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의 소파에 누운 경제 - 자본주의가 앓는 정신병을 진단하다
토마스 세들라체크.올리버 탄처 지음, 배명자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프로이트의 소파에 누운 경제>는 상당히 인상적인 책이다. 실험에 의하거나 학문적인 통찰에 의한 보편적인 경제학 접근 방식과는 전혀 다른, 신화와 경제의 접목이다. 그냥 연결시켰다면 별로일 터인데, 마치 수능 문제처럼 이중적 물음으로 읽는 이의 흥미를 더하고 있다. 일단 신화에 투영된 인간의 원초적(원형적) 심리를 프로이드나 칼 융, 또는 프롬의 이론으로 짚어본 후, 그 인간성의 발현으로써 경제 현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경제시스템 해석도구로써 보편적 인지분석이 아닌, '신화'를 통해 설명해 내는 그 발상과 논리가 상당히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책의 원제가 '릴리스와 자본의 악마 Lilith und die Damonen des Kapitals'이다. 릴리스는 아담의 첫 아내였다고 한다. 하와(이브)가 아닌... 그녀는 아담과 동등함을 주장하다가 에덴동산(완벽함의 상징)을 자발적으로 떠난다. '억압의 시스템'이 없는 낙원에서 릴리스가 억압을 느꼈다는 것, 즉 "억압을 느끼는 것은 억압하는 시스템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억압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기본 감정이자 '인간의 조건'에 속한다(46쪽)."라고 저자는 피력한다. 자본주의를 비판할 때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이 바로 '개인의 억압' 아닌가. 릴리스는 이렇게 자본주의가 가지는 문제점의 은유로 등장한다. 그런데 출판사는 왜 제목을 <프로이트의 소파에 누운 경제>라고 바꾸었을까?

 

서문을 읽어보니... 정신분석의 전형적인 모습이 '소파에 누워 이야기하는 환자'라네. "경제를 소파에 눕혀놓고 그것이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경청한다. 경제는 무슨 말을 할까?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합리화할까? 무엇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하고 어떤 주제를 터부시할까? ... 어떤 신화와 선입견이 경제의 (합리적) 사고에 영향을 미칠까?"... 이런 궁금증의 원천은 '경제는 확실히 메시아 콤플렉스가 동반된 나르시시즘 징후 같은 몇몇 중증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진단에서 출발한다. 이를 바탕으로 “경제 및 경제시스템의 정신적 장애를 확실히 찾아낼 수 있을까? 있다면 어떤 장애일까? 경제는 얼마나 사회적 장애를 앓고 있는가? 무엇이 장애를 강화하고 또 완화하는가?(13쪽)”하는 의문에 대한 고찰이 이어진다.

 

좀 더 들여다보면... 우리가 지금의 경제시스템 덕분에 큰 진보와 막대한 부를 얻었지만, 체계적으로 관찰해 보면 사디즘, 나르시시즘, 사도마조히즘의 병증이 감지된단다. 정신의학의 도움을 받아 경제에 스며든 다섯 가지 장애를 찾아내냈었는데 현실인식장애, 공포증, 정서장애, 충동조절장애, 성격장애가 그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 시대의 장애와 고대 신화를 연결하여 인류 존재 자체에 가해졌던 비판과 현대 시장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얼마나 닮았는지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프로이드(신화를 질병의 시각화와 환자 분류에 이용)와 융(신화를 통해 인간 경험의 원형과 집단무의식을 감지)의 이론이 경제를 위한 치료 방법 모색의 주요 도구로 활용된다.

 

"경쟁의 토대에서만 생존할 수 있는 사람은 더는 자유로운 거래를 누릴 수 없고, 경쟁시스템에 동참하지 못하는 순간 경제적으로 죽게 된다. 그러므로 이른바 경쟁의 자유는 경쟁의 강요다(118쪽)."

 

예를 들어보자. 슘페터의 '창조적 혁신(파괴)'에 대한 기본 생각은 기업인이란 그들의 수익만 유일한 진보라고 여기고 합리화와 긴축 압박으로 점점 더 시스템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쾌락적이고 정적인 경제'의 보증인이라고 보았는데, 저자는 여기서 프로이드의 논문 <두려운 낯섦>을 연결시킨다. 시장경제와 그 공격적인 시스템에 대한 접근은 아킬레우스의 '도구적 공격' 즉 도구화된 경제로 풀어낸다. 자신의 부를 확대하기 위해 공격한다는 거지. 서구문명은 이런 공격성이 중요한 구실을 하는 역동적인 사회인데, '쾌락을 주는 공격'이 가장 위험하단다. 과도한 경쟁에서 행해지는 폭력은 쾌락을 주는 공격과 강하게 일치한다는 말이 왠지 설득력이 있게 느껴졌다.

 

우리 모두에게 내재된 두려움 콤플렉스는 또 어떤가. 프로이트와 융의 이론으로 불안의 구조에 접근해 보면 공포와 근심은 '자아'에게 너무 불편하기에 기꺼이 억눌리고 무의식 안에 머문다. 이런 억눌린 충동은 강박적 신경증으로 이어져 더욱 위험해지고 통제되지 않는다고 한다. 경제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패닉에 빠진 시장)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이 패닉을 설명하면서 신화 속의 판(목축의 신)을 끌어들인다. 이렇게 신화 - 인간의 원형적 본성 - 경제 현상을 연결하여 원천적인 차원에서 경제를 해석하려고 시도한다. 즉, 저자는 현재의 경제시스템이 야기하고 있는 '정신적 실존적 파멸의 길'의 현주소를 보여줌으로써 신 또는 운명이 정한 것으로 여겨지는 시스템과 메커니즘을 의심하게 이끌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상가들이 자본주의가 가진 구조적 모순과 역설에 대해 말한다. 당대의 철학자 슬라예보 지젝 또한 라캉의 '상징-실제-상상' 개념을 차용하여 '자본주의의 과잉'을 설명하더만... 그런데 이런 문제가 인간의 본성과 존재 자체에서 비롯한 원천적 모순이요 역설이라면? '에이~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싶다가도 이세돌과 겨룬 알파고를 떠올리면 우리가 아는 상식이 정답이 아닐 때가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경제의 정신을 분석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테마지만, 여기에 신화를 대입하니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하여 이 책이 자본주의가 내포한 '함정'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도 기존 경제 분석 책에서 약간 벗어난 이런 책, 나름 읽을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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