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대숙청 - 드골의 나치협력 반역자 처단 진상
주섭일 / 중심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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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한 시기에 중부지방인 비쉬(Vichy)에서  페탱을 중심으로 비쉬정부가 형성된다. 페탱은 프랑스를 보호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나치에게 협력했다고 주장하지만 히틀러가 몰락한 후에 나치의 꼭두각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권을 잡은 드골은 당시의 친독일 인물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기 시작한다. 이때 제기되는 것이 사형제도의 논란이고 유명한 사르트르와 까뮈의 논쟁도 이루어졌으리라!

저자는 기본적으로 드골에 대해 호의적이다. 

 "드골의 큰 정치에는 사익을 배척하고 공익을 존중하는 공정성의 정신이 언제나 바탕에 깔려 있었다. 누구도 감히 드골의 대숙청과 국유화 조치 등 경제개혁에 비판의 화살을 날릴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드골의 공정성 때문이었다. "라고 쓰고 있다.

드골의 숙청은 단계적 계획을 갖고 이루어졌다.  내무장관이었던 퓌슈를 시작으로 언론인들을 1차 숙청대상으로 삼았다. 언론인들을 처형함으로써 언론을 잠재우고 신속하고 쉽게 숙청을 이루어갔고, 드골의 지지기반 역시 공고하게 굳어져 간다.

저자의 친드골 성향과 별개로 드골주의에 염증이 난 프랑스는 미테랑을 택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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