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서문 첫문장 ˝차라리 독립 운동이 없었으면 좋겠어요.˝를 보면 역사 시간에 근현대사 배우며 골치 좀 아파 본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게 근현대사는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과 가장 밀접한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격동의 세월을 보낸 탓에 알아야 할 것도 많고 또 감춰야 할 것도 많아서 앞 뒤 맥락없이 사건 나열만 외우느라 젤 고생스러운 부분이었다. 책을 읽을 땐 좀 이해가 되다가도 다시 생각해보려면 이게 먼저인지 저게 먼저인지 늘상 헷갈리기 일쑤다.
오늘 광복 70주년 기념일에 영화 <암살>이 천만 관객을 돌파 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나도 그 영화를너무 재미있게 봐서 다시한번 근현대사를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책을 펼치게 되었다.
이 책은 재미없게 역사를 배우는 아이들을 위해서 저자가 고민끝에 내놓은 일종의 대안교과서다. 어려운거 잘 못보는 내수준에 딱 맞지만 그렇다고 아주 쉬운 수준도 아니다. 근현대사 부분만 400페이지 가까이 되니 흐름을 파악하기 쉬울 정도의 자세한 설명이 가능하고 여러 종류의 시각자료들이 많아서 그 시대를 비교적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맘에 드는 것은 소단원마다 생각할 문제를 던져줘서 책읽기가 생각하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역사는 과거의 산물이 아니라 지금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미래를 위해서는 어떤 성찰을 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일깨워준다.
1931년 만주를 차지한 일제가 1932년 상하이를 공격하여 또 승리한다. 이 전승기념식에서 윤봉길은 폭탄을 던지고 침략의 원흉들에게 큰 피해를 입힌다. 일제가 승승장구하던 시절이니 친일파들은 일제의 조선지배가 영원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윤봉길이나 김구는 정말 독립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영화 <암살>에서는 안옥윤의 입을 통해 얘기한다.
˝모르지.. 그치만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그들은 단결하여 투쟁하면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라 믿었다. 일제가 승리를 거듭하며 전쟁을 확대할수록, 일제의 패배도 가까워진다고 생각하였다. 일제의 중국 침략은 중•일간의 전면 전쟁으로 이어지고, 일제의 중국 지배는 소련이나 미국과의 대립을 불러 올 것이니, 마침내 일본이 전쟁에서 패할 수 밖에 없다고 확신한 것이다.(199쪽)]
그렇다면 일제의 내선일체정책에 기대어 노골적으로 친일을 하던 인사들의 친일행위는 `일제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이었을까, 아니면 일제의 식민 지배가 지속될 것이라 믿고 스스로 선택한 행동이었을까?` 라고 던진 저자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할까? 서정주 시인이 쓴 <마쓰이 오장 송가>를 읽고나서 느낀 배신감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는 해방 후 스스로 친일을 변명하는 시를 써서 이렇게 입장을 밝힌다.
그러나 이 무렵의 나를
`친일파`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의가 있다.
`친하다`는 것은
사타구니와 사타구니가 서로 친하듯 하는
뭐 그런 것도 있어야만 할 것인데
내게는 그런 것은 전혀 없었으니 말씀이다.
(중략)
나는 이때 그저 다만,
좀 구식의 표현을 하자면-
`이것은 하늘이 이 겨레에게 주는 팔자다` 하는 것을
어떻게 해서라도 익히며 살아가려 했던 것이니
여기 적당한 말이려면
`종천순일파`같은 것이 괜찮을 듯하다.
이때에 일본식으로 창씨개명까지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우리 다수 동포 속의 또 다수는
아마도 나와 의견이 같으실 듯하다.
(시로 쓰는 한국 근대사2권에서 인용)
물귀신 작전처럼 다수의 동포들을 끌어들이며 하는 그의 변명은 <암살>의 염석진이 마지막에 뱉은 대사 ˝일본이 망할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말과 같은 얘기다. 그 암울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보면서 목숨걸고 항일 운동을 한 애국지사들이 있는데 일제의 식민지배가 영원할 줄 알고 그랬다는것은 비겁한 변명일 뿐인것이다. 그나마 영화에서는 판타지일망정 친일파를 처단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되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광복 70주년을 맞아 여전히 부끄러울 뿐이다. 게다가 대통령은 건국67주년이라고 못박아 얘기하면서 헌법에도 명시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무시해버리니 역사책을 읽는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이럴 때 일수록 우리 역사를 바로 보는게 중요하다는게 실감이 난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생각하고 토론하는것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위한 지름길이라면 이 책은 그 역할을 톡톡히 할 살아있는 교과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