이 있다. 공허가 있다. 궁극적으로 우주는 우리에게 무관심하다. 시간은 우리에게 무관심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4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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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5-10-13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는 끌리지 않았는데, 소설은 문장들을 보니까 읽고 싶어지네요.

살리미 2015-10-13 10:39   좋아요 0 | URL
영화랑은 모티브가 비슷할뿐 완전 다른거 같고요~ 에브리데이는 이른바 영어덜트계 소설인데 너무 가볍지 않고 생각할만한 내용이 많아서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