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인된 시간 - 영화 예술의 미학과 시학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지음, 김창우 옮김 / 분도출판사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는 게 흥이 안 날 때 집어드는 책 중 한 권이다. 종교가 없는 내게 성경과 같은 역할을 하는 책다. 책의 내용 면에서도 형식적 면에서도. 어느 챕터든 내키는대로 펼쳐서 읽기 시작하면 떠돌던 마음이 비틀거리다 가만히 주저앉는 거 같다. 게다가 내 머리속에 초강력 성능을 발휘하는 지우개가 있어 책을 펼칠 때마다 매번 새로 읽는 듯한 기분이다. 어느 날은 도스토예프스키 인물들에 대한 예리한 지적에 감탄하고 또 어느 날은 타르코프스키가 추구하며 구현하는 영화 언어에 고개를 끄덕인다. 또 어느 날은 영화 산업에 대한 통찰에 깜짝 놀란다. 20세기 후반에 쓰였지만 21세기가 끝날 때까지도 유효할 안목을 보여주신다.

 

오늘은 내 인생의 연출자는 나란 생각과 맞물려 역시나 랜덤하게 읽다가 몇 줄 적는다.

 

"예술은 이리저리 실험하도록 허용하는 학문은 아닌 것이다. 실험이 다만 실험의 수준에 머무르고 만다면, 즉 한 예술가가 한 편의 영화를 완성시키는 과정에서 극복하는 은밀한 작업 과정을 묘사해 주고 있지 못한다면 예술의 본질적 목표는 이룩되지 못한 것이다."(121)

 

인생도 진정한 예술처럼 실험으로만 채워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신만의 삶의 스토리를 완성하는 중에 여러가지 실험은 필수지만 실험 속에서 파생된 본질을 간과하면 그 삶은 스토리를 잃고 단편적인 파편만으로 남는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공포란 게 등 뒤에서 와락 껴안는 거 같다. 다행히 타르코프스키는 해결책도 주신다!

 

"현실을 단순히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거만함 없이, 현실의 영원한 의미를 추구(했다). 그리고 이 관찰이 예리하면 예리할수록 그만큼 독창적이 되고, 독창적이면 독창적일수록 그 관찰은 형상에 그만큼 더 근접해 있는 것이다."(130)

 

이 말은 하이쿠 시인들에 대한 찬사를 보내면서 관찰이 영상화로 나아가는 계기를 적은 거지만 영화 이외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타르코프스키는 자신의 영화 언어를 설명하기 위해 책을 썼지만 영화는 현실과 유기적 관계를 이루고 있기에 삶과 사물에 대한 기본 자세에 대한 언급이 많다. 삶의 태도에 도움되는 말이 수두룩하다. 삶에 대한 성실한 태도가 훌륭한 영화를 만드는 전제조건이다. 내일부터는, 서두르지 말고 겸손하게, 주춤거리기는 해도 멈추지 말고, 태양을 맞이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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