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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거짓말쟁이들 - 누가 왜 어떻게 거짓말을 하는가
이언 레슬리 지음, 김옥진 옮김 / 북로드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우리의 강력한 사회적 본성은 진실을 말하는 최고의 이유이기도 하고,
동시에 거짓말 없이 지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p. 319)
이 책의 저자 이언 레슬리는 인류의 진화에서 거짓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인류의 지능이 단순히 자연의 위협에 맞서는 과정에서 진화됐다는 주장을 뛰어넘어, 군집을 이뤄 활동하는 인간의 사회적 특성 때문에 지적으로 더욱 복잡한 능력이 요구되었고, 생존을 위해 동료를 속여 먹을거리를 빼앗거나 안심하고 있는 상대의 허를 찌르는 방법을 배워야 했기 때문에 '거짓말'이 인류 진화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정리하면 이 책은 거짓말 자체나 거짓말을 하는 이의 도덕성을 비난하고자 하는 책이 아니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우리가 태어나기를 "거짓말쟁이"로 태어난 데다 조직과 사회에서 생존해 나가는 데 있어 거짓말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거짓말을 일삼는 건 비단 인간뿐만 아니다. 원숭이와 침팬지마저도 먹이를 얻고 상대를 얻기 위해 속임수를 쓴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어떨까?
그의 주장대로라면 인간은 태어나기를 거짓말쟁이로 태어났으니, 어린아이라고 거짓말을 못하겠는가? 부모에게 꾸중을 들을 상황이 되면 네 살배기 아기도 본능적 감각으로 자연스레 거짓말을 내뱉는다. 그렇다면 아이에게 무조건 '거짓말은 나쁘다'라고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해결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 있게 들려올 수밖에 없다. 아동 도덕발달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아이들은 대부분 자기 강화 행동으로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로 위기를 쉽게 모면하게 되면 그 아이는 그 이후에 또다시 거짓말을 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저자는 아이가 거짓말을 했다고 추궁하거나 벌을 내리거나 화를 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아이가 가장 좋은 본능을 발휘하도록 믿어주고,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 되는 환경을 만들어주라고 충고한다.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조지 워싱턴의 벚나무 일화는 미국 초등 교과서에도 수록된 것으로 정직의 중요성과 '따뜻하지만 엄격한 부모'가 아이의 발달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어려서 아버지가 영국에서 받은 특별한 벚나무를 베어 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화가 난 아버지에게 혼날 것을 염려했지만 어린 조지는 곧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는데, 그의 정직함에 아버지는 화를 내지 않고 아들의 정직함에 더 집중했다.
"조지, 어쨌든 네가 그 나무를 찍어 쓰러뜨렸다니 기쁘다. 네가 거짓말 대신 진실을 말하는 것을 듣는 게 내가 1,000그루의 벚나무를 갖는 것보다 더 좋구나."
아이를 무조건 호되고 엄격하게 기르고 가르치는 것이 답이 아니다. <양치기 소년>처럼 거짓말로 크게 벌을 받는 이야기보다, 조지 워싱턴의 일화처럼 정직의 가치 그 자체를 더 중시하는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이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더 적다고 하지 않는가?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3장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들'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생각을 서로 새롭게 연결하는 능력을 '확산적 사고divergent thinking'라고 불렀는데, 예술은 바로 그곳, 익숙하거나 평범한 것의 요소들을 뭔가 새로운 것이 나올 때까지 뒤섞는 행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던가? 미국을 대표하는 뮤지션 밥 딜런도 예로 등장한다. 그를 담아낸 몇 편의 영화에서도 여실히 보여지듯이 밥 딜런은 창의성이 넘쳐흐르는 "거짓말의 대가"로, 인터뷰할 때마다 같은 질문에 천연덕스럽게 전혀 다른 답변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말론 브랜도 역시 연기를 하는 데 있어 '거짓말하는 능력'을 중요시하며, '거짓말을 할 수 있다면 연기를 할 수 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단편적으로 보면, 예술가가 작화증 환자(뇌 손상으로 일어나는 드문 유형의 기억장애로 남을 속이겠다는 의식적인 의도 없이 자신이나 세계에 대해 날조되고 왜곡되거나 잘못 해석된 기억을 만들어내는 사람)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예술가는 궁극적으로 자신이 허구를 창조하는 작업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무의식 과정을 본인의 의지대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좀 더 의학적으로 말하자면, 예술가들은 예술행위를 할 때 자기인식과 내적 성찰을 담당하는 전전두엽 피질 부위가 크게 활성화되고, 자기통제 및 자기 감시와 연결된 뇌 부위는 기능은 크게 저하된다고 한다. 예술가는 예술행위를 하는 동안 창조력으로 '놀이'를 하는 것과 다름없고, 시간과 공간의 정상적인 규칙을 보류시킬 수 있다. 음악, 미술, 영화, 문학 등 순수예술이건 상업예술이건 마찬가지다. 백남준 선생은 '예술은 고급 사기다.'라고 말했던가 하면, 앤디 워홀은 자신의 말년에 자신의 예술은 거짓이었고 그저 대중의 눈을 속여 돈을 벌려 했다고 말하지 않았나?(말년이 된 앤디 워홀은 자신의 예술 세계에 대해 아래와 같이 회고했다고 전해진다) 예술이란 본디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변형하거나 새로이 창조해내는 것이니 예술가들이야말로 "타고난 거짓말쟁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일 수 있지만, 문화와 예술에 종사하는 자들이 보다 "그럴듯하게" 거짓말을 해내기를 간절한 바람에는 변함이 없다.
"나의 예술은 사실 거짓이었다.
다만 대중의 눈을 속여 돈을 벌려 했을 따름이다.
대중을 속이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종이에 아무렇게나 선을 긋고
관념적인 단어를 나열하면 관객들은
보물을 얻은 듯 그림을 거꾸로 걸어두고도
좋아했기 때문이다."
4장 '거짓말의 신호'를 읽고 거짓말에 관한 선입견이 많이 깨졌다. 일반적으로 거짓말쟁이라면 구석에서 무언가 웅얼거리며 남을 잘 속일 것처럼 보일 거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카리스마 있어 보이는 외모에 유창하게 말하는 사람이 거짓말쟁이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한다. 게다가 심문을 받을 때는 진실만을 말하는 이들보다 더 일관된 주장을 펼친다고 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거짓말쟁이를 잡아내는 일은 상상보다 훨씬 어려울 뿐 아니라 아주 능숙한 거짓말쟁이를 꿰뚫어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정치인들이라면 남을 잘 속이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집단인 데다, 그들의 뻔한 거짓과 위선에 속아 넘어가는 이들 역시 쉽게 줄지 않는 것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자신을 속이는 데 재주가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학교나 사업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 밝혀졌다. 때때로 사람들은 아직 사실이 아니더라도, 사실이 될 뭔가를 믿는다고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설득한다. (p. 214)'
저자는 거짓말을 단순히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더 건강해지기 위해서도 필요하다며. 게다가 인간에게서 거짓말을 빼앗으면, 아파지고, 우울해지고, 미쳐버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하는데, 그의 모든 주장이 머리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그저 단편적으로 '거짓말은 나쁘다'라고 주입받은 한 사람으로서 마음은 어딘가 살짝 불편한 것도 사실은 사실이다.
해당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