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러스킨의 드로잉
존 러스킨 지음, 전용희 옮김 / 오브제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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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예술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관찰자적 시선을 통한 자신만의 인지를 발달시키는 사람이 예술가다. 모든 예술가들한테 필요한 도구는 손이다. 화가는 붓을 자신의 손처럼 다루는 사람이고 악기를 연주하는 이는 악기가 손이고 사진가한테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민첩한 손이고 작가한테는 언어를 활자화하는 손이다. 영역은 달라도 어떤 경지까지 오르는 방법은 동일하다. 연습 밖에 없다.

 

드로잉 입문서인데 꼭 드로잉이 아니라도 글을 읽다보면 실천적 행동 지침이 관찰에서 나오며 면밀한 관찰 후 손을 빠르고 가볍게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하라고 한다. 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이 책을 읽은 건 아니지만 글을 쓰기 위한 작법서나 사진을 찍기 위한 메뉴얼과 접점을 발견했다. 뭉뚱그려서 상황을 언어로 묘사하는 건 좋은 글이 아니며 카메라의 피사체 역시 구체적일 때 의미있는 컷이 나올 수 있다. 어떤 예술 영역이든 기본기를 건너 뛰고 풍부한 표현력을 기를 수 없다.

 

러스킨이 시키는 건 돌멩이 하나를 택해서 완전히 외울 수 있을 정도까지 돌멩이를 그려보는 것이다. 돌멩이의 질감을 외울 수 있다는 말은, 그만큼 시간을 가지고 관찰을 했다는 말이다. 많은 글, 그림, 사진들이 있지만 어떤 작품은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과거로 흘러가고 또 어떤 작품은 시간이 흘러도 오래 기억 속에 살아있다. 오래 기억 속에 살아있는 작품을 보면 뭔지 모르지만 마음을 끄는 구석이 있다. 그게 색감일 수도 있고, 전체 분위기 일수도 있고, 또는 전체와 무관한 어느 한 지점일 수 있다. 이런 느낌을 갖게 해 주는 작가들은 기억해 두었다 일부러 작품을 찾아보게 된다. 이 말은 작가가 다른 작품에서 어떤 시선을 가졌는지에 대한 궁금증에서 나온다.

 

일반적으로 같은 사물이나 현상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 연습을 한다면, 모두 예술적 삶을 살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철학에서는 상대성이나 다양성을 강조하는데 예술과 철학이, 원래 한 뿌리였다는 걸 잊지 말자. 화가란 추상적 미를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라 과학적 분석을 토대로 자신만의 눈으로 포착한 것만을 담아내는 아주 구상적 미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일반인 눈에는 보이는 구상과 화가의 눈에 보이는 구상이 다를 뿐이다. 모든 예술의 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술은 곁에 두고 배울 가치가 있다.

 

이 책은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한테도 유용하고 그림을 배우고 있지만 무언가 막혀있을 때다. 또 그림 감상을 취미로하는 사람한테도 좋다. 그림 감상은 미술사라고 잘못 생각할 수 있는데 그림을 미술사 속에서가 아니라 그림 자체로 감상할 수 있는 시선을 갖도록 도와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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