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런시 워 - 아직 끝나지 않은 통화 전쟁
제임스 리카즈 지음, 신승미 옮김 / 더난출판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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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통화 가치는 국가의 치명적인 급소다. 통화가 폭락하면 그와 더불어 모든 요소가 무너진다. (중략) 주식, 채권, 상품, 파생상품, 그 외 투자는 모두 자국의 통화로 가격이 정해진다.

통화가 붕괴하면 모든 시장과 국가도 붕괴한다. 이러한 이유로 모든 금융 전쟁에서

통화자체가 궁극적인 공격 목표가 된다. (p. 232)

 

이 책은 1971년 8월의 어느 일요일에 인기 드라마마저 방영을 중단시키고 신경제정책을 발표한 닉슨 대통령의 이른바 '닉슨 쇼크(Nixon Shock)'로부터 출발하는데, 이는 당시 계속되던 국제수지 적자와 해외로 유출되는 금 때문에 달러와 금의 교환을 금지시킨 조치를 말한다. 벌써 40년도 더 된 이야기다. 그런데 지난 몇 년 간 달러는 또 다시 초유의 위기 사태에 봉착해 있는데다 지금의 위기는 이전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통화 전쟁은 한 나라가 무역 상대국들의 성장을 강탈하려 할 때 시작된다고 한다.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은 연두 교서에서 향후 5년간 미국의 수출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했는데, 이 실행불가능에 가까운 무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국의 통화 가치를 하락시키겠다는 속내가 들어있다. 현 시점에서 통화 전쟁에 연루된 주요 통화는 유로화, 달러화, 위안화이지만 문제는 오늘날 세계화란 이름으로 전 세계가 복잡하게 뒤얽힌 공급망의 속성 탓에 이것이 그저 '남의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이 중국과 유럽뿐 아니라 모든 교역국을 상대로 달러를 평가절하하려고 혈안이기 때문이다.

 

달러화의 평가절하 및 인플레이션을 조장하는 미국의 현 정책은 달러 표시 어음과 채권에 투자한 해외 투자자에게만 피해를 입히는 게 아니다. 이런 정책은 은행 예금, 보험, 퇴직 연금, 연금 보험, 기타 고정 수익 상품을 보유한 미국인 예금자에게도 피해를 준다. 결국 현 정책은 미국과 다른 나라의 모든 예금자와 투자자가 애써 모은 돈을 빼앗아 은행, 헤지펀드, 투기자, 차입자금 투자자의 배를 불려주는 꼴이다. 미국은 15조 달러가 넘는 엄청난 부채를 지고 있기 때문에 그 부채의 가치를 의도적으로 평가절하하는 행위는 세계 역사상 최대의 도둑질이다. (서문 중에서)

 

일본이건 미국이건 경쟁이라도 하듯 양적 완화(*화폐 공급을 늘려 자산 가격을 올리는 방법)로 자국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리고 있고, 유럽 각국 역시도 자국의 통화 가치를 높이기 위해 혈안이다. 언제부턴가 사사건건 미국과 대립하는 중국 역시 빼놓을 수 없으니, 중국도 더는 위안화 절상은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문제는 초강대국들이 양적 완화로 대응하고 해외에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면서 전 세계 거의 모든 주요 수출국과 신흥 강국의 제조 원가를 올린다는 점이다. 세계 거의 모든 나라, 유럽 어느 나라에서부터 브라질, 콜롬비아마저도 자국의 통화 가치 상승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뉴스보도가 끊이질 않는 가운데, 내수가 부진하고 해외수출에 크게 의존하며 가장 큰 피해를 보는 나라 중 하나인 우리나라의 경우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또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미국 정치권의 입장이다. 올 연말에 대선을 치르게 될 미국 역시 바닥으로 뚫고 들어간 경제가 쟁점일 수밖에 없어 공화당 후보들도 그 부분에 대해 집중폭격을 가하고 있는데, 심지어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오바마 행정부와 긴밀히 협조해왔다며 이를 해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의장인 버냉키가 양적 완화로 오바마를 도왔다며 일부 후보는 자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금본위제 복귀를 검토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과연 앞으로 미국이 어느 대통령을 맞아 어떤 정책을 내놓을지 흥미롭다. 어쨌거나 통화 전쟁의 핵심은 달러이고, 그리하여 달러 가치가 붕괴하면 달러 표시 시장도 붕괴하고, 곧이어 전 세계는 다시 한 번 공황에 빠지게 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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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거짓말쟁이들 - 누가 왜 어떻게 거짓말을 하는가
이언 레슬리 지음, 김옥진 옮김 / 북로드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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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강력한 사회적 본성은 진실을 말하는 최고의 이유이기도 하고,

동시에 거짓말 없이 지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p. 319)

 

이 책의 저자 이언 레슬리는 인류의 진화에서 거짓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인류의 지능이 단순히 자연의 위협에 맞서는 과정에서 진화됐다는 주장을 뛰어넘어, 군집을 이뤄 활동하는 인간의 사회적 특성 때문에 지적으로 더욱 복잡한 능력이 요구되었고, 생존을 위해 동료를 속여 먹을거리를 빼앗거나 안심하고 있는 상대의 허를 찌르는 방법을 배워야 했기 때문에 '거짓말'이 인류 진화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정리하면 이 책은 거짓말 자체나 거짓말을 하는 이의 도덕성을 비난하고자 하는 책이 아니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우리가 태어나기를 "거짓말쟁이"로 태어난 데다 조직과 사회에서 생존해 나가는 데 있어 거짓말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거짓말을 일삼는 건 비단 인간뿐만 아니다. 원숭이와 침팬지마저도 먹이를 얻고 상대를 얻기 위해 속임수를 쓴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어떨까?

 

그의 주장대로라면 인간은 태어나기를 거짓말쟁이로 태어났으니, 어린아이라고 거짓말을 못하겠는가? 부모에게 꾸중을 들을 상황이 되면 네 살배기 아기도 본능적 감각으로 자연스레 거짓말을 내뱉는다. 그렇다면 아이에게 무조건 '거짓말은 나쁘다'라고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해결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 있게 들려올 수밖에 없다. 아동 도덕발달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아이들은 대부분 자기 강화 행동으로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로 위기를 쉽게 모면하게 되면 그 아이는 그 이후에 또다시 거짓말을 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저자는 아이가 거짓말을 했다고 추궁하거나 벌을 내리거나 화를 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아이가 가장 좋은 본능을 발휘하도록 믿어주고,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 되는 환경을 만들어주라고 충고한다.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조지 워싱턴의 벚나무 일화는 미국 초등 교과서에도 수록된 것으로 정직의 중요성과 '따뜻하지만 엄격한 부모'가 아이의 발달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어려서 아버지가 영국에서 받은 특별한 벚나무를 베어 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화가 난 아버지에게 혼날 것을 염려했지만 어린 조지는 곧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는데, 그의 정직함에 아버지는 화를 내지 않고 아들의 정직함에 더 집중했다.

 

"조지, 어쨌든 네가 그 나무를 찍어 쓰러뜨렸다니 기쁘다. 네가 거짓말 대신 진실을 말하는 것을 듣는 게 내가 1,000그루의 벚나무를 갖는 것보다 더 좋구나."

 

아이를 무조건 호되고 엄격하게 기르고 가르치는 것이 답이 아니다.  <양치기 소년>처럼 거짓말로 크게 벌을 받는 이야기보다, 조지 워싱턴의 일화처럼 정직의 가치 그 자체를 더 중시하는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이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더 적다고 하지 않는가?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3장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들'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생각을 서로 새롭게 연결하는 능력을 '확산적 사고divergent thinking'라고 불렀는데, 예술은 바로 그곳, 익숙하거나 평범한 것의 요소들을 뭔가 새로운 것이 나올 때까지 뒤섞는 행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던가? 미국을 대표하는 뮤지션 밥 딜런도 예로 등장한다. 그를 담아낸 몇 편의 영화에서도 여실히 보여지듯이 밥 딜런은 창의성이 넘쳐흐르는 "거짓말의 대가"로, 인터뷰할 때마다 같은 질문에 천연덕스럽게 전혀 다른 답변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말론 브랜도 역시 연기를 하는 데 있어 '거짓말하는 능력'을 중요시하며, '거짓말을 할 수 있다면 연기를 할 수 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단편적으로 보면, 예술가가 작화증 환자(뇌 손상으로 일어나는 드문 유형의 기억장애로 남을 속이겠다는 의식적인 의도 없이 자신이나 세계에 대해 날조되고 왜곡되거나 잘못 해석된 기억을 만들어내는 사람)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예술가는 궁극적으로 자신이 허구를 창조하는 작업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무의식 과정을 본인의 의지대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좀 더 의학적으로 말하자면, 예술가들은 예술행위를 할 때 자기인식과 내적 성찰을 담당하는 전전두엽 피질 부위가 크게 활성화되고, 자기통제 및 자기 감시와 연결된 뇌 부위는 기능은 크게 저하된다고 한다. 예술가는 예술행위를 하는 동안 창조력으로 '놀이'를 하는 것과 다름없고, 시간과 공간의 정상적인 규칙을 보류시킬 수 있다. 음악, 미술, 영화, 문학 등 순수예술이건 상업예술이건 마찬가지다. 백남준 선생은 '예술은 고급 사기다.'라고 말했던가 하면, 앤디 워홀은 자신의 말년에 자신의 예술은 거짓이었고 그저 대중의 눈을 속여 돈을 벌려 했다고 말하지 않았나?(말년이 된 앤디 워홀은 자신의 예술 세계에 대해 아래와 같이 회고했다고 전해진다) 예술이란 본디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변형하거나 새로이 창조해내는 것이니 예술가들이야말로 "타고난 거짓말쟁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일 수 있지만, 문화와 예술에 종사하는 자들이 보다 "그럴듯하게" 거짓말을 해내기를 간절한 바람에는 변함이 없다.

 

 

 "나의 예술은 사실 거짓이었다.
  다만 대중의 눈을 속여 돈을 벌려 했을 따름이다.
  대중을 속이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종이에 아무렇게나 선을 긋고
  관념적인 단어를 나열하면 관객들은
  보물을 얻은 듯 그림을 거꾸로 걸어두고도
  좋아했기 때문이다."

 

 

4장 '거짓말의 신호'를 읽고 거짓말에 관한 선입견이 많이 깨졌다. 일반적으로 거짓말쟁이라면 구석에서 무언가 웅얼거리며 남을 잘 속일 것처럼 보일 거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카리스마 있어 보이는 외모에 유창하게 말하는 사람이 거짓말쟁이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한다. 게다가 심문을 받을 때는 진실만을 말하는 이들보다 더 일관된 주장을 펼친다고 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거짓말쟁이를 잡아내는 일은 상상보다 훨씬 어려울 뿐 아니라 아주 능숙한 거짓말쟁이를 꿰뚫어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정치인들이라면 남을 잘 속이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집단인 데다, 그들의 뻔한 거짓과 위선에 속아 넘어가는 이들 역시 쉽게 줄지 않는 것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자신을 속이는 데 재주가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학교나 사업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 밝혀졌다. 때때로 사람들은 아직 사실이 아니더라도, 사실이 될 뭔가를 믿는다고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설득한다. (p. 214)'

 

저자는 거짓말을 단순히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더 건강해지기 위해서도 필요하다며. 게다가 인간에게서 거짓말을 빼앗으면, 아파지고, 우울해지고, 미쳐버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하는데, 그의 모든 주장이 머리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그저 단편적으로 '거짓말은 나쁘다'라고 주입받은 한 사람으로서 마음은 어딘가 살짝 불편한 것도 사실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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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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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굽이를 지나면 또 다른 굽이가 오고, 그 봉우리를 넘으면 또 다른 봉우리가

기다린다. 단숨에 돌파할 생각은 버려라. 삶도 사랑도 사기 치는 짓까지도 언제나

첩첩疊疊하다. (pp. 120~121)

 

이제야 접하게 된 김탁환의 작품이다. 요새 주목받는 영화의 원작이라서가 아니라 순전히 제목이 무슨 뜻인가 하는 궁금증에 덜컥 구매부터 해버렸는데 저자의 다른 작품들도 조만간 모두 읽겠노라고 다짐할 정도로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그간 익히 들어 알고 있던 대로 '스토리 디자이너' 김탁환, 그의 스토리텔링은 황홀할 정도이고,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과연 영화에서 이를 얼마나 잘 표현해낼지 걱정부터 앞선다. 

 

대체 무슨 뜻인가 궁금했던 가비는 coffee의 영어발음을 딴 고어라 한다. '가비'가 coffee라는

걸 알고 나니, '노서아'의 뜻을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노서아 가비란 러시안 커피를 말함.) 주권을 잃고 세계열강에 짓밟혔던 지금으로부터 한 세기 전의 역사를 고스란히 만나볼 수 있는 이 책은 명성황후가 비운의 생을 마감한 후 홀로 남은 고종 황제께서 아관파천이라는 굴욕을 당하던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고종 황제는 실제로 커피를 즐겨 드신 걸로 알려져 있으며,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돌아가신 가운데 오늘날까지도 독살설이 제기돼 오고  있는데 이 책은 바로 거기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통)역관이던 아버지가 난데없이 청나라에서 고종을 위한 천자의 하사품을 가로 챙겼다는 누명을 쓰고 죽자, 열아홉 살의 여주인공은 아버지의 죄의 대가로 시골 관아의 노비로 늙어야 하는 운명을 피해 러시아로 도망친다. 외국어 교본이 사방 벽에 가득 꽂힌 서재로부터 멀리 달아났다. 머물러 썩어가느니 붙잡혀 치도곤을 당하더라도, 불행을 거스르고 나랏법을 거슬러 오르고 싶었다. 천하를 덮는 조롱이 등장한다고 해도 나는 그 조롱 너머로 날갯짓하리라. (p. 23)  그곳에서 은여우로 통하며 그림을 위조하고 유럽 귀족들을 속여 러시아 숲을 파는 등 엽기적 사기행각을 벌이던 주인공 따냐는 '자신의 삶을 흔들고 찢고 흩어놓은' 희대의 사기꾼 이반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데 어느 날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러시아 황제 니꼴라이 2세의 대관식에 조선 사신들이 참석한다는 소문을 듣고 두 사람은 러시아 측 통역관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연회에 참석한다. 러시아 황제가 고종 황제에게 준 선물을 가로채려 하는 이반과 따냐 두 사람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재회하고, 따냐는 우연하게 고종의 바리스타가 된다. 

 

이 책은 철저히 여주인공 따냐를 위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언제 이런 여주인공을 가져보았던가?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전형적이지도 않으며, 결코 순정적이지도, 이데올로기적이지도 않고, 역사와 민족이라는 둔중한 무게에 짓눌리지 않을뿐더러 그 표면 위를 매끄럽게 미끄러져 가는 여주인공을 우리 소설에서 만나본 적이 있었던가? (pp. 248~249)


책 맨 뒤에 실린 문화비평가 강심호의 글처럼, '우리가 언제 이런 여주인공을 가져보았던가?'라는 데서 오는 뿌듯함은 물론이고, 이 한 권의 책 속에서 보여지는 따냐의 눈부신 고군분투에 통쾌함과 유쾌함을 한껏 만끽할 수 있다. 시대가 사실 너무 우울하지 않았는가! 누구는 인간된 도리로 어찌 저토록 추접스러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욕심으로 저와 제 가족이 사는 나라를 파는 데 혈안이고, 누구는 그 와중에도 거액을 착복해 유배됐으면 반성하고 살지는 못할지언정 되려 왕에게 앙심을 품고 왕이 즐겨 마시던 차에 독을 넣고, 또 누구는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고자 인접국의 황제를 찾아가 굴욕적인 자세로 도움을 청하며 눈물을 훔치고, 나라의 황제는 한때 나라의 국모이자 자신의 아내였던 이를 허망하게 잃고 쓰디쓴 커피만 연거푸 들이켜며 절망하고 있다. 그런데 따냐는 이 우울한 시대에 대한 푸념을 뛰어넘어 그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자 비상의 날갯짓을 멈추지 않겠노라고 다짐한다. 부모를, 꿈을, 나라를 빼앗긴 데다, 정인이라 여기던 사내에게 배신당하지만 그래도 주저앉아 울고만 있지 않는다. 그는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상대에게 모든 걸 걸지는 말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는 거짓과 사기를 일삼지만, 사실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서로서로 속이는 가운데, 그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수단은 오직 그뿐이었다. 그렇기에 따냐, 그를 응원할 수밖에 없다. 어느 풀숲에나 독사는 있기 마련이라지만, 그 숲에서 무엇인가를 얻어 갈 작정이라면, 독사가 꼬리를 내리고 사라질 만큼 강한 독기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그에게 어찌 멋지다는 찬사를 늘어놓지 않을 수 있겠는가!

 

1898년 덕수궁에 자리한 정관헌에서 이반으로 분한 러시아 통역관 김홍륙이 고종 황제와 순종이 마시는 커피에 독을 탔다. 맛이 이상하다고 느낀 고종 황제는 순종은 지능에 손상을 입고 생식기능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피비린내 나는 쓰라린 역사 속에서 홀로 종횡무진이던 한 젊은 여인의 처절하지만 경쾌한 비상의 날갯짓을 떠올리며 진한 노서아 가비를 마시고 싶은 밤이다. 

 

그런데 대체 커피라는 그 검은 액체를 어떤 형용사로 설명할 수 있을까? 저자의 표현대로, 커피는 외로운 마음을 다독여주는 속삭임이고, 불쑥불쑥  떠오르는 첫사랑을 닮았는가 하면, 달면서도 쓰고 차면서도 뜨거운 기억의 소용돌이이고, 끝나지 않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자 아름다운 독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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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지갑을 조종하는가 - 그들이 말하지 않는 소비의 진실
마틴 린드스트롬 지음, 박세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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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들은 이제 사람들의 두뇌를 스캔하고, 무의식 가장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두려움과 희망,  취약점과 욕망을 발견해내는 중이다. 또 우리가 남기는 디지털 발자국을 면밀히 추적한다. (p.13) 


   브랜드 미래학자로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도 선정된 바 있는 브랜딩 분야의 전문가 마틴 린드스트롬Martin Lindstrom의 최신작이다. 원제((Brandwashed)가 말하듯 이 책은 '누가 내 뇌를 조종해 브랜드 제품에 대해 내 지갑을 열게 하는가'를 풍부한 사례를 곁들여가며 이야기한다.

 

  실제로 이 책의 저자 마틴 린드스트롬은 일 년 동안 브랜드 제품을 하나도 사지 않기로 다짐하며 '브랜드 해독(brand detox)프로젝트'에 도전한 바 있다. 즉, 이미 가지고 있는 제품은 쓸 수 있지만 브랜드 제품을 새로 살 수는 없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그 프로젝트는 결국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수포로 돌아갔다. 실패로 인해 그 스스로도 안타까움을 표하지만, 나는 그가 바로 브랜드 전문가이고, 또 주변의 협조 아닌 협조가 있었기에 그나마 오래 버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마치 흥미로운 소설책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 책을 쉽게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었는데 아마도 이 책에서 예로 들고 있는 것들이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이라 나와 주변의 이야기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요새 우리 사회에서도 문제시되는 것들 - 국민 '등골 브레이커'에 등극한 노스페이스 점퍼, 립밤의 부작용,  유기농 제품에 대한 진실, 지나친 섹스 어필 광고, 연예인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이를 부추기는 무분별한 언론, 소셜커머스 사이트의 애용, 멤버쉽 카드의 적극 사용, 때로는 불쾌감마저 자아내는 보험광고 등 - 이 모두 들어있어 저자가 매일 뉴스를 보며 칼럼을 적은 걸 책으로 엮은 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솔직히『괴짜경제학 』의 저자이자 시카고 대학 교수인 스티븐 레빗의 추천사처럼 '완전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너무도 친숙하고 일상적인 주제들을 확실하면서도 분명한 어조로 주장을 펼쳤기 때문에 내 경우에는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이야기 하나 하나 다 재미있지만 초반부에 나오는 키즈와 영 어덜트 라인을 집중 공략하는 업체의 태도에 가장 주목했다.    

 

  *기업은 왜 '키즈 라인'에 목숨을 걸까?
   

  오늘날 마케터 및 광고업체들은 소비자들을 브랜드워시brandwash하고, 고객 충성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다양하고 교묘한 계획들을 철저하게 마련한다. 실제로 이 책에서 나온 사례들만 보더라도 우리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마케터와 광고업체들에게 브랜드워시당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셸Shell은 레고와 제휴를 맺고 자사의 로고를 레고 장난감 위에 인쇄한다. 그럼 자동차 광고는 어떨까?  이 책에서는 포르셰 광고를 예를 들고 있지만 국내 자동차 광고도 예외는 아니다. 특정 브랜드나 제품을 처음으로 사용하는 시점이 어리면 어릴수록 당연히 그 제품을 사용할 시간이 길어지는 데다, 어린이들 자체가 부모의 소비를 유도하는 훌륭한 마케팅 도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어릴 때 사용했던 브랜드를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브랜드기업이 향수(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게 바로 그 때문이다. 즉, 마케터들은 소비자들이 그들의 브랜드를 집이나 가족과 관련된 추억과 연결시키게 해서 사람들이 그들의 브랜드 제품을 사용하면서 마치 과거로 돌아갔다거나 과거의 소중했던 이들과 다시 연락이 닿은 듯한 느낌을 불러 일으키려는 것이다.  

  

소비자의 갈망을 자극하든, 화학적으로 중독적인 성분들을 제품에 집어넣든, 쇼핑을 도무지 멈출 수 없는 게임으로 만들든 간에 앞으로 기업과 마케터들은 소비자들이 그들의 브랜드와 제품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도록 인간의 심리와 욕망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p. 118)


히트곡이든, 크리스마스선물이든, 명품 핸드백이든 우리 두뇌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 '원해야만' 하는 것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p. 176)


  기업들이 소비자인 우리들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고, 또 어떻게 알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기꺼이 지갑을  열도록 만들기 위해 앞서 말한 정보들을 어떻게 조합하고 활용하는지에 대해 낱낱이 알 수 있는 책이다.

 

  말하자면, 이 책을 읽고 나면 음반이나 책처럼 베스트셀러 순위 같은 것에도 전보다는 훨씬 덜 휘둘릴 것이고, 모두가 갖고 있(다고 느끼)는 최신 유행 제품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야만 할 것 같은 동료압박peer  pressure으로부터도 최소한 어느 정도는 해방되고, 대신 그만큼 자존감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비합리적인 소비를 일삼거나 그러한 충동을 자주 느끼는 계층이나 집단이 먼저 읽기를 권하고 싶다. 그리하여 모든 이들이 마케터나 광고회사에게 더는 세뇌당하지 않고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소비하게 된다면 그것은 얼마나 바람직하겠는가?

 

  브랜드 기업들은 소비자들을 중독으로 몰아가고, 중독 증세를 더 심각하게 만들기 위한

  다양한 기술과 도구들을 이미 확보하고 있다. (p. 93)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

 

   - 더글러스 러시코프

   <당신의 지갑이 텅 빈 데는 이유가 있다Coercion: Why We Listen to What The Say>

   - 페기 오렌스타인

   <신데렐라가 내 딸을 잡아먹었다Cinderella Ate My Daughter>

   - 줄리엣 쇼어

   <쇼핑하기 위해 태어났다Born to Buy>

 

해당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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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력 연습 - 삶을 변화시키는 마지막 품격, 존중을 단련하라
르네 보르보누스 지음, 김세나 옮김 / 더난출판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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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일 때문에 동화를 자주 읽게 되는 탓이라 그런지 한국판 표지에 더 눈길이 갔다. 이솝우화 '사자와 쥐'에서 두 주인공이 이제 막 만난, 그 긴장이 감도는 순간을 그대로 표현한 것 같아서다. 겁먹은 쥐와 위압적인 사자의 모습은 서로에 대한 존중이 없는 관계를 나타낸다. 다문화, 다원화, 게다가 양극화 사회로까지 정의되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존중이란 두 글자가 갖는 의미는 그래서 더욱 크다.

 

 

 

존중은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상대에게 표해야 하는 가치 인정의 핵심이라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요건'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나를 존중하는 만큼 나 아닌 남을 존중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타인을 존중할 줄 아는 자세가 나와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돕고, 타인을 좀더 쉽게 설득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상대를 향한 진심 어린 마음과 태도는 결국 고스란히 내게로 돌아온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타인과 존중 받는 인간관계를 맺으려면, 우선 나와 타자의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짓지 않는, 서로에 대한 절대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나와 상대가 다르다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상대를 존중하면, 어떤 종류의 차별이라도 배제하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 보면 사회 평화에 이바지하는 것이고, 좁은 의미에서는 보다 넓고 깊은 인간관계를 유지시켜주는 데 도움이 된다.

 


흔히들 사랑받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부터 사랑하라고들 한다. 존중 역시 마찬가지다. 타인에게 존중 받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부터 사랑하고 존중하라고 한다. 저자는 또 우리가 타인에 대한 존중하는 마음이 없이 행동하는 일차적인 이유는 상대에 대한 주목, 즉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그렇다면, 결국 이 시대와 사회에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이들이 적은데다, 서로에 대한 관심도 적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상적인 문장이 있었는데, 바로 '양극화된 오늘날의 세상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해되지 않는 것을 적어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p. 65)'는 대목이다. 모든 것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더라도 적어도 존중하라는 말, 이 말 한마디면 되지 않을까? 우리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건 거창한 게 아니라 바로 이 정도인지도 모른다.  

 

 

참, 베스트셀러가 된 책의 제목이기도 한 존중과 '회복 탄력성'과의 연결은 흥미롭다. 우리는 타인에 대해 쉽게 상처받기도 하고, 반대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에게 상처를 안기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곧잘 평정심을 잃는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어려운 상황을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회복 탄력성'이다. 그것은 위기의 순간에서도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낼 줄 아는 능력으로, 저자는 회복 탄력성을 상대의 존중심 없는 행동에 대처하는 방법 중 하나로 꼽고 있다.

 

 

 

해당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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